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만나는 지구별 여행자
이선영(미술평론가)
김혜원은 원래 디자인을 전공했다. 근 7년간 컴퓨터만 만지다가 회화로 진로를 바꾸어 학창 시절 이후 다시 붓을 잡게 되어 무척 행복하다고 한다. 디자인과 회화는 비슷할 것 같지만, 하나는 자로 다른 하나는 붓으로 하는 만큼의 큰 차이가 있다. 응용미술과 순수미술은 우열이 있기보다는 차이가 있다. 하나는 대중의 눈높이를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객관적 과정에, 다른 하나는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주관적 과정에 방점이 찍힌다. 작가로서의 불확실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진로를 바꾼 커다란 계기는 여행 때문이었다. 그녀는 틈 만나면 여행을 떠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 일 것이어서, 그림은 이렇게 축적된 자신의 경험을 디자인보다 더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표현할 수 있는 매력적 매체로 다가왔다. 아직 20대지만 여행광으로 세계 곳곳으로 돌아다닌 곳이 20개국이 넘는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김혜원의 작품이 이국적인 풍광들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여행 초창기에는 이국적 풍광과 습속을 사진기에 담느라 정신없었지만, 여행의 진국은 여행지는 물론 여행자 자체도 타자화 시키는 매체의 매개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여행의 짐을 최소화하고 단촐하게 떠나려는 이에게 큰 짐이 되는 카메라 세트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래서 정작 자기가 찍힌 사진은 별로 없다고 한다. 통상적인 관광객의 일정은 모처럼 멀리 찾아온 그 앞에서 사진 찍는 것이 체험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사진기가 여행을 대신하고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 이러한 체험은 일상도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이런저런 인터페이스에서 눈을 떼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한번 반성해 본다면, 일상행위의 상당부분이 미디어를 통해 매개되고, 이를 관리 하는데 만도 하루의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누리꾼들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지켜보는 어떤 전능한 시선 앞에서 행복한 연극을 하는 모습으로 일상에 임한다. 보고 보이는 관계가 편재하는 가운데, 근대사회의 감시와 통제를 넘어서 각자 자발적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듯한 관리와 조절 사회가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직접 만나야할 세상을 대신 매개하면서 주체를 이런저런 소비자로 환원시키는 체계의 음험한 기도가 있다. 여행은 있으나마나 한 크고 작은 이벤트들로 가득 한 천편일률적 일상에서 단절될 수 있는 계기를 주지만, 그 시공간 또한 조밀하게 코드화 되는 경향이 있다. 떠나기 위해 이동수단에 탑승한 그 순간부터 인터페이스로 매개되는 익숙한 일상들이 다시 펼쳐진다. 원거리 이동, 그리고 잦은 이동에서 이동수단에 못 박혀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시간들이 여행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이동은 오히려 이동을 억제한다는 역설을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여기와 다른 그곳으로 끝없이 떠나고 싶어 한다.
처음 여행을 가면 그들과의 차이가 먼저 다가오고, 차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타자는 기분전환과 새로움의 원천이 되며, 즐길만한 것이 된다. 이러한 수박 겉핥기식의 만남은 타자를 동일자의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관광객은 다름 아닌 색다른 시간과 공간을 상품화된 방식으로 소비하는 자인 것이다.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의 입장에 서보는 것은 그 어디라도 느긋한 자유로운 휴식의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현대인은 시간에 쫒기는 생산자가 아닌, 시간을 소비하는 입장에 있고 싶어 한다. 그러나 생산과 소비 사이에 있는 교환의 비대칭 속에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질곡이 숨어있다. 여행이 빈번해질수록 김혜원은 한 곳에 오래 머무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낯선 곳이 익숙한 곳으로 다가올 때까지 머물면서 주변을 관찰한다. 그래서 김혜원의 작품에는 이국적이면서도 우리 일상의 한 모퉁이 같은 친근한 모습이 발견된다. 낯선 곳에서의 새로움과 색다름이 주는 기분전환과 휴식만큼이나 사람 사는 곳에서 발견될 수 있는 고독이 깔려있다. 장소와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다소간 익명적이다. 그것은 상당부분 지방색이나 지역성을 잃고 동질화 된 근대사회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애써 모호한 장소를 선택한다. 또는 모호하게 처리한다. 작품 속 장소는 유럽의, 아시아의 어느 장소이지만, 전형적인 관광지의 풍경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한 귀퉁이와 흡사한 생활공간이다.
