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정원

 

이선영(미술평론가)

 

신금례 화백은 1926년생으로, 해방되고 나서 서양화과에 들어가 졸업한 1세대에 속한 작가이다. 100호 넘는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민 훈장 목련장도 받은 원로 화가 속한다. 교육에 대한 열의가 세계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강한 한국이지만, 작가의 말로는 해방 무렵 서양화과에 60명이 입학했는데, 방학이 한 번씩 지날 때마다 결혼 때문에 그만두는 학생들이 점차 늘어서, 졸업은 19명만이 할 정도로, 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시대를 살아왔다. 다른 맥락이지만, 돈의 힘이 더 강해진 지금도 예술은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신화백의 회고에 의하면 가정 형편이 유복해도 여성이 배울 필요가 있는가하는 관념이 팽배했다고 한다. 그것도 당시 여학생에게 인기 있었던 가정대학이 아닌, 미술대학을 끝까지 마치기란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사실, 무한대로 학창시절이 늘어난 요즘에도 정작 작가로 활약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후 작가는 1966년부터 1992년까지 홍익대 조형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면서 후학지도에도 힘썼다. 1950년부터 2006년까지 녹미회전에 꾸준히 참여하였고, 여러 미술대학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여성화가 단체인 [여류 화가회]의 회장을 9년(1974-1983년, 현재는 고문으로 있음)이나 연임했다. ‘남류’라는 말은 없는데, ‘여류’라는 단어가 하나 더 붙은 것에 대해 스스로도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러한 단체의 활동이 생애 가장 중요한 10년 정도를 출산과 육아로 사용해야 하는 여성의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단절된 작업 이력을 다시 이어주는 역할을 해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여류’, ‘여성’ 자가 따로 들어가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어야 진정한 남녀평등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금례 화백은 단체 활동을 통해 여성 화가들의 활동을 국내외에서 지원하면서, 1972년 첫 개인전 이래로 꽃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여자대학 졸업과 미술대학 교수, 여류미술단체 회장, 지금은 작고한 유명화가의 부인, 그리고 꽃그림이라는, 작가의 이력을 대변하는 일련의 연결망은 엄혹한 시대에서 살아남았던 여성 미술가로서의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궤적이 드러나 있다. 많은 여성 화가들이 꽃을 그려왔고, 대표적 여성 화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필자도 늘 궁금하다. 여성은 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꽃은 한 몸에 암수를 다 가지고 있는 양성이다. 그렇다면 양성적인 것이 여성적이라는 추리도 가능할 것이다. 둘로 쪼개진 하나의 반쪽, 그리고 언제라도 나머지 반쪽에 의해서 식민화될 가능성이 있는 불모의 반쪽이 아닌 양성은 더 전능한 존재태일 수 있다. 가령 여성성의 핵심인 모성은 양성적이다. 여성은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비록 지배적 체계에 의해 악용되기도 하지만, 그저 소비되는 존재가 아닌 (재)생산하는 존재는 강한 것이다. 그러나 차이가 차별로 전화될 수 있는 인간 사회에서 양성성으로서의 여성성 역시, 해답이 아니라 그자체가 문제시될 수 있는 개념이다.

 

어쨌든 그림에서 가장 많이 그려지는 소재인 꽃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각자 다를 것이다. 신화백의 경우, 꽃의 다양성과 꽃을 이루는 형태 요소들의 다양성이다. 그리고 자연의 진정한 다양성이 발견되려면 육종기술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종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보기 좋게 코드화 된 꽃은 사실 조화와 다를 바 없으며, 평범한 것이 아닌 원초적인 것을 찾으려는 화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화백에게는 연희동과 평창동에서 살면서 넓은 정원에 손수 키웠던 야생화들이 주된 소재가 된다. 저 멀리 있는 것들이 아니라, 곁에 심어 놓고 늘 가까이하는 꽃들이 작품 소재로 들어온다. 신화백의 정원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해바라기, 할미꽃, 제비꽃, 민들레, 엉겅퀴 등의 야생화가 가득한 화가의 정원을 상상해 본다. 화가는 정원을 일구듯이 삶을, 그리고 작품을 일구어 왔다. 여성과 꽃의 연결은 완상용으로 가다듬어진 아름다운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보살핌의 본능에 있다고 보여 진다.

