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온한 데이터展
2019.03.23-2019.07.28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3, 4 전시실
'불온한 데이터' 전은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10개 팀의 작품이 선보여지는 전시다. 컴퓨터와 데이터의 등장은 이런 작품들까지 낳았다! 불온하다니.. 미술은 어느 시대고 불온의 유전자를 이어왔던 걸 떠올리면, 이들은 보이는 것에 비해 지나치게 평범한 전시 제목을 가진 걸 수 있다.

(사진) 자크 블라스, 얼굴 무기화 세트, 2011-2014 (마스크 시리즈)

(사진) 자크 블라스, 얼굴 무기화 세트, 2011-2014
〈얼굴 무기화 세트〉를 보면 구글과 페이스북이 떠오른다. 얼굴 인식능력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이젠 개별 태그를 걸지 않아도 비슷한 얼굴을 대조하고 찾아 스스로 태그를 건다. 사실 무서울 정도다.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는 새 찍힌 단체 사진 귀퉁이에 찌그러진 내 얼굴을 발견할 땐 특히나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마스크의 개념은 실용화가 될지도 모른다. 마치 자동차 번호판을 읽히지 않게 하기 위해 수를 쓰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진) 크리스 쉔, 위상 공간 360, 2018

(사진) 레이첼 아라, 나의 값어치는 이정도(자가 평가 예술작품): 한국 버전, 2019
레이첼 아라의 〈나의 값어치는 이정도〉는 작품에 설치된 카메라, 온라인에서 관객이 작품의 제목이나 작가의 이름을 SNS를 통해 검색하는 행위는 이 작품에 반영이된다. '엔도서'라는 데이터 마이닝 알고리즘에 의해 전시 종료일까지 축적된 데이터가 작품의 가격으로 매겨지는 것이다. 소호 사창가의 네온사인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 작품은 알고보니 페미니즘의 성향이 매우 짙게 깔려있다. 한국에서 열릴 전시를 위해 이 작품의 제작을 의뢰할 때 그는 여성작업자를 찾아 맡겼다. 여성이 배제된 고가의 임금을 받는 이같은 업종의(여성 용접공) 사람이 여성 작가와 작품을 완성에 참여한다는데에 의미가 있으며, 이것은 이대로 남성과 다른 대우의 여성 사회적 지위 등을 이야기한다.

(사진) 김실비, 금융-신용-영성 삼신도, 2019 / 하름 판 덴 도르펠, 내포된 교환, 2018

(사진) 포렌식 아키텍처, 지상검증자료, 2018 / 사이먼 데니, 블록체인이란 무엇인가?, 2016
(사진) 김웅현, 밤의 조우, 2019(영상) / 퇴화과정에서 고안한 MMU, 2019(왼) / 감염자를 위한 워프 방어복, 2019(오)

(사진) 수퍼플렉스, 홍해의 그린 아일랜드, 2016
수퍼플렉스는 3인의 작가로 구성된 예술집단이다. 〈홍해의 그린 아일랜드〉는 코펜하겐 남부 지방 자치도시 발렌스베크에서 1970년대 일어난 로봇 시민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소재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지만 이것이 역사의 한 부분이란 게 더 놀랍다. 어쩌면 로봇은 조금 식상한 소재로 더 이상 흥밋거리로는 얘기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단지 이미 실생활에 한껏 파고든 그들에 대해 우리는 너무 무방비한지도.

(사진) 수퍼플렉스, 모든 데이터를 사람들에게, 2019
이어 다른 작품인 원제 ‘All Data to the People’은 ‘모든 데이터를 사람들에게’라는 한국어로 번역되어 벽을 가득 채웠다. 이들은 전시할 때 현지어로 번역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전시되는 작품들의 성격으로 인해 연계 교육프로그램이 모두 인터랙션 체험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혹은 게임과 작품의 간극이 멀지 않다는 얘기. (누구나 겪듯) 게임은 마치 모든 학생의 적인 것처럼, 모든 성장과 반대되는 개념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놀이의 일종인 게임의 방향성은, 모든 놀이가 그러하듯, 그 목적에 따라 달라짐을 새삼 또 느낀다. 한국에서 예술은 대중적으로 '노는 것'의 이미지를 갖는다고 본다. 어쩌면 많은 예술가와 연구자들이 예술의 '노동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려한 것을 보면 한국만 갖는 트라우마(?)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노는 것'에 트라우마가 있는 것 처럼 보이는 한국에서 게임산업의 육성과 성과는 재미있는 대목이다. 장르 횡단적인 현대미술 작품들을 보면 다시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일부 인터뷰 참조 https://www.mmca.go.kr/pr/blogDetail.do?bId=20190430000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