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예술과 비범한 생활

 

이선영(미술평론가)

 

‘평범한 예술과 비범한 생활’은 인천문화재단의 ‘2013 지역공동체 문화 만들기’ 중 두 가지 기획사업 중 하나로, ‘내가 사는 도시’인 지금 여기에서 공동체 문화를 일구기 위한 실천과 성찰이 담겨있다. 인천 지역에서 오랫동안 공공 문화 예술 활동을 펼쳐온 단체 ‘퍼포먼스 반지하’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그간의 활동과 성찰을 책으로 묶어냈다. 이 책은 단순한 도록이나 자료집, 즉 현장 활동의 결과물이 아니라, 책이라는 완결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자체로도 물질적, 정신력 공력이 따로 투입 되어야 하는 출판이라는 형식은 이 단체가 행해왔던 그동안의 성과들을 선전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작품, 또는 작업현장은 없고 자료만 무성한 현실에 가세하지 않는다. 실상은 없고, 아카이브만 무성한 문화예술 현장은 관료화되는, 또는 관료주의에 영합하는 행태를 보여주곤 한다. 작품은 없고 논문만 있는, 작가는 없고 학생과 선생만 있는 미술계가 공공 영역에서도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관주도 하의 공공 문화예술 사업이 전국적으로 보편화되면서 거품마저 우려되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한길을 걸어왔던 이들의 노하우—가령 ‘마을도색과 벽화 작업 시 주의사항’에서 이들은 ‘꽃과 나무가 심어져야 할 곳에 꽃과 나무를 그리지 마세요. 사진 등의 자료는 되도록 그 마을에서 찾아보세요. 공동주택의 도색과 벽화에 주민이 참여하지 않으면 작업하지 마세요’라고 조언하는 항목이 발견된다--가 책자 형태로 집약되어 널리 읽혀지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겠으나, 이들은 그러한 계몽주의적 태도에 머물지 않는다. (공공 문화 예술 방법론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도시색채와 마을 벽화; 그대로의 마을을 그리다]라는 제목으로 따로 출간될 예정이다.) 공동체 문화란 수평적인 것이지 수직적 관계에 기반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 출판은 지역적 한계를 가지는 공공 문화예술 활동이 책이라는 또 다른 매체를 통해서 보편화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단체로서는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에 대한 자기반성의 계기가 되고 있다. 한때 시인을 꿈꿨을 법한 저자의 문체는 삶에 대한 전 방위적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책이 만들어지기 위해 대화가 진행되는 현장을 잠깐 참관한 적이 있지만, 그 대화의 과정들이 집적되어 이루어진 이 프로젝트의 리뷰는 그들을 따라 텍스트를 함께 읽어가는 방식으로 진행하려 한다. 상호적 대화를 글로 다듬어 완성하는 방식은 지난 1년간의 활동이 전시의 형태로 제시된 ‘커뮤니티 콜라주’전에서도 관객 참여 형식의 작품으로 나타났다. 가령 그들은 아무 것도 인쇄되지 않은 빈 책들을 서가에 꽂아놓았는데, 관객이 책 껍데기에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의 제목을 적어 책꽂이에 꽂아놓으면, 다음 관객이 책 내용을 채우는 식이다. 빈 공책은 무한한 가능성으로도, 공포로도 다가온다. 그것들은 아직은 없는 상상의 책이다. 전시장에 준비된 차를 한잔 마시면서 누가 대답할지 모를 질문을 던지고, 누가 던진지 모를 질문에 대답하는 릴레이가 펼쳐진다. 

 

