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혀있으면서도 열린 소우주

서브컬쳐 익스프레스 2013-여가의 새 발견 전(3. 23—4. 14일, 문화역 서울 284)

 

이선영(미술평론가)

     

전시가 열린 공간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으로, 제국의 문화 팽창이 중층적으로 결정화 된 건축이면서, 기능적으로도 역에서 전시공간으로 거듭난 장소이다. 전시물과 그것을 담는 그릇 모두 기원과 목적이 불확실함에서 기인한 수수께끼와 다채로움이 있다. 그것은 하나 또는 일련의 시리즈를 향한 강한 소유 욕망에 의해 추동되는 닫혀있으면서도 열려있는 소우주이다. 이 역설적 우주는 각기 특화된 수집품에도 불구하고, 수집자체는 끝이 있을 수 없다는 보편적 진리로부터 온다. 필립 블롬이 [수집]에서 말하듯이 수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수집품이기 때문이다. 컬렉터 류창신의 베어브릭, 컬렉터 추형범의 스타벅스 텀블러, 컬렉터 김근영의 코카콜라 병은 오직 시간과 공간만이 그 한계를 정해줄 듯 무한한 계열을 이룬다. 클리앙 레고당, 브릭마스터 등, 레고 커뮤니티가 만들어 놓은 세계는 고대 원자론의 가설을 떠오르게 하는 근본 입자, 즉 레고라는 상징적 문자로 세계를 다시 쓴다. 



류창신의 수집품

     

이렇게 만들어진 상징적 우주는 서울역부터 우주의 어떤 역까지 존재의 연쇄를 이룬다. 현태준은 얼마 전 지나갔을 일상의 물건들을 대거 동원하여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안미현과 마리킴이 수집해온 캐릭터 인형들은 단순한 소재를 넘어 그들 작품의 몸통을 이룬다.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에 일각수의 뿔, 용의 뼈 등이 수집품 목록에 올랐듯이, 수집품은 실제와 상상이 얽혀 있다. 사물과 예술의 만남은 낯설지 않다. 이 전시를 이루는 수집품이 진기한 동식물이나 광물, 미술품이 아니라, 이런 저런 종류의 상품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그것은 우리의 여가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인공적 상품 세계를 전제한다. 대량생산과 소비사회는 물신적 욕망을 일깨우고, 세트화 된 수집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가능하게 했다. 장 보드리야르가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말했듯이, 현대사회에 팽배한 물신숭배는 사물 그 자체를 넘어서 추상적 체계로 완성되려 한다. 체계의 나사못이 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파편화된 삶은 마찬가지로 소외된 여가를 낳는다. 하나만을 향한 집요한 열망과 노력은 일에서의 성취 뿐 아니라, 여가에서의 이질적인 세계를 가능하게 한다. 

     

동질성은 이질성을 낳는 것이다. 전시는 역이라는 장소의 상징을 살려서, 캠핑 용품 전시로부터 시작하는데, 캠핑용품 자체가 수집품이 됨과 동시에, 수집을 위해서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수집가의 진열장 안에서 수집가나 관객은 또 다른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수집은 미지의 세계를 향하지만, 언제나 같은 곳으로 돌아오는 여행이다. 스펙터클의 세계에 살면서, 진지한 예술작품을 비롯한 웬만한 것에 무관심한 대중들은 이 편집광적 세계를 들여다보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대중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열린 이 전시는 ‘문화의 시대’로 기억되는 1990년대에 하위문화와 예술이 접합되어 만들어진 키치 열풍부터, 보다 근본적으로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생겨나게 한 원인 제공자들의 수집에 대한 열정을 생각하게 한다. 대중적인 볼거리 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추동하는 어떤 근본적인 동기가 발견된다. 

     


 정문경의 작품 설치 전경


전시장 로비에 해당되는 거대한 공간에 뒤집혀 재단된 디즈니 거대한 캐릭터 인형을 설치한 정문경의 작품은 일상세계 한가운데서 길어 올린 기괴함의 세계이며, 거대화된 환상세계에 내재된 소외와 상처이다. 다양한 수집물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보게 되는 이 작품은 수집과 예술 모두를 아우르는 단편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표면의 세계를 압축한다. 테마파크 기획자이자, 30년간 5만점 이상의 장난감 수집해온 김혁의 [노아의 방주]는 수집 심리에 내재된 종교적 기원을 예시한다. 즉 노아의 방주로 축소된 세계에 빠트림 없이 수집되었을 지상의 암수 한 쌍의 동물들은 임박한 파멸로부터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갱신된 대안 세계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필립 블롬은 노아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손들이 지금도 그의 길을 따르고, 물건을 낭비하거나 망가뜨리거나 잊어버리거나 사라지게 놔둬서는 안 된다는 복음을 고수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방 한구석에 작은 신전, 자기만의 제단을 세운다. 이렇게 구축되고 연출된 세계가 그들을 치유하고 구원한다. 세상사는 뜻대로 되지 않지만 자신만의 소우주에서 분류하고 제어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수집품들은 현재적 삶의 무의미함을 달래주는 도피처이다. 이러한 이상세계에는 유한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애써 잊고자 하는, 죽음에 저항하는 작은 기념비들로 가득하다.  

 

출전; 퍼블릭 아트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