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술관에 가는가? 그림 보러? 왠지 촌스럽다. 까다로운 애호가나 전문가가 아니라면 대부분 사람들은 딴 목적으로 미술관에 간다. 가령 지난해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을 다녀간 100만명 중에는 나처럼 미술관 그 자체를 보러 간 사람들도 꽤 많다.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를 찾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오페라가 아니라 오페라 하우스를 보러 가는 것이다. 왜? 유명하니까. “나도 봤다”는 심리적 만족감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기를 쓰고 그것들을 찾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알게 되면 햄릿성(城)을 찾게 된다. 비록 영국에서 꽤 떨어진 덴마크의 코펜하겐까지 가는 수고를 들여야 하더라도.
영국의 소도시 게이츠헤드를 보자. 도시의 아이콘(상징·도상)으로 기획된 볼틱 현대미술관은 개관 첫해에 100만명의 관람객을 맞았으며, 주변 문화시설들과 더불어 연간 약 230억원에 달하는 경제효과를 낸다고 한다. 흔치 않은 문화산업 성공 스토리이다. 그러나 살펴보면 이런 성공 사례들은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비겔란트 조각공원, 미국 뉴멕시코의 산타페, 또 영국 에든버러축제가 바로 그런 성공 사례에 속한다.
문화는 금방 열매를 따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아니지만 문화산업은 금방 과실을 볼 수도 있다. 볼틱미술관은 겨우 5년이 되었을 뿐인데도 이미 세계적 지명도와 경제적 토대를 마련했다. 대영박물관이니, 테이트 갤러리니 하는 쟁쟁한 미술관들로 넘치는 영국에서 인구 20만명에 불과한 도시에 또다시 미술관을 세우다니. 겁도 없이. 그런데도 성공했다. 이런 걸 역발상이라고 하던가. 바스크 분리주의자들로 인한 정정 불안, 철광과 조선업의 쇠퇴로 인한 경제적 낙후, 그리고 유럽의 변방이라는 온갖 불리한 조건들 속에 진행된 빌바오의 문화 프로젝트도 수많은 난관들을 뒤로 하고, 상상력과 추진력 그리고 뛰어난 기획력을 통해 승리를 거두었다.
현 서울시장은 ‘디자인 서울’을 모토로 내걸고 있다. 좋은 일이다. 기왕에 디자인을 모토로 내걸었다면 좀 더 시야를 넓혀 ‘아이콘 서울’로 나아가야 한다. 실체가 불분명한 ‘디자인 서울’보다는 아이콘 서울이 훨씬 더 와 닿는다. 우리에게도 좋은 선례들이 이미 있다. 무형이긴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나 광주비엔날레는 이미 국제적 지명도를 얻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엔 뭐가 있지?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인사동? 그러나 또렷하지는 않다. 그것이 문제다. 적어도 서울과 등치관계에 있는 그 무엇이 누락된 것이다. 서울을 대표하는 그리고 나라를 대표하는 그 2%가 부족한 것이다. 도시와 국가의 아이콘을 만드는 일은 어떠한 일보다도 중차대하다.
관광객들은 처음에 유적지를 찾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다시 올 때는 미술관이나 음악당을 찾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국립현대미술관은 참으로 접근성이 안 좋다. LA의 게티센터가 주차장에서 산기슭에 있는 미술관 입구까지 모노레일을 설치하여 접근성을 높인 것은 참으로 경탄을 자아낸다. 민간이 나설 수도 있다.
차제에 아시아 최고의 아이콘을 만드는 일을 생각해볼 일이다. 나라를 대표하는 아이콘을 하루아침에 뚝딱 해치울 수는 없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처럼 근 20년에 걸쳐 우여곡절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부가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다. 그라피티(거리 벽화)의 새로운 메카가 된 브라질 상파울루의 값어치를 환산할 수는 없다. 파리나 뉴욕의 무형 자산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미술관이든 음악당이든 FTA시대를 대비하고 견고해진 중화경제권의 구매력에 대비하는 아이콘을 만드는 것은 분명 세계 11대 경제 강국인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 조선일보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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