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게 연출된 유전자의 책략

 

이선영(미술평론가)

 

허전재의 조각은 문화나 예술에서 편안함과 휴식을 원하는 현대인의 욕망에 충실하다. 자연, 특히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한 부드러운 형태와 표면, 그리고 화사한 파스텔 톤의 색채는 그러한 목표를 단적으로 알려준다. 이러한 인간적 욕망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다. 보편적 욕망은 현실이 되며, 그러한 현실은 또한 신기루이다. 현실과 비현실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의 전시에는 같은 형태가 쌍으로 제작되어 회전목마처럼 돌고 도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작품이 있다. 가령 작품 [꿈]은 부를 상징하면서 여체의 선적 율동과 잘 어울리는 돌고래가 등장하는데, 작가는 청동으로 뿐 아니라 FRP로도 같은 형태를 제작하여 두 차원이 돌고 도는 식으로 연출하였다. 같은 형태를 만드는 두 재료인 청동과 플라스틱은 묵직한 현실과 팔랑거리는 듯한 가상, 그리고 그 둘 간의 상호교환을 말한다. 단독으로 제작된 것 역시 좌대나 몸을 휘감은 천 등을 통해 정지된 상태임에도 회전하는 느낌을 준다. 

 

 

[꿈]

 

때로 팽이처럼 보이는 잠재적 동작은 작품 속 여성들의 몸매만큼이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자연과 현실로부터 꿈과 환상으로 비상하려는 심리를 반영한다. 전시 주제나 작품 제목 또한 명료하다. 얼마 전에 열린 첫 개인전 부제는 ‘미’였고, 이번에는 여기에 ‘사랑’이 추가 되었다. 중차대한 개인전을 앞두고, 적당히 모호한 은유를 섞어가며 낚시질하려는 전략은 발견되지 않는다. 다소간 어이없어 보이는 이러한 단도직입적인 드러냄은 깊은 의미를 내장한 묵직한 그 무엇으로서의 예술작품이 아니라, 표면 위에 모든 것을 띄워놓는 달콤한 키치풍의 사물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현실과 진실을 파헤치고 싶은 만큼이나 가상과 허구에 현혹되고 싶어 한다. 환경조각을 전공한 허전재는 인체로부터 출발하는 조각의 문법에 충실하다. 인체는 여성에 집중되어 있다. 이 전시에서 남성상은 여성과 짝을 이루는 작품 [사랑] 한 개만 있다. 

 

우렁 각시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남녀 한 쌍은 나비넥타이를 맨 새신랑과 선녀복장을 한 신부가 각자 소라껍질이라는 보호막을 둘러쓰고 마주한다. 자기애적 특성을 가지는 서로를 비추는 반영 상에서 자존감은 최고를 찌른다. 낸시 에트코프는 [미의 과학]에서 ‘거울을 보고 있는 사람을 보라. 그러면 그 사람이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달콤한 사랑의 이야기에서 남성과 여성은 누구나 왕자와 공주가 된다. 그것은 모든 사랑 이야기에서 꼭 필요한 해피엔딩을 보여준다. 현실이 그렇지 못한 만큼 가상에서는 더욱 좋은 결말을 맺어야 한다. 여기에서 아름다움은 스탕달이 말했듯이 ‘행복에 대한 약속’일뿐이다. 인간이 남성이거나 여성인 한, 이 행복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허전재의 작품 속 대중적 보편성은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관철된다. 작품 속 여성들은 현실에 충실하기 보다는 작은 머리에 긴 다리, 풍만한 가슴과 떡 벌어진 골반 등을 갖춘, 거의 10등신의 늘씬한 모습이다. 

