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응, 공간과 공간을 매개하는 구멍
모더니즘 조각의 특징이 여럿 있지만, 그 중 결정적인 것으로 치자면 아무래도 자기반성적인 성향과 자기 환원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점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특정 대상을 표현하거나 재현하는 대신 조각 자체의 장르적 특수성이며 본질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며, 여기에는 조각의 됨됨이에 대한 물음과 반성이 포함되고 일종의 메타비평이 수행된다. 창작행위 자체가 일정한 비평행위를 포함하고 있는 것. 그리고 그 물음과 반성은 자연스레 조각의 본질에 그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그렇다면 조각의 본질은 무엇인가. 대략 양감과 공간감 그리고 물성 정도가 될 것이다. 특정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속이 꽉 찬 이런저런 물질 덩어리라는 말이다.
김성응의 조각은 일단 특정 대상을 표현하거나 재현한 것이 아니란 점에서, 그리고 적어도 외관상 석재 고유의 질료적인 성질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를 통해서 조각 자체에 대한 일종의 비평적 행위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더니즘 조각을 실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조각이 갖는 모더니즘 조각과의 관련성은 여기까지다. 작가의 조각은 여러 면에서 모더니즘 조각과 구별된다. 비록 그 시작은 모더니즘 조각이지만, 조각에 대한 반성의 과정을 통해서 모더니즘 조각으로부터 벗어난다. 보기에 따라선 모더니즘 조각의 연장선에 있는 경우로 볼 수도 있겠고, 모더니즘 조각의 경계며 외연을 확장하고 심화시킨 경우로 볼 수도 있겠다.
무슨 말인가. 작가는 주로 기하학적인 형태의 자연석을 소재로 하는데, 이를테면 정형이나 비정형의 원 형상 내지는 정방형과 장방형의 입방체들이다. 그리고 더러 세로로 긴 원기둥 형상과 때로 일종의 토템폴처럼 그 원기둥을 변주한 형태들이다. 형태로 치자면 변화가 없는 만큼 내부로 응축된 힘이 강한 가장 기본적인 형태들이다. 형태의 씨앗 아님 잠재적인 형태라고나 할까. 작가는 이처럼 원형 그대로의 형태 표면에서 안쪽으로 구멍을 뚫는데, 자신이 직접 고안해 만든 일종의 드릴을 이용한다. 그저 석재의 표면에 구멍을 내는 것이 아닌, 구멍을 뚫어 속을 파낸다. 그동안 구멍과 구멍 사이의 이음새 부분이 깨지는 일도 많았지만, 지금은 실수나 실패 없이 해내는 편이다.
나름 고도의 난이도가 요구되는 이 일련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형상화된 형태를 보면 속이 빈 돌 표면에 크고 작은 구멍들이 숭숭 뚫린 형태가 무슨 뼈 조직 같기도 하고 벌집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저 반복적인 과정과 노동 행위(그 자체 모더니즘적인)에 의미가 있을 뿐, 특정의 형태를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다. 여하튼 이렇게 드러난 조각은 여러 면에서 모더니즘 조각과 비교된다. 속이 텅 빈,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린, 실제로 물에 뜰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게 느껴질 만큼 가벼운, 그리고 그렇게 무거운 돌의 본성을 배반하는 조각이 모더니즘 조각을 확장하고 심화하고 변질(변태? 변성?)시키고 연장시킨다.
작가는 이렇게 만든 조각을 안과 밖의 공간이라고 부른다. 알다시피 전통적인 조각은 속이 꽉 찬 덩어리가 공간을 막고 있고 그 자체도 막혀 있다. 여기에 작가는 구멍을 내 안과 밖이 통하게 하고 속과 겉의 경계를 허문다. 그렇게 작가의 조각은 공간과 공간을 매개해 서로 통하게 하고 하나로 연결시키고 있었다. 구멍을 통해 들락거리는 에너지의 통로가 있었기에 가능해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