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7월 27일 토요일, 오후 2시~5시 30분.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다시, 바로, 함께, 한국미술 공개 세미나V⟫가 혜화역 이음센터 이음홀에서 진행되었다. 본 세미나의 Day3은 ‘2000년대:미술현장으로서의 세계’라는 주제로 2000년대 미술현장과 국내 작가들의 세계화에 대한 열망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되었다.
세미나 순서는 1,2부로 나누어져 1부는 사회자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권은용팀장 인사말, 간략한 5차 정기 세미나 주제 소개 후, 책임연구원 정현 교수의 발제, 2부 라운드 테이블은 1, 2차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1부 발제 | 1990-2000년대 연구팀 연구방향
*정현(인하대교수)
▶2부 라운드테이블 | 혼돈의 2000년대를 보는 법
1차:
*모더레이터:김장언(독립큐레이터)
*토론자: 장승연(성균관대 강사)
정현(인하대 교수)
김홍석(작가/상명대 교수)
이주요(작가)
유진상(미술평론가/계원예대 교수)
기혜영(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2차:
*모더레이터:김장언(독립큐레이터)
*토론자:정현(인하대 교수)
장승연(성균관대 강사)
이주요(작가)
유진상(미술평론가/계원예대 교수)
기혜영(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김장언(독립큐레이터)
▶QnA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권은용 시각예술기반 팀장이 세미나 소개를 하고 있다.
■1부 발제 | 1990-2000년대 연구팀 연구방향
I. 1990-2000년대 연구팀 연구방향-역사와 탈역사 사이에서_정현(인하대 교수)

▶1990년-2008년까지의 키워드 중심의 전시 담론 연구
본 연구는 5명의 연구원이 각각 4개의 담당 연구 키워드에 맞추어 자료검색과 그에 대한 메타텍스트를 만들어 최종 결과물를 설계한다. 본 연구 취지는 90년대의 연구범위인 1990-2008년대의 한국 미술역사에 대한 키워드 중심의 리좀 지형도를 만드는 것으로 ‘담론 형성’을 위함이다. 이는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담론이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것이 아닌 ‘떠돌아 다니는,’ ‘배회하면서 우연히 만들어 지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 2008년까지의 연구범위와 방향은 ‘전시 중심’ 연구로, 선정된 전시는 시각문화와 예술 중심인 ‘사회문화적 기호’와 문화인류학적 프레임에 근거한 ‘정치적·문화적 기제’로서 한국미술현장의 정책과 제도에 따른 구체적 방향을 설정한 시기로 연구한다. 이와 함께 서구중심의 세계미술계에서 한국미술이 어떠한 동시대성을 획득할지 검토된다.
2001년의 연구 방향의 가정은 일상과 아카이브, 일상과 문화의 관계를 조망한 『제2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과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의 첫 번째 기획전인 『디자인발견-일상 속의 디자인문화전』에 기반한다.
▶정현 교수의 2001년도 연구
세계의 시간이 가속화됨에 따라 동시 다발적인 사건들이 양적·매체적으로 범위가 넓어 하나의 키워드로 분류하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각 해마다 키워드를 선정하여 2000년대 전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2001년의 주제는 ‘디자인’으로 ‘미술현장에서 어떤 변화를 감지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미술이 이전의 관습과 이후의 경향이 어떻게 역동적 시도를 했는지 아래의 전시와 제도 디자인을 통해 시각문화측면, 문화적 측면, 제도적측면으로 확장하여 전시가 사회문화적 역할과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90년대 초의 ‘전환’, 90년대 중반의 ‘제도’, 후기 식민주의적 관점의 ‘문화정체성’, ‘한국성’ 네 개의 키워드를 통해 ‘감성의 재배치’라는 가제 아래의 선정된 전시를 살펴 본다.
▶ 2001년 감성의 재배치(가제)
‘감성의 재배치’로 분할된 모더니즘은 2000년대로 넘어가 서로 융합되거나 혼합되는, 식별할 수 없는 무언가로 바뀌는 시기로 산정해 보고자 한다. 2000년전부터 진행되었던 국가적 디자인 진흥 움직임에 근거하여, 디자인이 교환의 가치가 아닌 ‘문화적 가치’로서 연구된 전시를 선별하여 살펴본다.
