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Borders)-순환의 모순
윤진섭(커미셔너)
문화와 예술에 관한 한, 고양시는 그 어느 곳보다 풍부한 인적 자원과 천혜의 환경을 갖춘 도시다. 풍광이 수려한 호수공원이 도심에 가까이 있고, 수도 서울이 지척에 있는 관계로 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이곳에 모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약 4백 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고양조각가협회>는 고양시가 인구 약 64만 정도의 중소도시란 사실을 감안할 때 전국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큰 규모의 미술단체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불과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고양시가 조각의 메카로 인정받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첫 번 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이유다. 조각가들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넓고 쾌적한 작업실이 필수인데, 많은 조각가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고양시 인근에 터를 잡고 작품 활동을 해 왔던 것이다. 서울에 비해 저렴한 땅값이 조각가들을 끌어들인 첫째 요인이라고 한다면, 주변에 흩어져 있는 주물공장과 돌 공장들은 두 번째 요인이다. 그런 연유로 고양시는 일찍이 조성된 일산 호수조각공원을 비롯하여 연차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고양 국제 야외조각 심포지엄>으로 인하여 국내에서 주목받는 문화예술 인프라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이번 야외조각 심포지엄의 주제는 ‘경계(Borders)'다. 이 주제는 변화하는 지구촌의 제반 상황을 상징적으로 대변해 주는 키워드다. 컴퓨터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경계’란 이미 한물 간 낡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주제는 하나의 역설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이 지닌 본질적인 의미는 오히려 그 이면에 감추어진 ‘경계 없음(borderless)’의 개념에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야나기 유끼노리(Yanagi Yukinori)는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 사이를 넘나드는 개미들의 모습을 통하여 국가 간의 물리적 경계가 붕괴되는 지구촌의 상황을 풍자한 설치작품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경계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을 매개로 웹(web)상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의 교환은 국적과 인종을 초월하여 균등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개인은 아직 만족할 만한 단계는 아니지만 국가의 전면적인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가령, 전자 메일을 통한 신속한 의견의 교환과 소통은 전자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상황을 낳았는데, 이는 검열이라는 국가적 차원의 물리적 개입이 웹상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음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디지털 시대에 있어서 ‘경계 없음’의 개념이 과연 현대의 이상향일까? 아직 속단하기는 이를 것 같다. 가령,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의 경제적 파워는-조지 소로스의 헤지 펀드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아시아의 한 약소국가의 허약한 경제를 순식간에 마비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증권시장의 객장이나 컴퓨터의 단말기에서 명멸하는 숫자들은 마치 야나기 유끼노리의 작품에서 모래가 담긴 투명한 튜브 속을 개미가 끊임없이 왕래하는 것처럼 여전히 국가 간의 경계를 침투하고 있다. 이것은 디지털 시대에 있어서 ‘경계 없음(borderless)’의 개념이 어디에나 적용되는 약방의 감초가 아니라, 그 이면에 여전히 ‘경계(Borders)’가 존재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의 역설이다. 경계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이 모순은 아마도 이 시대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권석만, 김석희, 김인태, 박근우, 최승호를 비롯하여 멕시코의 벡키 구틴, 호주의 존 니콜슨, 일본의 에츠오 츠카모토, 사이프러스의 클리차 안토니오, 아이슬랜드의 우누르 라이프스도티어 등등 이번 조각 심포지엄에 참여하는 10명의 국내외 작가들은 이 주제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경계’에 대한 작가들 나름대로의 해석이 다양한 재료와 형태를 통해 드러나 있다. 우리는 이들의 작품을 통해 예술의 보편적 가치와 온갖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오직 예술을 통한 뜨거운 인간애에 대한 작가들의 열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고양국제야외조각심포지움 도록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