책의 형식으로 제본된 두툼한 빈 종이들은 단말기를 매개로 한 우리의 통상적 ‘대화’와도 다르다. 그것은 웹상에서 가볍게 떠도는 말이 아니라, ‘마주 앉아 글을 쓰는 것 같은’ 진지한 행위이다. 영상과 그림 앞에서 관객은 태도는 달라지듯이, 하얀 종이 위에 꾹꾹 눌러써야 하는 편지 글 같은 형식은 책에 내포된 volume이라는 의미처럼 입체적이다. 내가 아니라, 나와 너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공동체 지향의 태도는 ‘평범한 예술’보다는 ‘비범한 생활’에 방점이 찍혀있다. 즉 그들은 ‘예술은 전도하고 수혈하고 선물하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삶의 장을 열어가는 일에 예술이 함께하는 활동을 보여 준다’는 목적을 분명히 한다. 예술을 삶의 부분집합으로 간주함은 예술을 도구화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술의 지속가능성을 분업화된 사회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예술직업이나 예술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으로 국한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생활문화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공동체에 기반 하는 대안의 예술-삶을 모색한다. [인연어(因緣語) 대화](한붓 꽃그림 출판사)라는 제목의 책에 대해 생활문화 협동조합 퍼포먼스 반지하는 ‘나로서 살기와 함께 살기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북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이 담은 내용과 그 내용을 읽기를 바라는 대상은 다음과 같다. ‘평범한 대화에서 등장했다 쉽게 사라진 중요한 이야기들, 일상에서 떠오른 삶과 세상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과 대답들, 부정의 언어가 주는 긍정의 대안, 일상의 언어에서 발견한 예술의 씨앗들, 정직한 삶을 사는 동지들과 스스로를 살아내고 싶은 청년들에게’, ‘스스로의 삶을 뒤적이고 그와의 만남을 대화하다 남겨진 것들을 마음과 생각과 말과 글로 기억해 두었다가 어딘가에 있을 너에게’ 전한다. 책자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생애, 사랑, 자유, 대화, 놀이, 자연, 사물, 주거, 환경, 학습, 노동, 역사, 관계, 태도, 정치, 예술, 해방, 마을’ 등에 대한 단상들이다.

 

여러 내용들이 담겨있지만, ‘평범한 예술과 비범한 생활’이라는 프로젝트 명에 나타나있듯이, 예술과 삶에 대한 관계 설정이 핵심적이다. ‘평범’, ‘예술’, ‘비범’, ‘생활’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행해진다. 가령 그들이 ‘평범’하다고 보는 것은 ‘당신과 내가 다르지 않은 것들’이다. 예술은 ‘몸에서 살다 몸의 밖으로 나오며’, ‘그림은 그를 떠나 다른 그를 만나는’ 것이다. 생활은 ‘생명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들의 활동’이며, ‘비범함’은 ‘타자의 가난과 고통에 마음 아파하며, 위대한 사랑과 지독한 고독을 동시에 꿈꾸고’, ‘평범한 옷을 벗고 자신만의 옷을 지어입고 늘 새로운 만남과 사건을 노래하는 것’이다. 예술과 삶은 예술지상주의자나 형식주의자들에 의해 극과 극의 관계로 설정된 바 있는데, 공동체 예술이 지향하는 바는 삶과 예술의 관계는, 서로의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아직까지는 이상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상에 한 발짝 다가가는 방법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구체화시키려 한다.

 

이러한 이상을 책자의 형태로나마 구현하기 위해 그들이 주목한 것은 독백이 아니라, 대화이다. 대화적 상상력에 기반 한 이 책은 마주보는 구조로 편집되어 있다. 대화에만 집중하려는 듯 책자에는 한 컷의 그림이나 사진도 없다. 다만 대화자에 따라 다른 색깔로 인쇄된 글자가 있을 따름이다. 이미지가 주는 미혹을 단호히 거부한 그것들은 다소간 금욕주의적 태도 또한 발견된다. 스펙터클의 사회가 추동하는 달콤한 물질주의가 정신과 영혼은 물론 몸과 무의식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는 현재, 대안의 문화 또한 극단적 선택이 필요한 듯싶다. 이미지 대신에 여백을 충분히 둠으로서 읽음과 동시에 씌여지는 책을 지향했다. 책은 개인 대 개인의 소통으로 진행되었으며, 제 1저자라 할 수 있는 드라마고(문화 활동가)가 화두를 던지면, 상대는 생각의 변화를 자기 문장으로 정리해 온다. 공감 가는 부분에 댓글을 다는 식으로 진행된 텍스트는 일종의 공동 저자의 산물이 되는 것이다. 

 

대화, 사유, 담론으로 나뉜 책의 구성에는 드라마고를 포함하여 김해자, 문계봉(시인), 김목인(싱어송라이터), 김성룡(협동조합원), 송상민(문화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부류의 저자 12명이 참여하였다. ‘대화’에서 그들은 ‘마주하기, 배려하기, 생각하기, 정직하기, 상상하기, 질문하기. 용서하기, 통합하기, 희망하기, 노동하기, 깨어나기’를, ‘사유’에서 ‘대면하기, 멈춰서기, 비워두기, 둘러보기, 관찰하기, 그려보기, 만져보기, 속삭이기, 사랑하기, 실천하기, 해방되기’를 꾀했고, 시인 김해자가 쓴 마지막 장 ‘담론’은 ‘늘 새로운 시작을 새기는 시’로부터 시작하여 ‘그 사이 어딘가에’라는 단상으로 끝을 맺는다. 대화의 내용 중 짚어볼 만한 내용은 교육부터 정치까지 넓은 스펙트럼에 이른다. ‘얘들아,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 얻어서 돈 많이 벌고 좋은 사람 만나 아이들 잘 키우고 행복하게 살아라’ 대신에, ‘얘들아, 자신의 뜻을 세우고 이뤄가는 삶을 살길 바라고, 다음의 세대들이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가르치길 바란다’고 말한다(‘의미 있게 살기’ 중에서) 

