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일반〕
2012년도 인물미술사학회 하계학술대회
이원일의 큐레이팅 연구 (3)
김성호(미학, 쿤스트독)
(2)편에서 이어----------
III. 이원일 큐레이팅의 모델링- ‘창조적 역설’의 시각수사학
우리는 지금까지 이원일 큐레이팅이 드러낸 주제를 II-1. 테크놀로지와 현대미술, II-2. 아시아성과 현대미술, II-3. 테크놀로지아트와 아시아성과 같은 단계별 접근을 통해서 분석하고 연구했다. 이것을 연구자는 각 단계에, 만남, 싸움, 화해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이러한 단계별 내용은 그의 큐레이팅을 이해하는데 있어 일정부분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테크놀로지, 현대미술, 아시아성’이라는 3개의 범주가 부딪히며 확장하는 그의 큐레이팅의 주제의식을 발전적 전개로 살피기 위한 편의적 방법론이기도 함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이제는 상기의 선별된 전시들에 대한 단계별 분석을 바탕으로 한 채 그의 대부분의 큐레이팅에 나타난 주제들을 통합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이원일의 큐레이팅의 전체 모습을 ‘창조적 역설’이라는 큐레이팅 지향점과 어느 정도 부합하고 있는지 여부를 분석,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의 연구의 최종 목적인 그의 큐레이팅의 모델링을 구축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 III장에서는 II장의 주제분석을 바탕으로 한 채, 그의 큐레이팅 중에서 부득이하게 자료수합이 어려운 경우를 빼고는 다수를 수렴해서 도표화하는 시도를 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table) 이원일 큐레이팅의 주제 종합분석
위의 도표에서 확인하듯이 달빛 흐름(Luna’s Flow)으로부터 메타히스토리(Metahistory)에 이르기까지 이원일 큐레이팅에 텍스트로 가시화된 주제들은 앞 장에서 살펴보았던 〈이원일 큐레이팅의 핵심개념인 ‘창조적 역설’의 주제와 범주〉와 만난다. 예를 들면, 실천(practice)의 범주에 있는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주제는 그의 실제 큐레이팅에서 ‘전자풍경(ElectroScape), 디지타로그(Digitaloque), 디지페스타(Digifesta), 디지타시아(Digitasia), 전자적유토피아(Cyberia) 등의 합성어들과 조우할 뿐만 아니라 탈지정학(PostGeopolitics), 메타히스토리(Metahistory), 초감각(Ultra Sense), 문화혼성(Mixed culture) 등과 같은 통섭의 논리와 만난다.
이렇듯 그의 큐레이팅의 핵심 개념 ‘창조적 역설’은 실제 큐레이팅에서 다양한 주제의식들과 그물망처럼 교차하면 만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것을 상호 이어주는 시각화 작업을 하나의 명징한 키워드에서 뽑아 올려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지 않았던 그의 ZKM개관10주년 기념전53) 큐레이팅은 하나의 주요한 모델이다. 한국, 중국, 일본, 인도네이사, 태국 등 아시아 20개국에서 총117명의 작가가 참여한54) 이 전시에서 그는 “예술의 터모클라인(Thermocline of Art)”이라는 주제어를 내세운다. 여기서 수온약층(水溫躍層)으로 번역되는 ‘터모클라인’이란 간단히 말해 “바다의 심층수(deep water)와 표층수(surface water) 사이에 존재하는 전이층(transition layer)”55)을 가리킨다.

(fig) 터모클라인(Thermocline) (fig) 이원일의 터모클라인 분석
위의 왼쪽 그림에서 나타나듯이, 표수층(Epilimnion)은 바람의 혼합으로 인해 수온의 변화가 없는 따뜻한 혼합층(Mixed layer)을 형성하지만, 심수층(Hypolimnion)은 열이 전달되지 않아 변화가 거의 없는 차가운 층을 형성한다. 이 사이에 존재하는 터모클라인(Thermocline)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수온이 급격하게 내려가는 변온층이다. 이것은 계절에 따라 그 높이를 달리하지만 대략 수심 200~1,000m에 위치한다. 상층부와 하층부 사이의 온도차가 극심하게 변하는 터모클라인은 스스로 변화를 지속하는 역동적 존재인 것이다.
