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
2017.04.28 - 07.30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간만의 나들이 장소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정했던 것은 덕수궁 안에 있는 덕분에 어쩔 수 없이(?) 통과하게 되는 나무들 때문이었다. 동행한 지인이 소나무숲을 보고 싶어 했던 이유였다. 그런데 의외의 행운이. 마침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의 날이라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었다. 더운 날 멀리 걸음 한 지인도 나도 마치 용돈이라도 탄 듯 기분이 좋아졌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나는 더위인데도 말이다.

(사진) 마침 왕궁수문장 교대식이 있었다. 시간도 참 기가막히게 잡았다.
가끔 함께가는 지인도 골라 전시를 보러갈 때가 있다. 아무래도 영감을 받을 수 있고 관련 내용에 더 큰 교감을 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할 것 같은 내용의 전시들이 그러하다. 이번 전시도 그랬다. 예술, 자유, 이집트. 며칠 전 먼저 만난 전시도록으로 보고, 전시관람이 끝난 후 몇 시간이고 이어질 대화에 물꼬를 틀만한 내용이라고 판단했다. 동행인이 관심있어 할 것 같은 전시였고, 지금 필요한 듯 보인 전시였다.

이집트. 파피루스에 그려진 옆을 보고 선 사람들과 신들. 그 위에 업데이트된 작품들이 있던가. 유럽처럼 현존하는 고대의 유물의 위대함에 가려진 것은 이집트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이집트의 진짜 이름만 해도 낯설다. 이집트 아랍 공화국, 줌후리야트 미스르 알아라비야(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 줄여서 미스르 라고 부르는 이집트는 한자 독음인 애굽(Egypt, 埃及)이란 이름이 익숙하다. 지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먼 나라이다.
그런 이집트의 이번 전시는 '비유럽 중심의 관점에서 모더니즘 역사의 다시 쓰기를 제안'하며 '서양의 것과 대비 대는 다른 근대성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전시'라고 했다. 큰 맥락은 이해했다. 하지만 전시를 보면 볼수록 이 시각 역시 서양의 시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30-60년대 이집트 작가들의 작품을 166점이나 전시해 놓은 공간을 둘러보면서 나는, 어쩐지 우울하고 비판적이며 저항하는 느낌이었다. 강렬한 몇몇 작품들이 그려내는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림) 포스터로 사용 된 케말 유시프, 귀족, 1940년대 / 무함마드 리야드 사이드, 수호자, 1970년대
특히 강렬했던 인지 아플라툰(Inji Efflatoun)의 작품 <딘샤와이 학살(The Dinshaway massacre), 1950s>은 '딘샤와이 사건(Denshawai / Denshway Incident)' 을 담고 있었는데, 그 몇 장이 주는 감각으로 나와 지인은 동시에 한 발짝 떨어져 온라인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이랬다. 1876년 영국의 보호령 아래 있었던 이집트에서 1906년에 있었던 이 사건은, 영국군의 장교들이 비둘기를 사냥하며 시작된다. 그들의 여흥에 불과했던 사냥으로 생계수단이었던 비둘기를 잃은 딘샤와이 마을 사람들은 화가 났고 그들의 재산을 지키고자 했을 것이다. 공격할 듯 일어난 그들에서 목숨을 빼앗은 것은 영국군이 먼저였다. 마을 여자 하나가 죽었고, 두려움에 영국군 캠프 쪽으로 달아난 군인 하나가 쓰러져 죽었다. 아마도 일사병이었을 그였지만, 영국군은 마을 주민 52명을 재판에 회부시켰고, 26명은 부역과 채찍질을 몇 명은 사형을 받았다. 장교들은 마을 사람들의 손님이었으며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판결받았다. (c.f. http://en.wikipedia.org/wiki/Denshawai_Incident _ 검색 결과를 번역기를 빌어 읽은 것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작품에는 하단에 그려진 영국군과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문 중앙에 목매달려 있는 사람이 보이는데, 이 장면이 딘샤와이 사건의 상징과도 같은 이미지라고 한다. 영국군은 그림의 남자 하산(Hassan)을 그의 집 대문에 목을 매달았다는 것이었다. 일부러 그 자신에 절대적으로 소유하고 속해있던 공간에서의 교수형이라니. 영국군을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그것은 너무나도 끔찍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내용을 상상하고 그저 작품 앞에 선 우리는 욕설을 입 밖으로 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그림) / 아흐마드 무르시, 여인의 두상, 1972 / 압둘하디 알자제르, 시민 합창단, 1951
