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책NOW
2019.04.12-2019.07.07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더서울라이티움 5관
서울숲에 붙어 위치한 갤러리아포레 내 더서울라이티움에서는 그림책NOW전이 열리고 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2018년 수상 작품,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 2017 수상 작품, 한국 나미콩쿠르 2019 수상 및 입선작으로 전시가 구성되었다. 그림책은 사람들에게 동화책과 가장 많이 오인된다. 전시장에 들어서서 시작된 전시해설사의 설명을 따라가며 들려오는 관객의 반응 역시 그러했다. '이런 내용을 애들한테 보여준단 말이야?' '성인을 대상으로 한 동화책인가?' 책이 팔리지 않기로도 유명한 한국에서 그림책은 역시나 고생이 많았다.

이고르 올레니코프, 점블리 中, 2018
그림책의 노벨상으로 불린다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2018년 수상작가는 작가 이고르 올레니코프였다. 왕성한 작업량을 갖고 있으며 작품의 훌륭함에 동료들의 부러움을 산다고도 한다.
〈점블리〉는 에드워드 리어의 6연의 시로, 점블리라는 녹색 생명체가 사는 까마득히 먼 섬으로 떠난 주인공들이 여러 가지 모험을 겪고 20년 후 돌아오는 이야기다. 반전은 돌아온 주인공들은 인간이 아니라 점블리들이라는 점.
전시장 곳곳에 작품의 한 장면을 빌어 포토존을 신경 써서 만들어 뒀는데 점블리에 등장하는 저 항아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안드레 레트리아, 전쟁 中, 2018
나미콩쿠르는 세계책나라축제 개최지 남이섬의 후원으로 2013년부터 2년마다 열리는 국제 일러스트레이션 공모전이다. 2019년 제4회 나미콩쿠르에서 대상 수상 작가는 안드레 레트리아의 〈전쟁〉이다.
전쟁은 그림을 그린 안드레 레트리아의 아버지, 호세 호르헤 레트리아가 쓴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우리 사이에 스며들어 인간을 타락시키고 삶을 파괴하는 전쟁을 생물처럼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특히 마지막 전쟁의 뒤로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키려 떠나는 그들의 모습-고작 선 몇 줄-은 조용히 소름 끼친다.
안드레 레트리아와 호세 호르헤 레트리아가 등장하는 영상자료도 상영 중이었는데, 그림의 요소들을 따로 그려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을 완성하는 그의 작업과정이 흥미로웠다.

안드레 레트리아, 전쟁 中, 2018 / 가토 히로유키, 미스터리 기차 中, 2018
나미콩쿠르의 골든아일랜드상에는 작가 가토 히로유키가 선정되었다. '교토 탄고 철도'가 운행하는 일본 교토 북부는 오래전부터 악령, 용, 류구성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벽에 걸린 작품들은 큰 감흥이 없었는데, 전시해설사가 '이건 꼭 책으로 봐야 한다'라고 강조하는 바람에 찾아서 열어봤다. 하드커버의 책의 내지가 기름종이라 뒷면이 슬며시 비치면서 내용이 뒤와 겹쳐져 안개가 자욱한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리고,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도 함께 만들어준다. 그리고 맨 뒤엔 기차가 지나는 지역의 지도도 함께 실려있어 한 번쯤 이 기차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가토 히로유키, 미스터리 기차 中, 2018
いちばん の ミステリーは
やっぱり
人 なのかも しらないね
가장 미스테리한 건
역시
사람일지도 모르겠군요.

우르슐라 팔루신스카,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 中, 2017
역시 나미콩쿠르의 골든아일랜드상, 작가 우르슐라 팔루신스카의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이다. 누워서 본 하늘의 풍경 혹은 그렇게 누워서 보고 있는 사람들의 보습을 하늘에서 촬영한 듯한 구도의 그림들이다.
이 작품의 전시공간은 작품으로 재구성한 영상이 벽면에 띄워져 있고 아래엔 평상과 리클라이너 의자가 구비되어 있었다. 편안하게 눕거나 앉아서 볼 수 있는 공간에서, 편안한 자세로 보는 작품들은 그 자체로 휴식이었다. 사실 매우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는 이번 전시에서 이 작품은 독보적으로 내 맘에 들었다. 전시를 보던 당시에도,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몸이 아픈 상태였다. 이 작품은 내 몸과 마음을 모두 쉴 수 있게 했고, 또 쉬는 방법을 알려줬다.

솔 운두라가, 여름 안에서 中, 2017
나미콩쿠르의 그린아일랜드상 중 한 명은 작가 솔 운두라가다. 칠레가 고향인 그가 독일에서 활동하면서 고향의 날씨와 해변을 그리워하며 만든 작품이다. 남미를 가본 적이 없는 나는 이런 날씨라면 가보고 싶다고 느낄 만큼 파랗고 따뜻하고 선명하다.
책으로 접하면, 해변의 하루를 시간에 따라 장면으로 보여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대별로 사람들의 행동이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고 사라지는지, 바닷물은 얼마나 따뜻하고 수영을 할 만한지 등이 짧게 적혔다. 그림마다 등장하는 핑크 코끼리를 찾는 재미 요소도 있다.

솔 운두라가, 여름 안에서 中, 2017

김지영, 달님 여행 中, 2018
판화기법이 눈에 띄는 작가 김지영의 작품은 주인공 버들 도령이 작은 섬 물속에 놀러 오는 달님이 가뭄으로 찾아오지 못하자, 달님을 찾아 떠나는 내용이다. 절제된 색사용과 전통화에 근거한 표현방식이 작품을 특히나 세련되보이게 만들었다. 세로형 구도 역시 병풍에서 유래한 구도다.

전시에는 이외에도 엄청 많은 원화와 그림책들이 포함되었다. 하나하나 열거해도 될 만큼 재미있는 전시에서 2시간이나 소모할 수 있었던 것은 힘들 때마다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전시의 끝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빈백과 함께 전시에 소개된 그림책 외에도 여러 가지 그림책들을 비치해두었다. 영어와 한국어를 제외하고도 스페인어나 일본어, 독일어 등으로 된 그림책을 볼 수 있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사진.글.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