이원일은 전시 서문에서 터모클라인이라는 주제가 “생동성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된 다이내미즘의 메타포”58)라는 사실을 명확히 한다. 그것은 위의 우측 그림에서 확인하듯이, 이 터모클라인을 다른 세계들을 연결하는 창조적 공간으로 재해석해낸다. 즉 그것은 심수층을 창조성의 원천인 ‘혼돈의 우주’로 바라보고 표수층을 표면의 결과들이 존재하는 이 땅의 현실계로 은유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사이공간인 터모클라인을 양자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창조적 매개자로 해석하는 것이다.
“터모클라인은 (...) 기존의 서구/비서구의 대립구도의 흐름을 초월하는 새로운 물결을 시각화하며, 깊고 넓은 물살의 흐름과도 같은 철학적, 인문학적 사고의 침투와 흐름, 균열, 흡수 등의 물리적 현상을 상징화한다.” 59)
즉 이원일의 큐레이팅에 있어 “터모클라인이란 자연현상은 서구와 비서구, 유럽과 아시아의 대립을 상징화하는 (...) 하나의 메타포”60)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이질적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대립, 교차, 혼성, 통합을 ‘화해와 균형’으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그의 ‘창조적 역설’이 실행되는 장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터모클라인이라는 철학적 메타포가 이원일에 의해 좀 더 일상적인 메타포로 변형, 제시된 바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래의 사진 두 장에서 발견된다.

(fig) 전시 카탈로그 (fig) 전시 오프닝 세레모니
〈Thermocline of Art : New Asian Waves〉, ZKM, 2007. 6/15-10/21, Karlsruhe
좌측은 ZKM 10주년 기념전 카탈로그로, 전시 주제 터모클라인에 대한 위트 가득한 메타포이다. 오른쪽 사진에서 유추할 수 있겠지만, 이 사진은 일명 폭탄주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클로즈업해서 포착한 사진이다. 연구자는 이 사진을 표수층(Epilimnion)과 심수층(Hypolimnion)이 혼재한 공간에서 터모클라인(Thermocline)이 자리를 잡으며 활발히 작동하는 순간을 드러낸 하나의 메타포로 이해한다. 터모클라인을 은유하기 위해 도입한 폭탄주이미지는 하나의 역설이다. 그것은 온도의 상이함으로 인해 형성되는 위계의 층 자체를 자신의 전체적 모습으로 끌어안으면서 한편으로는 표수층과 부대끼고 한편으로는 심수층과 부대끼며 양자를 화해시키는 터모클라인의 통섭 미학과는 다른 지점에 이 위트 가득한 폭탄주 이미지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터모클라인의 매개작용이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위/아래의 ‘중간 지대’에 지속적으로 거처하면서 작동되는 것과 달리, 폭탄주의 경우 맥주 속에 개입하는 양주의 매개작용은 맥주와 섞이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던져 버리고 다른 무엇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즉 양주도 맥주도 아닌 다른 정체성을 지닌 존재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터모클라인의 미학을 설명하기에는 부적합한 메타포일 수 있다.
그러나 이원일의 터모클라인이란 과학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은유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일이다. 우리는 그의 터모클라인 메타포가 통섭을 실행하는 중간지대를 설정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폭탄주와 같은 위트적인 메타포는 통섭을 실행하는 실천의 과정 자체를 설명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외견상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는 두 메타포는 ‘창조적 역설’이라고 하는 그의 큐레이팅의 핵심개념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쌍두마차가 된다.
그의 큐레이팅의 핵심개념 ‘창조적 역설’은 두 메타포를 통해서 어떻게 모델링될 수 있을까? 우린 거칠게 그것을 이미지를 통해서 시각화해보자. 연구자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1. 2. 3.