『예술의 전당, 디자인 혹은 예술(2000)』
2000년 12월 예술의 전당과 아트선재가 주최한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 미술관의 ‘디자인 혹은 예술’展은 시각문화 측면에서 디자인과 예술분과 간의 경계를 주목하며, 디자인에 그래픽과 건축의 개념을 포함한 전시로, ‘디자인과 예술과 문화’, ‘포스트모던한 또다른 환상’,‘예술로서의 디자인’, ‘확장된 레디메이드’,‘예술과 디자인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주제를 다룬다.
『De-sign Korea, 디자인의 공공성에 대한 상상(2001)』
디자인 코리아의 ‘디자인의 공공성에 대한 상상’展은 디자인을 문화적인 면으로 접근하면서 도시와 만나게 되고 또 공공성과 만나게 되는 측면이다. 특히, ‘공공성’이란 키워드는 공공미술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80년대 중후반의 ‘공공’에 대한 개인과 사회간의 관계에 대한 미술계의 질문에서 90년대와 2000년대의 ‘공공성’에 대한 적극적 실험까지의 범위를 포함한다.
『제1회 타이포잔치,서울 타이포그라피 비엔날레(2001)』
2001년는 타이포그라피 비엔날레가 열린 첫 해로 적극적인 디자인 중심의 전시는 아니지만 디자인 분과로서 타이포그라피가 한글과 같은 독창적인 문자에 대한 자부심의 근간으로 열린 전시였다. 그 예로, 안상수 작가의 ‘보고서 보고서’라는 매거진을 살펴본다. 특히, 디자인적인 프로세스와 미술적인 프로세스가 겹치는 지점에 있는 안상수 작가의 독특한 출판물은 문화적 측면에서 타이포그라피 기반 그래픽디자인과 예술간의 편집방식과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보여준다. 이는 2000년대 이후 전시와 콜라보레이션의 컬렉티브 팀이 ‘디자인’영역을 통해 미술 작업 공유 뿐아니라 출판물 제작을 통한 자율적인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연결지점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의도와 계획을 통한 제작공정이나 창착방식이 일반적인 프로젝트와 다른 시스템 전환으로, 프로젝트 사루비아 다방같은 대안공간의 탄생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영상세대,애니메이션,카툰,MTV,팝아트 상품(2000-2006)』
2000년대부터 2006년까지의 미술계의 스페셜 이슈는 최정화 작가의 작품과 같이, 예술이 진지함을 벗어나 유희적이고 가벼운, 소모적이고, 대량생산 가능한 개념으로 전환된 시기로, ‘디자인적 감성’ 혹은 ‘문화로서의 디자인’, ‘사회적인 가치로서의 디자인’이라는 기호적 측면의 접근을 볼 수 있다.

『새 예술정책, 2004년 2월 발표』
제도적 측면에서 새 예술정책은 ‘순수미술’에서 ‘포괄적 시각예술’로의 중요한 개념적 전환을 보여준다. 이전의 2001~2003년까지의 예술정책과 비교한 결과, 순수미술만 집중되어 문화산업으로 분류된 디자인이, 새 예술정책에서는 정책적으로 디자인,공예,건축,도시 디자인을 포괄한 제도마련의 의지를 12개의 항목중 5개의 항목에서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날 정현교수는 “최근 매체적, 수공적인, 손의 미학이라는 자연적인 것이 줄어들면서, 작가의 선택,구상,재조합이 중요시되고 있는 시대로 변화되고 있다”고 말하며, 키워드인 ‘디자인’을 통해 2010년대 전후부터 시작된 다학제적인 시각미술현장의 변화의 전조들을 살필 수 있는 틀을 마련하고자 진행된 연구“라고 하며 발제를 마무리지었다.
■ 2부 1차 라운드테이블| 혼돈의 2000년대를 보는 법

장승연(성균관대 강사) 정현(인하대 교수) 김홍석(작가/상명대 교수) 이주요(작가) 유진상(미술평론가/계원예대 교수) 기혜영(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김장언(독립큐레이터)
김장언: 지금까지 네 번에 걸친 세미나가 있었고, 첫 번째이후, 두 번째 세미나는 ‘전시는 말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문화적 현상의 전환에 따른 전시의 변화, 세 번쨰 세미나는 ‘1990년대 이후 공공성 담론’으로 미술이 사적 창작 활동이 공적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에 따른 90년대의 변화, 네 번째 좌담은 ‘시간,장소,관계-1990년대 이후 전시와 담론’로 전시담론 중심으로, 전시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과 새로운 지적생산의 중요한 툴로서 한국현대미술의 전시와 담론, 제도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2000년대 세계화와 예술에 대한 담론
김장언: 본 세미나에서는 2000년대를 세계화의 관점, 즉 ‘세계화의 문제’, ‘90년대의 한국미술계의 성장과 확장’에 대해 작가, 큐레이터와 담론을 나누고자 한다.
