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일반〕

 

2012년도 인물미술사학회 하계학술대회

이원일의 큐레이팅 연구 (2)

 

 

김성호(미학, 쿤스트독)

 

 

(1)편에서 이어----------

 

 

II. 이원일 큐레이팅의 주제 분석

그가 화두로 삼고 있는 ‘창조적 역설’은 그가 기획한 여러 국제전에서 다양한 전시주제들로 옷을 바꿔 입고 나타난다. 외형은 다른 주제들로 나타나지만 본 연구자는 그것들 모두가 ‘창조적 역설’이라는 지향점과 공유하고 있다고 본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그간 이원일이 기획했던 대표적인 전시들의 주제들(전시주제 및 소주제들)을 구슬들처럼 흩뿌려놓고 ‘창조적 역설’이라는 실과 바늘로 하나하나 다시 엮어보고자 한다. 나아가 데이터들을 씨줄과 날줄로 묶어내면서 우리는 하나의 모델을 구축하기에 이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장에서의 연구는 보다 더 발전적인 연구를 펼치기 위한 바탕인 모델링을 구축하는데 집중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다음 장에서 이러한 모델이 ‘창조적 역설’이라는 화두에 얼마나 부합하고 있는지를 면밀하게 검토해낼 수 있을 것이다.

 


Wonil Rhee(left), Curator of 'Thermocline' & Peter Weibel(right), CEO, Director of ZKM,

'Thermocline' Opening , ZKM, 2007



이것을 위해 우리는 이원일의 큐레이팅20) 중에서 국제전을 중심으로 주제의 상관성을 고려하면서 몇 전시를 선별하되, ‘테크놀로지, 아시아성, 현대미술’이라는 3범주 안에서 이것이 상호작용하는 그의 큐레이팅을 시간상의 흐름에 따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II-1. 테크놀로지와 현대미술 : 만남

1)


 

‘미디어_시티 서울’에서 관심을 높이는 부분은 ‘달빛 흐름’이라고 하는 전시 주제이다. 그것은 “태양을 광원으로 하는 달의 우주적 존재론의 의미를 미디어에 비유하여 전시장에서 어두운 사이버 공간 속의 모니터들과 스크린이 발하는 푸른빛들을 달빛과 달의 표면으로 재인식하자는 것”21)이자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달의 뒤편과도 같은 불가해한 신비의 영역으로서의 가상세계(Cyber Space)의 숭고미를 추구”22)하는 미학적 지향점을 명확히 한다. 대주제 ‘달빛 흐름’이란 결국 고전적 미학인 숭고미(sublime)을 미디어아트 속에서 모색해보자는 의도를 현시화하는 하나의 ‘메시시’ 23)이자 은유이다.

 

본전시는 전시장을 4개로 범주화하고 각 장소마다 할당되는 4개의 소주제를 '디지털 서브라임(Digital Sublime)', '사이버 마인드(Cyber Mind)', '루나즈 칠드런(Luna's children)', '루나 노바(Luna Nova)'로 구성했다. 특히 디지털 서브라임에 할당되는 전시는 이원일을 포함한 8인의 큐레이터가 기획에 참여했는데, 참여작가수 절반 이상이 이원일의 직접적인 큐레이팅에 의해 참여하였다. 이원일은 디지털 서브라임, 루나노바 두 섹션을 모두 맡아 진행하고 나머지 섹션을 총괄했다.

 

특이한 점은 디지털 서브라임 섹션을 위해 전시공간 전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상정했다는 점이다.24) 심장, 두뇌, 골격, 대동맥, 피부 등 유기적인 신체의 개념으로 전시를 제시하고자 했다. 건조한 전자의 세계를 따뜻한 감성을 지닌 생명체로 변환시키고자 한 것이다. 아울러 루나 노바는 미디어아트 전시 공간을 주방, 침실, 서재 등 일상 주거 공간과 접목함으로써25) 관객들의 친밀도를 높이는 전략을 취했다.

 

 

2)


 

이 국제전은 상하이현대미술관의 개관기념전으로 개최되었다.26) 젠다이 현대미술관은 “중국의 6대 재벌그룹인 젠다이가 짓고 있는 푸둥 엑스포단지의 젠다이 플라자 내에 자리잡은 문화공간”으로 “현대미술 전용 사립미술관으로는 중국 최초이자 최대 미술관”27)이다.