(fig) 1. 이원일의 ‘대립, 교차, 해체’ 모델(아시아성 or 테크놀로지)
(fig) 2. 이원일의 ‘터모클라인(Thermocline)’ 모델(아시아성+테크놀로지아트)
(fig) 3. 이원일의 ‘창조적 역설’ 모델의 지향점
위의 두 그림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그의 큐레이팅 주제의식은 큐레이팅 실제에서 수직과 수평의 교차로, 비워둠과 채움으로, 분리와 통합이, 정제된 구성과 의도적 혼란이 그리고 조화와 변주가 하나의 공간에서 충돌의 스펙트럼처럼 펼쳐진다. ‘회색, 안개, 중간지대’와 같은 안전지대를 만들면서 말이다. 여기에는 말하기를 미뤄두고 오로지 이미지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해야하는 큐레이터로서의 공간에 대한 고민들이 담겨있다.
“공간 해석력이죠. 어떻게 점유할 것인가. 공간 안에 대화가 있어요. 벽과 천장, 벽과 파티션의 대화가 있습니다. 영화가 스크린에 의존을 하듯 전시라는 것은 삼차원의 공간에서 어떻게 배열이 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나는 감성적인 공간의 연출을 원합니다. 시각 안에 시각이 있는. 시각적인 충돌과 변주, 파노라마, 스펙트럼이 많은 상호 물리적으로 의도적인 연출이 빚어지는 공간을 원합니다. 먼저 공간장소특정성을 파악해야죠. 그 안에서 내 목소리를 어떻게 입힐 것인가. 그 다음에 충돌이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에는 각 악기가 지정석이 있습니다. 소리의 울림의 조화를 위한 것인데, 나는 그것을 흩트려 놓는 창조적인 배치를 하기도 해요. 각각의 소리가 있듯이 작가마다 서로 고유의 언어들이 있고 그것들이 하모니를 이루고 때로는 생경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의도합니다. 그것이 클래식한 방법과 식상한 언어를 넘어선 하나의 공간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61)
위에서 나타나듯이, 그의 ‘감성적인 공간 연출’이나 ‘창조적인 배치’라는 언급은 ‘조화’와 ‘해체’가 동시에 일어나는 ‘충돌’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터모클라인이라는 중간지대에서 폭탄주와 같은 충돌의 메타포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이러한 공간 연출은 ZKM에서 실제로 구현된 그의 큐레이팅에서 여실히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이 전시에서 수직, 수평, 상하, 좌우, 교차, 조화, 해체와 같은 충돌과 통섭의 공간연출을 시도한다. 출품작들은 자신의 영역 안에서 작품을 선보이면서 때로는 서로의 작품의 공간을 넘나들거나 상호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전시의 주제를 완수하는 것에 동참한다.


(fig) 수직, 수평, 상하, 좌우, 교차, 조화, 해체와 같은 충돌과 통섭의 공간 연출
〈Thermocline of Art : New Asian Waves〉, ZKM, 2007. 6/15-10/21, Karlsruhe
이러한 충돌과 통섭은 ‘콘레이와 카플란 이론에 나타난 창조적 역설(Creative Paradox)’의 방법들이 이원일의 큐레이팅 속에서 유감없이 실천되고 있는 것이다. 일테면, 전자에게서 나타난 뒤섞임과 모순적 구조(ironic structures)나 ‘재검토, 재형성, 대조, 반서사’와 같은 실천(practice)의 전략들은 이원일의 큐레이팅 속에서 새로운 시각수사학으로 변용된다. 즉 ‘콘레이’ 식(式)의 모순적 구조는 이원일에게서 ‘수직과 수평, 서구와 비서구’를 검토하는 ‘혼성화, 개방, 교차, 접변’으로 변용되고, ‘콘레이’ 류(類)의 대조와 반서사는 그에게서 ‘탈지정학, 역진화, 가산혼합’으로 변용된다.
또한 콘레이와 카플란의 ‘메니푸스식(式) 풍자(Menippean satire)’는 ‘터모클라인(Thermocline)이라는 은유(metaphor)’로 변용된다. 특히 이원일의 큐레이팅, ‘창조적 역설’이라는 시각수사학은 그의 생전 마지막 즈음에 터모클라인이라는 메타포를 만나게 되면서 대립적 구조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탐구해왔던 그간의 충돌을 2000년대 후반부터는 중간 지대’를 형성하는 화해와 균형으로 전이시켜 나간 것으로 평가해볼 수 있겠다.
