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MISSION
2021.4.1-8.29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


인터미션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은 쉴 틈 없이 움직인다. 변화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고, 그 속에서 제 자리를 지켜나가는 것이 모두의 역할일 것이다. 연속된 극의 막과 막 사이 잠시 멈추는 시간인 ‘인터-미션(Inter-mission)’은 이어질 극을 위해 재충전하는 시간이면서 새로운 전환을 기대하게 하는 장치이다. 움직이는 무대인 세상 속에서 균형을 잡고 삶의 러닝타임 속 맡은 역할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 호흡을 가다듬는 간극에 대한 비유이다.

이러한 호흡에는 김종학, 김창열, 박서보, 오수환. 이강소, 이배, 이불 등 국내 작가 7명을 포함하여 칸디다 회퍼, 도널드 저드, 로버트 인디애나, 로이 리히텐슈타인, 제임스 로젠퀴스트, 마크 브래드포드, 피터핼리 등 총 14명의 작가 작품이 한자리에 숨 쉬고 있다.

· Part 1. 내면으로부터 │ From Inside
해방 이후 민주주의를 거머쥔 가파른 한국 현대사의 시대 속에서 예술을 수 놓은 작가들은 그들의 내면을 펼쳐내었다. 단순한 고요 미가 풍기지만 실은 강렬한 힘이 발휘된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박서보, Ecriture No.110326, 2013, 230*170cm,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1978년 박서보는 한 대담에서 중성구조(자신의 작업을 중성구조라고 함) 를 의미의 세계를 포기할 때 나오는 문제라고 간주하며 행위, 순수히 행위 그 자체에만 살기를 바랄 때에만 의미의 포기는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결국 그의 중성구조는 의미를 만드는 것이 아닌 의미를 포기하는 것으로, 감히 순수하게 화면을 몇 단계의 층으로 나누고 선을 긋는 그 행위뿐이라 말해볼 수 있다.


(좌) 박서보, Ecriture No.130425, 2013,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우) 박서보, Ecriture No.110326, 2013,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처음에 긋는 선은 의미가 있는 선이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규칙을 정하고 긋는 선은 고도의 집중력이 짓누르는 힘이 가해지기에 빠른 속도로 새겨지기는 버겁다.
반복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강조가 증폭됨이지만, 반복이 지속된다면 의미를 지우기도 한다. 결국, 예술가가 자명하고 분명한 순간을 느끼는 것은 선을 긋고 있는 나 자신과 그 행위뿐으로, 신체적 행위가 물질에 가해져 일으켜진 사건의 장면에 의해 작가가 물질과 만나 접촉한 확실한 사건의 순간을 보인다.


이강소, Serenity-16191, 2016, 130*160cm, Aacrylic on Canvas 

대담한 여백 속 이강소 작가의 호흡과 리듬은 그의 몸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간직한 강렬한 획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기 위해 그리는 것, 자기만의 새로운 해석이 없는 것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는 그는 그림이란 끊임없이 유동하는 세계를 담아내야 하고, 관습에서 벗어난 붓질로 작가와 관람객이 함께 새롭게 경험하는 것이라 말한다. 


Part 1 전시 전경

감각의 탐닉은 자기 존재의 정립과 개성의 각성을 꾀했던 근현대 미술의 전반적인 관심사였다. 작가의 세계라 불릴 수 있는, 작가의 의식이 확산하여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이제는 작가의 현실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 Part 2. 시간을 넘어서 │ Transcending Time
작가의 내면세계를 비추어보았던 Part 1에 이어서 군중으로 가득 채워졌던 장소에 텅 비어버린 현재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듯 칸디다 회퍼의 작품이 또 다른 장소에 존재한다.



칸디다 회퍼, Tearto La Fenice Di Venezia, 2011, 120*150cm, Inkjet Print


칸디다 회퍼, Bibliotheek TU Delft (3/6), 2013, 155*178cm, C-Print

텅 빈 극장 그리고 도서관 속 존재하는 균일한 햇빛에 잠긴 대기 그리고 고전적인 균형미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침묵 속에 고요히 묻어가고 있다. 정말 아무도 없을까 다시 한번 작품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엔 오롯이 나 자신만이 존재하는 장소를 다시 한번 3차원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실질적인 인간의 형상이 부재한 공간에는 인간의 손길이 닿아 만들어진 공간이 존재함을 인지하며, 현재 우리의 모습이 비친 거울로서 다시 응시하게 될 것이다.

· Part 3. 다른 무대에서 │ On Different Stages

또 다른 무대인 현대 사회 속 예술가들이 가진 Mission은 무엇일까. 빠르게 변화하고 소비되는 대중문화 속 그들은 재빠른 삶을 따라가며 독자적인 예술적 시도가 필요했을 것이다. 자유로움 뒤에는 불확실성이 자리한다. 불확실성 속에서 그들은 균일하고도 거칠게 그들의 예술세계를 뿜어낸다. 


도날드 저드, Untitled, 1988, 125.4*727.1*49.8cm (overall), Clear Anodized Aluminum with Orange and Black Plexiglass

주제를 배제한다는 의미인 무제, 그리고 실제 3차원의 공간 활용하여 단일한 색채로 나타낸 기하학적 형태는 도날드 저드가 출발했던 회화적 문제 해결의 맥락에서 작가의 주관적 정서가 배제된 모습을 보인다. 단일한 입방체뿐만 아니라 여러 개 입방체를 활용하며 이의 배열 방법은 반복으로, 결국 반복은 작가의 주관적 판단이 배제되어 작가의 개입이 드러나지 않게 된다. 또한 고유의 색채를 지녀 더 이상 채색하지 않아도 되는 산업용 금속의 재료를 사용하여 채색을 위한, 조립을 위한 작가의 신체적 행위가 배제되며 관람자 역시 상징적 의미 부여가 단절된다.

구성은 전통적 회화의 오래된 난제로, 미술가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화면에 여러 다양한 요소들을 어떻게 배열할 것인지 고민되어왔다. 이는 형태의 다양성을 배제하며 동일한 형태의 반복으로 복잡하지 않은 기하학적 형태를 만들어내었다. 또한 공간의 여러 요소가 작품과 상호작용을 그리고 관람자가 공간을 돌아다니며 공간과의 상호작용으로 달라지는 경험을 유도하기도 한다.


전시장 전경

감각적 아름다움의 직관에서부터 개념의 이해인 이성으로 이어지는 작품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의 틈 속에 숨겨진 작가의 도전과 실험을 찾아낼 수 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또한 각기 다른 Mission이 존재할 것이다. 막과 막 사이의 쉬는 시간 Inter-Mission, 작품이 시간을 넘어선 결과가 비추는 전시 공간 속 잠깐의 틈 사이에 현재의 자신을 곧바로 응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예진 kawns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