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비평〕
(지니 유_Non-Painting Painting전, 2012. 8. 3-8. 16, 쿤스트독갤러리 )
‘이미 거기 있었음’을 진술하는 회화의 존재의미론
김성호(미술평론가)
빈 화선지나 캔버스를 대면하고 있는 화가에게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아무 것도 없는 그 곳’으로부터 회화를 만들어내는 일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것이 있는 그 곳’ 위에서 회화를 발견해내는 일일까? 지니 유는 이러한 상반된 질문을 바탕으로 자신의 회화를 천착해나간다. 그녀의 전시명이자 작품명인 ‘Non-Painting Painting’은 ‘무(無)화법의 회화’라는 독법 속에서 전자의 질문 자체를 실천하는 것이자, ‘비(非)회화적 회화’라는 독법 속에서 후자의 질문에 대해 답하는 것이다.
지니 유_Non-Painting Painting_알루미늄에 유채_45×45×5cm_2012
그녀는 회화의 바탕이 되는 물질의 ‘있음/없음’의 사이 공간으로 회화의 보폭을 옮기는 실험을 감행한다. ‘있음/없음’의 사이 공간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잴 수 없을 만큼 큰 폭이지만 그녀의 회화는 이 사이 공간에 물처럼 스멀스멀 스며든다. 그녀에게서 회화의 바탕이 되는 알루미늄판은 아직은 회화가 아니면서 동시에 이미 회화인 존재이다. 그녀의 말처럼, “알루미늄의 회화적 공간은 물질적인 사실, 다시 말해 아직 그려지지 않은 표면이 이미 존재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창작 이전에 ‘선재(先在)하는 회화적 표면’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알루미늄판은 그녀가 만든 회화가 아니지만 이미 하나의 회화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지니 유가 이렇게 이미 회화인 상태로 존재하는 알루미늄판에 개입함으로써 자신의 회화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그녀의 작품은 ‘회화가 끝나는 지점에서 (언제나) 새로이 시작되는 회화’가 된다. 따라서 그녀가 시도하는 회화적 행위의 출발은 자신의 회화가 있기 전의 ‘모든 가능성의 회화’를 용인하는 일이며, 그것들이 ‘이미 거기 있었음’을 진술하고 증명하는 존재의 확인 작업이 된다.
개별 작품들이 군집을 이뤄 하나의 작품을 형성하는 이번 지니 유의 개인전에는 알루미늄판으로 제작된 회화들이 대거 출품되었고, 2층에는 전시의 개념을 시적으로 보여주는 16미리 필름 작업 한 점을 선보였다.
2층에 선보인 필름 작업은 스크래칭이 의도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느린 영상으로, 세워진 알루미늄판을 중심으로 조명기구가 계속 돌아가면서 빛을 비추는 가운데, 반대편에서 역방향으로 움직이는 카메라가 이것을 포착해서 기록한 것이다. 즉 조명의 움직임으로 식물처럼 자라나는 알루미늄판 그림자가, 역방향으로 돌아가는 카메라에 의해서 동시에 포착됨으로써 생경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이것은 ‘이미 거기에 회화의 위상으로 있었던 물질’이 새로이 만들어내는 지니 유식(式)의 ‘비(非)회화적 회화’가 된다. 또한 이층 모서리에 마주보고 전시된 두 작품은 90도에 가까운 설치 위치와 알루미늄판 재질이 지닌 ‘부분 반영성(semi-reflexivity)’으로 인해, 각각 그 안에 그려져 있는 사각형의 이미지를 양자가 상호 공유하게 된다. 그 결과 각 작품은 작가에 의해 그려지지 않았음에도 또 하나의 사각형을 갖게 되는 ‘무(無)화법의 회화’를 완성하게 된다.
1층에는 작품들이 산포(散布)하듯이 벽에 걸려 있거나 바닥에 놓여 있다. 그것들은 제각기 상이한 형식들을 취하고 있음에도, 그것들 모두는 “나는 Non-Painting Painting이야.”라는 발화를 이어나간다. 알루미늄판에 검은색 유화로 ‘그림 아닌 그림’을 그린 그녀의 회화들은 모두 ‘비(非)회화적 회화’와 ‘무(無)화법의 회화’를 오고간다.



지니 유 개인전 전경, 2012, 쿤스트독갤러리
전시장 바닥 한쪽에는 아무 것도 안 칠해진 알루미늄판이 놓여있고 그 앞에 반으로 접혀진 또 다른 알루미늄판이 마주한 채 세워져 있다. 관객들은 접혀진 알루미늄판 내부에 검은 유화가 칠해져 있는 사실을 반대편 알루미늄에 반영된 이미지를 통해서 알게 된다. 여기서 반영된 허구의 이미지는, 반대편에 숨겨져 있던 ‘물질회화라는 실재’를 고발함으로써 ‘무(無)화법의 회화’이라는 회화의 존재론을 탐구한다. 또한 표면이 찌그러진 채 걸려있는 기다란 알루미늄판 역시 페인팅된 화면을 벽을 향하게 걸어놓음으로써, 숨겨둔 ‘물질회화라는 실재’가 관객에 의해서 발견될 때, 비로소 드러나는 회화의 존재론을 탐구한다. 알루미늄판의 표면에 드리워진 반영 이미지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지 않았음에도 그려진 결과를 초래하는 그녀의 회화의 존재론을 천천히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하지 않음(no-doing)’을 통해서 ‘함(doing)’을 드러내는 방식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마치 노자의 무위(無爲)가 ‘Non-Painting’이라는 회화의 언어로 재생산되고 있는 듯이 보이기조차 한다.

