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조의 조화
이선영(미술평론가)
이돈아의 작품의 주요 소재였던 화조도(花鳥圖)는 화사한 색감과 행복의 이미지로 예로부터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아온 도상이다. 전통 공예품에 많이 등장하는 화조도는 규방문화의 틀을 넘어서 현대적인 의미로 각색되었다. 우리 미술계에서 화조도는 전통에 대한 관심 뿐 아니라, 80년대에는 민중에 대한 관심에서, 90년대에는 키치에 대한 관심에서 널리 호출되곤 하였다. 어떤 전통적 도상이 현대에 다시 호출될 때는 각자의 관심과 맥락이 다르다. 조선시대의 화조도 외에 이돈아가 작품 제목으로 사용했던 ‘그때 그곳에’는 시공간이라는 좌표축에 위치한 작품의 맥락 변화를 예시한다. 그때그곳에 화조도의 원형이 있었다면, 지금여기에는 화조도의 변형이 있는 것이다. 변형은 작품의 형식적 차원에서도 명확하다. 농밀한 밀도로 붓질의 흐름이 그대로 추적될 정도인 2000년대 초반의 작품이 그렇다. 앙포르멜 추상화 위에 화조를 얹은 것 같은 모양새가 특징인 당시의 작품들은 화면 안에 직접적인 변모의 장을 마련한다.

2004년 전시의 작가노트에는 ‘돌이나 철가루 등의 산화 되어 색이 변하는 물질을 이용하거나 재료의 색이 표면 위에서 스스로 섞어지게 함으로서 우연적 효과를 의도’한다고 밝힌다. 물질의 변모가 일어나는 연금술적 효과에 의해, 화면 위에서 바로 섞이면서 생겨나는 미묘한 색과 형태는 그 위에 스미듯이 떠있는 꽃과 새라는 명확한 대상을 희미한 최초의 참조 점으로 변모시킨다. 근대의 낭만주의적 예술가처럼 창조주 흉내를 내지 않는 현대의 작가는 절대적 무(無)가 아니라, 무언가로부터 시작해야하는데 화조도는 그 출발이 되어준 것이다. 화조도는 변모의 출발로서 의미가 있을 뿐, 최종 기착지는 아니다. 작가는 화조도라는 시공간의 간극이 느껴지는 소재를 호출함으로서, 시간과 공간의 좌표축에 걸쳐있는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화조도가 대거 출품된 2004년 전시 작가노트에는 자신의 작업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존재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힌다.
시간, 공간, 존재 같은 무거운 철학적 용어가 등장했다고 해서, 화조도라는 소재에서 어떤 필연성을 끌어낼 필요는 없다. 모태신앙이 기독교인 작가에게 화조도가 가지는 전통적 상징은 상식적인 수준이나 취향의 문제와 닿아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 소재가 그저 우연히 선택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일찍이 코스모폴리탄이 되셨던 부친의 우리 전통에 대한 사랑은 유별났고, 작가는 각종 민예품을 비롯해서 화첩을 뒤적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이돈아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왔으며, 지금도 방배동 화실에서 어느 화가 부럽지 않게 판을 벌리고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것은 아니다. 30세 전후에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고 어떤 시기, 특히 그녀가 매우 힘들었을 때는 집중적으로 그림에 의지하면서 한 시절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을 만큼 미술은 삶의 필연적 요소가 되었다. 너무나 보편적이기에 화가로서는 피하고 싶었을지 모를 화조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어떤 시공간과 존재를 밝혀주는 개인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본격적인 작가적 이력을 쌓기 전에 몸담았던 일들은 광고 회사,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교육사업 등이다. ‘전통’과는 거리가 있는 현대적 직종을 섭렵했던 이돈아에게 화조도는 머나먼 전통 뿐 아니라, 예술에 대한 무의식적 상이 형성되었던 어떤 시공간을 반추하게 하는 소재이다. 흔하고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출발점은 변모의 질과 양을 가늠하게 해주는 기준이 된다. 규방문화를 차지했던 장식물은 이돈아의 작품에서 종종 우주적 스케일로 도약한다. 2000년대 중반의 작품에는 화조도와 기하학적인 별자리들이 공존한다. 두터운 질감의 바탕 면이 무엇으로 변모할지 모르는 원초적인 혼돈이라면, 별자리는 정확한 구조를 형성한다. 발생과 구조는 한 화면에 공존한다. 2002년의 화조도에는 물감의 흐름이 보이는 두툼하게 발린 바탕위에 화조도와 가늘게 보이는 지그재그의 직선이 발견되고, 2003년의 화조도에는 두터운 붉은 계열의 바탕 화면에 자유롭게 가지를 뻗은 꽃과 더불어 있는 것은 점과 선이 선명하게 연결되어 있는 별자리이다.
우주적 심연 속에서 기하학적 점과 선의 조합으로 나타나는 별자리는 지상의 인간에게 시공간의 기준이 되어주지만, 별자리를 구성하는 원소들은 서로 다른 시공간의 층위가 우연히 한 시점에 의해 공간화된 것일 뿐이다. 다른 별에서 보면 지구를 포함한 별이 또 다른 성좌도를 그릴 것이다. 꽃과 새, 그리고 두툼한 물질 감을 주는 유기적 화면에 극히 일부로 박혀있던 기하학적 요소는 2005년 뉴욕에 가서 작업했을 때 전면화 된다. 2004년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을 끝내고 시작한 미국에서의 작업은 기하학적인 공간으로 가득한 그림들로 채워졌다. 개인전을 통해 한 시기를 털어내고 정반대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에 이돈아의 그림은 따스한 느낌의 유기적 총체성에서 어둡고 칙칙한 무기질적 단편으로 변모했다. 30대 중반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같이 버텨준 이 어두운 그림들은 그 날카로운 모서리가 관객을 찌를듯하다. 근거 없이 삐죽이 솟은 건물처럼 보이는 기하학적 도상에서 관객은 어떠한 구체적인 시공간 좌표축도 발견하기 힘들다.
그것들은 어둠에서 시작하여 칙칙함으로 일관한다. 그것은 그 시기에 작업했던 공간, 즉 아래층은 공장 위층은 작업실이었던 맨하튼 옆의 으스름한 슬럼가를 연상할 수도 있다. 바탕 면에 흐르는 물감은 삶의 무게를 가늠하는 중력을 예시한다. 2005년 뉴욕에서의 그림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고립이 느껴진다. 줄줄 흐르는 선은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우울함이 역력하다. 그러나 이렇듯 슬프고 갑갑한 그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화조도는 다시 등장했다. 2006년 전시에는 화조와 별자리의 조합이 발표되었고, 2009년부터는 박스같은 기하학적 공간과 화조가 결합된 양식을 시작했다. 2013년에 그려진 최근 작품은 주황계열의 무한 공간에 기하학적 박스들이 던져져 있고, 그 안에 하나씩 안치된 꽃과 새들이 보인다. 또 다른 작품은 주황 계열의 바탕에 놓인 열린 박스에서 새와 꽃이 튀어 나오려는 듯하다. 민화가 가지는 화사한 장식성은 현대의 일러스트레이션같은 화면에 재배치되었다. 무엇을 담을지, 또는 무엇이 담겨있는지 모호했던 어두운 상자 안에는 본래부터 자신에게 가까이 있던 행복의 파랑새가 튀어나왔다.
출전; 미술과 비평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