 

이 국제전에서 이원일은 ‘전자적(Electronic)’이란 용어와 ‘풍경(Landscape)’라는 두 용어를 합성해서 만든 ‘전자 풍경(ElecgtronScape)'이라는 대주제를 내세웠다.28) 이것은 물리적 현실계(physical reality)와 그것이 아닌 현실계, 즉 전자적으로 이미지화된 가상 세계(virtual relity)라고 하는 두 개의 현실(two realities) 29)이 실재로 인식되는 지금의 시공간 속에서, 가상적 환경이 제공하는 의미를 묻고자 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전시는 관객들에게 오늘날 전자시대의 시공간에 대한 ‘인식론적 이해(Epistemological Comprehension)’ 30)를 요청한다.

 

이원일은 일상의 편의를 제공하거나 혹은 반대로 인간을 속박하는 첨단의 기술 체제가 도래시키는 현대사회에서 전자적 세계가 부여하는 유토피아적 희망을 들려준다. 즉 전시서문에서 그가 언급하는 사이베리아(Cyberia)31)는 첨단의 테크놀로지로 구사되는 사이버아트(Cyber Arts)를 통해 유토피아(Utopia)를 체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주제를 가시화시키기 위해서 이원일은 미디어아트를 통해서 중국의 전통적 정원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예를 들어 미디어 연못, 전자 대나무숲, 정자, 전망대 등이 하이테크의 작품들로 재탄생한다. 물론 그는 여기서 관객을 소통의 주체로 불러들이며 하이테크의 해석으로부터 로우테크의 감성을 이끌어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전시에는 11개국 26팀 32명32)이 참여했다.

 

 

 

 

II-2. 아시아성과 현대미술 : 싸움

1)


 

이 프로젝트는 이원일이 서울시립미술관의 학예연구부장으로 재직 시 기획한 것으로서 우리가 살펴볼 그의 큐레이팅 중에서 독립큐레이팅이 아닌 것으로는 유일하다. 이것은 “한국(서울시립미술관), 중국(상하이 현대미술관), 일본(도쿄도 현대미술관), 대만(타이페이 시립미술관)”33)으로 대표되는 국공립 미술관 큐레이터들의 공동 협력으로 이루어진 전시였다.

 

그는 ‘근대화-서구화-국제화’로 이어지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상황 속에서, 아시아가 스스로의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들의 독자적 가치기준을 설정하는 노력을 경주해오고 있는 상황을 먼저 인정한다. 전시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 해결책이 아시아 네트워킹으로 가능하다는 가설로부터 전시는 시작된다. 즉 이 프로젝트는 “미술언어를 통해 이러한 아시아인의 새로운 가치추구의 관점을 수용하고 각국의 도시에서 발진하는 집합된 희망과 현실정치, 경제, 문화적 이슈들을 한자리에서 비교조망하며 부분적이나마 아시아인이 고민과 전망의 흔적들을 진단해 보고자 하는 취지”34)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프로젝트가 “국제미술계에 아시아 현대미술이 좌표를 가늠해볼 수 있는 능동적 정보가치 교환의 장”35)이 되길 원한 것이다.

 

이러한 탈지정학에 대한 고민과 희망을 동시에 그리는 이원일은 통합의 시각(Intergral Perspective)을 통한 접지(Ground connection)를 전시 연출의 핵심으로 설정한다. 그것은 그의 구체적인 전시연출 방법론인 ‘집합’과 ‘교차’가 지속적으로 실행되기에 이상적인 개념이다. 전시 제목처럼 아시아 각국의 “상이한 시간대의 배열과 공간의 부피”36)를 집합과 교차의 방식으로 실제의 미술현장에서 만나게 함으로써 무엇인가 생성되길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가 보기에 그의 통합의 시각이란 이때까지는 막연한 기대에 근거한 채 독자적 큐레이팅 언어를 개발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섹션 'City-net Seoul'37)에서 그가 하이테크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로우테크는 그의 큐레이팅이 지닌 핵심개념 ‘창조적 역설’을 낳는 하나의 출발점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구체적으로 하이테크 환경과 멀티미디어 예술의 가속화 현상 속에서, “로우테크에 의한 대안적 해결방안의 시각을 동원하여, ‘새로운 수공성’의 이슈를 부상시킴으로써, 예술의 진정성과 내면적 자기성찰의 형식적 미학의 문제를 재맥락화”38)하는 방식의 “역진화의 프로세스”를 실험한다.