 
[사랑]


작은 얼굴은 몸을 상대적으로 크게 보이게 하여 규모가 크지 않은 조상들에 기념비적인 외양을 부여한다. 다분히 남성의 시선, 그리고 현대의 시각적 관습에 충실한 비율이다. 그는 ‘인체 만들면서 편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여자’라고 말한다. 미의 대상이 여성인한 그 주체인 남성의 시각을 피할 수 없다. 여성은 남성의 욕망이 새겨지는 빈 바탕이 되는 것이다. 작가 노트에도 ‘나는 자연의 유기적인 곡선과 닮아있는 여체의 부드러움과 신비로움에 감동을 받았다’고 하며, 그래서 여체는 ‘최고의 예술적 소재’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아름다움 뿐 아니라 신비로움의 대상이 된다함은 여성성이 여전히 수수께끼라는 점을 알려준다. 여성에겐 (남성으로서는) 접근하기 힘든 타자성(otherness)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허전재의 작품 속 반쯤 걸쳐진 옷자락에 감추어진 몸처럼, 다 보여 지지 않는 어떤 부분이 여성에게 남아 있다. 

 

프란세트 팍토는 [미인]에서 이러한 수수께끼는 예외 없이 성에 관한 의문과 결부되어 나온다고 본다. 남성주체는 성차를 깨달음으로서 어머니에게서 결여된 것을 상징화하는 수단, 어머니에게서 결여된 것의 표상을 얻게 되는 과정에서, 그녀의 겉모습 뒤에는 항상 무엇인가 금지된 지식이 숨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성은 겉모습, 욕망을 품은 남자가 주춤주춤 손을 갖다 대는 밀봉된 외피일 뿐이다. 주체가 기대감에 부푼 환상 속에서 유아기적 질문에 매달려 있는 순간이면, 주체에게 아름다운 여자는 가공의 상형문자처럼 욕망의 충족이 가능함과 불가능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풀려서는 안된다.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곧 욕망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아름다운 자연이라서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가치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간을 대표해서 미를 규정지어왔던 한쪽 성의 관점이다. 

 

프로이트는 [성욕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에서 ‘아름답다는 개념이 성적 흥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본원적 의미가 성적으로 자극적인 것’이라고 말하며, [문명 속의 불만]에서 ‘근본적으로 아름다움과 매력은 성적 대상의 속성이다’라고 말한다. 인류의 감각이 후각에서 시각으로 방점이 옮겨감에 따라 정작 성기 그 자체는 아름답다고 여겨지지 않으며, 아름다움의 속성은 2차 성징에 달려 있게 된다. 그래서 보여 지는 대상의 2차 성징은 과장될 수밖에 없다. 미의 대상인 여성, 미를 창조하는 남성의 대립구도에서 여성은 보여 지는 존재이고 남성은 보는 존재이다. 그래서 현대의 여성운동은 ‘자기 자신 보는 행위의 주체이면서도 그 시선에 지배받는 주체--즉 대상--로만 연출되는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지위’(프란세트 팍토)에 초점을 맞추곤 한다. 허전재의 모든 작품에서 여성은 눈을 감고 있다. 돌고래를 타고 있는 여성을 표현한 작품 [꿈]에는 그 역동적인 상황 속에서도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특징적이다. 

 

 

[모성1]

 

그녀들은 대부분 휴식과 회상에 잠겨있으며, 어머니나 연인 같은 적극적 역할을 맡을 때조차도 마찬가지이다. 천으로 임신한 배를 감싸 안는 여성을 표현한 [모성]은 브론즈 색을 그대로 남겨둔 묵직한 모양새지만, 여성에게 현실 그 자체를 적나라하게 알려줄 임박한 출산을 앞둔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꿈을 꾸는 듯하다. 임산부지만 멋진 몸매는 여전하다. 또 다른 [모성]에 나타나듯이, 아이를 낳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작품 [선율]처럼 무용수를 떠올리는 날렵한 여인이든, 작품 [기억]처럼 위안부를 떠올리는 비극적 여인이든 여성은 날씬한 몸매를 살려주는 천이나 옷자락을 통해서, 16세기 매너리즘 형식처럼 지나치게 멋들어지게 표현된다. 그러나 환상에도 현실은 배어든다. 쉬고 있는 여성의 날개가 등에서 떨어져 있는 작품 [휴식1]이나, 절벽같이 위태로운 구조물 위에서 서커스에 가까운 동작으로 앉아 휴식을 취하는 작품 [휴식2]는 휴식이 결코 마음 편한 행위일 수 없는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허전재의 작품에서 현실의 몫은 최소한이며 그나마 무의식적이다. 