그렇다면, 지니 유의 작품들에서, 알루미늄판 위에 오일로 칠하다가 남겨진 부분은 ‘작가가 만든 회화’인가, 아니면 ‘저절로 만들어진 회화’인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것은 그저 회화의 바탕일 뿐일까? 그것은 앞서의 경우처럼 ‘하지 않음’을 통해서 ‘함’을 드러내는 ‘무(無)화법의 회화’ 전략을 이어나가는 존재이다. 남겨진 것이란 알루미늄판 안에 프레임 같은 윤곽을 만들어냄으로써 그것이 회화의 완성인지 아닌지를 묻거나, 프레임과 같은 효과를 일부분만 드러냄으로써 프레임 윤곽이 없는 부분이 회화의 지속인지 아닌지를 묻는 작업으로 나타난다.

한편, 쌍을 이룬 또 다른 작품은 판 위에 검은 오일을 바르고 그것을 다시 휴지로 닦아낸 것이다. 표면 위에 올라간 물감이나 표면으로부터 물감을 잃어버린 부분도 모두 회화적 제스처로부터 근거하고 있음을 단순명쾌하게 선보이는 작품이다. 그것은 회화란 포지티브이든 네거티브이든 '물질에 새긴 흔적(trace)'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되새기게 한다. 그런 면에서 날 것의 알루미늄판 위, 혹은 페인팅된 화면 위에 기다란 선묘의 스크래치를 남긴 또 다른 작품들 역시 이러한 흔적의 소산이 바로 회화임을 천명한다.

페인팅된 알루미늄판을 사선으로 잘라 두 개의 삼각판으로 만들어 벽에 기대놓은 작업은 또 어떠한가? 칠해지고 벗겨지는 전통적인 회화 언어 외에도 잘려지고, 구겨지고, 바닥에 내팽겨지듯이 디스플레이 된 ‘설치적 조각’ 혹은 ‘조각적 설치’ 역시 그녀에게는 회화이다. 이제 그린버그가 주장하는 ‘조각과 공유하는 속성으로부터 이탈하는 2차원 평면성’은 더 이상 그녀의 회화에 있어서 유효하지 않다.
한편, 그녀의 회화 작업은 1950-60년대 이래 네오다다와 누보레알리즘으로 대변되는 오브제미술이 천착해온 물질성의 미학에 일정부분 빚지고 있다. 그들은 회화의 관성적 언어를 비판하면서 오브제, 실재의 물질성을 회화에 어떻게 담아낼지를 고민해왔다. 비, 바람, 불 등을 이용해서 물질화되는 회화를 창출했던 클랭(Yves Klein)의 작업이나 캔버스를 햇볕에 노출하거나 땅속에 묻어둠으로써 자연의 물리적 흔적을 회화에 담아냈던 비알라(Claude Vialat)의 작업은 대표적이다. 또한 소위 포스터파(Affichistes) 작가들은 익명의 사람들로부터 찢겨지고 훼손된 포스터를 벽으로부터 뜯어내 고스란히 전시장으로 옮겨냄으로써 타자의 행위(doing)에 기대어 자신들의 ‘하지 않음(no-doing)을 예술작품으로 물질화시키는 작업에 매진해왔다. 대상(사물)이나 타자(주체)들의 잠재적 행위가 자신의 작업에 물질화되면서 예술로 전환되는 방식은 지니 유에게 있어서도 주요한 창작 모토이다.

그러나 그녀가 전술한 영향으로부터 차별화되는 지점은 무엇보다 작가가 주체적으로 대상과 타자들에 대한 관계를 주도한다는 점에 있다. 그녀에게서 회화가 ‘이미 거기 있었음’을 확인하는 알루미늄판이나 유화물감이란 ‘물질’은 단지 그녀가 선택하는 순간 잠을 깨우고 일어나는 잠재적 창작주체일 따름이자 창작 보조자들이다. 게다가 그것들은 그녀의 최소한의 노동이 개입하면서 존재의 의미가 발현된다는 점에서, 그의 전시 ‘Non-Painting Painting’는 회화의 ‘존재론’에 대한 질문과 대답 찾기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정작 그것은 ‘존재의미론’으로 정초된다. 지니 유의 회화란 물질 속에서 ‘이미 거기 있었음’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철학적 개입이면서도, 물질의 ‘있음/없음’의 사이 공간 속으로 들어가 유영하면서, 그것의 의미를 조형적으로 탐구하고 진술하는, 하나의 ‘의미 찾기 놀이’이기 때문이다.●
출전 /
김성호, “이미 거기 있었음’을 진술하는 회화의 존재의미론”, 『아티클』, 2012. 9월호, pp.80-83, (지니 유_Non-Painting Painting전, 2012. 8. 3-8. 16, 쿤스트독갤러리 )
이미지 출처 / 지니 유 facebook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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