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과 대중성

 

이선영(미술평론가)

 

원래는 천(川)이었던 곳이, 홍수가 나면 돼지와 요강이 떠다니는 거대한 하수구와 건천(乾川)으로 방치되다가 다시 인공적으로 물을 흐르게 한 우리 동네의 개천은 인공폭포와 음악 분수대, 장독대와 물레방아가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으로 거듭났다. 원래 그 옆에 나룻배도 띄워 있었는데, 비가 많이 오던 어느 여름 거센 물살에 박살이 난 후, 몇 년 전에는 다리의 교각마다 인상파 시대의 복제그림을 하나씩 걸어놓았다. 복제화이긴 하지만 그 그림들은 자연의 반열에 올랐다. 그렇게 해서 기암괴석과 꽃, 그리고 물이 어우러진 산책로는 노상 갤러리 기능을 추가했다. 푸른 하늘을 가리는 시커멓고 우악스런 콘크리트 교각들에 난데없이 걸린 화사한 이미지들의 행렬이 약간 초현실주의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자체에 환경 관련 예산이 배정되어 있고, 시민들의 문화 수준이 높아졌다 해도, 공공 기관에서 환경을 미화하는 것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예술은 그만두고 원래 있는 큰 나무라도 그대로 놔두길 바란다. 

 


르느와르, Two Sisters(On_the_Terrace), 1881년,  ART INSTITUTE OF CHICAGO

(이 그림은 홍제천변에서 가장 인기있는 포토존이다)

 

그런데 생각 외로 그 그림들을 시민들이 꽤 좋아한다. 그림 설명도 열심히 읽고 가까이 걸린 그림 앞에서는 사진도 찍는다. 인상파 시대의 많은 화가가 있지만 이 노상 갤러리에는 딱 두 명 만 선택되었는데, 그들이 바로 르느와르와 모네이다. 세잔이나 마네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근대미술의 장을 연 이들의 대중적 작품 이미지는 물길이 트임으로서 생겨난, 끊임없이 변하는 반사광으로 진동하는 천변 풍경과 어울릴 법도 하다. 고전주의나 사실주의로 대변되는 이전의 칙칙한 화면을 걷어내고, 반짝이는 물살이나 산란하는 햇살과 등가를 이루는 인상파의 경쾌한 붓터치는 야외를 무대로 하며 야외에서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인상파는 당시에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미술사적인 혁신 외에 대중시대의 도래 또한 증거 한다. 인상파는 온갖 신화, 종교, 역사적 알레고리의 범벅 없이도 소풍 나온 소녀의 상기된 장밋빛 뺨을 즉각 향유할 수 있게 했다. 

 

산업혁명으로 칙칙해지기 시작한 도시 근교로 쏟아져 나와 휴일을 즐기는 대중들을 자유분방한 붓질로 표현한 인상파는 그 후기 국면까지를 포함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중과의 친교를 끌어낸 미술처럼 보인다. 근대미술가에 대한 대중의 신화가 생겨난 것도 그 즈음이며, 예술의 조악한 복제품인 키치, 그리고 대중문화 또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 그린버그를 필두로 해서, 대중문화와 모더니즘을 구별하려는 미학적 이데올로기가 있어 왔지만, 양자는 ‘근대에 탄생한 쌍둥이 분체’(벤야민 부클로)이다. 근대미술의 대중성은 근대에 대중이 탄생했다는 것 외에, 조형언어가 생동하는 자연과 단절됨 없이, 적절한 자율성 속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주옥같은 기간은 매우 짧았고, 이 좁은 물마루를 넘자마자 대상과 기호, 기표와 기의는 순차적으로 분열을 거듭해 나갔다. 인상파 이후, 환영 대신에 화면을 관객에게 바짝 끌어당긴 입체파의 ‘촉감적 공간’(브라크) 혁명은 새로운 리얼리티를 생산했지만, 대중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제도, 또는 화면상에서 형성된 근대의 자율적 공간은 자연스러운 감각 외에 미술사 내적인 논리라는 개념의 매개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모네와 르느와르 그림까지는 휴식을 취하러 온 시민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브라크나 뒤샹부터는 힘들어진다. 사회는 복잡하지만 하는 일은 대부분 단조로운 현대인에게 여가 생활에서의 복잡함은 견디기 힘다. 극소수의 매나아만 그 복잡한 절차를 성스러운 의례적 차원에서 향유할 뿐이다. 어딘가에 이 단조로운 노동과 여가를 벗어날 수 있는 충만한 예술적 의미가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 추구는 크고 작은 인터페이스로 매개되는 즉각적인 질문과 대답 속에서 영원히 유예된다. 그것은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국한된다. 자연과는 구별되는 화면의 현실성에 대한 미술의 자의식, 그 감각적 개념적 여정은 근대사회를 관통하던 분업화와 자율화의 결과였다. 그러나 예술은 다른 분야처럼 전문 영역의 혜택을 고루 누리지 못했다. 

