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 이응노 탄생 120주년 기념전
《I. 고암, 시대를 보다: 사생(寫生)에서 추상까지》
2024. 6.26- 7.28
가나아트센터
올해로 120주년을 맞은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 1904-1989)의 탄생을 기념하여 《I. 고암, 시대를 보다: 사생(寫生)에서 추상(抽象)까지》를 2024년 6월 26일부터 7월 28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최한다. 기념전은 총 2부로 기획되어 고암이 문인화(文人畫)의 전통을 넘어 삶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 30대의 시절부터, <군상>으로 인간 탐구의 절정에 이른 말년까지의 작업을 망라한다.
그 첫 번째 순서인 본 전시는 고암이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의 모습을 사생한 풍경화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의 사생이 해방기 화단이 당면한 현대화의 요구 속에서 반(半)추상 실험을 거쳐 도불 이후 콜라주와 문자추상 등 독자적인 추상 양식으로 이행하는 흐름에 주목한다. 이어서 8월 2일에 개최되는 2부 전시는 고암이 평생의 예술 세계를 종합해 종착한 <군상> 연작에 집중할 예정이다.

1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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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야-외상은 안뎀이댜, 1950년대, 종이에 수묵채색, 42 x 55cm
본 전시에는 고암 이응노의 1950-60년대 미공개 작품이 대거 출품된다. 특히 1950년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취야> 연작이 두 점 공개되어 주목된다. 고암의 50년대 화풍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전경에 놓인 탁자 둘레에 둘 셋의 사람이 앉아 술을 마시고, 그 뒤로 여러 인물 군상이 배경으로 묻히듯 그려지는 <취야> 연작의 기본 구도를 따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밀짚 모자를 쓴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의 중앙에는 웃는 눈의 돼지머리가 걸렸고, 그 왼쪽 끝에 ‘외상은 안뎀이댜’라고 고암이 직접 쓴 글씨가 남아있다. 또한 이응노가 저술한 중 · 고등학생용 미술교재 『동양화의 감상과 기법』(1956)의 초판본도 전시되는데, 이 책의 도판으로 수록된 정물화 <배추>의 원본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풍경-대전교도소에서, 1968, 종이에 수묵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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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공개 작품 중에는 고암이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대전, 안양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 옥중에서 그린 풍경 2점도 포함되어 있다. ‘69년 3월 안양교도소에서 고암’이라고 관지를 남긴 작품은 안양교도소 뒷산인 모락산을 그린 것이다. 고암은 생전에 수감시기를 생각하며 감옥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깥과의 단절, 그로 인한 불안과 공포를 견디기 위해서라도 그는 무언가 그리고, 만들어야만 했다. 이렇게 처절했던 고암의 옥중 시기 이해를 위해 가나문화재단 소장의 옥중 밥풀조각도 함께 전시된다. 흔히 ‘밥풀조각’이라고 부르는 옥중 조각은 밥알을 조금씩 모아서 신문이나 종이조각과 뭉개고 섞어 반죽을 해서 형상을 만든 것이다. 1967년부터 1969년까지, 한정된 기간 동안 만들어졌기에 수량도 적은 편이며, 재료적 특성으로 상태가 취약해 자주 공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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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묵(朱墨)으로 그린 1988년의 대나무 그림 1점도 대중에 첫 공개된다. 화폭의 왼쪽 하단에서 오른쪽 위를 향해 솟아오른 대나무에는 활달하고 분방한 필치의 잎이 무성하게 피었다. 이 대나무 그림에는 고암과의 일화가 녹아 있다. 이 작품을 두고,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부침을 겪었던 일을 떠올리며 “고암 선생님, 왜 하필 붉은 대나무를 그리셨습니까?” 라고 걱정 섞인 질문을 하자, 고암은 되려 소동파의 우문현답을 끌어와 “그럼, 대나무가 검은색입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Composition, 1979, 종이에 채색, 181 x 26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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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의 예술세계는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 그리고 전후 유럽 미술의 영향 속에서 다채롭게 변모하였다. 그 여정을 따라가는 《I. 고암, 시대를 보다: 사생(寫生)에서 추상(抽象)까지》는 작품에 녹아 든 고암의 시대 인식과 그가 일평생 동양화의 현대화를 추구하며 이룬 예술적 성취를 조명한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가나아트와 가나문화재단은 이번 전시가 이응노 연구의 심화와 확산에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