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의 자연, 또는 자연 속의 문화 ; 1990년대의 여성미술가들

  

이선영(미술평론가)

  

1. 1990년대 문화지형도 속 여성미술

  

한국의 1980년대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개막되었고, 그에 대한 군부독재의 탄압과 항거로 들끓었던 역사의 시대라 할만 했다. 당시의 지식인과 예술인은 민중, 또는 민족이 주체가 되는 역사에 대한 전망이라는 거시적이고 보편적인 화두에 골몰했다. 그러나 1987년 6월의 시민운동을 정점으로 지배 권력을 총체적으로 문제 삼는 본격적 사회운동 대신에, 큰 문제에 가려져 있던 다양한 현안들이 터져 나왔다. 지금도 여전히 계층/계급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회 문제가 편재하지만, 민주주의와 거리가 있었던 정치체제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경제 성장 덕분에 사회적 모순은 봉합된 채, 뜨거운 역사 대신에 차가운 일상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때가 1990년대이다. 정치-사회운동은 아직 실질적 민주주의까지는 이르지는 못했지만,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보했던 것이다. 한국의 경제규모는 비약적으로 확대되었고, 그것은 세계시장을 겨냥한 신자유주의로 추동되었다. 


한국의 1990년대는 1987년부터 1997년 외환위기가 오기 직전까지의 10년으로 한정될 수 있다. 1990년대는 세계사적으로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정보화 사회가 개막되는 등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고, 그 어느 역사적 시기보다도 변화는 동시대적으로 공유되었다. 1980년대는 큰 사회 정치적 문제에 가려져 있던 문화예술이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꽃피웠다. 현실의 사회운동과 달리 노동자나 민중을 앞세운 문화예술이 1990년대에도 강력한 흐름으로 존재했다. 민중미술은 1990년대에 더 활기차게 전개되었다. 현실 참여적이고 저항적인 예술로 알려진 민중미술은 1990년대 중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가질 만큼 공식적이었고, 음지에 있던 페미니즘 미술도 그 전시에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할 만큼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페미니즘 미술은 사회 참여와 다원주의를 동시에 견인해가면서 최초로 의미 있는 형태로 등장했다. 


또 하나의 흐름은 한국의 ‘파워 엘리트’들이 선택했던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해외의 진보적 예술사조로 소개된 페미니즘이다. 둘은 종종 연합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여성 기획자들과 여성 미술가들이 대거 참여한 ‘팥쥐들의 행진’(1999년) 전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뿌려진 유의미한 씨앗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여성 미술가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에 동일시하기 힘든 현실이 남아있다. 동일시되기 힘들다면 운동의 전략으로서는 실패한 것이다. 1990년대 한국 여성미술에 대한 이 글은 페미니즘 미술사라는 반복된 서술 방식을 피해간다. 단선적인 역사 서술방식은 주로 남성들이 중심 이어왔던 예술사처럼, 미리 정해진 결론을 따라 기승전결을 전개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유도할 뿐이다. 특히 운동사의 관점에서 서술된 역사 텍스트가 그러하다. 대신에 페미니즘이라는 깃발 없이도 각개 약진했던 여성 작가 군을 재평가 하면서, 페미니즘이라 불리는, 자명하다기 보다는 여전히 미지의 가치로 남아있는 사조의 외연을 확장코자 한다. 