김장언: 2000년대 이후의 세계화의 관계맺는 형식들이 국가나 국가 소속 기관 중심 또는 비공식적인 채널에 의한 매우 사적인 영역에서 본격적으로 전문화된 민간영역의 세계화의 접점으로 이동하였는데, 2000년대의 세계화와 관련해서 세분 패널들이 경험했던 상황들 질의
유진상: 예술의 원칙은 각각 개인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인데, 예술과 세계화의 관계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조건은 개개인의 창작예술방식에 대한 범주와 사유방식에 대해 의미를 변형시키는 느꼈다. 이러한 한계는 교육현장, 비평, 제도 뿐아니라 예술가들이 상대방을 존중하고 바라보는 시선이 회복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이 안된다고 본다. 그 예로 2002년에 『나의 집은 너의 집, 너의 집』이라는 아시아유럽현대작가전에 참여하면서 프랑스의 제롬 상스와 같은 외국큐레이터에게 한국작가가 심사를 받는 적이 있는데, 세계와 우리와의 관계가 어떤 특정한 형태로 고정관념화 되있던 현실을 경험 한 바 있다. ‘국제’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이 적지 않았다.
김홍석: 90년대 독일 유학후 귀국 할 당시 유럽과 다른 차원의 역동성의 한국에서 목도하게 된다. 이러한 역동성 속에 존재하는 불쾌한 기억들은 문화예술계 안에 근대화하는 개념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계화를 맞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이러한 과정에서 서양의 이론,사상들은 토착적 공부를 한 평론가나 학생들, 미술 잡지에 글을 기고 하던 작가, 교수가 소외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90년대 말 해외교류 차원에서 서양에 의해 우리나라가 간택되는 치욕적인 상황을 겪은 시대였던 것 같다.
이주요: 뒤집어 생각해보면, 소외된 분들이 과연 누구였나? 90년대 당시 해외에서 한국 작가심사에 통역하면서, 혜택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굉장히 다르다. 한국이 싫었다. 왜 대학교 2학년때, 한국을 뛰쳐났을까? ‘복지’를 예로 들수 있다. 복지의 핵심은 개성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개성은 의견에 따른 행동의 자유, 책임인데, 복지국가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예술의 효용성, 용도에 질문을 찾기 어려웠다. ‘국제’라는 것은 회복이 안된 거추장스럽고, 크고 그런 개념이었다.
▶세계화의 담론-김홍석작가 작품 중심으로
김장언 : 90년대 후반부터 해방이후부터 한국현대미술계가 쌓아온 어떤 시스템과 새롭게 유입된 동시대 미술 중심의 시스템이 충돌 하면서, 이주요작가의 표현데로 ‘모두 다 소외된 현상’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세계화의 경험에 있던 사람도, 한국의 내부에 있었던 사람도 이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각 세 분의 활동과 작업을 중심으로 세계화에 대한 질문들을 해보 겠다.
기혜영:국제관계를 뜻하는 국제화라는 맥락이 아닌, 신자본주의를 전제하는 세계화관점에서 ‘우리나라가 서구에 의해 간택’되었다고 하였는데 간택의 이유 질의
김홍석: 2000년초반은 기관의 전문성에 대한 대화부족으로 문화자체가 큰 역할하지 못할 당시, 형식적인 면에서 보면, 서양과 한국의 가교 역할을 한 일본의 도움을 받았던 민간기업, 큐레이터가 서양의 일처리 방식을 빠르게 채택했기했기에 가능했다. 쌈지스튜디오 해외레지던시가 그예다. 해외에서나 기관에서 리서치할 때, 작가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내용적측면에서는 90년대말, 현대화에 대한 미술계의 시작점이 되는 새로운 결의 작품이 나오게된다. 그 예로 아시아성과 여성성을 강조할 수 있는 페미니즘 작가라던가, 최종화 작가와 같이 자기만의 한국적 방식의 형태의 작품이 소개된다.