 

 

2)


이 전시는 상기 장소에서 이루어진 전시 주최, 주관의 특성상39) 중국현대미술작가의 작품들을 장르별로 단순 소개40)하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밀한 주제 전략으로 접근한 전시는 아니다. 다만, 그의 서문에 드러난 아시아성과 관련한 큐레이팅의 주제의식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석의 대상으로서 요긴하다.

그는 여기서 중국을 포함한 다수의 아시아작가들이 문화의 다극화 현상 속에서 충격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면서, “(그들의) 대부분의 경우는 서구미술과의 동일화, 동종화의 대열에 합류하거나 이른바 ‘현대성’이라는 시각적 함정에 빠져드는 오류를 범하기 일쑤인 것을 보면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국제미술계에서의 ‘성공’은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41)라며 아시아미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기한다. 그는 이어 아시아미술이 독립된 전략과 상상력을 통해 쇄신되지 못한다면 후기자본주의 논리에 종속되는 ‘스펙터클과 오락‘으로 전락할 가능성42)마저 지적한다.

 

이러한 자성은 실상 서구미술계의 오류와 ‘후기식민주의(Postcolonialism)로 대변되는 문화적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권력화된 서구의 미술정치학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가치체계를 구축하는 일은, 서구의 미술정치학에 저항을 시도하는 아시아 미술인들의 ’네트워킹‘이라는 자주적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그는 보고 있다. 43)

이원일은 미술에서 이러한 아시아성을 확보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을 ‘탈지정학(PostGeopolitics)’과 ‘교차(connection)’에서 찾고 있다.44)  그것은 각 중국 각 지역 혹은 아시아 각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미술언어들을 상호 교차시키는 미술현장 속에서 착종되는 ‘접지(Ground Connection)’45)에 이르게 하는 힘이다. 특정 지역으로부터 발원하는 미술들이 ‘교차’를 통해서 특정 지역으로부터 벗어나는 ‘탈지정학’은 새로운 지형도인 ‘그라운드 커넥션’으로 성취된다.

 

'(...)중국현대미술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아시아 미술인들이 총체적 메타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킹의 생산적 지평을 지항하여 더욱 더 활발한 교류와 교역 네트워킹의 생산성 창출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전방위적 협업시스템의 채널을 확보하는 길만이 아시아미술을 서구적 미학의 획일화된 관점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며 그것이 왜곡된 진실의 권태로운 완고성을 자를 수 있는 예각의 편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46)

 

이원일은 2005년 당시만 해도 아시아성이 아시아 미술인들의 커넥션과 활발한 네트워킹을 통해서 창출될 것이라는 기대를 명확히 하고 있지만, 그 창출되는 아시아성을 그만의 미학으로 정교하게 다듬어내지는 못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본 연구자의 견해로는, 이원일이 아시아성과 관련하여 일정부분 자신의 독자적인 미학에 이르게 된 시기는 테크놀로지아트와 아시아성을 부단히 접목하길 실천하던 2007년경부터인 것으로 파악한다.

 

 

 

 

II-3. 테크놀로지아트와 아시아성 : 화해


여기서는 이원일의 생전 거의 마지막 큐레이팅이 되는 2010년 전시 디지페스타(Digifesta)를 검토한다. 이 전시는 외면적으로 미디어아트를 표방하는 테크놀로지와 현대미술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지만 그가 기획한 주제전에 유독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들47)을 대거 포진시킴으로써 아시아성이란 주제의식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전시는 그의 큐레이팅의 오랜 관심이었던 테크놀로지아트와 아시아성을 동시에 고찰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의 서문에 등장하는 ‘디지털 아시아(Digital Asia)”를 의미하는 합성어 “디지타시아(Digitasia)”48)는 이러한 관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것은 오늘날 논의되고 있는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의 통섭(Consilience)49)의 정신을 실천하는 작업이다. 통섭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그리고 서구미술과 아시아미술이 한꺼번에 만나는 장이다. 그것은 연구자가 보기에, 이전에 아날로그를 산뜻하게 만났던 디지털과 서구미술과 싸우면서 만났던 아시아미술이 이제 한 자리에 모여 화해를 나누는 장이기도 하다.