여기에 소개된 작가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유대가 없는 단자들이고, 심지어는 어떤 논리적 이야기에 균열과 단층까지 야기한다. 이렇듯 불연속적인 단자적 개인을 앞세우는 것은 1990년대에 이미 집단적 주체로 환원되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잃지 않는 복수적 존재인 다중(多衆)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이 말하듯, ‘네트워크가 지구를 통째로 포섭하기 때문에 제국의 외부가 따로 없는’ 탈근대적 체제로 자본주의가 이행했으며, 다중은 민중, 민족, 시민, 대중을 대신하여 새로운 단계의 제국에 저항하는 주체가 된다. 1990년대에는 개발 독재시대부터 자리를 잡은 소비자본주의와는 다른 하위문화가 생겨났고, 기왕의 민중문화를 포함한 ‘문화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2000년 이후에 좀 더 공고해지는 체계화 이전, 그리고 현실과 역사라는 거대 담론이 주도했던 1980년대 사이에 낀 1990년대는 역동적인 과도기였다. 어떤 한 질서가 끝나고 또 다른 질서가 밀려와 자리를 잡기 전, 잠깐의 해방구가 열린 때였다. 세기말, 이 과도기적 시공간에는 혼돈 속의 활기가 있었다.


내리막과 오르막 사이의 어떤 지점에서 섞이기 힘든 것들이 따로 또 같이 잘 어우러졌다. 문화란 정치와 달리 다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작가를 포함한 사회구성원 다수가 학생이나 공무원이 되려하지만, 당시에는 과학기술자들조차 예술가적인 도전의식으로 충전되었고, 젊은이들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명문미술대로 알려진 모 대학이 ‘H대 앞’으로 더 유명해지기 시작했던 때가 1990년대이다. 학교보다는 학교 앞 놀이터가 더 강세였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페미니즘과 더불어 1990년대에 부각되기 시작한 신세대의 미술은 당대의 청년 하위문화의 활성화와 밀접하다. 지금은 문화 예술 보다는 완전한 상업지구로 변모했지만, 당시의 그 거리에는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음악과 전시공간이 공존했고, 미술대학이나 미술계를 중심으로 한 ‘고급예술’은 끼기 힘들었다. 당시에 인기 있었던 ‘황신혜 밴드’의 김형태와 ‘어어부 밴드’의 백현진은 모두 미대 출신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다. 이불과 함께 신세대 미술가의 대표주자로 손꼽혔던 최정화가 기획한 ‘이런 미술-설거지’(1994년)에 출품된 키치 풍의 발랄한 작품들이 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참고도판) 최정화, [레이디스 앤 젠틀맨](문화역사서울 284에서 열리는 '총천연색' 전의 출품작 중의 하나)


그들의 작품은 좌우익을 막론한 진부한 관념주의를 떨쳐냈다. 제도와 결탁한 관념주의가 다시 힘을 되찾는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고, 1990년대의 신세대 문화는 1980년대와는 다른 스타일로 자명하게 존재하는 듯한 문화 예술적 권위를 텅 비워놓기 시작했다. 약진했던 신세대 문화는 젊은 층으로 문화 권력을 이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성의 문화에서 젊은이는 여성과 함께 타자였다. 대중문화와 예술 중간쯤에 있었던 신세대 풍의 문화와 여성의 관계는 간접적이다. 양자의 관계는,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한 번도 여성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적이 없었던 금욕주의나 관념론을 몰아내고, 아직 정보/자본에 본격적으로 길들여지기 이전의 문화, 즉 자연에 가까운 문화적 토양을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여기저기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하위문화는 제도화된 예술 보다는 생생한 현실에 주목하긴 하지만, 그 현실은 이미 문화로 뒤덮여 있었다. 그 문화는 잘 깍여 관리된 정원보다는 정글 같았다. 신세대들은 제 2의 자연으로부터 시작했다.  

