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대한 유비, 계시로서의 빛


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빛을 넘어서>, <빛의 노래>로 명명된 곽수의 근작들은 ‘빛’이라는 단어가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물리적인 현상이 아닌 형이상학적이며, 영적인 세계를 내포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쉐이프트 캔버스로 이루어진 이 연작들은 그가 심혈을 기울여 온 과거의 <계시>연작, <내적인 빛>, <내적인 비전> 같은 작품들의 계통을 잇고 있으며, 유사한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내면 세계의 통찰에 바탕을 둔 일종의 신앙 고백록과 같은 것이다. 실제로 그는 천주교와 유태교를 둘러싼 개종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가족사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다양한 종교가 허용되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그의 내밀하면서도 은은하게 형이상학적인 내음을 풍기는 작품의 분위기는 그의 이러한 개인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현대미술에서 추상회화가 형이상학적인 접근을 꾀한 사례는 상당히 많다. 몬드리앙의 신지학적 관심을 비롯하여 인간의 내면에 깊숙이 존재하는 근원적인 비애를 표현한 마크 로드코, 기독교적 신화에 바탕을 둔 바넷트 뉴먼의 추상회화가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추상회화가 숭고나 법열과 같은 인간의 감정을 훌륭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선례가 된다. 곽수의 상기한 작품들은 현대 추상회화의 이러한 맥을 잇고 있다. 


 곽수의 근작들은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빛을 매개로 한 성현(聖顯)과 계시-이러한 현상은 가령 동방박사에게 예수의 탄생을 고지하기 위해 나타난 한줄기의 빛과 같은 것인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잘 알려진 언명을 빌면, 시는 역사보다 더 보편적이라고 했을 때의 바로 그 ‘보편성’이다. 그가 구상의 형식을 빌어 개별적 존재의 모습을 제시하지 않고 추상의 형식을 취한 이유를 우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두터운 판자를 잘라 만든 것처럼 보이는 곽수의 쉐이프트 캔버스들은 때로 십자가나 별과 같은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형태들은 보다 직접적으로 기독교적 상징을 드러내고 있어서 비교적 모티브를 쉽게 간파할 수 있지만, 이러한 형태들이 반드시 제한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작품의 형식은 열려있는 편에 속한다. 마치 옷감을 재단하듯이 어떤 경우에 자투리는 다른 작품에 요긴하게 쓰이는 부속품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개체와 개체 상호간에 긴밀한 결합의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것들은 작가의 기민한 상상력에 의해 또 다른 작품으로 탄생되기도 한다. 검정과 흰색의  대비, 붉은색과 노란색의 조응은 인생에 대한 유비이다. 비애, 체념, 환희, 계시, 애상과 같은 인간의 감정은 색의 연상과 상징을 통해 은유돼 왔다. 곽수의 작품에 녹아있는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은 섬세한 안목의 소유자에게만 그 비밀을 털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