그것은 바다 건너 먼 그 곳에 도착한 후, 한 장소에 일주일이상 머무르는 식의 여행을 함으로서 가능한 시점이다. 일주일이면 친구는 물론, 자주 가는 단골도 생길법하다. 작품 [no problem]은 작가가 머문 위층에서 내려다본 골목길 풍경이다. 상가의 간판은 정확하게 읽을 수 없게 처리되어 있고, 어지럽게 늘어진 전선들과 오토바이들이 서있는 모습이 우리의 시장골목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풍경이다. 그곳은 유명한 관광 휴양지라 할 수 없는 인도의 어느 곳이었는데, 변두리 동네의 시장 통 같은 느낌이 살아있다. 도시도 마찬가지여서 빌딩들로 에워싸인 도시에 출근을 위해 건널목에서 대중들이 기다리는 작품 [may be tomorrow]를 보면, 생산과 소비의 주기를 세계적으로 통일시킨 보편화된 자본주의 문명의 일단이 확인 될 뿐이다. 색색의 가방 같은 상품들이 잔뜩 걸려있는 어두운 상가를 그린 작품 [night bazar]는 한국의 썰렁한 재래시장이 떠오른다. 행인들은 검은 실루엣으로만 표현되어 익명성을 강조한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한낮, 낮은 담장들 너머 꽃들이 만발한 시골길 느낌을 주는 작품 [lao]에서 후경의 키 큰 나무만이 이국적이다. 동남아 어딘가에 있는 작은 도시는 우리의 시골 모습과 닮아있다. 거리를 향해 열려있는 나지막한 건물들이 인간적인 체취를 풍기는 작품 [the way home]에는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이 전경에 커다란 그림자처럼 걸려있다.
풍경의 소실점 방향으로 이동하는 행인은 검은색 실루엣으로만 나타나며, 행인 앞에 빈 가지를 뻗치고 있는 나목이 그의 피곤한 몸과 스산한 마음을 대변해 준다. 이스탄불의 한 장소에서 포착된 이 장면은 여행자가 아닌 그 행인과 마찬가지로 집으로 향하는 시점이 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소년소녀를 그린 작품 [pick poket]은 딱히 일상적이라 할 수 없는 독특한 순간을 포착하긴 했지만, 그것은 스페인 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소매치기꾼의 모습이다. 김혜원의 작품 속 이국의 풍광들은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이 압도적이다. 그것은 여행의 빈도와 밀도가 높아지면서 획득된 시점이다. 한시적으로 주어진 시공간을 향유할 뿐인 지구별 여행자의 시점에서 여행지의 화려함과 설레임 보다는 공허함과 쓸쓸함이 지배적이다. 이 역시 삶의 팍팍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보편적 상황과 관련된다. 그러나 그것이 비극은 아니다. 각자 힘들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공감에 더욱 가깝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김혜원의 작품에서 자연 풍광은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제주에서 자란 작가의 이력이 반영된 것인데, 그토록 넓은 세상으로 떠나고 싶어 했던 고향 제주에서의 20년은 작가에게 세계 어느 곳보다도 아름다운 풍경을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웬만한 풍경은 눈에 안 들어온다는 이야기이다. 작가에게 고향은 가장 매력적인 타자가 되었고, 나이가 들수록 그곳으로 회귀하는 여행이 더 잦아질 것이다.
출전; 미술과 비평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