 

2. 문화라는 정글 속의 여성

 

역사와 사회의 시대에 공적 영역에서 주변화 되었던 여성은 문화의 시대에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가. 여성은 음으로 양으로 주변화 된 문화를 담당했던 일종의 예비군이었지만, 문화와 자연의 대립된 구도에서 자연을 맡아오지 않았는가. 그러나 1990년대는 주변화 되었던 힘없는 문화와 착취되기만 한 무역사적 자연이 복권된 시대이다. 아래에서부터 밀어 올리는 힘이 위에서 주입된 힘보다 강세를 보였던 이 시대의 문화는 자연적 속성을 띈다. 그것들은 잡초처럼 강인하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을지라도 다채롭게 피어났다. 물질/정신의 시대로부터 모든 것이 정보/자본으로 변화하는 두 시대 사이에서 여성은 문화 속의 자연, 자연 속의 문화라는 가치의 주인공으로 부각되었다. 여성은 도구적 이성을 통한 착취라는 방식 아니고도, 문화와 자연을 매개하는 흥미로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여성은 자연’이라는 분류법에 함의된 철학적, 정치적 의미는 자유주의/급진주의/사회주의 등, 여러 계파로 나뉘어진 페미니즘의 기준이 되고 있다. 각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적은 가부장제이다. 


가부장제란 크리스 위든이 [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 비평]에서 말하듯이, ‘여성의 이익을 남성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권력관계’를 지칭한다. 이 권력관계를 통해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가 이루어진다고 여겨진다. 이중에서 ‘급진적(radical)’ 페미니즘은 생물학에 토대를 둔 여성종속을 억압의 근본형태로 파악한다. 그 대표자인 메리 데일리는 [여성/생태학gyn/ecology]에서 ‘진정한 여자의 자아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적인 본성’이라고 보며, 가부장적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여자들은 ‘우리의 진정한 자연 환경과 심오한 교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여성과 자연을 연결시키는 것이 가부장제에 대한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대응책이다.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본질적’인 면을 발견코자 한다. 생물학적 본성에 기초한 진정한 여성성(femaleness)은 있는 것일까. 그런 것이 있다면 문화 예술적 함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여성적 예술의 핵심에 여성들의 몸과 무의식적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 언어는 가부장제에 주변화 되고 억압되어 있기에, ‘시적 언어와 신비주의의 언어, 광기의 언어 그리고 마술의 언어’(크리스 위든)에서 찾아진다. 


(참고도판) 이불, [히드라], 1998년.

그러나 사회생물학으로 대변되는, 생물학에 기초를 둔 여성성은 가부장제의 옹호에 더 잘 활용되곤 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러한 자연 지향성은 위험요소가 많은 승부수이다. 그러나 자연은 점차 공고화되어가는 지배적 체계로부터 탈주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으로, 여성이든 누구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강력한 실재이다. 사회 생물학을 비롯한 자연주의적 해석은 여성에 우호적이지 못하다. 인간의 행복과 무관하게 오직 유전자의 생존과 재생산만을 중시하는 ‘이기적 유전자’(리차드 도킨스)가 선택하는 성특성(sex-specific)에 의해 여성성과 남성성이 선천적(본질적)으로 결정되며, 그것은 가부장제라는 인간의 법칙을 넘어서 탈 역사적인 차원에 자리한다. 유전자의 압박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씨를 뿌리는 한 성과 그와 비교할 수도 없는 적은 수의 새끼를 임신하고 보살피는 또 다른 성간의 비대칭은 자연스러운 질서로 강요되곤 한다. 차이가 차별이 되는 것은 언제나 자연이 아닌 문화정치의 맥락이다. 낸시 에트코프는 [미의 과학]에서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의 비대칭이, 두 성별의 최초의 응시에서부터 배우자 고르는 전략이 다르도록 만든다고 한다. 


