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비평〕
생각여행전_길 떠난 예술가 이야기, 2012. 5.4-7.15 경기도미술관
여행을 떠나요 !
김성호(미술평론가)
짐 챙기기
여기는 경기도미술관 앞, 내일 떠나는 제주도 여행을 앞두고 영희 양과 철수 군은 미술관 관람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생각할 게 무지 많은 두 사람은 자신들의 실제 여행에 앞서 전시를 통해 여행의 의미를 곱씹어보기로 했답니다. 전시 제목이 ‘길 떠난 예술가 이야기_생각여행’이니 두 사람은 이번 전시 관람이 어쩜 실제 여행의 연습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내일 여행을 위해서 트렁크에 챙겨 넣고 빼야 할 옷가지들로 한바탕 싸움을 벌였던지라 두 사람 모두 마음이 찜찜한 상태입니다. 미술관에 들어서니 안내 데스크에서 전시를 위한 소책자 하나를 영희 양에게 건넵니다. ‘관람객을 위한 생각여행 가이드북’이라고 씌어있군요.
“에고, 제주도 여행 가이드북 챙기는 걸 잊었네.”

길 떠나기 1-원거리여행, 근거리여행, 상상여행
전시장에 들어서니 무언가 가득 담긴 커다란 항아리 3개가 놓여있습니다. 벽에 붙어있는 설명문부터 코를 박고 읽어보니 그것은 쌀, 황토, 소금이 담긴 김주영의 작품 〈신성한 집〉입니다. 전 세계를 두루 여행하며 퍼포먼스를 펼친 작가는 티베트족의 전통 소금 제조법을 계승한 옌징이라는 마을에서 매듭을 푸는 퍼포먼스〈옌징(廉井) 가는 길〉을 벌인 바 있는데 이것은 마치 삷과 죽음 앞에서 펼치는 제사의식과도 같아 보입니다. 그녀의 여행은 분명코 들뢰즈와 가따리의 노마디슴(nomadisme)이라는 탈주의 유목 자체입니다.

김주영_신성한 집,2005,독,나무,소금,황토,쌀, 각 230x100x120cm
아!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녀가 탈주하는 선을 따라 유목의 여행을 떠났듯이, 두 사람들도 전시기획자가 만들어놓은 여행하기의 순서를 흐트러뜨리고 유목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여행이란, 몽골, 티베트, 네팔, 인도 그리고 백두대간으로 원정을 떠나며 지구 곳곳에서 예술활동을 벌여왔던 슈룹(Shuroop)그룹의 ‘멀리 떠나는 여행’과 같은 유형 외에도 다른 게 있을 겁니다.

슈룹_전시전경
여행이란 작가 김웅현이 경기도 선감도에 있는 외딴 경기창작센터 마당에서 한판의 가상현실 퍼포먼스를 벌이는 ‘집안에서의 여행’조차 가능해보입니다. 김웅현처럼 등산장비를 갖추고 나지막한 마당에서 눈을 뿌려가며 설산을 등산하는 시늉을 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훌륭히 완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웅현_전시전경
아! 그것만이 아니네요. 참여작가 박이소의 경우처럼 예술적 유희란 방법으로 무한한 ‘상상의 여행’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는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비디오카메라를 낙하산에 매달아 떨어뜨리면서 그 낙하 이미지를 10편으로 연속 상영하는 퍼포먼스를 무한 상상합니다. 또는 GPS추적기가 달린 유리병을 바다에 떠내려 보내는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은 생각 속에 남아있고 사물들을 여행시키는 꿈을 꿉니다.

박이소_드로잉2,유족소장
길 떠나기 2_걷기와 타기
아! 그런데 영희 양과 철수 군은 이내 길을 잃고 맙니다. 전시장에서 탈주의 선을 흉내 내며 돌아다녔더니 어디를 어떻게 다녔는지 헷갈립니다. 이러한 혼란은 어떤 정보도 없이 텅 비어 있는 커다란 도로표지판을 선보인 작가 이창훈의 작품,〈길을 잃다-바다, 숲, 사막〉에 이르러 정점을 이룹니다.

이창훈, 길을 잃다-바다, 숲, 사막
그래서 그들은 주머니 속에서 ‘생각여행 가이드북’을 다시 꺼내기로 합니다. 가이드북을 꼼꼼히 파악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여행지를 잘 아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이때 ‘도슨트’라는 이름을 가진 구원의 가이드가 나타납니다. 그들은 이제 가이드로부터 작가들의 여행방법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우선 걷기부터 배웁니다. 5000km에 이르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 ‘차마고도’를 수행자처럼 횡단하는 사진작가 박종우의 ‘걷기 여행’에 동참합니다. 힘든 여행이지만 길이 있고 가이드가 있기에 마음이 놓입니다.

박종우_Nakqu,Tibet 2006, 디지털프린트,152.4x101.6cm

박종우_전시 전경
이제 가이드를 떠나보내고 길만을 따라 거닐어보기로 합니다. 통일 이전의 동독의 공업도시 데사우(Dessau)를 그저 길을 따라 산보하듯이 여행하는 작가 홍명섭의 ‘걷기 여행’에 동참합니다. 박종우를 따라 그 험한 차마고도까지 횡단했는데 도시 하나 여행 못하겠습니까?

