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베르토 자코메티
2017.12.21-2018.02.28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손꼽아 좋아하는 작가다. 그의 국내 전시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었다. 겨울에 시작된 전시를 미루다 해가 바뀌고야 방문하게 되었지만, 문을 열 때까지만 해도 기대가 컸었다. 기대는 늘 적당해야 했었다.

촬영이 가능한 곳은 한정적이기에 특별히 촬영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입구에 걸린 그의 사진들은 마치 우리를 그의 작업실로 데려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 전시는 과했다. 설명이 지나치게 과했다. 전시장 내부는 텍스트들로 가득했고, 가뜩이나 작아진 그의 작품들은 때때로 텍스트에 지는 듯도 보였다. 차라리 저 텍스트들과 사진을 모아 홈페이지를 만들고, 그걸 볼 수 있는 키오스크나 태블릿 PC를 별개 공간에 비치에 두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작품들을 보고 감상할만한 여유를 만들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텍스트에 발목이 잡힌 사람들은, 작품명이나 작가명이 적힌 명패에 발목 잡힌 사람들이 그러하듯, 더 가지 못하고 더 작품을 보지 못했다.
평면 작품들도 꽤 있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있었다. 분명 원본 작품이 아님에도 작품을 알리는 이름표엔 어디에도 복제품이란 기재가 없었다. 내 눈을 의심했다. 반복해서 바라보았지만 그건 분명 원본이 아니었다. 그러다 내 눈엔 바닥의 선들이 들어왔다. 작품에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라는 지시선이었다. 복제품엔 따로 지시선이 없었다. 갑자기 기분이 상했다. 준 것 없이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요즘은 복제품의 수준이 높아져, 그 제작방식에 따라서는 원본의 느낌을 충분히 살려내 관람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한다. 복제 판화가 잘 팔리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복제라서의 문제가 아니다. 복제품은 분명 복제임을 명확하게 적어두어야 한다. 아무리 잘 보아도 프린트인데 재료가 유화라니! 놀라웠다.


오직 〈로타르 좌상〉과 〈걸어가는 사람〉만이 별개의 공간을 쓰고,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할애하고 있었다. (촬영은 〈걸어가는 사람〉만 가능하다) 걸어가는 사람 주변으론 방석을 두고 참선이라도 하라는 듯 등 떠미는 BGM을 깔아주고 있었는데, 본래 이 작품의 전시를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에서만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인지 새삼 궁금했다.

마지막 공간은 〈걸어가는 사람〉을 프린트해 둔, 따라그릴 수 있는 종이가 비치되어 있다. 사람들이 적은 글들이 흥미롭다.

다 보고 나온 1층 로비의 글은, 전시를 보는 내 마음 같았다. 자코메티 그를 만나기엔 이래저래 힘든 전시였으나, 내 눈으로 작품을 본 것에 만족을 해야겠다.
사진.글.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