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논문 [미술 비평에서의 팩션(faction)의 매개적 효용성 연구]에 대한 질의

 

이선영(미술평론가)

  

김성호의 논문 [미술 비평에서의 팩션(faction)의 매개적 효용성 연구]는 학술적이면서도 현실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점이 흥미롭다. 미술 비평가들의 글쓰기가 문제시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술비평은 그 대상이 되는 미술작품 뿐 아니라, 자신의 논거를 위해 동원되는 참고문헌이라는 외재적 요소들을 잘 녹여내 문학같이 육화된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미술 비평의 문제는 단지 현대미술이 개념화되었기에 비평 또한 준 철학 및 과학이 되어 암호를 해독하는 또 다른 암호가 되었다든가, 비평가들의 자질이나 역량 부족의 문제만은 아니다. 김성호의 논문에 나타나있듯이, 거기에는 사실, 현실, 진실 등을 해석하고 서술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깔려있다. 비평적 글쓰기에 대한 그의 대안은 온라인 공론 장에서 발견될 수 있는 ‘자발적 비평’이나 ‘말하기로서의 글쓰기’를 도입해야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구술성(orality)과 문자성(literacy) 간의 대립은 허물어져 논리적인 말과 생동감 있는 글쓰기가 동시에 가능해 질 것이다. 특히 ‘팩션(faction)’은 논문의 핵심적 개념이다. 그는 비평에 있어서 허구가 개입된 글쓰기는 금기로 간주되어 왔지만, 이미 팩션은 비평에 잠재하고 있으며 자신은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겠다고 한다. 사실을 위한 사실, 허구를 위한 허구는 예술작품으로서도 비평으로서도 아무런 재미도 의미도 없다. 양자 간의 유의미한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논문에도 포함된 [자기표절]이라는 평문은 그가 주장하는 팩션의 예이다. 그 평문에서 허구의 역할은 사실을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상태로 고양시켰다는데 있다. 작년에 그 글이 한 월간지에 발표되었을 때, ‘훌륭한 역사가는 알려져 있는 사실을 일찍이 들어 본적이 없는 사실로 만든다’고한 니이체의 말을 떠올릴 만큼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대안적 비평을 통해 읽기(소비)를 넘어서 쓰기(생산)가 가능한 텍스트, 독백이 아닌 대화로서의 비평의 가능성이 전망되는 점은 주목할 만한 하다. 그러나 김성호가 ‘팩션(faction)은 사실(fact)과 허구(fiction)가 대등하게 결합한 개념이자 양자의 범주가 모호하게 섞여있는 개념’이라고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기 위한 참고 문헌들이 전반적으로 허구 쪽에 강조점을 두는 담론들이다. 그래서 팩션이 픽션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가령 그는 내러티브로서의 역사를 주장한 헤이든 화이트나 텍스트로서의 세계를 주장한 롤랑 바르트를 인용하는데, 사실과 허구, 참과 거짓이라는 이항대립을 해체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후기구조주의는 그 성과에도 불구하고 상대주의적 인식론에 기울어 있다는 한계가 있다. 

 

물론 이러한 중심 이동은 ‘사실이란 이미 해석’(니이체)임에도 불구하고 ‘실증주의’라는 명목으로 유사 과학적, 또는 법조문 같은 건조한 글쓰기가 횡행하는 현실에 대한 반감,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공백 속에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감상문 조의 수사학이 판치는 미술계 현실을 고려해 본다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사실과 허구는 서로를 함축하지만 일치될 수는 없다. 허구는 사실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여전히 어떤 과정의 궁극적 목표 즉 ‘팩트’는 중요하지 않을까? 그것은 철지난 ‘리얼리즘’을 다시 주장하려는 게 아니라, 최소한 허구와의 상호작용(유희)을 위한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의 중요성이 아무리 크다 한들 사실, 현실, 진실과 등치되거나 그것을 대체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 의문이 남는다. 데이터 뱅크 속에서의 파도타기, 묵직한 참고문헌들을 잘 요약하는 기술만큼이나 새로운 자료의 발굴, 온몸으로 취득한 현진실을 육화된 언어로 전달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출전; 2014 한국미학예술 학회 봄 정기학술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