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S+F 그룹의《초록 파라다이스》
11.7 - 2008.1.8 파리 파사주 드 레츠

《초록 파라다이스》는 러시아의 또 다른 현대 미술가 그룹의 전시다. 1987년 Arzamasova, Evzovitch, Svyatsky 등 세 명의 러시아 예술가들로 구성된 AES에 사진가 Fridkes가 가세해 AES+F가 됐다. 러시아의 가장 근대적이고 명석한 예술가들로 평가 받고 있는 이들은 베니스 비엔날레와 이스탄불 비엔날레 등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었다. 이들이 파리의 전시에 내놓은 프로젝트들은 지난 10년 동안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문제를 다룬 것들이다. 예언자적 성향이 농후한 이 작업들은 좋고 나쁜 것, 옳고 그른 것이란 명백하고 단호한 이분법을 바탕으로 사회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사실은 얼마나 수상쩍고 무모한 것인지를(≪용의자≫ 시리즈, 1998), 그리고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대중매체가 획일적인 인간형을 만드는데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를(≪마왕≫ 시리즈, 2001-2004), 현대사회를 포함한 모든 문명이 인류의 희망으로 간주하는 어린이들을 통해 그 신화의 허구성을 역설적인 방식으로 폭로한다. 이런 역설적인 방식은 이 작가들이 만든 가상의 세계가, 현실이 시뮬라크르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현대문명이 감추고 있는 상처를 들춰낼 때 역시 적용된다. 최근의 작업 ≪최후의 폭동≫(2005-2007)에서는 이런 혼란의 시대에 테크놀로지가 만든 새로운 환상의 서사적 풍경이 펼쳐진다. 시간이 멈춰진 이곳에서 전사들이 무혈의 전투를 벌인다. 천국이면서 지옥이기도 한 이곳에서 남자이면서 여자이기도 한 전사들이 누가 희생자이며 누가 가해자인지도 모른 채 끝없는‘최후의’전쟁을 하고 있다. 다만 이 전쟁에서 확인할 수 있는 끝, 그 마지막 전쟁은 이데올로기와 역사라는 거대서사다.




Sots Art : 1972년부터 현재까지의 러시아 정치 미술
10.21 - 2008.1.20 파리 메종 루즈

Sots Art는 예술(Art)과 사회주의(Socialism)란 두 단어를 팝아트(Pop Art)에서 유추해서 만든 용어로, 1972년 모스크바에서 코마르(Vitaly Komar)와 멜라미드(Alexandre Melamid)에 의해 기획됐던 ≪소비에트의 팝아트≫란 테마의 전시 프로젝트에서 기인한다. 1920년대 아방가르드 미술 이후 최초의 러시아 현대 미술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Sots Art는 정치적 선전과 선동을 위해 사용된 이미지나 모티프를 그 원래의 문맥으로부터 끄집어내어 그것들을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비판한다. 권력의 웅장하고 미혹적인 수사학은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변해버린다. 팝아트처럼 대중문화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참조하지만, 니힐리즘적 상대주의에 근거한 이 미술운동은, 팝아트와는 달리, 모든 유형의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기 위해 그것들을 이용한다. 만약 팝아트가 덧없는 대중적 이미지들을 예술이란 이름으로 영속적인 것으로 만든다면, Sots Art는 역으로 영속성의 이상을 주입하는 이데올로기의 허상과 실패를 폭로하는 것이다. 따라서 볼셰비키 혁명의 정치적 지도자들뿐 아니라 푸시킨, 차이코프스키, 레핀, 솔제니친과 같은 영적이고 지적인 지도자들까지 Sots Art에 의해 그로테스크 하거나 코믹한 상황 속에서 가차 없이 발가벗겨진다. 메종 루즈에서의 이번 전시는 시작 전부터, 러시아 당국이 선정적이고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십여 점의 작품들을 검열하고 마침내 파리에서의 전시 불가 결정을내리면서 관심을 모았었다. 80년대 말 폴란드나 독일처럼 공산주의 해체를 겪었던 나라들의 예술가들, 특히 90년대부터 부상하기 시작했던 중국의 현대 미술가들에게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이 미술운동의 포괄적인 발전 양상을 접할 수 있다.




사랑과 전쟁, 그리고 섹슈얼리티(1914-1945)
9.22 - 12.31 파리 앵발리드

파리의 군사 박물관과 현대사 박물관이 전쟁과 사랑이란 주제를 다룬 이색적인 전시를 기획했다. 전쟁 속에 피어난 남녀 간의 진부한 사랑 얘기가 아니다. 전쟁이 사랑과 성의 개념에 어떤 혼란과 변화를 불러일으켰는지를, 양차 세계대전 중 제작된 포스터, 우편엽서, 그림, 사진, 오브제, 그리고 편지와 일기 같은 사적인 기록들에 이르기까지 총 480여 점의 광범위한 자료들을 통해 조망한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육체적 부재를 만들고 성적 불만족을 낳는다. 전시는 이런 인간의 원초적 리비도가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어떤 식으로 채워지고 해소될 수 있었는지를 역사적인 문맥 속에서 다루고 있다. 이 시기의 사랑과 성은 연인들의 은밀한 사생활의 영역을 넘어서서 군인의 사기를 위해 허용된 매춘과 함께 강간과 동성애처럼 국가와 사회가 통제하고 교육하는 '공적인' 문제가 된다. 남성을 더욱 용감하고 강인한 군인의 이미지로, 반면 여성은 더욱 절조 있고 충실한 아내 혹은 어머니의 이미지로 묘사함으로써 사랑과 성은 전쟁을 선동하고 지지하기 위한 도구로 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