〔전시비평〕
mass, mass, mass -전국광 15주기전, 2006. 6. 24-7.17, 모란미술관
적(積)이 창출하는 매스의 내면
김성호(미술평론가)
예술가로서의 한 생애를 열정적으로 불사르던 전성기에 불의의 사고로 타계했던 조각가 전국광(1945-1990)의 15주기전이 모란미술관에서 열렸다. 그의 나이 불과 마흔 여섯에 타계했던 만큼 그가 한창 전개해나가고 있던 당시의 작품 세계, 그 이후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애석할 따름이다.
그의 조각이 담지하고 있는 작품세계는 작품명에서도 드러나듯이 크게 〈적(積)〉시리즈(1977-89)와 <매스의 내면>시리즈(1983-90)로 나뉜다. 그런 면에서 이 둘의 상관항은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조각의 지향점을 대별되게 해준다.

고 전국광
그러나 이것이 명확하고도 확정적으로 구별되는 성질의 것은 아닌데, 우리는 이번 15주기전에 특별히 재현된 4회 개인전 풍경을 통해 이와 같은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1986년 일본 교토시의 마로니에 화랑에서 열렸던 이 개인전은 전시장 전체를 실, 종이, 매트리스, 비닐테이프 등의 다양한 재료를 통해 하나의 설치형식으로 꾸몄었는데,《매스의 내면-0.419㎥ 의 물상》이란 전시명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등장한 작품들은 〈적(積)〉시리즈와 <매스의 내면>시리즈에서 각기 나타난 형식적 특성이 중복, 병치되고 있다. 즉, 〈적(積)〉시리즈에서 보이는 ‘쌓여지는 외부 확장형 이미지나 작업방식’이 <매스의 내면>시리즈에서 보이는 ‘내부 축소형 이미지나 그 작업방식’이 함께 중첩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두 시리즈가 유발하는 미학 역시 매우 긴밀하다.
시기상으로는 〈적(積)〉시리즈가 먼저 출발했다는 점에서 〈적(積)〉시리즈로부터 <매스의 내면>시리즈로 옮겨가는 흐름을 보이지만, 그의 타계 전까지 이 두 시리즈가 늘 재생산되었다는 점에서 둘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상호간 영향이 끝없이 교차하고 있는 ‘이란성 쌍둥이’가 되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15주기의 《mass, mass, mass》라는 전시테마는 ‘매스’와 ‘적(積)’이 반복되는 전국광의 조각형식과 미학적 특질에 대한 우리들의 앞서의 이해를 도모하고 있다.

전국광_제4회 개인전_「Mass의 내면-0.419m2의 물상」_토쿄 마로니에 화랑_1986

전국광_「매스의 내면-0.419㎥의 물상」재현작품
“적(積)”-‘유기적 자연의 이미지’로부터 근원하는 반복적 변용
그의 <적(積)>시리즈는 석조이든 주물 작업이든 납작한 판형의 개체가 지속적인 쌓임의 단계를 드러내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비에 젖은 종이를 겹겹이 올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굴곡과 일그러짐이 자리하고 있는 모양새를 현실감 있게 드러내고 있는 유형이다. 그것은 작가가 출렁이는 물결이나 야트막한 흙 언덕의 풍경 같은 자연의 이미지로부터 빌려 온 것들이다. 작가의 말의 빌면, ‘좀 더 자연 그대로의 우람한 힘, 거대한 지면의 굴곡을 삭임질하려는 생각으로 매스 안에다 동세를 편안하게 부각시키되 손질을 많이 가하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율동을 표현하려 한 것’인 셈이다. 작가는 이 <적(積)>시리즈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단지 자신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출렁거리는 수면, 완만한 곡면을 이루며 한없이 펼쳐진 광야, 노년의 야산이 지니고 있는 풍량한 매스와 선, 피부에 와 닿는 기류의 운동과 같은 자연적 체험들을 녹여서 그 안에 주입시켜 보고픈 충동이 일어나는 것으로 대신해 온 듯하다.”
-전국광, 작업노트, <나의 염작(念作)에 있어서 한국적인 것의 의미>, 공간, 1979, 7월호
이러한 유기적 자연성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리드미컬한 판상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이들 작품은 미술평론가 이일의 지적처럼, 구조성을 핵으로 한 “무한한 변주와 변용”으로 실현된다. 이미지가 반복(repetition)과 집적(accumulation)을 통해 변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그 방법적 전략이 유사하지만 그 이미지가 인공이 아닌 자연의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그의 작업은 이른바 ‘상징된 자연(represented nature)’이자 동시에 추상된 자연(abstracted nature)이며 나아가 ‘구축된 자연(constructed nature)’이 되는 것이다. 산업화된 입방체와 사물로서의 오브제로 귀결되어 단지 그 배열의 원리만이 강조되던 미니멀리즘과 같은 막막한 서구 모더니즘의 강령을 출발부터 그의 작업은 배반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광_매스의 내면_황등석_138×140×30cm_1983

