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隔世之感)의 풍경
티엔리밍 전 (5.23--6.15, 학고재 갤러리)
정재호 전 (5.30--6.22, 갤러리 현대)
이선영(미술평론가)
모든 것을 전방위적으로 탐식하는 본능을 가진 현대미술에서 굳이 전공을 따지기는 뭐하지만, 정재호와 티엔리밍의 작품은 자신들의 본래 전공인 한국화나 중국화에 기대될 법한 전형적인 형식을 벗어나면서도 그 잠재성을 자신만의 어법으로 보존함으로서 형식적 전통성을 갱신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걸어온 탄탄한 이력을 염두에 때, 동양화는 그들의 모태 언어였을 것이며, 그 만큼 그 어법의 지속과 변화에의 욕망 또한 강했으리라 본다. 그들의 작품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범주가 가지는 매혹이 있다. 둘 다 차분하기 그지없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본질로의 환원이 아닌 다양한 것으로의 발산이 있다. 전통이라는 기준으로 본다면 새로운 편에 속하지만, 작품 속에 나타나는 시간기호(chronosigne)들은 향수를 자아낸다. 색 바랜 사진 속의 이미지처럼 정물과 인물, 풍경을 그린 정재호나 모든 것이 희뿌연 시간의 막 속에 흐릿해진 인물과 풍경을 그린 티엔리밍의 작품이 그러하다.
작품 속 사물과 인물들은 그 시공간만의 공기 속에 푹 잠겨 있다. ‘먼지의 날들’이라는 정재호 전의 부제와 ‘햇빛, 공기, 물’이라는 티엔리밍 전의 부제는 가시적 자연 보다는 그것을 이루는 요소를 강조한다. 불타는 사물들이 등장하는 정재호 전에는 재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 가속화된 시간이 있으며, 티엔리밍의 작품에 풍부한 물의 이미지 또한 모든 것을 흐르게 하는 역동적인 과정이 있다. 그 요소들은 공간적인 고정성 보다는 시간적인 유동성을 내포하며, 그 자체로 강고한 어떤 본질이나 존재이기 이전에, 그것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자연의 근본적 과정을 강조한다. 동양화에는 고착된 자연이 아닌 생성하는 자연을 표현하려는 전통이 있다. 아주 오래된 것보다 얼마 전에 지나간 과거가 더 격세지감이 있는 것은 우리가 변화라는 거센 시간의 흐름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가장 익숙한 것이 변화를 기록하기에 더 적합하다. 오랜 전통을 가진 동양화는 역설적으로 격변의 시대를 표현하기에 더욱 극적이다.

정재호, '먼지의 날들' 전 중에서.
정재호전의 1층 전시장은 마치 컬렉션 한 듯한 방식으로 같은 크기의 액자 안에 포획된 이미지들을 위 아래로 촘촘하게 나열한 설치 방식이 인상적이다. 생활사 박물관같은 모습마저 띄고 있는 그것들은 동양화하면 떠오르는 여백의 미와는 거리가 있으며, 작가는 집요한 수집가로서의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 나름의 원칙에 따라 일련의 것들이 추가되는 수집은 닫혀있으면서도 끝없는 과정이라는 매력이 있다. 어디엔가 먼지 뒤집어쓰고 처박혀 있었을 사물들은 ‘먼지의 날들’을 일소하고 새로운 물건처럼 말끔한 얼굴로 자리한다. 낡은 아파트 같은 건축물을 주로 그렸던 작가의 초창기 이력을 떠올린다면, 이 전시의 소재가 된 것들은 그 내부를 채웠던 물건들일 것이다. 작가의 관심은 도시라는 거대 구조에서 미시적 역사로 변했다. 물론 이번 전시에서도 건물은 등장하지만, 작은 물건들과 같은 차원에 있으며, 그만큼 물건 역시 기념비적이다. 쓸모없는 몸체로 지상에 서있는 그것들은 시간의 시험을 이기지 못한 공통의 운명을 가졌다. 작품 사이의 간격들은 역사적 연속성을 잃은 채 고고학적 불연속성을 보여준다.
액자라는 상자는 수집물을 하나씩 담아낸다. 프레임 당 하나씩 담아낸 대상들 간의 관련성은 관객의 상상에 맡겨진다. 정재호의 작품은 한 장의 사진처럼 특정 시공간을 순간적으로 떠내어 이미지 소비자 앞에 대령한다. 사진적 정확성은 시공간적 간격을 나타내기 위한 필수적 장치이다. 사진은 그것이 탄생한 시대부터 순발력이 떨어지는 회화를 대신하여 세계를 자료화하고 수집해왔다. 부재하는 사물이나 인물을 다시 호출하는 사진의 방식은 ‘기계복제의 시대에 사라진 아우라’(벤야민)를 복원한다. 사진, 또는 자료, 또는 직접 수집한 사물을 앞에 놓고 그렸을 이미지들은 회화가 연출할 수 있는 어법을 추가했다. 한지에 아크릴 채색으로 그린 파스텔 톤의 담백한 이미지는 중구난방의 사물들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지금은 쓸모없어진 유행지난 것들은 심미적 대상으로 부활한다. 심미적인 것은 당장의 기능과 이해 가능한 의미와 거리를 둔다. 이러한 거리두기로 인해 일상적 물건도 의미심장한 상징으로 거듭난다. 정재호의 작품 소재는 낡은 텔레비전, 사진기, 전화기, 타자기, 자동차, 기차, 비행기, 건물들이 즐비한데, 그것들은 모두 당시로서는 첨단 문명의 산물로 등장했던 것이다.