홍명섭_전시 전경
아! 그런데 다리가 너무 아픕니다. 작가 나현의 자전거 택시에 동승해야겠습니다. 그는 쿠바의 수도인 하바나 거리를, 한인 후손인 ‘아사리아’라는 이름의 여인을 자전거택시에 태우고 돌아다닙니다. 역사를 달리한 한민족의 후손들이 나현의 자전거택시에 앉아 하나의 공간을 가로지르게 됩니다.

나현-ARBOL,2011,싱글채널비디오,5분37초
다음은 전수천의 기차여행입니다. 흰색 천을 두른 열차 앰트랙을 타고 뉴욕에서 로스엔젤레스까지 타고 횡단해봅니다. 그것은 거대한 미국 땅에 그리는〈움직이는 드로잉〉이 됩니다. 그럼 문화비평가 진중권이 조정하는 경비행기를 함께 타고 구름 속을 날아보는 것은 또 어떨까요?

전수천_움직이는드로잉,2005,디지털프린트,106x68cm

진중권_mactan airport_fin,2010-2011,디지털프린트,56x83.5cm
짐 풀기
“집에 가자.”
영희 양이 귀가를 재촉합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집은 목수 조전환의 커다란 한옥처럼 이제 새로운 여행 공간이 됩니다. 못질 하나 없는 ‘사개마춤’이란 방법으로 만들어진 조목수의 커다란 한옥은 풍수지리와 유목이 잠재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둘은 여행 짐을 하나씩 다시 풀어냅니다.

조전환_ㅣㅣㅣㅣㅁ,2010,나무,주춧돌,260x790x345cm
가이드북을 내려놓고 그간 찍었던 사진파일들을 열어봅니다. 아이고! 그들의 사진에는 함경아의 작품 〈Travel Journey〉에서 보여준 많은 관광객들의 ‘사진 찍기’ 행위-일테면 에펠탑 앞에서 V자를 그리는-와 별 다를 바가 없는 모습들이 가득합니다. 여행을 테마로 한 전시가 만들어내는 ‘뻔’한 관광노선이었을지라도 이번 전시는 그들에게 새로운 생각들을 안겨줍니다.

함경아, Travel Journey
영희 양은 비디오카메라를 열어봅니다. 전시장을 촬영한다면서 몰래 철수 군의 모습을 담아왔습니다. 작가 안정주가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등을 여행하며 찍어온 비디오 영상의 단편들에서처럼 그곳에는 ‘거기의 공간’과 ‘여기의 공간’이 교차합니다. 안정주가 에티오피아의 가난한 아이들의 축구경기를 통해서 ‘대국의 전쟁에 터를 빌려준’ 대한민국을 오버랩 시켜보고 있듯이, 영희 양은 경기도미술관을 거니는 철수 군의 영상을 통해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봅니다. 철수 군이 이제 제주도여행을 다녀오면 곧 머리를 깎고 군대를 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안정주_전시 전경
마치 작가 이경이 인터넷을 통해 가보지 못한 공간을 무한 여행하듯이, 그녀는 철수 군이 떠날 미래의 여행을 그려봅니다. 정말 ‘거기가 여기’가 될 수 있을까요?

이경_전시 전경
여행 후기
영희 양은 컴퓨터를 켭니다. 작가 김훈이 자신의〈자전거 여행〉을 육필 원고지에 남겼듯이, 그녀 또한 인터넷 공간에 여행 후기를 남기고자 합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김훈이 자전거 여행을 통해 ‘몸이 곧 길’임을 배웠듯이, 그녀 또한 여행을 안내한 것이 자신의 ‘몸’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김훈_자전거여행,2004,육필원고,원고지230매
그건 어쩌면, 작가 이병수가 ‘희망’이란 용어를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하고 ‘희망약국’, ‘희망수퍼’, ‘희망...’등 희망이란 용어가 삽입된 다양한 목적지를 향한 여행을 지속했듯이, ‘몸이 꿈꾸는 희망의 정신 여행’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영희 양은 내일 떠날 철수 군과의 제주도 여행이 이별 여행이 되질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병수_전시 전경

이병수_전시 전경
페이스북을 엽니다. 어라! 거기에는 이번 전시에 관한 한 미술평론가의 악평에 가까운 리뷰***가 실려 있네요. "이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라며 혼잣말을 되뇌던 그녀는 자신도 전시를 봤다는 이유 때문에 그저 습관처럼 ‘좋아요’ 버튼을 클릭합니다. ●
*** “여행에 관한 다양한 사유를 담은 유의미한 전시. 그러나 몸으로 여행하기 보다는 머리로의 여행을 강요하는 전시공간 연출과 대중이 시각적으로 소통하기에 버거울 만큼 읽어야할 텍스트가 너무 많은 게 흠. 전시 대부분을 다양한 예술인들의 기존 작업들을 아카이빙하는 방식으로 기획했다는 점에서 ‘여행’에 대한 기획자의 이중해석만이 남는 진한 아쉬움. 창의체험프로그램과 참여작가들의 릴레이 강연회를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하지만 알맹이는 부실하고 포장만 그럴싸한 종합선물이 됨.”
출전 /
김성호, “여행을 떠나요!”, 『article』, 2012. 6월호, pp. 80-83, (생각여행전 : 길 떠난 예술가 이야기, 2012. 5. 4~7. 15, 경기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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