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전(3. 21 - 4. 28, 갤러리 비케이)

 

이선영(미술평론가)

     

박지현의 작품들은 무늬 고운 비단이 깔려진 수집 상자 안에 하나하나 배치된 귀한 수집품 같다. 그의 수집 대상은 작품 제목에 나와 있듯이, 명품 차의 엔진이며 때로 증기기관차나 전투기 등도 포함한다. 그가 한시대의 욕망과 기술이 집약된 덩치 큰 대상을 수집할 수 있게 된 것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유하고 싶은 것들을 고정시키는 독특한 기법 때문이다. 그는 기름기 있는 먹 선으로 형태를 그린 후 그것을 향불로 태워 결코 반복될 수 없는 외곽선을 만든다. 태우기를 통해 만들어진 불규칙한 선들은 실체, 본질, 또는 알맹이가 훅 빠져나간 흔적 같다. 이때 단순히 기능적 형태는 상징적 형상으로 도약한다. 그렇게 박지현은 그만의 람보르기니와 마세라티 등을 소유하게 된다. 그것들은 달리거나 파괴하는 것을 잊고, 작가가 매혹되었던 그 섬세한 선의 흔적만을 보존한 채 작품으로 고정된다. 자동차의 심장인 가장 중요한 그 부분들은 미세한 선의 흔적으로만 남아 사라진 본체를 증거 한다. 식물 표본처럼 자신의 고유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묘사 또는 배열되어 있어, 그것이 뭔지 알아볼 사람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폭발하며 사라지곤 한다. 

     

박지현, [lap time 8016(Maserati)],120x160cm, pigment print,2013년




톱니와 톱니가 빈틈없이 마주 돌아가며 발휘될 기능은 섬광을 일으키며 파열된다. [bang] 시리즈는 실제의 죽음을 알려준다. 그것은 실제가 사라지고 기표만이 남아 체계화의 회로 속에서 날렵하게 순환할 때, 비로소 진가가 발현될 현대적 사물의 방식이다. 향불로 무엇인가를 태워 없앤다는 점 뿐 아니라, 박지현의 작품에는 수집의 메커니즘에 내재된 죽음의 의식이 있다. 수집자체가 실제의 죽음을 전제하며, 죽음을 극복하려는 수집가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집이라는 방식은 죽음을 통한 재탄생을 약속한다. 실제의 사용가치가 사라지고 추상적 교환가치만이 남아 체계를 통해 물신화되듯, 기표의 시대를 견디지 못할 실제의 덩어리들은 이제 컬렉션 되기 좋은 방식으로 변신하여 또 다른 욕망의 대상이 된다. 수집이 실제보다는 체계에서의 위치라는 물신 숭배적 욕망에 의해 추동되는 끝없는 소비의 과정이기에, 이 과정을 더욱 강도 높게 가속시키는 방식은 실제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박지현이 공업 디자인이나 동양화가 아니라, 조각을 전공했다는 점은 차원의 수를 하나씩 제거하거나 압축하여 또 다른 차원의 대상을 만들려 했음을 알려준다. 

     

박지현. [F14],76x130.3cm, 캔버스에 태운 한지와 아크릴, 2013년




전시장에는 섬세하게 배접된 평면이나 디아섹으로 깔끔하게 마감된 사진이 걸려 있지만, 그에게 조각은 차원을 변주하는 또 다른 기술이다. 그만의 방식으로 대상의 핵심을 평면에 접어 넣고, 관객의 상상력에 의해 다시 펼쳐지길 바란다. 기계의 엔진은 컴컴한 곳에 갇혀 기름범벅이 된 채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접히고 펼치는 과정을 통해 마음속을 활주한다. 기계나 폭발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은 매우 아름답고 장식적이기까지 하다. 고상한 색과 무늬에 배접되어 안치된 형태의 흔적 뿐 아니라, 순지 위에 그려진 먹 선의 불꽃이 타들어가는 과정을 장 노출로 촬영한 사진 작업인 [Lap time] 시리즈 역시 아름답다. 그것들은 마치 19세기의 ‘장미꽃 무늬가 새겨진 엔진’못지않은 부조리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미술사가 증거 하듯이, 근대의 기능주의자들은 이러한‘장식적 질병’을 일소하려는 위생학적 신념으로 진보를 추동해왔다. 그러나 그렇게 벌거벗은 기계가 더 많은 쓰레기와 시체를 양산한 것은 역사의 역설이다. 획일성을 낳은 기술 편향의 기능주의 시대도 지나갔다. 근대 조형의 원형이었던 기계는 예술-기계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변신중이다. 

     

출전; 월간미술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