결론
이 연구는 ‘창조적 역설’(Creative paradox)을 이원일 큐레이팅의 핵심개념으로 간주하고 그것이 어떠한 전시 주제와 담론들로 전개되어왔는지를 검토하면서 그것들을 관통하는 무형의 모델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혀보는데 집중했다. 아울러 그의 큐레이팅 실제들이 이 모델에 어떠한 모습으로 상호 작용하고 있는지도 일정부분 검토했다.
하지만 그의 큐레이팅 이론이 실제와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따져 묻는 작업은 본 연구자로서는 능력 밖의 일이다. 다수가 해외에서 진행되었던 그의 실제 큐레이팅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자는 직접 본 국내 전시들에 대한 경험을 떠올리고 보지 못한 해외 전시들을 자료들로 대신하면서 그의 큐레이팅 실제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서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다음처럼 정리된다.
1) 그의 큐레이팅은 ‘창조적 역설’을 실천하는 것이다.
2) 그의 창조적 역설은 ‘혼성화, 개방, 교차, 접변’이 이루는 ‘모순적 구조 혹은 뒤섞임의 구조’ 속에서 ‘해체와 재구성’을 실천하되 화해와 균형을 도모하는 것이다.
3) 그의 큐레이팅에는 아시아성, 테크놀로지, 현대미술이라는 3범주의 관심사가 적극 표출되었다.
4) 그의 큐레이팅의 주제들은 만남-싸움-화해의 전개를 드러낸다.
5) 이원일의 실제 큐레이팅을 분석하는 표에서 관찰되듯이, 전시주제들은 창조적 역설이라는 주제의식을 실천하는 다양한 그물망을 형성한다.
6) 아시아성을 중심으로 둔 그간의 큐레이팅이 카오스를 극복하려는 저항과 해체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라면 2007-2010사이에 큐레이팅의 변화적 조짐이 나타난다. 그것은 카오스를 더 이상 통섭의 실패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귀결시키는 화해로 이해하는 것이다.
7) 그의 큐레이팅에서 ‘창조적 역설’은 ‘통섭, 화해라는 한 축’과 더불어 중간지대를 설정하는 또 다른 한 축인 ‘터모클라인이라는 메타포’를 만나게 된다.
8) 그의 큐레이팅 주제의식은 수직/수평, 비움/채움, 분리/통합, 정제된 구성/의도적 혼란, 조화/변주 등이 ‘회색, 안개와 같은 중간 지대’에서 만남을 실천하는 것에 집중된다.
9) 콘레이와 카플란 이론에 나타난 창조적 역설(Creative Paradox)’은 이원일의 큐레이팅 속에서 새로운 시각수사학으로 변용된다. 일테면 콘레이’ 식의 모순적 구조는 이원일에게서 ‘혼성화, 개방, 교차, 접변’으로 변용되고, ‘콘레이’ 식의 대조와 반서사는 그에게서 ‘탈지정학, 역진화, 가산혼합’으로 변용된다. 또한 콘레이와 카플란의 ‘메니푸스식 풍자는 ‘터모클라인이라는 은유’로 변용된다. 특히 이것은 그의 큐레이팅 속에 나타났던 그간의 관심 ‘충돌’을 ‘중간 지대’를 형성하는 화해와 균형으로 전이시켜 나간다.
마지막으로 그가 한 매체에서 했던 인터뷰62) 내용을 옮기며 그의 내용으로 결론을 맺고자 한다.
“나의 결론은 길에 앉아서 물어볼 것이 아니라 길에 나가서 길에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길이 답을 해줍니다. 이곳은 ‘우주 정거장’입니다. 달 착륙이 나의 목표입니다. 지구상에는 자기 안의 에베레스트를 지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스스로 산을 만들고 그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나는 무중력상태에서 전혀 다른 차원을 보고 있습니다. 여긴 허름하고 소박한 곳이지만 나의 일은 우주 유영에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밀은 캐내는 것이고 미스터리는 우주입니다. 나는 여기서 그 역사의 미스터리, 아시아의 미스터리, 우주의 미스터리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끝)
(주석 생략)
출전 /
김성호, “이원일의 큐레이팅 연구”,『2012년도 인물미술사학회 하계학술대회』, 인물미술사학회, 덕수궁미술관 세미나실, 자료집, 2012. 8. 24. p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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