기혜영:2000년 전후로 해서 작품 작업을 살펴 보면,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질서가 누구를 위한,누구에 의한, 결정인지 의문을 돕는 작업을 하셨는데, 그 예로, 작업하셨던 번역의 문제를 들수 있다. 그 당시 인식되었던 사회, 경제적 분위기와 세계화에 연동된 인식세계가 있는지 질의
김홍석:번역은 내가 목적한 바가 아닌 상황에서는 언어와 문화외의 것도 소통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각지대안에서 주체와 목적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목적은 행위의 결정에 영향을 주는 가치와 연관이 있는데, 우리나라가 서양에 대한 것을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번역된 절대적 가치 사이의 빈틈에 대해 호기심 있었다.
장승연: 2006년에 초국가적인 프로젝트인 시징맨(Xijing Men 西京人)에서 첸 샤오시옹(중국)와 츠요시 오자와(일본) 작가와 활동 하셨는데, 국가라는 경계, 틀, 제도에 대한 비판을 유머러스하게 예술적으로 확장한 프로젝트로 기억한다. 2000년대 글로벌리즘, 국제교류의 상황속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자하는 의지가 생성된 계기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나게 된 계기 질의
김홍석: 90년대에 미술관 전시 외에도 다양한 비엔날레, 정체 불명의 공간이 생기면서 ‘장소’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부하는 두 작가와 서로다른 국가관과 미술관에 대한 견해를 나누었던게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역사적인 것의 조건에 대해서 전시개념이 아닌 작품중심으로, 한중일에 대한 이미지나 선입견을 제외하자 계기로 결성하게 되었다.
▶세계화의 담론-이주요작가 작품 중심으로
기혜영 2000년대 전후해서 당시 특이했던 출판형식과 기존 예술계와는 결을 달리하는 특이한 출판형식의 책을 통한 소통방식, 제작방식, 이런것들이 우리 미술계의 풍토에서 ‘여기가 싫었다라고 하신 노마드적 삶의 방식과 작업간의 연동해서 부연설명 질의
이주요: 90년대에 한국에서의 삶을 견딜수 없었던 이유가 오히려 세계화에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고 자라면서 체화된 규칙들, 논의하기 어려운 문제들, 모여도 이길 수 없는 프레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정신적 환기가 필요했고, 관습이나 타성이 생길때면 머물르지 않고 떠났던 것 같다. 이러한 삶의 패턴이 설치 작업에 있어서 특이한 것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기존의 사회문화적 시스템안에서 분류되길 원치 않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동의하지 않았을 뿐이다. 오히려 선택되지 못하고 없어지는 나머지 것들에 집중한 결과이다. 특히, TWO라는 작품을 책으로 출판한 이유는 외부의 계기로 인한 전시기획이나 이벤트 프로젝트성이 아닌 기록을 통해 역사적 문제에 대해 뚫고 나갈 수 있는 강력한 개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함이었다.
▶세계화의 담론-유진상 큐레이터/교수 전시 중심으로
기혜영: 학교 교단 뿐 아니라 현장에서 독립큐레이터로서 일을 병행하는 이유 질의
유진성응답: 세계미술시장의 중심에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와 같은 엘리트 그룹을 중심으로 90%이상이 통합되어 움직이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서 해외에 내보내는게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을 했다. 한국은 유럽과 달리, 모든 이슈들이 한 방향으로 수렴되어 텅빈 공간이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빈 공간들을 작가들이 하고 싶은 것으로 메우게 하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그 예가 90년대 말에 『공장미술제』에서 미술이나 교육을 통해서 관행적으로 알려진 방식 지양하고, 실력을 바탕으로 해외전시에서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형성 할 수있도록 큐레이팅을 맡은 경험 바 있다.
김장언: 90년대와 2000년대 세계화로 인한 국경을 넘는 것에 대한 가벼움과 뿌리 내려야 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사이에서 이주요 작가의 ‘한국이 싫었다’는 표현도 새로운 체계에 대한 경험들과 그에 따른 새로운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모색하게 되는 계기였던 것 같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김홍석 작가도 세계화에 의해 한국미술계가 해방이후 쌓아 왔던 지역적 시스템과 전통적인 아카데미즘의 붕괴에 따른 서로 다른 다양성들이 확대된 한국미술계에 대한 90년대 횡적 담론이었다.
