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비평
이선영(미술평론가)
한국에서 미술평론가는 미술계에서 그다지 인기 있는 직업이 아니다. 미술자체가 소수자의 문화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미술평론가는 대중에게 알려져 있는 직업도 아니다. 영화나 문학은 그 장르의 약진에 힘입어 평론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본 상의 주최 측에서 후보자를 찾는데 매우 힘들어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단적으로 알려준다. 그래서 본 수상 소감은 다소간 그럴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상황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말하는 자리가 돼야할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미술계의 압도적인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작가들은 평론가보다는 큐레이터, 기자, 교수 등을 더 선호 또는 신뢰한다. 평론가는 당대의 현장과 긴밀하게 조응해야 하는 이들이기에, 계의 구성원들 간의 선호도나 신뢰도의 취약함은 평론의 생동감 있는 내용을 채워줄 상호작용(접촉, 접속)과 텍스트 생산 기회의 부족이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물론 평론가는 학자들만큼은 아니어도, 자신이 읽고 쓰는 텍스트와의 대화에 더 큰 시간을 할애하고 몰입해야 하지만 말이다.

자평을 포함하여, 평론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지만, 분명 평론 본연의 몫은 따로 있다. 그것은 선후나 경중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차이를 말한다. 평론은 단신기사도 아니고 학술논문도 아니다. 그러나 단신기사가 가져야할 사실 확인이나 현장성, 학술논문이 가져야할 심도 깊은 분석과 객관성에 대한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 비평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이것도 저것도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평론의 어려움이자 보람이다. 이러한 이중고 때문에 평론가들의 존재감이 다른 직업군들보다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 사회가 좀 더 체계화되는 과정은 평론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체계화란 전문화와 분화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아직도 평론 부문의 자율성이 확보되지 못하는 상황은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지난 1980년대와 90년대에 평론가들의 활약상에 비한다면, 대학을 비롯하여 제도들이 무한 확장된 2000년대 이후는 초라하다.
어떤 명확한 직업적 자리에 없는 이가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하는 것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자의식은 최대한 접고 작품만 ‘투명하게’ 보자는, 지금 돌아보면 불가능한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또한 평론가는 직업이라 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그 직업적인 안정성이 떨어진다. 그것은 미술계 전반에 걸친 현실이기도 하지만, 평론가가 유독 그러하다. 다른 능력을 갖춘 바가 없어서 평론만 하겠다던 생각은 나의 똥고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 결코 일반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미술계에도 연구과제가 산적해 있으니 만큼, 누군가 몇몇은 그런 미친 길을 가도 괜찮으리라 생각한다. 평론은 나만의 길이었지만, 그래도 매번 다시 시작하는 막막함과 낯설음을 느낀다. 글쓰기는 말하기와도 달라서 자동적으로 익숙해지는 법이 없다. 미술계 현장에서 평론이라 할 수 밖에 없는 형식의 글이 많이 쓰여 지고 있으며, 그것이 매달 나오는 미술 잡지 등을 채운다.
미술평론가란 누구나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친근한(?) 직함이 되었다. 사실 평론은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의지와 감각, 그리고 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러한 텍스트의 밀도와 강도가 평론이라 하기에는 부족한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일 따름이다. 미술계 구성원 누구나 평론 비슷한 글들을 쓰고 있지만, 심심하면 나오는 ‘평론은 죽었다’를 책임져야 하는 희생양이 따로 있다는 점은 다소간 억울하다. 평론가든 아니든, 그렇게 활동하고 있는 이들 중에서 10년, 20년, 30년 후를 기약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여러 면에서 평론은 작업하는 삶만큼이나 지속가능성이 힘들다. 이 영광스러운 상이 내게 돌아온 것은 나의 평론가적 자질이나 업적보다는, 순전히 20여 년 간 평론을 업으로 삼아왔다는 이유가 강했다고 본다. 동일한 이유로 몇 번의 상도 받은 바 있어 젊은 평론가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스스로 판단컨대, 내가 과거나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시하며, 오직 현재에만 충실해왔다는 점에 있을 것 같다. 학부 때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으며, 미술계를 잘 모르는 어린 나이에 비평을 시작했지만, 지금도 미술계 돌아가는 실정을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않다. 왠지 내가 서 있는 전후 관계를 명백히 따지다보면, 미술계를 떠나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서 두렵다. 그러나 현재가 모여 과거도 되고 미래도 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번의 수상을 계기로 하여 평론가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게 된 점은 큰 기쁨이며, 귀한 상을 준 이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 활동을 펼쳐야 하는 부담도 지게 되었다. 씁쓸하게도 지난 20 여년 동안 같이 활동하던 이들이 조용히 나타났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것은 실력과 열정으로 무장한 젊은 필자의 활동이 어떠한 재충전의 기회도 없이 미술계 현장에서 고갈된 결과이다.
작년에 비평상을 수상한 어느 외국 큐레이터 겸 평론가가 자신은 두 개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말이 기억난다. 월급 받는 일을 마친 후, 나머지 시간에 ‘자신의’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현대미술에 대한 평론이 녹록한 것은 아니다. 미술평론가가 당면한 그 모든 어려움은 비정규직화 되어가는, 좀 더 많은 한국의 직업군의 어려움을 먼저 선취한 것에 불과하다. 소수자는 언젠가 다수가 된다. 미리 닥친 이러한 어려움은 평론가의 연구대상인 예술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작가들 역시 작업하는 삶을 깊이 사랑하고 있으며 자신의 전 존재와 관련되어 있고, 그것을 지속하고 싶어 하며 자부심도 크다는 것, 동시에 바로 그 이유 하나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비평은 소수자, 타자로서의 작가들과 같은 운명을 가진다. 작품에 대해 비평하는 것을 넘어서, 비평 자체가 현실 및 미술작품을 출발로 하는 일종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가고 있다.
출전; aica awrd 수상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