소수만이,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짧은 시기만이 가능한 생물학적 미가 문화적 기준이 되면 자연으로서의 여성,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아름다움은 다수를 억압하는 거대 문화산업의 미끼가 되고 만다. 자연 자체는 대체로 다채롭고 공평하지만, 그것이 문화적 의미는 권력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여성과 자연의 유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국면은 미(인)이 아니라, 모성이다. 물론 모성 역시 여성을 사회질서의 자연스러운 기본단위로 평가되고 있는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 안에 가두어 놓았다는 점에서, 여성의 자율성과 창조성을 희생시켜온 질곡으로 다가오지만, ‘자신의 몸 안에서 타자에게 생명과 성장을 허용하는’(이리가라이) 여성은 예술의 창조에 가장 강력한 비유가 될 수 있다. 작품은 탄생하는 것이지 조립되는 것이 아니며, 여기에서 타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타자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존재인 여성은 예술가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자체로 사유되지 않는 일종의 대타자인 엄마와의 태곳적 관계’(이리가라이)는 예술을 포함한 언어의 주요 원천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지배하는 상징적 세계는 어머니로부터의 분리를 전제하며, 그것은 주체화 과정 속에서 억압을 낳는다.


3. 여성작가 4명의 예-이불, 염성순, 도윤희, 송현숙


 

이불, [수난유감] 퍼포먼스, 1990년.


이불, 사이보그연작 1998년.

  

이불의 작품에는 하위만화나 SF 영화 등에서 나올 법한 기괴한 형태들이 많이 등장한다. 육체의 이질성에 바탕 하는 기괴함은 인간(=남성)이 아닌 다른 존재들, 즉 타자의 특성이다. 여기에서 ‘자연의 자매’들인 여성들은 징그러운 무정형의 괴물, 성적이면서도 강력한 최첨단 로봇, 동양풍의 기괴한 인형, 안드로이드나 자동 인형같은 여학생들로 나타난다. 이불의 작품에서 생명은 항상성에 충실하기 보다는 경계를 넘는 변형이 빈번하다. 생명의 실체는 변형임이 강조된다.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원시 생물 같은 형태는 나중에 사이보그로 진화하는데, 그것은 모두 인간이라는 적절한 척도를 초월한다. 자연도 문화도 아닌 기계 돌연변이체는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같이 여성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기표로 넘쳐난다. 여기에서 남과 여를 가르는 해부학적 구조는 운명이 아니라 조작적이다. 그것은 사이보그에게서 여성해방의 가능성을 찾는 다나 해러웨이의 주장처럼 탈성차(post-gender)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산물이다. 다나 해러웨이는 ‘주체성의 유동성을 여성화된 주체성으로 가정’한다면, ‘사이보그가 되는 것, 유혹적이고 위험한 사이버네틱 공간을 옷처럼 걸치는 것은 여성적인 것을 걸치는 것이 된다’고 본다. 사이보그는 ‘해체와 재결합의 한 유형으로서 미래의 페미니스트가 코드화해야 할 자아’로 간주되는 것이다. 사이보그는 여성에게 질곡으로 다가왔던 자연적 성차의 폐기로 간주되며 이로서 육체의 정체성은 유연해진다. 


염성순, [섹스 혹은 토질], 50x53cm, 종이위에 아크릴, 1998년


염성순, [술과 장미의 나날], 60x75cm, 캔버스에 아크릴, 1997년

‘그림은 한 개인의 몸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염성순의 작품에서 몸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돌기들, 즉 몸의 내부가 표면을 뚫고 나온 싹 같은 형태, 생명이 바글거리는 형상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생명이 배태되는 자리이자 생명의 과정 그자체이다. 언제나 경계를 넘는 모호한 형태들은 죽음까지도 포함하는 생명력이다. 그것이 야기하는 쾌감은 고통까지 포함하는 쾌락, 즉 열락(jouissance)이다. 염성순의 작품에 내재하는 열락은 적절한 쾌락을 넘어서는 쾌락, 즉 ‘고통 속의 쾌락’(프로이트), 더 나아가 ‘고통스러운 쾌락’(라깡)이다. 열락으로 충전되어있는 그녀의 작품은 불확정적이고 유동적이며, 변형이 가능한 공백이 산재한다. 이 공백은 마치 자궁처럼 타자를 받아들이고 타자와 접속 가능한 넉넉한 장을 마련한다. 라캉에게 열락은 단독적인 남성 오르가즘에 비해 다양하고 확산적인 여성 특유의 성적 쾌락과 상상계--아이가 어머니나 세계에서 아직 분리되지 않은 전(前) 언어적 상태를 가리킨다--에 속해있다. 상상계는 여성의 성적 쾌락과 마찬가지로 개체적 정체성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다면적 정체성의 영역이며, 한계의 영역이기보다는 초과의 영역이다. 유동적이고 끝이 없는 흐름은 늘 흘러넘치며 마르지 않은 영감으로 작용한다. 염성순의 작품에서 몸-자연의 주기적 리듬과 조응하는 열락은 생명력으로 충만한 축제적 세계를 구현한다. 