■ 2부 2차 라운드테이블| 혼돈의 2000년대를 보는 법

정현(인하대 교수) 장승연(성균관대 강사) 이주요(작가) 유진상(미술평론가/계원예대 교수)기혜영(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김장언(독립큐레이터)
▶세계화와 디지털 미디어 담론-유진상 큐레이터/교수 전시 중심으로
정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라는 큰 제도권 안에서 예술감독으로 활동하셨는데, 최근에 서울미디어시티를 보면 미디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미디어와 많이 달랐다. 그리고 올해 들어 인터넷웹아트 탄생 20주년 관련한 전시가 많았는데, 디지털을 세계화에 접근할 수 있는 혹은 들어갈수 있는 진입로로 수단화는 시키는 전시인지 질의
유진상: 2012년에 기술기반예술 전시기획 이후의 다음해 다시 사회적 이슈의 비엔날레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진행되는데, 기존의 같은 컨텐츠의 네트워크 안에 있는 광주나 부산비엔날레와 같은 운영시스템을 답습한다면 너무 한 방향으로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다변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전시이길 바란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기술기반예술을 프로모션 할 수 있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술기반예술과 이에 대한 창작관련 이슈들을 전사회적 차원에서 그리고 시대적 차원에서 조망해보는 이런 문화플랫폼이 되었으면 한다.
정현: 한국미술계가 2000년대 초반까지 모든 미술잡지나 미술정책이 전국의 균형발전이 빠진적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사회일반이나 미술계에서도 같은 현상이 초래되고 있다. 현재 작가, 비평가, 큐레이터, 대학 교육자들이 실천해야 되는 교육들을 하고 계신데, 혹시 2000년대 초반에 그런 실험들이나 시도들이 공장미술제 외에도 있었는지 질의
이주요: 잠깐 질문을 드리면, 그렇게 한쪽으로 활동이 집중된 필요충분조건이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유준상: 개인적으로 80년대 독재정치로 인해 좌경화되었던 지금의 주류세대의 문제를 부인 할 수는 없을 것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공간을 추수릴 사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장언: 세계화의 또 다른 포인트인 디지털 미디어의 변혁에 따른 커뮤니케이션 툴의 변화가 2000년대에 한국현대미술의 세계화에 미친 영향 질의
유진상: 2002년도에 『CROSSTALK 展』을 기획했는데, 적은 지원금으로 문예회관 1,2층을 메우기는 너무 힘들었고 추운 2월달이라 입장객도 없었다. 그래서 전시장에 CCTV 40개와 주문형 비디오(Video on Demand)를 설치해서 300명 접속 회선을 연결해 24시간 인터넷으로 전시장 관람이 가능하도록 진행한 적이 있다. 이러한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인터넷 접속시대에 인간을 계정으로서의 인간으로 정의가 가능한 동시에 물리적 공간으로의 이동이 없어도 교류가 가능하게 되었다.
▶세계화와 디지털 미디어 담론-이주요 작가의 작업활동 중심
김장언: 세계를 다각화 하는 비엔날레와 같은 전지구화된 전시 출연의 출발점에는 90년대초 부터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변화가 있다. 작가로서 작업 활동을 하면서 그런 디지털화된 커뮤니케이션의 변화들을 어떤 식으로 경험하고 그런 과정에서 세계미술계가 어떤 식으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형성되었는지 질의
이주요: 박이소작가의 해외 어시턴트를 할 당시 FAX로 전시설계를 주고 받은 기억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스페인의 누군가의 제안으로 스카이프를 통해 잡지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해외로 전시를 많이 나가는 활동을 몸으로 직접 많이 했기 때문에, 오히려 미디어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삶을 살았다. 미디어라는 것은 미술관에서 관객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했으나, 예술은 단순하게 하나의 언어로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해되지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기술발달에 따라 대중은 작기가 좋아하는 것을 직접 컨텍하고, 말을 한다. 예술이 놀이와 문화의 일상적 언어들로 채워지는 거 같고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김장언: 90년대부터 2000년 초반 커뮤니케이션 툴의 발달과 디지털화는 2000년대 초반 까지는 관객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하면, 이제는 일상화 되면서 관객 형성의 핵심되었다고 본다.