전국광_「매스의 내면」재현작품
1977년 공간 대상이라는 공모전에서 수상한 <적-변이Ⅰ>로부터 우리는 이러한 전조를 발견할 수 있지만 보다 더 다양한 양상을 우리에게 보여준 때는 1979년의 제1회 개인전에서였다. 바닥에 놓이거나 조각대에 사뿐하게 올라서 있는 전시 출품작들은 한결 같이 지면으로부터 융기하거나 혹은 대기로부터 차곡차곡 내려앉은 단편층들의 반복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들의 ‘반복적 겹침과 쌓임’의 이미지는 달의 인력(引力)에 의해 넘나드는 썰물이나 밀물의 이미지와 같아 보인다. 이러한 유기적 굴곡의 이미지들은 자연의 힘에 순응하는 동양의 자연관을 상징화하거나 추상화하는데 적절해 보인다. 따라서 그의 조각에 대한 평가는 다음처럼 이일이 밝히고 있듯이 ‘조각적 현존으로서의 유기적 구조 속의 통합‘을 지향한다.
“전국광 조각의 실체는 그 어떤 특정 형태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 구조체로서 다시 말해서 ‘생성(生成)하는 하나의 현존(現存)’으로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다. 언뜻 보기에 때로는 그의 조각이 기하학적 형태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 실제로 그의 조각의 바탕에 반복적인 기하학적 패턴이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필경은 하나의 조각적 현존으로서의 유기적 구조 속에 통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앞서의 작업노트에서 밝힌 전국광의 작업에의 ‘충동’이란 기하학적 충동이 아닌 유기적 충동으로 귀결된다고 할 것이다. 1980년대 초반 당시의 <평면분해>, <입체분해> 와 같은 작업들 역시 여전히 <적(積)>시리즈의 근원적 성찰로부터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유기적 자연으로부터 근원하는 반복적 변용’은 <매스의 내면>시리즈와 다리를 잇고 있는 <적(積)>시리즈에 대한 핵심적 평가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것이다.