 

대체로 여성들은 꽃 가꾸기를 좋아한다. 꽃은 영악한 인간들과도 달라서 정성을 기울인 만큼 그 보답을 한다. 살아있는 꽃은 마치 정물처럼 정지된 모습으로 그림의 소재로 화가 앞에 얌전히 서 있으며, 그 형태와 색채로 귀결된 진화론적 이유를 가지고 있고, 또한 인류의 상상력에 들어와서 자라나기도 한다. 특히 꽃은 여성을 상징한다.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을 탐구한 질베르 뒤랑에 의하면, 우리는 항상 양극으로 나누어진 상징적 여건들에 이르게 되는데, 많은 인류학자들을 통해서 대립적인 것끼리 서로 균형을 취하는 광활한 체계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안에서 상징적 상상력은 서로 대립하는 것들끼리의 응집력의 체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뒤랑은 진정한 의미의 변증법이란 아픔을 달래주는 일종의 종합화가 아니라, 모순되는 것들 간에 존재하는 긴장이라고 본다. 신화백의 작품에서 긴장에 해당되는 부분은 꽃이라는 소재가 아니라, 완전한 재현도 완전한 추상도 아닌 조형 언어에서 발견된다.

 

국내외의 여행에서 발견된 길섶의 풀들, 특히 벽제의 보광사의 수수밭은 [가을-길(吉)](2005년)이란 제목으로, 신화백의 대표작 리스트에 올라가 있다. 이 작품은 수수밭을 그린 것인데, 돌잔치 때 먹는 수수떡처럼 길(吉)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작품에는 실제 풍경에 없는 인디고(Indigo) 색상이 양을 받쳐주는 음처럼 보인다. 잎 새 또한 자연색은 아니다. 신화백의 작품은 자연이 주는 압도적인 사실성이 있지만, 그것의 재현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위해 왜곡과 변형이 있는 반(半) 추상에 가깝다. 30개국 이상 여행하면서 각지에서 발견된 꽃도 작품에 들어오지만, 특이한 소재로서가 아니라, 늘 가까이 하던 식물의 다른 면모를 발견함에 의해서이다. 가령 신화백은 엉겅퀴를 곧잘 그리곤 했는데, 캐나다에 가서 1미터가 넘는 큰엉겅퀴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때로 약초로도 쓰이는 엉겅퀴는 그저 잡초에 불과하지만, 작품 [엉겅퀴](1999년)에서 보이듯, 억세게 뻗은 줄기와 소스라치는 듯한 실루엣의 꽃망울, 그리고 스스로를 찌를 듯 뾰족뾰족한 이파리의 무리는 형태 그 자체로 그로테스크한 요소가 있다.

 

미국의 알링턴 묘지에서 본 칸나 역시 엄청나게 무리지은 모습이 색다른 감흥을 주어, 작품[칸나](1989년)에 들어왔다. 꽃은 붉게 그렸지만, 나이프로 긁으면서 그린 잎은 녹색이 아니다. 손톱에 붉은 물을 들이는 봉숭아도 붉지 않다. 신화백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해바라기](1999년)는 외국에서 선물 받은 씨를 심어서 손수 가꾼 것을 그린 것인데, 정말 해처럼 꽃이 엄청나게 컸다고 한다. 작품은 원형 가득히 씨앗이 여물면서 그 무게로 모두 고개를 떨군 모습이다. 푸른 이파리도 갈색으로 변해 푸석푸석하지만, 식물의 삶은 한번에 그치지 않는다. 식물의 죽음은 새로운 시작을 암시한다. 인류에게 최초의 양식을 제공해준 지구 최초의 생물체인 식물은 생명을 낳고 돌보는 여성과 친근하다. 신화백의 그림 속 식물들은 이리저리 얽힌 채 화면 가득히 배치되곤 하는데, 이렇듯 개체의 경계를 넘는 존재 태는 모성적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지상에 우뚝 선 존재로 자신을 과시하기 보다는 주변과 함께 가며, 직선으로 끝날 일회성 삶에 한정되지 않는 시공간적 확장성을 가진다.

 

출전; 미술과 비평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