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퍼 강 : 속 속 속 속 세 세 세 세
2021.7.2-8.22
디 언타이틀드 보이드

전시장 입구
어김없이 오늘도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무수한 고민들은 내보내달라고 아우성친다. 그들과 오랜 시간 대치 끝에 나는 ‘어차피’라는 무적의 단어 유혹에 넘어가 결국 ‘다 소용없는 일이야!’라고 나름의 결론을 낸다. 그러고선 ‘행복’이라고 느끼는 것들에 눈을 돌려 나의 온 신경을 거리낌 없이 내어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행복’이라는 단어 하나로 너무 그 감정에 집착하고 있지 않은지 묻고 싶다. 그저 감정에 불과하지 않는지 말이다.
행복해지고 싶다. 그 감정을 맛보았기 때문에 이 문장을 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누리는 순간에는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고 내심 기뻐한다. 반면 ‘불행’이라고 느끼는 순간을 마주할 때 (내면의 갈등이나 외부와의 충돌 등)에는 삶을 외면하고 모든 것에 존재하는 의미를 거두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리고 자신에게 화살을 돌려 추궁을 하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의 뿌리는 어딘가 등 나에 대한 존재의 의미를 따지다보면 어느 새 태초의 지구, 태초의 인류, 이브가 먹었던 금지된 과일이 정말 사과였을까 하는 상상으로까지 넘어가기 일쑤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 그것이 곧 우리가 원하는 것일까?

전시장 입구
도돌이표가 붙은 노래처럼 울리는 전시의 제목 <속 속 속 속 세 세 세 세(The World World World World)>은 우리가 존재하는 ‘속세’에 대한 어떠한 말을 강조하려는 것일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전시장 전경
캐스퍼 강은 한국계 캐나다 2세라는 소개 타이틀 속에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계속 탐구해왔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작업을 시작했을 무렵,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과 공경심을 작품으로 표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발맞춰 변해가는 한국 사회와 문화들에 대해 말로 형용하지 못할 허탈함과 상실감을 느끼며 그에게 내면의 변화가 찾아왔다.

캐스퍼 강, <Mourning Glory>, hanji on existing painting, 480x130cm, 2020
원래 그는 한국적인 문화와 이미지가 재해석된 구상적인 페이팅 작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그에게 속세에 대한 무의미함은 그의 내면을 건드렸고 한국 전통 문화의 상징이자 자신의 지지체인 한지를 변형시키는 방식을 채택하여 자신의 속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Mourning Glory>는 초기작의 이미지 위에 듬성듬성한 한지를 덮은 작품으로 작가로서 새로운 미적 감각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왼쪽부터) 캐스퍼 강, <별67>, hanji on linen hemp, 20x20cm, 2021
캐스퍼 강, <별65>, hanji on linen hemp, 20x20cm, 40x40cm 2021
캐스퍼 강, <별68>, hanji on linen hemp, 20x20cm, 40x40cm 2021
캐스퍼 강, <별64>, hanji on linen hemp, 20x20cm, 40x40cm 2021
캐스퍼 강, <별71>, hanji on linen hemp, 20x20cm, 40x40cm 2021
캐스퍼 강, <별69>, hanji on linen hemp, 20x20cm, 2021

캐스퍼 강, <별65>, hanji on linen hemp, 20x20cm, 40x40cm 2021

(앞) 캐스퍼 강, <사물3>, dakk fiber, hanji, acrylic, larch plywood, & castor wheels, 95x95x80cm, 2021

(앞) 캐스퍼 강, <좋아, 내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한게 좋아>, hanji on concrete masonry units variable dimensions, 2021
작가가 한지를 찢고 태우고 파쇄하고 표백하고 해지게 만드는 과정은 점차 진화하고 발전한다. 그의 작품세계는 모두 만물의 무상함으로 귀결된다. 형상을 모두 비워냄으로써 속세의 무의미함을 증명하고 한지를 변형시킴으로써 작가는 인생의 무의미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모든 것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유의미한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바로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달달하고 쓴 일상의 순간에 존재하는 경험들은 곧 유의미한 인생이 되고 무의미한 인생을 유의미한 인생으로 바꿀 수 있는 자가 오직 우리이기 때문이다.
안채원 chaewon63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