도윤희,Being-Earth   1996  122cm X 244cm  Oil and Varnish on Canvas


도윤희,Being-Forest  1997  100cm X 200cm  Oil and Pencil with Varnish on Canvas


도윤희는 연필과 오일로 드로잉을 한 후 그 위에 바니쉬를 바르고, 그 위에 또 드로잉을 하고 바니쉬를 바르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렇게 드러나는 화면은 화석과도 같은 시간의 지층을 이룬다. 그러나 그것은 화석처럼 시간 속에 응결된 완전히 고정된 형태가 아니다. 씨앗, 또는 낟알처럼 생긴 타원형 형태들이 특별히 정해지지 않은 방향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수평적인 이동과 맞물려, 종횡으로 겹을 만든다. 식물성 형태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견고한 외곽선을 잃고 그 잔해가 공간으로 번져나가거나 점점이 흩어진다. 이전의 것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그 흔적들을 남기면서 새로운 생명의 주기를 시작하는 바탕이 된다. 그렇게 작가는 ‘지층 속에 묻혀버린 시간들’, ‘내 안에 침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탐색한다. 작가가 드로잉의 도구로 사용하는 연필은 식물성 잔해, 즉 자연의 엄청난 시간과 압력의 결과물이다. 거대한 시간이 만들어낸 에너지의 집적물인 목탄 입자가 어떤 힘에 의해 뭉개져 흩어지면서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전의 것들로부터 출발하는 자연의 과정을 닮았다. 중층적인 시간성과 더불어 도윤희의 작품에 두드러진 것은 극히 드문 순간, 즉 작가가 체험한 희열이다. 환희에 찬 입자들이 헤쳐 모이는 작품에서 물질적 중량감은 사라져 간다. 산란하는 빛의 입자처럼, 맹렬한 기세로 분열하는 세포처럼, 온 몸을 붕 띄우는 짧은 심미적 순간이 강조되는 화면들은 자연과 인생을 지배하는 지루한 연대기적인 시간 질서로부터 해방을 향한다.


송현숙, [14획 위에 6획], 캔버스에 템페라


송현숙, [1획 위에 8획], 캔버스에 템페라


송현숙은 녹두색 또는 청자색의 캔버스 바탕 위에 템페라로 그은 선들로 이루는 풍경을 그린다. 그것은 산골 마을에서 나고 자라 스물 나이였던 70년대 초에 독일로 건너간 작가의 아련한 기억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원형적 기억에 닿아있다. 장대로 걸쳐놓은 빨래줄 위의 천들을 기본으로 하여, 기와집, 우물, 항아리, 고무신 등의 구상적 이미지는 하나 또는 몇 획의 붓질로 단번에 완성된 것들이다. 회화라기보다는 드로잉--제목부터가 1획, 8획, 1획 위에 8획, 3획 위에 3획 등이다--인데, 서법처럼 기(氣)로 충전되고 정제된 선(들)은 면과 3차원적 환영도 충족시킨다. 우리의 도자기의 빛을 연상시키는 약간 바랜 듯한 바탕색은 어떤 구체적인 때와 장소를 초월하는 또 다른 시공간을 가리킨다. 단번에 그어진 선으로 표현된 줄이나 나무 막대, 그리고 그 위에 걸쳐진 흰색 천들은 반투명한 굵은 올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삼베나 무명 등을 연상시킨다. ‘단순할수록 더 강한 느낌을 준다’고 말하는 작가는 단순한 몇 개의 선들로 이루어진 광경들은 자잘한 디테일을 과감히 삭제하면서도 기억과 연관된 시각의 핵심 요소들을 남겨둔다. 1획으로 그어진 막대기나 6획이나 7획의 가로줄로 완성된 항아리는 일획의 추상이 형상으로 된 순간을 기록한다. 선이자 면인 넓은 붓질은 지각과 기억이 통합된 독특한 패턴을 만든다. 그림 전체를 일획이라는 하나의 방법으로 가능하게 하는 송현숙의 작품에서, 사물에 의해서 결정된 선은 또한 밝기나 공간, 심지어는 공기까지도 표현한다. 그것은 자연처럼 불필요한 것을 행하지 않는다.  

