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역공동체 문화 만들기, 부평은대학



부평은대학은 마포는대학, 구로는대학, 원종종합시장은대학(부천), 온수리대학(강화)과 함께 00은대학 산하의 부설대학이다. 2009년 마포는대학으로 시작된 00은대학 부설대학은 현재 점차 전국적으로 확장돼가고 있고, 각 지역대학간의 긴밀한 공조와 네트워크를 형성해가고 있는 중이다. 특정지역의 이름을 붙여 부르지만, 반드시 지역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아이템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00은대학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역이 아니라 아이템이다. 아이템이 실천논리고, 지역이 그 실천논리를 전개하고 발현하는 장으로 보면 되겠다. 지역적 특수성에 맞춰 아이템이 결정되고 차별화되는 만큼 실천논리와 장을 하나로 보면 되겠고, 아이템과 지역이 따로 구분되지 않는 경우로 볼 수 있겠다. 

결국 결정적인 것은 아이템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이템이다. 그래서 대학이다. 보고 배울 수 있는 계기를 학교 밖에서 찾는 것이고, 삶의 현장 속에서 찾는 것이다. 평생교육 시스템이 확장된 것이고, 사회적 기업이 연장된 것이고, 대안학교에 연동된 것이다.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00은대학의 아이템이 될 수 있고, 보고 배울 수 있는 곳이면 그 곳이 어디든 00은대학이 될 수 있고, 보고 배우고 싶은 열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00은대학의 구성원이 될 수가 있다. 포괄적이고 유기적인 의미에서 일종의 열린교육의 장이며 계기로 이해하면 되겠다. 

여기서 보고 배우고 싶은 열의는 특수한 경험이라기보다는 보편적인 욕망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싶어 한다. 이런 보편적 욕망은 그대로 마르크스주의 미학에 의해 지지된다. 마르크스의 미학이 특이한 것은 이처럼 특수한 경험이 아닌 보편적인 욕망에서 미학의 가능성을 정초하고 있는데 있다. 후설과 비트겐슈타인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생활감정이며 삶의 철학과도 무관하지가 않겠다. 여기에 부평은대학의 정체성이며 성격은 00은대학에서 나온다. 따라서 00은대학연구소의 강원재 1소장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부평은대학의 지향점을 확인해볼 수가 있겠다. 


공동체는 목적지향적이다. 목적을 갖게 되는 순간, 공동체는 계속 성장을 해야 한다. 대신 00은대학은 사람들이 만났다 흩어지고 또 다른 계기로 만나는 느슨한 네트워크, 공동되기를 지향한다. 


공동체와 공동되기를 구별하면서 00은대학의 정체성을 공동체보다는 공동되기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알다시피 00되기는 유목주의 철학자 질 들뢰즈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들뢰즈는 욕망의 철학자이기도 한데, 욕망을 억압의 논리로부터 해방의 논리로 돌려 세운 것이며, 욕망의 올바른 사용방법을 정초한 것에 그의 미학의 미덕이 있다. 여기서 정체성의 논리 대 차이의 논리가 차별된다. 욕망은 말하자면 차이의 논리로 정체성의 논리를 허무는 실천적 계기로서 작동하고 사용되어져야 한다. 여기서 공동체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공동체는 어떤 식으로든 정체성을 지향(목적지향적)하기 마련이고, 제도를 지향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지향된 정체성이며 제도를 유지하고 공고히 하려는 관성에 지배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공동체가 아닌 공동되기다. 정체성을 지향하는 척하면서 정체성을 변질시키고 해방시키는 것이다. 여기가 아닌 저곳, 이것이 아닌 저것, 여기와 저곳, 이것과 저것과의 사이와 틈새를 탐구하고 모색하는, 항상적으로 이행중인 현재진행형의 논리이며, 결정의 논리를 타파하는 비결정의 논리이다. 그래서 유목주의다. 그래서 활성이고 불안정이다. 불안정성을 활성의 논리를 위한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지역적 특수성에 맞춰 00은대학의 정체성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도 알고 보면 이 때문이다. 

