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사진전: 삶의 초상
2022.12.23-2023.3.26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10층 문화홀


이번 전시는 그녀의 어린시절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본 프리다 칼로를 만나볼 수 있다.





View Point.1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이야기


전시전경


전시전경


전시전경



전시전경


혁명의 딸
'1910년 - 나는 코요아칸의 아예덴 거리와 런던 거리 사이의 방에서 태어났다.'

멕시코시티에서 혁명이 일어났을때, 프리다는 겨우 세살이었고, 코요아칸에 사는 프리다와 가족들의 삶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프리다는 문화혁명을 위해 정치혁명의 막을 내리려 할 때 시작된 다른 혁명에 참여하였다. 이 새로운 혁명 이후의 멕시코에서, 프리다 칼로는 자유롭고 고집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자랐으며 그림에 열정적인 언어를 찾아냈다.
세월이 지난 후 프리다는 자신이 1910년, 멕시코 혁명의 해에 태어났다고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였으며 실제 일기에도 1910년에 태어났다고 적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이 자랑스럽고 현대 멕스코의 딸이어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고 얘기하였다. 프리다는 스스로 자신을 자랑스러워하였고, 멕시코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자랑스러워 하였다. 그리고 이런 자부심은 전장에 나가는 기사의 갑옷처럼 자닛을 지키기 위해 자수와 주름장식이 있는 전통 치마와 블라우스, 숄과 매우 특이하고 다채로운 액세서리 같은 멕시코 민속 의상을 즐겨입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처음에는 프리다를 다민족으로 받아들여지게 하였지만, 끝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 또한 멕시코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프리다 칼로와 크리스티나, 1946




' 혁명 덕분에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를 되찾았고, 
대중의 목소리를 듣고 압축하여 재전달하여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Diego rivera



영원한 아름다움
'영원히 살아 있으라!'

1940년대 프리다와 디에고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재혼하며 행복하게 시작된다. 하지만 여러번의 큰 수술들과 긴 입원 기간 그리고 죽을때까지 따라오는 극심하고 지속적인 신체적 고통들로 인해, 프리다의 건강이 점점 악화되는 필연적인 순간이 임박하는 시대이다.



View Point.2
미디어 아트를 통해 만나는 프리다 칼로







View Point.3
프리다 칼로 집으로의 초대


프리다 칼로 사진전: 포토존





푸른집
'거리감, 친절함도 이런 파란색이다.'

스페인어로 푸른집을 의미하는 '라 카사 아술(La Casa Azul)', 프리다가 태어나고 어린시절과 천방지축이던 학창시절을 보낸 공간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프리다는 디에고와 함께 영원히 살기 위해 돌아왔다. 푸른집은 멕스코 외각 코요아칸의 콜로니아 델카르멘 지역에 위치하였으며, 프리다의 예술작품의 심장부였으며, 마음 소그이 우주이자 피난처였다. 1958년부터 푸른 집은 작가의 뜻에 따라, 박물관 설립자이지 시인 카를로스 펠리세르 공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다. 

코롬비아의 세계적인 사직기자 레오 마티즈의 사진들은 그들의 오랜 우정과 관계로 특권을 가진 시점에서 전에 볼 수 없었던 프리다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1941년, 마티즈는 프리다에게 일련의 사진들을 헌정하였고 프리다의 여동생 크리스티나가 두 아이들과 함께 살았던 푸른 집에서의 일상생활 속 친밀함도 포착하였다.


정물화, 1951

잘린 정물을 보고 놀란 신부, 1943


전시전경



전시전경



레온 트로츠키에게 헌정하는 자화상, 1937



프리다 칼로, 1939, 니콜라스 머레이



S.S노르망디선에 탑승한 프리다 칼로, 1939



영원한 아름다움: 디에고와 나
당대 유명한 사진작가들의 특징이 담긴 사진들로 구성되었다. 프리다가 혼자 혹은 집에 방문한 디에고의 조수들이나 친구, 당원들과 함께 자세를 취하거나 놀랍게 하는 모습들이 담겨 있다.
1930년대 사진들에는 프리다의 삶에 근본이 되는 사건뿐만 아니라 개인의 내적여정까지 보여준다. 
1931년 MOMA는 리베라의 회고전을 기획하였고 그곳에서 리베라는 루시엔느블로흐를 처음만났다. 처음 만난 날 부터 블로흐는 디에고의 조수이자 프리다가 가장 신뢰하는 친구 중 한명이 되었다. 블로흐는 프리다의 다양한 모습을 남겼다.

멕시코 개혁 속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긴장과 갈등으로 뒤섞여있던 시기에 초현실주의의 아버지, 앙드레 브레통과 같은 중요 인물들이 부부의 삶에 등장하였다. 

1934년 디에고는 프리다의 동생 크리스티나와 불륜을 저질러 프리다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주게 된다. 결국 1939년 프리다와 디에고의 이혼절차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때 프리다는 사진작가 니콜라스 머레이를 포함한 수 많은 연인들을 만났다. 니콜라스 머레이는 프리다의 독특한 성격, 특유의 아름다움과 풍부한 지식에 매료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리다의 초상화들을 찍었다.
1936년 11월 6일 프리다와 리베라는 합의 이혼을 신청하였고 코요아칸 법정에서 이혼이 성립되었다. 이렇게 이들의 연은 끝날것 같았으나, 1940년 12월 8일, 디에고의 54세 생일날 이들은 재혼하게 된다. 그리고 프리다가 긴 여행을 떠날 때까지 디에고는 그녀의 곁에 머무르게 된다.



내 마음속 디에고, 1943



디에고와 나, 1931


편집부 | 정윤, 주애
내용| 전시장 내부 텍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