영화 속 유명 여배우나 세상을 놀라게 한 뉴스의 장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과학기술을 매개로하는 물건, 또는 문화 상품처럼 대량생산과 소비의 산물이며, 그렇기에 더욱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당시에 가장 흔했던 것이 진귀해진다는 고고학적 가설이 있다. 일상적이기에 아무도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것들은 자본주의의 태생적 특성에 의해 더욱 빨라지는 생산-소비의 주기 속에서 낯선 것들이 되었다. 정재호의 작품 속 사물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70년대 독재정권 시대의 것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국민들이 독재도 눈감아주던 성장제일주의의 시대에 변화는 강조되다 못해 강요되었고, 그 만큼 많은 것들이 쉽게 고갈되었던 것이다. 당시에 초가집과 기와집을 밀어내고 근대적 삶의 상징이었던 아파트나 ‘동양 최대’를 자랑했던 건물은 묵시록의 풍경으로 나타난다. 이 묵시록 속에서 인간은 없다. 그들은 영화 속 한 장면이나 장난감 가면을 쓴 상태로 간접적으로만 나타날 뿐이다. 주인 없는 사물의 침묵은 인간이 아니라, 구조만이 자율적으로 진보(성장) 해왔던 특정 시기를 반추한다.

티엔리밍, [맑은시내], 2013년.
양 갈래로 긴 머리를 땋은 단아한 소녀, 또는 처녀들이 등장하는 티엔리밍의 작품은 ‘햇빛, 공기, 물’이라는 부제처럼 최초의 신선함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그림 속에서 영원한 청춘을 구가한다. 아름다움 또한 젊음처럼 순간적이고 덧없는 것이기에 영원히 숭배되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그것이 전형적인 서양화라면 자연과 하나가 된 태초의 순수함이라는 주제는 자연 속 누드화로 나타났을 것이다. 자연 속에서 순진무구한 젊은 여성은 요정으로 나타나든 천사로 나타나든 시각적 욕망과 소유의 역사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관례로 재현되었을 것이다. 티엔리밍의 작품 속 그녀들은 청홍색으로 유형화된 헐렁한 중국의상을 입고 있으며, 하나같이 희미한 베일에 쌓여있다. 그림자처럼 잡을 수 없는 그들은 어떤 원형같은 모습이다. 원형은 수많은 복제를 낳지만, 그 자체는 현실적이지 않다. 미적 순수함의 원형들은 비현실적이지만, 실재적 잠재성(real virtuality)으로 가득하다. 마치 단체사진을 찍은 듯이 앞을 주시하고 포즈를 취하는 작품 속 인물들에는 어떤 구체적인 행동이나 표정이 없다.
그러한 몸의 표면에는 현실성이 없지만, 몸 전체는 잠재성으로 충만하다. 그들의 몸은 ‘햇빛, 공기, 물’ 같은 원소에 힘입어 생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잠재성은 현실화된다. 마누엘 데란다는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에서 현실성(actuality)을 결여하고 있음에도 실재적(real)이며, 현실적 존재들에 영향을 미치는 무엇에 대해 말한다. 여기에서 잠재성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 아니라, 생기 있는 세계를 형성하는 실재적 잠재성(real virtuality)을 말한다. 마누엘 데란다는 들뢰즈를 따라서 잠재적인 것은 실재하는 대상의 일부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본다. 현실성보다 잠재성을 강조했던 철학의 맥락에서 보자면, 자연 또는 도시에서 ‘햇빛, 공기, 물’ 속에 잠긴 티엔리밍의 작품 속 인간은 곧 베일을 벗고 현실화될 잠재성으로서 실재한다. 인간의 배경을 이루는 장소 또한 상상의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그것은 유토피아라는 말의 어원처럼 어디에도 없는 원초적인 부재의 장소이다. 그러나 그곳은 D. N. 로도윅이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에서 썼듯이, 위치를 바꾸고 위장하며 양상을 달리하고 언제나 새롭게 재창조되는 여기-지금을 동시에 의미한다.
서양에 비해 현실과 비현실이라는 구분이 확실하지 않은 동양은 위에 인용한 바의 현대 철학과 훨씬 가까이에 있다. 마치 총천연색 그림자같은 티엔리밍의 작품은 이 애매한 범주를 나타내고 있다. 중국의 미술사학자이자 평론가인 인지난(尹吉男)은 티엔리밍을 중국 현대 수묵화 대가라고 평가한다. 그에 의하면 티엔리밍은 과거 정치적 성격을 띤 사실주의 수묵화를 종결하고, 요즈음 대세를 이루고 있는 ‘신수묵(新水墨)’의 선구자이다. ‘먹을 사용하듯이 색을 사용’하고 ‘색채를 사용하여 수묵을 사용한 것과 똑같은 경지’(인지난)에 이른 그의 작품은 몰골법(没骨法)같은 중국화 필묵의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인상파와도 같이 발생기 근대의 신선함을 보유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어디에나 편재하는 ‘햇빛, 공기, 물’ 속에서 화사하고 평온하며, 대자연은 물론 교통체증으로 가득한 도시의 풍경이나 노동현장에서 조차 환경과 조화를 이룬다. 그것은 모든 것이 화합, 합일되는 긍정적 사고를 나타낸다. 이러한 하나 됨은 먹색이 다소간 진한 초기 작품 [사람과 자연](1988)처럼, 사람이 풍경으로 흡수된 작품을 비롯하여, 이 전시의 주를 이루는 부드럽게 녹아드는 화법에도 이어진다.
출전; 아트 인 컬쳐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