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변이후 우정총국이 폐쇠당해 버렸지만 지금까지 한 채가 남아갑신정변의 유적임을 알려주고 거니와 미술사를 공부하는 나로서는 그 보다는 안중식이 우표를 도안하고 있었던 과거가 더욱 소중하다. 정세가 바뀌자 귀국한 안중식은 정부의 기록화 사업에 참가하여 관료로 전전하다가 중국, 일본행을 빈번하게 하여 다시는 이 우정총국 건물에 발을 들여놓을 새가 없었다.

우정총국 건물은 그 뒤 한어학교(漢語學校), 중동학교(中東學校)로 사용했는데 1972년 12월 체신부가 인수해 체신기념관으로 단 장 하 였 다 .1987년 5월에는 건물을 크게 보수하고서 기념관(郵政記念館) 으로 활용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안중식이 그 때 도안한 우표를 지금은 볼 수 없으나 20세기 술계의 태두였던 안중식의 숨결이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이니 이곳을 지날 때마다 그를 뵙는 듯 하여 감
개가 절로 흐르곤 한다.
※ 안중식(安中植1861-1919)은 20세기 미술계의 태두였다. 뛰어난 사회활동가였던 안중식은 오세창과 더불어 개화당에 참가하였고 대한제국 시절 국가 회화사업에 적극 참가하였으며 고종 어진을 제작해 당대 어용화사로 명성을 드높여 갔다. 1904년 무렵 자신의 집에 경묵당(耕墨堂)을 열고 제자를 아들처럼 받아들였으며 대한자강회, 대한협회에 참여하여 자강운동가로도 적극 나섰다. 하지만 국이 일제에 강제합병 당하면서 일제에 협력하는 가운데 실력양성운동노선을 취하여 서화미술회 장으로써 후학양성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 요람에서 자라난 후예들이 20세기 미술계를 주름잡는 대가로 성장하였으니 그는 위대한 스승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