 

전시명 디지페스타(Digifesta)가 디지털(digital)과 축제(festival)의 합성어인 만큼, 이원일의 큐레이팅이 지향하는 두 범주의 관심 즉 ‘테크놀로지와 현대미술’ 그리고 ‘아시아성과 현대미술’은 이제 화해와 축제의 장을 펼치기에 이른다.

 

그가 주제전에서 선보이고 있는 큐레이팅 주제는 ‘광속구(光速球) 시속(視速) 2010’이다. 그것은 “빛의 속도를 시간개념(時速)이 아닌 보는 속도, 즉 ‘시속(視速)’으로 변환”50)하려는 시도이다. 그럼으로써 “급변하고 있는 오늘의 디지털 환경을 목도하는 현재적 시각과 지각능력의 배양의 필요성”51)을 우리에게 요청한다.

 

그런데 빠르게 질주하는 현시대에 느린 관조를 요청하는 이원일의 큐레이팅은 혼란과 모호함 그리고 모순이 뒤섞인 세계를 포장 없이 고스란히 보여주는데 집중된다. 2000년대 중반 그의 큐레이팅에 드러난 시각들이 대립하는 이질성을 교차, 접합의 방식으로 만나게 하고 종국에 서구의 패권주의에 대항하는 싸움으로 귀결되게 만들었다면, 이 전시는 좀 다른 측면이 있다. 그것은 큐레이팅에 있어서의 모순, 혼란과 관계하는 것이다. 그는 그것들과 관련하여 다음처럼 설명한다.

 

“기획자가 아시아 각국의 스튜디오를 탐방하여 오늘의 디지털현실에 대한 의문과 불안 사이를 부단히 왕래하는 질문들을 생산해내는 ‘디지털 공방’들을 목격한 결과 아시아적 ‘모순’과 ‘혼란’이 서구의 ‘이성’ 혹은 ‘지식’과 동등한 지위와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을 도전하고 실험하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52)

 

이러한 주제의식을 실천하려는 그의 주제전은 ‘회색이나 안개와 같은 모호한 상태’, ‘모호한 인식이 요동하는 환각 상태’ 그리고 ‘사이(between)가 도래시키는 중간지대’를 선보인다. ‘서구와 아시아’ 그리고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의 ‘갈등’과 ‘싸움’이 현실화시킨 ‘혼란, 혼돈’은 디지털 정수를 지닌 예술이 아날로그 환경에 익숙한 관객들의 관성적 지각을 분산시키고 변형시키는 혼란과 닮아있다. 그것은 분명코 그의 말대로 “현실과 가상현실의 비상식적, 비 경험적 상호호환과 연계의 매듭을 통해 지각과 인식에 정서적 충격을 가하는 또 하나의 도발”이다. 또한 그것은 오늘날 관객을 위한 선물이기도 하다.

 

그의 큐레이팅이 노린 것은 이러한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아날로그 정서 사이에서, 아시아와 서구 담론 사이에서 카오스가 만들어내는 어떤 희망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큐레이팅은 그의 말대로 ‘카오스의 변주곡(Variation of Chaos)’이다.

 

이처럼 2010년 전후로 이원일의 큐레이팅에서 나타난 주요한 전환은, 카오스가 더 이상 통섭(해체적 재구성, 역진화, 재맥락화)의 실패가 아니라 통섭이 귀결시킨 화해, 축제와 같은 어떤 지점이라는 것이다. 즉 이원일의 큐레이팅에 있어 카오스란 ‘무한한 생성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원천’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3)편에서 계속----------

 

(주석 생략)



출전 /

김성호, “이원일의 큐레이팅 연구”,『2012년도 인물미술사학회 하계학술대회』, 인물미술사학회, 덕수궁미술관 세미나실, 자료집, 2012. 8. 24. p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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