전국광_적(積)-아! 대한민국_포천석_200×50×220cm_1988
“매스의 내면”-‘유기적 자연의 내재율’로 재침투하는 반복적 변용
<매스의 내면>시리즈는 ‘외연’으로 확장되던 <적(積)>시리즈가 ‘내면’으로 침투하는 변용의 형태를 띠면서 나타나고 있는데, 작가의 언급을 빌면, <매스의 내면>은 ‘최소한의 볼륨으로 최대의 매스를 낳게 하려는 경제성의 개념’과 같은 철학적 사유로부터 창출된 것이다. 즉 부피가 야기하는 합집합의 공간을 주로 격자문양으로 좌우상하를 분할함으로써 실공간과 허공간,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의 공간를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작품 제작 출발점부터 드러나게 됨으로써 최소한의 볼륨이 집적하는 최대의 매스를 동시에 형성하게 된다. 예를 들어 철사를 솔 르윗의 입방체처럼 격자무늬로 쌓아 올린 〈매스의 내면-허와 실〉은 철사가 교차하는 사이의 공간을 동시에 형성함으로써 철사의 최소한의 볼륨이 집적시키는 비어짐의 최대 공간을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 뿐인가? 애초의 큰 돌덩어리를 깨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최소의 볼륨을 만들어 나가고 그 최소의 볼륨들 사이에서 창출되는 비어짐의 공간을 통해 최대의 매스를 생성케 하는 작품들 역시 이러한 일관된 작업 경향 즉, ‘최소한의 볼륨을 통해 창출하는 최대의 매스’를 지향한다. 이를 그의 작업노트에 언급된 내용을 빌려 말하면 “물질 매스의 중량감 자체를 덜어내면서도 매시브한 감각과 중량감을 저하시키지 않는 논리적 방법을 찾으려 했던 것”인 셈이다.
우리는 한편, 〈매스의 내면〉시리즈가 그의 언급대로 “매스의 시지각을 촉발시킬 부조(浮彫) 인자들을 집합시켜 매스를 시각적으로 설정함으로써 팝적 경기감과 옵티컬한 일루젼을 보여 주고자 한 것”임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부가적인 조형의 표피일 뿐 주가 되는 것은 역시 앞서의 ‘최소의 볼륨을 통한 최대의 매스’와 같은 ‘매스의 양가성의 논리’ 같은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는 다음처럼 언급하고 있다.
“나에게 가장 기분 언짢은 적(敵)은 바로 나이며 그의 적은 ‘Mass’이다. 그 이외의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Volume, Movement, Texture 등의 밀도를 증가시키는 모든 적은 그의 적인 Mass이다. (나는 Mass와) 항시 충돌하며 싸우고 있으리라”
작품 외면에 드러나는 질감, 재료의 형태성, 볼륨의 디테일한 이미지 같은 다양성은 단지 매스를 드러내기 위한 부수적인 장치들이며 이들의 충돌이 드러내는 매스는 결국 작가가 그것을 정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상황 속에서 생성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매스를 위해 충돌하는 모든 조형요소들은 매스의 의미를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그것은 서구 모더니즘적 내재율과 그 환원성을 대입시켜 분석한 이일의 비평적 접근과 맞물리는 것이었다. 이일은 ‘조각 개념 그 자체의 확산’이나 ‘조각적 표현형태의 확산’과 더불어 ‘예술개념의 자기규정’과 ‘예술의미의 자기환원’으로 확산과 환원을 풀이한 바 있다. 우리의 논의를 이일 식으로 펼쳐본다면, 유기적 자연의 이미지로부터 출발해 그것을 서구식 미니멀리즘의 자기증식의 어법으로 배열, 배치해내는 확산의 어법을 한 덩어리 안에 환원시키던 작업이 <적(積)>시리즈이며, 그것이 거꾸로 나타난 것이 〈매스의 내면〉시리즈라 할 것이다. 즉, 공간 안으로 재침투하며 최소 볼륨으로 환원되는 것은 유기적 자연의 내재율 속으로의 환원에 근거한다는 것이며, 그 환원이 귀결시키는 최대의 매스란 결국 ‘허’의 방향으로 확산되는 귀결점인 것이다. 결국 우리들 논의에서 주요한 것은 ‘유기적 자연의 이미지’로부터 출발한 <적(積)>시리즈와 달리〈매스의 내면〉시리즈에서는 ‘유기적 자연의 내재율’로 재침투하는 가운데서 출현되었다는 것이다.

전국광_적(積)-상승 I_황등석_60×30×80cm_1979
실험과 모색-15주기전의 의미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 했던 조각가 전국광은 별 이견 없이 한국 추상조각의 3세대 작가로 칭해진다. 이른바 한국적 모더니즘의 전성기를 거쳐 모더니즘과 민중미술 진영의 대립,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아기에 이르는 기간에 활동했던 그의 작품세계는 줄곧 모더니즘 계열의 추상조각에 천착되어 있다. 혼란한 현실계의 지평에서 예술에 대한 깊은 고뇌의 흔적들을 보여준 그의 작품세계는 아방가르드적 실험의식에 경도되지 않으면서도 조각의 내면적 본성에 대한 실험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늘날 한국적 모더니즘 미술연구 에 주요한 지점을 차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전국광 15주기전은 대표적인 <적(積)>시리즈,〈매스의 내면〉시리즈 외에도 귀중한 자료들을 통해서 고인의 또 다른 관심의 지평을 유심히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하는 한편, 자료 정리의 차원에도 집중하고 있는 이번 전시는 앞으로 그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할 것이다. ●

전국광_매스의 내면-Cosmic Rounding_1987

전국광_반복어법 IV-World XXI_1989
출전 /
김성호, "적(積)이 창출하는 매스의 내면", 『경기문화재단 심층모니터링』, 2006, 12. (mass, mass, mass-전국광 15주기전, 2006. 6. 24-7. 17, 모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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