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의 정체(mental operation) 전

(5.3—6.30, 갤러리 화이트블럭 )

 

이 전시에서 작가들은 사진의 조작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백년이 넘는 사진사에 비한다면 비교적 최근에 해당될 수 있는 시기에 끼어든 디지털 언어는 조작을 더욱 자연스럽게 했다. 이제 사진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더 이상 사진에 외재적인 과정이 아니다. 이 전시의 작가들은 현실의 시공간에서 발췌한 박편을 단위 삼아 변화무쌍한 조합과 변형을 거쳐 상상의 광경을 연출한다. 상대적으로 사실 인증력이 있는 사진에 대한 기대치는 그림보다 더하게 만들어진 상상의 풍경을 역설어법으로 만든다. 이들의 작품에서, 사실과 상상은 반대가 아니다. 사실은 상상을 촉발하고, 상상 또한 사실임직 함을 강화할 수 있다. 공유된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자신이 만든 허구를 사실처럼 현실에 곧게 서있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예술가의 오래된 야심이 아닐까.

 


                                                                     한성필, 2012년.

 

사진이 주는 정보 인증의 힘만큼이나 그 야생적 힘을 인지했던 롤랑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에서 사회는 두 가지 방식으로 사진을 얌전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첫 번째 방법은 사진을 예술로 만드는 것이다. 사진가는 회화의 수사학을, 그리고 그 승화된 설명 방식을 따름으로서 화가와 경쟁하기를 고집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사진을 일반화시키고 군생시켜 진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전자가 이 전시의 키워드인 조작을 포함한다면, 후자는 사진처럼 흔해빠진 것도 없어진 사진의 대량적 생산과 소비를 말한다. 그러나 원초적 사실과 길들여진 환상이라는 이항대립 역시 환상의 몫이 커지는 현대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실을 사실로 알아보기 위해 사실 이상의 것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조작이란 말에는 뭔가 허위와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듯하지만, 모든 것이 중층적으로 매개 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조작은 현실과 진실에 닿기 위한 통로이기도 하다.

 

조작가능성이 농후한 이 전시의 작품들은 코드화시킬 수 없는 어떤 사진적 경험(푼크툼)이 포함되어 있고, 일상을 지배하는 기계적 반복(스투디움)은 양질 전화를 거치기도 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오래된 건축물이 담긴 이원철의 작품은 시계 이외에 어떤 방법으로도 볼 수 없는 시간을 찍는다. 그것은 사진의 기본적인 과정인 셔터 타이밍의 조작에 의해서이다. 건축물의 가림 막을 담는 한성필의 작품은 실제와 환영이 마치 알맹이와 껍데기처럼 연출되는 기만적 현실이 있다. 달콤한 맛을 남기며 혀끝으로 사라지는 사탕과 금 새 지는 꽃의 이미지를 중첩시킨 구성연의 사진은 두 사물을 유사의 방식으로 엮는다. 검은 바탕에 빛이 지나간 궤적들이 추상적 공간감을 형성하는 김도균의 작품은 마치 천체관측 사진 같지만, 한 점만 빼고 그것처럼 보이는 일상의 파편들이다. 그의 사진은 폭주하는 정보들 속에서 시각적 유사를 묶는 힘을 통해 자명한 듯 존재하는 현실 속의 불확실성을 강조한다.

 


                                                                      원성원, 2012년.

 

박승훈은 단편적 사진들을 텍스트처럼 짠다. 그에게 현실을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구축되는 것이다. 이지연은 공간과 공간을 잇는 자리에 잠시 머물러 있는 이동 중의 대중을 찍은 사진을 모듈로 삼아 추상적 좌표축에 메달린채 질주하는 현대인을 표현한다. 원성원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알레고리 가득한 화면을 연출한다. 여기에서 사진가는 환상의 연출자요, 관객은 그것을 읽는 독자가 된다. 장승효는 입체적인 콜라주로 용트림하듯 역동적인 스펙터클을 만든다. 환상은 2차원을 넘어 그 이상의 차원으로 돌출하고 관객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이들의 작품은 사진이 아무리 인덱스(index)를 가진다할지라도, 회화와 마찬가지로 투명한 창이 아니라는 것, 그것 역시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불투명한 언어라는 것을 말한다.

 

출전; 월간미술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