장승연: 작업이 물리적 상황과 상당부분 연결되어 있는데, 이동을 계속하는 노마드적인 삶,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 『10년만 부탁합니다』도 해외레지던시 하면서 보관할 수 없는 작품을 구출한 전시이고, 런던에서의 『일단 한번 눕기만하면』은 유럽생활에서의 불편함을 나타낸 내용을 보면, 디지털 환경이 미술 까지 변화를 미치는 상황 속에서의 변화들이 작업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질의
이주요: 위의 논의된 여러 미디어 중에 책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어떤 제도도 못견디었던 것 같고 이미 만들어진 제도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해야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전시도 제도로서 여러 가지 권력 구도안에서 어떤 형식의 다이나믹을 형성하는 곳이었고, 활동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또한 전시 후에 오는 허무함과 계속 설명을 요구하는 상황을 극복하고자 작업실에서의 일상들을 기록하고 출판 했다. 인터넷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있겠지만, 어떤 신체를 가진 오브제의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식에 작업하는 작가로서 신체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앞으로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김장언: 90년이후 비물질적인 미술관과 새로운 개념미술의 출현에 의해 유행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이주요 작가처럼 계속 이동하면서 작업하는 생산 방식들을 비물질화시키거나 개념적인 툴로서 유통시키는 현상들은 개념적, 비물질적 작업을 추진하고 폐기해야만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미술의 세계화_유진상 큐레이터/교수
김장언: 2000년 초반에 세계화 열망이 작가,큐레이터,비평가, 국가정책 단위등으로 증폭되는 시기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디어 발달과 국경자율화되면서 한국 현대 미술의 젊은 세대는 세계화가 일상이 되어 긍정적이라기보다 자국의 지역에 더 함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지금 한국미술 세계화와 연관 시켜보면 어떤지 질의
유진상: 모든 일은 양면성이 있다. 예술의 원칙은 각자가 세계의 중심이 되느냐 아니냐이다 나머지는 조건들에 관한 것이다. 세계화라는 개념은 작가, 비평가,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있는 곳에서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아도 진정한 테크놀로지다. 예술의 세계화에서 얻게 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전세계적으로 그런식으로 살아온 예술가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자기가 있는 곳에서 스스로 예외적이 되면 된다는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과 동시대성_이주요 작가
정현: 이번 세미나 주제와 관련해서, 세계화시대의 예술인은 어느 한 곳에 정주한 삶이 아닌 끊임없는 이동과 유목적 삶을 표방하는 형태다. 세계화시대의 예술은 다원화로 가속화되어 가지만, 오히려 가시적인 단서는 줄어드는 것으로 보이는데, 미술관의 제도나 미술공간을 사용하는 방법을 전세계가 공유하면서, 새로운 주제를 발굴하는 심도 깊은 연구보다는 시각적 도발이 더 큰 영향을 주는 이미지 정책의 시대로 완전히 탈바꿈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소셜네트워트의 활성화에 기반하는데 적어도 디지털 네트워크 세계는 개인들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초국가적 공동체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대중문화에서의 영향력은 상상이상이다. 과연 시각예술에서 그만큼의 파급력이 나타날 수 있는지 질의
이주요: 옛날에는 페인팅이 시각적 파급력을 강력한 수단이었지만,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다. 지금은 이미지들이 가시적인 즐거움을 찾아 떠나니면서 살아가고 있다. 미술 외에서의 실험이 가능해진 것으로 잃어버린 신체 대해 불만을 가지면 안된다. 이런 신체에 대한 파급력은 가변적 지식으로 계속해서 변화할 수 있는 것이여야 하며 이러한 동시대성은 척도, 기준, 규범에 의해 어떠한 방향성 갖고, 현장을 읽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문가들이 그것에 대해서 어떠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가가 중요하다.
이날 김장언 모더레이터는 “세계화 영향에 대한 인지를 해야되는 시기이고, 세계화의 다양한 계열 확대는 환상일뿐 다변화된 세계로 가속화 될 수도 있으면, 동질성과 이질성의 충돌에서 동질성이 승리 할 수도 있는 이러한 현실을 맞고 있는 것 같다.”며 세미나를 마무리 지었다.
오늘 작가와 큐레이터 그리고 평론가와 함께한 5차 세미나에서는 세계화의 증폭과 미디어에 따른 일상화뿐만 아니라 지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 그리고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 간의 층위를 통해 한국 미술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을 탐구하는 시간이었다.
원고작성 및 사진촬영 : 이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