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회화


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영감의 원천이 무엇이던지 간에 이제까지 그려진 매혹적인 그림들은 그것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절대적인 질 때문에 아직도 우리와 함께 살아있다”고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만 레이(1890-1977)였다. 그의 이 말은 비록 비슷해 보이지만 세상에 내보여지는 작품들은 그 하나하나의 절대적인 가치 때문에 존재할 이유가 있다는 말로 들린다. 마치 비슷한 얼굴이지만 그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를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들처럼. 



 노정란의 작품을 보면서 만 레이의 이 말이 떠올랐던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의 작품이 마크 로드코의 작품을 연상시켜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사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 앞에 서서 로드코의 작품을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넓은 색면의 처리, 가로지른 넓적한 필획, 네모난 구획 등 발상의 면에 있어서 비슷하게 볼 수 있는 요소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드코가 자신의 작품을 보고 ‘슬프다’고 느낀 사람을 가리켜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본 사람이라고 인정했다는 일화를 상기한다면, 노정란의 작품은 이와는 다른 연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절대적인 질을 확보하고 있다. 빗자루로 그려진 그의 그림들은 중첩된 터치가 자아내는 발색의 효과와 굵은 빗자루의 자취가 만들어낸 섬세한 골에 반사된 빛이 어우러져 독특한 미감을 자아내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색이 빛을 통해 드러나는 ‘빛의 회화’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경우에 색은 빛을 매개로 우리의 망막에 전달된다. 그래서 우리는 빛과 색을 동시에 보게 되며, 연상작용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보색관계로 때로는 동색관계로 서로 겹쳐지면서 두터운 색료의 층을 형성하는 그의 추상 작품들은 그 만의 독특한 회화적 느낌을 뿜어낸다. 침잠, 환희, 열락, 희열과 같은 감정들이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색의 연상들이다. 거기에는 그림을 그릴 당시 작가가 느낀 감정들이 녹아있다. 관객들은 그것들과 만날 수 있거나 혹은 지나쳐 비껴갈 수도 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월간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