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 이전 또는 이후의 자연

 

이선영(미술평론가)

     

팔순의 원로 작가 금동원은 여화여대 미술과를 수료한 후 향년 21세에 고암 이응로에게 사사 받은 후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입문했다. 작가의 약력에는 ‘이응로 화숙에서 사사했다’는 대목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이러한 약력은 대학과 스승이 꼭 일치되지는 않았던 시대를 반영한다. 금동원에게 이 위대한 스승 외에 또 하나의 스승이 있었다면 그것은 자연이다. 금동원은 1956년 동원화랑(신세계 백화점)에서 첫 개인전 이후, 국내외에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였다. 작가는 7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20년 가까이 뉴욕에서 거주하면서 작업 하고 귀국한 후, 한국 화단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변치 않는다는 신념을 재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의 작품 목록에는 수묵으로 그린 화사한 자연풍경이 주를 이룬다. 금동원의 수묵화는 관념적이지 않고 자연의 살아있는 세부에 주목한다. 세부이지만, 물신적 단편화는 아니다. 물신은 (가상적)소유를 부추 킨다. 작가는 누구나 감탄하는 멋진 풍경이 아니라, 이름 모를 풀과 그 위에 앉은 곤충, 나무와 새 등을 주목한다. 


 

장승같은 인공적 사물 역시 풀숲 등에 배치함으로서 문명을 자연에 귀속시킨다. 자연에 귀속된 문명을 이성과 진보의 기준으로 본다면 무질서나 빈곤일 것이지만, 자연의 순리를 기준으로 본다면 다양성과 풍요로움일 것이다. 가령 2005년 공평아트센터에서 전시된 작품  [불로초]는 자연의 영원한 풍요로움을 말한다. 작품 [우리 마을]은 자연의 유기적 질서와 하나가 된 유토피아적 풍경이다. 유기적 질서가 돌이킬 수 없이 교란되고 있는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불가능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그것은 이상향을 그려왔던 동양화의 전통에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금동원의 이상향에는 특출 난 것들이 아니라 평범한 것들이 자리 잡고 있다. 강아지 풀 위에 작은 곤충 한 마리가 그려진 작품 [강아지풀]은 초충도의 전통을 따르면서, 작고 평범한 것들을 예찬한다. 그림 속의 도상들은 평범하지만, 현대의 문화가 그렇듯이 하나의 강력한 우세 종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종 다양성을 보존한다. 다양성은 예술과 자연이 공유하는 가치이며, 문명이 피상적으로만 취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금동원의 작품에서 자연은 소소함, 평범함, 다양함으로 나타난다. 작품 [꽃밭]은 진달래와 개나리, 이름 모를 풀꽃 등이 화면 가득이 뒤섞여 있다. 이 자연 풍경은 평범함과 다양성의 조합을 보여주는데, 문명의 기준에서 본다면 평범함과 다양성은 공존할 수 없는 가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은 양자를 아무런 모순 없이 공존시킨다. 문명이 하나의 우세 종을 기준으로 생산성과 진보를 가늠한다면, 자연에서는 어떤 우세 종 하나가 생태계를 지배하는 것이 오히려 병적인 징후이다. 일월도 같은 전통적 도상이 자연풍경과 결합하는 작품에서는 우주적 차원으로 고양된 자연 예찬이 들려온다. 작품 [검은 태양]에는 4개의 푸른 달과 검은 태양이 공존한다. 그 앞으로 이름 없는 풀들이 꽃을 피운다는 점이 전통과 다르다. 작품 [불로초] 역시 태양과 달이 함께 있는 유토피아적인 자연 풍경이다. 동서양을 막론하는 인류학적 상상계에서 태양이 남성을 상징했다면 달은 여성을 상징했다. 금동원의 작품에서 달은 태양과 공존함은 물론, 달이 더 많이 떠있다. 

 

달이 여럿일 때 태양은 하나이며, 심지어 작품 [검은 태양]에서 나타나듯이, 태양은 달그림자에 삼켜진 상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상징적 우주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나 둘이라는 가치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가치의 지향이다. 금동원의 작품은 일상적 차원에서는 자연 친화적이며, 우주적 차원에서는 여성적 가치를 중시한다. ‘페미니즘’이 그 진정한 내용이 아니라 ‘이즘’으로만 소비되어 왔던 경험을 한 이 땅의 많은 여성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의 여성성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경향이 있지만, 작가 금동원에게 자연과 여성은 단지 여성의 출산력과 보살핌의 노동 뿐 아니라, 예술을 매개로 근접한다. 여성 작가로서의 자의식은 자연풍경 뿐 아니라, 작품 [신사임당 한탄도]에서도 나타난다. 팔순의 여성 작가라 함은 한국의 미술계가 형성되기 시작할 때부터 작동되었을 성차별을 극복해온 작가라는 것을 의미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극복은 의식적이기 보다는 본능적인 차원이었을 것이다. 의식이 아니라 본능이었기에 작가로서의 삶을 더 강하게 밀어 붙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의식적 차원의 저항은 언제라도 타협의 여지가 있다. 

 


그 타협은 곧잘 작가로서의 야생적 삶을 포기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그(녀)는 여전히 미술계 언저리에서 작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신이 받아들인 지배적 가치의 하위범주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예술은 하나의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의 대안의 가치이기를 포기하고, 지배적 가치의 희미한 반영 물이나 이를 장식하는 것에 머물 때, 말 그대로 ‘잉여’가 되고 마는 것이다. 금동원이 사회보다는 자연, 그리고 그 자연의 변치 않음을 확신했을 때, 그것은 자연이 되풀이하여 호출될만한 무궁한 보고임을 확인한 것이다. 자연에 포커스를 맞추는 동양화가는 매우 평범한 조합이지만, 그 동양화가가 여성이었을 때, 자연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여성은 자연으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에 와서 자연은 인간 주체에 대한 대상으로 착취와 (거짓된 문명을 극복하는)숭배라는 이중적 잣대에 휘둘리곤 했다. 인간 주체는 보통 남성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 주체에게 자연은 영감과 질료를 제공해줄 뿐, 그 스스로는 인간의 재생산이라는 또 다른 자연의 영역에 묶여 있었다. 

 

근대 사회의 주인공인 합리적 주체와 낭만주의로 대변될 수 있는 예술가적 주체는 차이가 있지만, 이 두 주체는 자연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만큼은 동일한 입장을 보였다. 주체라는 상징적 범주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자연을 대극에 놓은 이분법이 필요했으며, 이러한 이분법적 인식론은 그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후에도, 그것은 인간 사유에 깊이 뿌리박혀 언제라도 활성화된다. 여성, 동양화, 자연이라는 현대사회에서 타자화 된 가치들을 모두 안고 왔던 작가 금동원이 이분법에 바탕 한 상징적 주체화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명사회 속에서 주체로서 성립되기 위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끈질기게 수행해야할 작업이 어머니의 영역으로 간주된 자연과의 단절, 또는 거리두기였다. 자연으로 간주되어왔던 여성은 이러한 거리 설정에 어려움을 느낀다. 이분법이 성립되기 위해 제일 먼저 대상화 된 것이 자연이기에 노 여성화가의 자연예찬은 과거로의 퇴행이 아니라 ‘오래된 미래’로의 복귀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대의 작가가 주목해야 하는 영역은 이분법이 성립되기 이전의 자연, 또는 이분법 이후의 자연이다. 

 

출전; 미술과 비평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