여기서 00은대학이 지향하는 소통의 방식이 주목된다. 소통이란 정체성과 정체성이, 논리와 논리가 상호 충돌하는 것이며, 스며드는 것이며, 합체되는 것이며, 변질되는 것이다. 이처럼 기왕의 정체성을 바꾸고 변질시키기 위해 전문가를 투입하는, 전문가를 통해 방법론을 전수하는 일방통행의 방식을 지양하는 것에 00은대학의 특이성이 있다. 대신 00은대학은 지역현장에 잠재돼 있는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매개자며 수행자를 발굴해 그로 하여금 대신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지향한다. 지역에 기반을 둔 주민기획자를 발굴 육성하는 것이며, 지역주민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네들의 용어로 치자면 술래가 그들이다. 지역에 숨은 일거리며 놀 거리를 찾아다니는 아이들이며 청년들이다. 주최 측은 다만 매개 역할을 하는, 주민이 주민을 가르치는 주민네트워크 형성과 함께 00은대학(그리고 부평은대학)의 핵심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게 술래를 양성하는 것, 이를테면 지역 현장으로부터 술래 역할을 도맡아할 숨은 일꾼을 발굴 육성하는 것인데, 그렇게 해야 지역현장에 잘 침투할 수 있고, 잘 스며들 수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술래 자신이 이미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므로 인해 적어도 표면상 프로젝트가 수행된 연후에도, 그리고 그렇게 일단락된 연후에도 여전히 술래 자신이 창의력을 발휘해 최초 프로젝트를 임의로 변질 변환시키면서 프로젝트를 지속 수행할 수가 있게 된다. 말하자면 프로젝트를 전수 수행하고 일단락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계기를 주고 지역공동체로 하여금 그 계기를 대리 수행케 하는 식의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며 항상적인 프로젝트를 위한 씨앗을 뿌린다고 보면 되겠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지속가능하고 항상적일 때에야 비로소 00은대학도 덩달아 지속가능하고 항상적일 수 있게 된다. 

여기서 공동체와 공동되기의 차이를 재차 되새길 일이다. 공동되기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되 일단락되지 않는 프로젝트, 항상적으로 이행중인 프로젝트,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씨앗 자체가 프로젝트라는 것은 알지만, 향후 그 씨앗이 어떻게 싹을 피우고 어떤 나무로 자라고 어떤 무성한 숲을 이룰지는 전적으로 가변적이고 우연적인 미지의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고, 또한 그 환경에 의해 결정될 일이다. 


그렇다면 부평은대학은 어떤 지역적인 특수성을 갖는가. 아파트형 공동체(문화공동체) 활성화 모델을 개발하는 한편, 이를 계기로 지역에 기반을 둔 주민기획자를 양성한다는 프로젝트를 형식 실험한다. 부평구 부개 3동 4개동 1140세대가 거주하는 뉴서울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사실상 이를 계기로 아파트라는  주거형태에 문화공동체가 가능한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를 어떻게 실현하고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모색의 과정이 되겠다. 특정 아파트를 샘플로 취한 것이란 점에서 특수성을 띠는가 하면, 이를 계기로 아파트형 문화공동체의 실현 가능성을 실험한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띤다고 하겠다. 개별적이고 특수한 경험을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삶의 가치로 확장시키는 프로젝트랄 수 있겠다. 

왜 아파트이고, 또한 아파트는 무슨 의미를 갖는가. 알다시피 아파트는 가장 보편적인 주거형태이지만, 지금까지 문화공동체라는 플랜이 적용되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런가. 폐쇄성 때문이다. 가장 보편적인 주거형태가 폐쇄적이라는 것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폐쇄적인 삶의 방식을 영위하고 있다는 말과도 같다. 정확하게는 감수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혹자는 그런 삶의 방식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랫집 윗집은 고사하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것이 다반사이다. 고독사는 이런 불통이 낳은 사회적 현상의 한 징후에 지나지 않는다. 층간소음이 살인을 부르는 현실은 어떤가. 이런 삭막한 삶의 방식은 그대로 현대인의 삶의 질이 되고 있고, 이로써 현대인들이 주거하는 아파트 또한 현대인의 초상을 대리하게 된다. 현대인은 말하자면 폐쇄적인 삶의 방식을 영위하고 있고, 고독한 삶의 경험을 내재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폐쇄적인 삶의 방식은 고독을 내재화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여기에 고독은 일면적으로 프라이버시와 동격으로 여겨진다. 이중적이다. 섣불리 접근하다간 실패하기 십상이다. 

