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정, 미로의 길


샌정의 그림은 문학적이다. 소설보다는 시적이고, 서사보다는 서정적이다. 소설과 시는 언어를 사용해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소설이 명료한 언어를 사용해 분명한 의미를 전달한다면, 시는 언어와 언어의 관계에 주목하고 그 관계로부터 파생된 다른 의미를 겨냥하고, 어쩌면 정작 시속에는 없을지도 모를 어떤 의미를 지향한다. 소설이 직접적이라면 시는 암시적이다. 이런 암시는 어디서 어떻게 유래하는가. 바로 여백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작가의 경우에서처럼 시적이고 서정적인 그림에서 결정적인 것은 다름 아닌 여백을 만들어내는 기술일지도 모르고, 그려진 그림으로써 미처 그려지지 않은 그림을 암시하는 기술일지도 모르고, 그럼으로써 그림의 영역을 미처 그려지지 않은 그림으로까지 확장하는 기술일지도 모르고, 따라서 어쩌면 정작 그림 속에는 없을지도 모를 어떤 영역을 싸안는 기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에 서정적이라는 말은 그림을 그릴 때나 그림을 볼 때 공히 그림이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이해의 대상으로서보다는 감성적인 느낌의 대상으로서 와 닿는다는 뜻이다. 


샌정, noble youth, 2010, oil on canvas, 50x40cm


작가의 그림은 그렇게 문학적으로 와 닿고 시적으로 와 닿고 서정적으로 와 닿는다. 암시적으로 와 닿고 감성적으로 와 닿고 느낌으로 와 닿는다. 그렇다면 이런 암시와 감성과 느낌의 도래는 어떻게 가능한가. 바로 모티브와 모티브 사이의 느슨하고 헐렁한 관계로부터 오고, 의미론적으로 열린 구조로부터 온다. 작가는 그렇게 헐렁한 관계며 열린 의미구조 사이로 틈을 만들고 여백을 파생시키는, 그런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작가는 하나의 화면 속에 기하학적인 구조와 유기적인 형태를, 이성적인 멘탈리티와 감성적인 멘틀을 대비시키고 충돌시켜 조화를 일궈낸다. 상반되는 것들의 유기적인 총체를 지향하는 그림이랄 수 있겠고, 일종의 내면풍경의 외화로 볼 수가 있겠다. 그러나 그 생성과정은, 말하자면 하나의 모티브 옆에 다른 모티브가 놓이는 관계는, 그리고 그렇게 의미를 불러일으키고 파생시키는 과정은 논리적이기보다는 우연적이고 분석적이기보다는 직관적이다. 그리고 자동 기술적이고 자유 연상적이다. 


샌정, untitled,2011, oil on canvas, 50x 40 cm


그 과정은 마치 미로에서 길 찾기에나 비유할 수가 있겠다. 그래서 실제로 주제가 미로의 길이다. 미로의 길은 말하자면 창작의 메타포이며 회화의 연금술로 보면 되겠다. 회화의 길은 미리 정해진 길을 따라 그리는 길이 아니다. 그저 그리다 보면 맞닿는 길이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길이며 찾아지는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인물과 말과 꽃과 새와 별자리가 만나고, 인물과 사물 혹은 추상적인 도형 혹은 계단이 서로 맞닥트린다. 그 만남은 우연적이고 가변적이고 비결정적이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길을 찾는다. 작가는 그 과정이며 목적지를 유토피아라고 부른다. 그리다 만 듯한, 어눌하고 자연스러운 드로잉 같은, 어쩌면 흐릿해진 신화적 기억이나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작가의 그림이 주는 휴식과도 같은 선물이며, 부드럽고 따뜻한 색조와 색감으로 감싸 안는 위안이며 치유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