 

그는 작품 속 선녀 상처럼 작품이라는 오색 날개를 달고 현실로부터 날아오르기를 희망하며, 그러한 희망을 공유하는 관객에게 호소한다. 미를 대변하는 여성은 마치 하나의 모델에서 나온 것인 양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비율로 고정되어 있다. 완벽한 비율을 가진 신체에 대한 이상은 고대 그리스 이래 예술의 전통이었으며, 진선미를 일치시키는 같은 흐름에 의해 아름다운 것은 선한 것이고 진리가 될 것이다. 허전재의 작품에서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은 미의 전형이 된다. 인간의 이미지는 형상화된 이상형을 창조하기 위해 복제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상적 아름다움은 비율(플라톤), 질서(아리스토텔레스), 대칭(플로티누스)에 있었다. 낸시 에트코프는 [미의 과학]에서 아름다움이란 한눈에 사로잡히는 것이라 믿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여러 문화의 사람들 모두가 비슷한 기하학적 비례를 가진 얼굴을 매력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미의 과학]에 따르면 미인은 눈 코 입이 상대적으로 얼굴 아래 부분에 위치해 있고 얼굴 길이에 비해 큰 눈을 가진 여성이다. 이러한 여성상은 어른보다는 아이에 가깝다. 그것은 젊음의 표시가 아름다움을 결정짓고 있음을 알려준다. 낸시 에트코프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경우 평균의 여성이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했으나, 남성의 경우 극히 여성스러운 여자를 더 선호 했다. 남녀 모두 과도한 남성적 얼굴은 매력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아름다운 여성의 기준을 제시하는 여성잡지의 표지모델을 보면 매력적인 얼굴은 큰 눈과 작은 코, 통통한 입술 같은 아이의 얼굴을 가졌지만, 몸은 풍만하다. 이러한 여성-아이-미인의 모습은 보다 많은 여성 호르몬과 보다 적은 남성 호르몬의 결과이다. 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남성적인 얼굴로 변한다. 여성스럽게 보인다는 것은 젊어 보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사람은 젊음과 여성스러움의 복합체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선율]

 

미인과 미에 대한 기준은 지역적, 역사적으로 조금씩 다르지만, 미(인)을 생물학과 연관시키면, 그 기준은 보편적이다. 낸시 에트코프는 실제로 아름다움이란 철학적 관념론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숫자보다는 생물학적 특성과 더 많은 관련을 맺는다고 말한다. 이상적인 비례를 갖춘 여성의 몸을 통해 미를 탐색하는 것은 미의 기준을 유전자의 선택에 놓으려는 생물학의 시도이다. 허전재의 작품 속 여성의 매끄러운 피부와 날씬한 허리, 그리고 얼굴과 몸의 완벽한 대칭성은 건강한 적령기 여성이라는 지표를 전달한다. [미의 과학]은 미를 탐지하는 회로가 자연도태로 만들어진 순환의 지배를 받는 견고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즉 아름다움은 임의적이거나 변덕스러운 것이 아닌, 유전자의 생존에 유리한 의사소통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미를 인간 경험의 보편적 부분으로 삼는 기준에 의하면, 미는 선천적이고 강한 현실성을 가지며 보편적이다. 

 

그렇게 결정된 미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불러일으키고 주의를 집중시키며, 유전자의 존재를 확실히 느끼게 한다. 왜냐하면 인류의 발달사를 볼 때 이 같은 신호를 인지하고 이런 것들을 갖기 원한 사람들이 더 많은 자손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고대의 법칙은 우리의 번식능력에 적합해 보이는 신체에 매력을 느끼도록 만들어 졌다. 사랑과 미에 대한 선호나 반응은 자동적이며 선천적인 것이다. 잠재적으로 다산능력이 있고 건강한 배우자의 모습과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귀여운 아기의 모습은 아름답다고 여겨진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생존과 재생산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연적 선택으로 발전된 것이다. 허전재의 작품에 나타나는 바와 같은 유전적으로 주어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은 생물학에 깊이 뿌리내린다. 생물학에 기반 하는 아름다움이 불공평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또 다른 미학의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