무슨 말인가. 어느 날 갑자기 구세주와도 같은 누군가가 짠하고 나타나서 폐쇄적인 삶의 방식으로부터 끄집어내주기를 학수고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동시에 프라이버시를 침해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소통하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소통하기 싫은 사람도 있다. 참여하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참여하기 싫은 사람도 있다. 고독을 억압의 계기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독한 삶을 향유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폐쇄성이 갖고 있는 이런 양가성이 지금껏 아파트에 문화공동체라는 플랜을 들이대지 못하게 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일 것이다. 이 말은 동시에 아파트에 문화공동체라는 플랜을 실현하기 위해선 폐쇄성에 대한, 그리고 폐쇄성의 양가성에 대한 주의 깊은 그리고 전문적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별주체를 존중하는 세심한 배려가 선결되어져야 함을 말해준다. 의사며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만이라는 식의 발상 가지고는 안 된다. 고립된 삶의 방식으로부터 개인을 끄집어내는 것만이 능사라는 발상은 자칫 전체주의나 계몽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선결이, 배려와 주의가 없다면 아파트에 문화공동체를 실현하려는 플랜은 백전백패라고 봐야 된다. 공동체는 고사하고 여차하면 빈 깡통소리만 요란한 소꿉놀이의 추억에 머물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그럼에도 여하튼 마당이 그리운 사람도 있고, 아파트 초기 형태에 마당 역할을 했던 중정이 못내 아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문화공동체라는 플랜은 적어도 현재 스코어로 봤을 때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 이를테면 폐쇄적인 삶의 방식이 불통의 계기를 낳고 심화시킨다는, 다분히 사회적 문제의식에 착안하고 있고, 그 불통의 계기를 소통의 계기로 물꼬를 돌려놓아야 한다는 소명의식에 착상되고 있다. 이런 소명의식의 관점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커뮤니티의 불쏘시개일 수 있다. 사실상 모든 문화공동체에는 이런 소통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그 근저에 깔려있다. 

그렇다면 부평은대학은 이런 소통의 계기를 트기 위해서 어떤 세목들을 실천하고 있는가. 각각 화요일과 목요일에 열린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화목다방이 있다. 당연히 화목을 도모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화목다방은 일종의 이동형 커뮤니티 카페랄 수 있겠다. 그리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게시한 아파트 소통 게시판이, 그리고 주민동아리 행복울림통이 이런 화목다방의 소통 기능을 보조한다. 아파트 유휴시설을 이용한 마을학교를 운영하는데,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모두 아파트 내 주민들로 이뤄진다. 그 교과를 보면 뜨개질 교실, 사진 찍기 교실, 인물 드로잉 그리기 교실, 친환경 나무 장난감 만들기 교실, 재활용 악기 만들기 교실, 구연동화 인형극 교실, 말만 하다 가는 책모임과,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 구축과 같은 세목들이 있다. 

가급적 자치적인 운영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 전문적인 스킬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전문가의 도움으로 함께 만들고 진행하는 워크숍 형태를 병행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지역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통해 자치적인 구성력을 강화하는 편이다. 특히 구연동화 인형극 교실은 동화 창작과 대본, 인형 만들기와 이를 바탕으로 한 극 공연에 이르는 전 과정에 동네 어린아이들이 직접 참여해 진행하는 방식을 취했다. 어린아이들은 직접 기자로 참여하는 오소리 어린이 기자단을 구성하고, 먹거리며 놀거리와 같은 흥밋거리를 발굴 취재해 동네 소식지(뉴서울이야기)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처럼 어린아이를 주체로 내세운 것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부모들이며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 참여의식을 드높이는 효과적인 계기며 동기부여가 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마을학교에서 이룬 성과들은 일종의 동네 축제랄 수 있는 뉴서울축제 현장에서 동네 사진전을 연다거나, 어린이 그림자인형극을 공연하는 식으로 발현된다. 마을축제에는 이외에도 먹거리 장터와 아트마켓과 벼룩시장이 열리고, 나는 가수다, 라는 대중문화 아이콘을 패러디한 내가 가수다, 라는 주민노래자랑이 열리는 등 한바탕 잔치마당이 펼쳐진다. 이 모든 일들은 아파트 부녀회의, 입주자 대표회의, 상가번영회, 그리고 노인회와 같은 각 지역 거점들 간의 상호 긴밀한 이해와 협의 속에 이루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종래에는 주민들이 기획과 스텝을 도맡아 하는, 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식의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문화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의 기초가 된다. 

00은대학은 00을 대상으로 배움터를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며 취지라고 했다. 여기서 배움은 놀이가 되어야 하고, 배움터는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흥미를 유발할 수 있고 동기를 부여할 수가 있게 된다. 실러는 유희충동에서, 그리고 호이징하는 놀이에서 예술의 계기를 찾고 미학의 실천논리를 발견한다. 삶을 예술처럼 그리고 예술을 놀이처럼 하는 것, 삶을 예술로 탈바꿈시키는 것 그리고 예술보다 흥미진진한 삶을 실천하고 실현하는 것에 예술의 의미가 있고 미학의 이유가 있다. 여기에 구태여 참여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며 불필요한 간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아이템을 개발하는 것,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침투할 수 있는 빌미를 찾아내는 배려가 더해진다면 아파트 문화공동체 만들기 프로젝트는 삭막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한 줌 신선한 산소를 공급하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