 

그들이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이는 ‘일과 공부를 함께 하는 사람’이다. 저자는 ‘진보주의자들의 죄’에서 ‘민중을 볼모로 펼쳐지는 먹물들의 잔치에는 죄의식이 없다. 계파주의를 중심으로 한 투사들의 선전선동에는 변증법이 없다. 임금투쟁으로 각이 선 노동조합의 붉은 주먹에는 피가 없다. 함께 살지 않는 지역운동의 이슈파이팅에는 영혼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공동체에 대한 정의--‘공동체란 스스로 살아가기와 함께 살아가기를 둘 다 이루어내는 것이다’--는 이들의 방향성을 알려준다. ‘낭시의 공-존재성과 프로이트의 응시의 미학에 기댄’ 대답은 ‘공동체란 사이에 존재하며 대면하는 것,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마주 보는 것, 마주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눈 속에 응시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성찰하고 나의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글쓰기와 책 만들기 자체에 대한 자의식도 눈에 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활과 노동과 사유와 실천의 현장에서 체험과 목격을 기록한다는 것’이고, 진실한 책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과의 대화와 그와의 대화와 세상과의 대화를 담으려는 충실한 노력을 모아 정돈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지함에 대해 ‘너무 잘 쓰려고 하면 못 쓴다’는 내용의 명답도 들려온다. 쓰기가 씌여지는 자를 낳듯이, ‘예술의 행동과 효과’역시 ‘생활의 의식과 행위의 방식을 형성’ 한다. 퍼포먼스 반지하의 또 다른 공동체예술 기획은 [엄마가 만드는 마을동화](한붓 꽃그림 출판사)이다. 그것은 엄마들이 쓴 마을 동화인데, 겉도는 삶과 예술을 수렴하는 또 다른 주체로서 ‘엄마 작가’에 주목한다. 통상적으로 여성이 작가로 서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따른다. ‘정상적인’ 가장의 길을 포기해야 하는 남성 작가들처럼 그녀들도 작가가 되려면 ‘나쁜’ 여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착한’ 그녀들은 문화 예술이 아닌, 재생산이라는 자연의 영역에 얽매이고 만다. 여성 당사자의 목소리가 배제된 대부분의 예술에서 여성은 실제와 달리 제멋대로 다루어지곤 한다. 예술이 진정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무엇이라면 그것은 포기되거나 억압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형태로 갱신되어야 할 것이다. 생활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거창하게 ‘에코-페미니즘’까지 안가더라도, 자기 남편과 자식만 챙기며 사적 영역에 안주하는 그런 ‘보통’ 엄마가 아니라 ‘지구와 마을을 살리는’ 고민을 하는 특별한 엄마의 모임이다. ‘예전에 자신도 귀여운 아이였을’ 이 엄마들은 ‘아이들의 살아갈 세상’을 둘러본다. 그들은 ‘밥도 하고 청소도하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그들은 대안적 삶의 강력한 원천이기도 한 모성에 주목하면서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우주와 지구 그리고 마을에서 키워지는 우리 아이들’을 소중히 여긴다.

 

인천시 동구 창영동 마을에서 2009년 ‘엄마 학교’로부터 시작 된 ‘지구와 마을을 살리는 엄마모임’은 사적 영역에서 소비의 주체로 사는 것을 넘어서, ‘지구와 마을이 살아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는다. 이들은 자신의 다양한 경험을 살려 창작 동화 작품집을 냈다. ‘골목길에 있어요’(보리), ‘여덟살이잖아’(은화), ‘산집 콩이와 남동생 승우’(심이), ‘종이 아저씨’(영란), ‘작고 오래된 아파트’(민들레), ‘박 키우는 할머니’(보리), ‘우리 집 예뻐요’(지경) 등으로 이루어진 책의 내용은 사진, 그림, 글, 작가노트는 물론, 각 창작물의 배경이 되는 지역의 지도가 첨부되어 있어 구체성을 담보한다. 그들은 ‘제철에 맞는 우리의 절기 음식을’ 만들고, ‘남은 음식물은 유용 미생물과 흙, 마른 잎들, 분양받은 지렁이와 함께 곱고 영양가 있는 흙을’ 만든다. 그들은 텃밭을 활용하고, 에너지를 덜 쓰는 방법을 강구하며 품앗이를 이어간다.

 

출전; 인천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