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비평〕
백원선전, 2012, 5. 7-20, 쥴리아나 갤러리
‘가림’의 미학
김성호(미술평론가)
“가림은 있어야 옷이라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나신을 ‘감추는 일’은 옷의 목적이자 존재이유이다. ‘가림’은 또한 육체와 정신을 내 안에서 재성찰하게 하면서 인간의 사회적 존재에 눈뜨게 한 주요한 첫출발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시’와 ‘노출’의 욕망으로 꿈틀대는 오늘날 이러한 속담과 신화는 조롱당한 지 오래이다. 백원선의 작업은 오늘날 현대인에게 잊혀져가는 ‘가림’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백원선의 작품세계는 100% 닥으로 만들어진 한지(韓紙), 즉 ‘순지’에 대한 그녀만의 독특한 조형실험으로부터 발현된다. 먹물을 흠뻑 먹이고 화려한 색으로 덧칠한 옥양목 천위에 얇디얇은 순지를 여러 번 겹쳐 붙여나가는 과정 속에서 짙은 먹빛은 서서히 농담의 변주를 시작한다. 어떤 부분은 애초의 농묵 그대로, 어떤 부분은 흐려지거나 탁해진 수묵으로 화면 위에 떠오른다. 이것은 종이의 배면이 은은하게 비쳐 보이는 순지가 집적을 거듭하면서 만들어낸 투명과 불투명의 효과 때문이다. 그는 겹겹이 올리는 순지의 일부분을 오려내고 오려낸 부분을 또 다시 다른 공간에 붙이는 한편, 콜라주의 밀도를 높이거나 낮추는 방식으로 다양하게 화면을 변주시킨다.

백원선, 한지의 선, oil & Korean paper,73x63cm, 2012
지난한 노동의 과정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는 닭, 말의 형상, 배면으로 깊이로 침잠해 내려간 종이의 숨결, 거꾸로 앞으로 뛰쳐나오려는 나무들.... 이처럼 백원선에게서 가리고 덮는 행위란 먹, 색, 형상을 은폐의 공간 속으로 감금시키는 것이 아니라 외려 그것(들)의 다양한 층을 한꺼번에 표면위로 끌어올려놓는 힘을 갖는다. 그녀의 작업은 ‘없음’으로부터 그려나가는 서구의 조형언어와 달리 ‘있음’으로부터 지우기를 거듭하면서 ‘또 다른 있음’을 창출하는 동양의 ‘화론’을 실천하고자 한다. 그래서일까? 그녀에게서 ‘가림’은 ‘드러냄’과 대립하는 적대적 네거티브가 아니며, 상극(相剋)을 상생(相生)의 힘으로 포용하는 포지티브의 면모를 지닌다. 그것은 ‘드러냄’을 ‘가림’ 속에 포용하고 다독이는 화해와 치유의 손길이다.
그녀의 가림은 서구의 대립적 이원론을 탈피하고 ‘음양오행’의 동양적 사유를 조형화한다. 음과 양을 기(氣)의 오행으로 상생케 하는 그것은 선(禪)의 세계와 조응한다. 인도의 선(dhyāna)이 종국에 자신의 몸을 괴롭힘으로써 명상의 극락계에 도달할 수 있다면서 ‘갑갑한 갑옷’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면, 박원선이 추구하는 ‘선’은 한국 선종(禪宗)의 사유처럼 ‘반투명한 종이옷’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 백자를 형상화한 그녀의 작품처럼, 그 세계란 ‘비어있는 존재이자, 가득 찬 부재’인 것이다. 그것은 종교, 예술, 일상이 하나가 되고, 인간과 자연이, 자아와 타자가 그리고 몸과 마음이 하나를 이루는 신심일여(身心一如)의 세계이자 ‘일상적 해탈’을 실천하는 세계이다.
오늘날 예술가들이 B급 정서를 자처하는 욕망의 탈주선에 몸을 싣고 새로운 트렌드 창출에 골몰하는 엔터테이너이가 되고자 할 때, 그녀는 무엇보다 ‘선’의 세계와 가림의 미학’을 화두로 삼고, 오늘도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의 샘으로부터 물을 길어 올리고 있는 중이다. ●
출전 /
김성호, “백원선 전”, 『아트인컬쳐』, 2012. 6월호, p.183, (백원선 전, 2012. 5. 7-5. 24, 쥴리아나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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