여러 가지 작품에서 우리의 작품들과 비슷한 감정선을 읽을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혼란과 절망이 그려진 작품들과 민중미술에 속한 작품들이 그것이다. 케말 유시프(Kamal Youssef)의 <날아다니는 영혼들(Flying spirits), 1951>에서는 장욱진의 그림을 보는 듯했고, 라팁 싯디크(rateb Sediek)의 <어머니들 행진(Mothers-peaceful procession), Early 1940s> 에서는 이쾌대의 그림이 보이기도 했다. 특히 다수의 작품에서 푸르스름하게 그려진 인물들의 피부색이 인상적이었고 그들이 만드는 분위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초현실주의'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전시제목인 '초현실주의자'들인지는 모르겠으나 몇몇 작품에서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가 읽혀지기는 했다. 압둘하디 알자제르(Abdul Hadi El-Gazzar)의 60년대 작품들은 1948년에 (원본을 제작) 구금되기도 했다는 <시민 합창단(Folk Choir), 1951>(1951년에 원본을 바탕으로 다시 제작) 등의 작품들과 달리 흡사 게임이나 SF 물을 보는 듯했다. <평화(Peace), 1965> <인간과 기계(Man and machine), 1964> <실험실(Laboratory), 1964> 등 그의 작품은 특별히 인상적이며 재미있어서 지인과 가장 기억에 남는 작가로 동시에 손꼽아, 전시를 다 보고 다시 돌아가 보기도 했다.
압둘하디 알자제르와 더불어 사미르 라피(Samir Rafi)의 작품에는 유독 여성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아직 여성의 인권이 높지 않은 이집트인지라 배경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림) 압둘하디 알자제르, 평화, 1965
전반적으로 전시를 이해하고 재구성한 것인지 의문인 부분들이 꽤 많았다. 기자간담회 때 (c.f.https://www.daljin.com/blog/14699) 2016년 이집트 카이로 ‘팰리스 오브 아트(Palace of Art)’에서 진행되었던 동명의 전시 'When Art Becomes Liberty: The Egyptian Surrealists (1938-1965)'를 그대로 가져온 것 아니냐는 질문도 있었다는데 나도 질문하고 싶은 부분이다. 이집트 예술을 잘 알지 못하는 (잘 아는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릴 법한 이집트 고대문물 정도 아닌가) 한국에서 전시를 열 때 더 필요한 설명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러한 설명이 너무나 부족한 게 아닌가 싶었다. 좋은 작품들도 좋은 의미들도 많은데 제대로 소개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느낌.. 들었다. 여러 대의 배가 동시에 출발해서 서로 다른 산으로 간 것 같은.. 차라리 우리와 비슷한 감정선을 찾을 수 있는 작품들을, 그 배경에서 드러나는 우리와 이집트의 역사적 교집합을 찾아주고 공감을 유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짧게 검색해 본 결과로는 이집트에 대한 지식이 국어로 쓰인 온라인상에 많이 소개되지 않아 찾아보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아카이브 조사를 추가로 해서 도록을 제작했다고는 하나, 배경이나 사전설명은 도록에도 전시 이상 기재되지 않았다. 종종 아카이브의 해석본들이 함께 전시되고 있었으나 참 읽기가 어려운 형태였다.. 이들과 이들의 작품에 대해 이집트의 미술이론가들은 뭐라고 평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공감해야 감정선을 공유하고 이해를 하고 작품이 가슴에 남을텐데.. 나의 무지가 참 많이 아쉬웠다.
* 전시장 내부는 촬영이 안되는 관계로 작품사진은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www.mmca.go.kr)의 이미지를 사용하였습니다.
사진.글.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