 

현대미술 역시 외국어나 수학문제, 새로 산 전자기기의 매뉴얼처럼 따로 투자를 하고 익숙해져야하는 어법이었지만, 이미지가 원형이나 전형을 벗어난 시대에 그 내용과 형식에 대한 논구는 전공자들만의 몫이 되었다. 미술이란 것이 도처에 있지만 미술에 대한 문맹도 보편적이다. 현대미술은 학생들이 학습해야 하는 수많은 교양들 목록에도 오르지 못한 채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아무리 억압적이어도 학습효과라는 것을 무시하지는 못한다. 시험용 교양으로 사용되었다가 잊혀지는 단기 암기용 지식으로 전락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기에 예술은 너무나 가치 있는 것들의 보고이다. 대중들은 은퇴나 해서야 무료함을 채워줄 취미활동이란 것을 해보고자 예술에 관심을 둔다. 평생의 자산이 될 수 있는 예술이 너무 늦게 그리고 피상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추상화된 현대사회에서 수학공식 같은 것을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그렇게 외운 공식을 자신의 영역에서 사용하는 이는 극소수이다. 반면 삶을 전면적으로 그리고 진하게 다루는 예술은 그 언제고 다시 기억될 수 있다. 프루스트가 믿었듯이 예술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해준다.

 


박문희,Thomas_Mop, Mixed Media 35x117x87cm, 2011년.

(박문희의 작품은 자연과 사물, 그리고 예술을 단순명료한 방식으로 일치시킨다.)

 

대중과의 거리는 예술의 질을 확보하고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적 문맹은 미술로서는 재앙이다. 현대의 예술가 역시 사회와 소통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무슨 사도라고 할 수는 없어도, 그들이 가지는 소통의 욕망은 매우 강력하다. 예술은 그자체가 강렬한 소통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 소통은 혈연이나 이해관계 같은 단순한 소통을 넘어서 있다. 한 가수에서 시작된 노래가 모두의 노래가 될 수 있듯이, 자신이 창안한 언어로 다수와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한편 그 어느 시대보다도 많이 양산되는 현대의 예술가 또한 대중이다. 불특정 다수로서의 대중이 아니라, 같은 예술가, 또는 잠재적 예술가와의 소통만 원활해도 예술의 외연은 넓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소통지상주의 사회에서 예술을 통한 소통은 드물다. 나를 빼놓고 나를 스쳐가는 그 수많은 정보의 범람 속에서 현대인은 더 큰 고독과 공허를 느낀다. 정보사회의 요구와 마찬가지로, 현대미술에서는 소통이 제1의 화두가 된 것은 물론이고, 소통 불능의 결과 생겨난 상처에 대한 치유가 그 뒤를 이었다. 

 

근대를 추동해왔던 ‘새로움’을 과학기술의 진보에 넘겨준 채, ‘소통과 치유’라는 어찌 보면 샤머니즘적 요구를 예술이 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진부한 현실에 지친 대중에게 좀 더 효율적으로 마술을 선사하는 것은 첨단기술과 대자본에 의지하는 대중문화이지 사라져가는 민속 문화나 예술은 아니다. 나날이 발전하며 현대인의 필수 아이템이 된 각종 정보기기들은 소통의 수단(도구)은 줄지언정 소통의 내용 자체를 생산할 수 없다. 그 정보기기에 맞는 ‘콘텐츠’라는 것도 예술의 영역은 아니다. 문화일 수는 있다. 특히 문화적 우세종이 된 대중문화가 콘텐츠라는 것을 장악하고 있다. 그것들은 마치 탄산음료처럼 당장에 관심을 끌지만 끝없는 갈증과 싫증을 자아낸다. 현대예술은 내용과 형식이 따로 있다고 보지 않는다. 예술이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투명한 도구(창, 거울)로서의 기능을 거부한 것도 근대부터 시작되었다. 

 

예술은 다른 영역이 더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넘겨주고(또는 빼앗기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현대예술은 내용을 괄호치고 형식의 언어를 순화시키는 방식으로 진화해오긴 했지만, 그것은 스스로를 옥죄는 모순으로 되돌아왔다. 정보의 언어 역시 예술의 선례를 따라 현실을 무시하고 자기지시적인 언어를 발전시켰다. 그래서 가장 필요하고도 희귀한 것은 현실계와 접촉하는 가장 원초적인 언어가 되었다. 미술과 대중의 만남은 시뮬라크르의 구름 속에 가려있는 현실계와 접촉하고 그 강도를 온전히 전달하는데 있지, 대중문화를 소재로 하기나 그것을 따라가기에 있지 않다. 인터페이스를 통한 간접적 소통이 아니라, 전시공간에서 실재에서 발생되는 아우라를 극대화함으로서 실물과 만나는 체험, 미술이라는 매체만으로 가능한 어떤 강렬한 체험이라는 원론적 방식으로 경쟁력 있는 소통성, 즉 대중성을 성취해야 할 것이다. 

 

출전; ART;MU(국립현대미술관 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