 

4. 여성적 예술 언어에 대해

  

한국에도 이런 저런 미술전시와 선언문들을 구체적으로 인용할만한, 자타가 공인하는 페미니즘 미술은 있다. 한국 미술계도 여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기에 이런 분야의 연구가 부족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래서 1990년대의 페미니즘 미술사에서 예외적이라고 생각될 만한 작가들을 앞세운 것은 부당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본인이 페미니스트냐, 또는 작품이 페미니즘이냐고 묻는다면 거의 아니라고 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이불처럼 그러한 깃발을 내건 전시에도 참여한 이도 있지만, 그것은 그녀의 전체 작업 이력의 극히 일부분에 해당된다. 네 명 작가의 위상도 조금씩 다르다. 미술잡지에서 인기투표를 하면 많은 남성 작가들을 물리치고 1위를 하며 ‘국가대표’로 국제전에 다수 참여한 작가부터 상대적으로 당시에는 무명이었던 작가까지,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부터 고독한 자기만의 길을 걸었던 작가까지 여러 부류다. 공통점은 모두 50대 이상의 여성들로 1990년대에 청년기를 보냈고, 그때 형성한 작업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금은 더 큰 울림을 가지는 언어를 완성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존재보다는 되기에 충실한 작가들이기도 했다. 그녀들에게 성은 단지 해부학적인 것이 아니라, 작품이라는 언어를 통해 다시 획득된 것이다. 들뢰즈가 말했듯이 여성조차도 여성이 되어야 한다. 또한 그들의 언어는 신비롭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신비는 관념론이 아니라 육체로부터 발원한 열락과 연결되어 있다. 신비로움은 주체와 객체를 명확히 구별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뤼스 이리가라이는 [사랑의 길]에서 ‘가장 합리적인 앎은 무엇보다도 신비스럽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앎은 특히 권력의 전유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분쟁에 휘말릴 수 있을 지언 정, 많은 의미를 전달하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페미니즘 뿐 아니라 대안을 촉구하는 모든 ‘이즘’에 해당될 수 있다. 권력에 대한 저항이 또 다른 권력을 낳는 것은 특히 예술에 있어서 부정적이다. 예를 든 네 명의 작가에게서 여성적 언어는 무의식적이다. 그들의 작품에서 페미니즘은 행간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자연적이다. 그것은 이리저리 이용되고 더럽혀질 그런 순수한 자연이 아니라, 열린 자연이다. 


도윤희, Being   1997  160cm X 75cm   Oil and Pencil with Varnish on Canvas

나는 이 무의식적 자연의 차원이 중요하다도 생각한다. 작가의 의도에 작품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페미니즘에도 큰 영감을 주는 현대의 비평이론 중, 포스트구조주의는 인본주의적 상식을 벗어나서 주체성 자체를 ‘불안정한 담론적 구조’라고 보며, 작품 역시 ‘단일한 의도적 주체성을 배제하며 의미를 텍스트에서 텍스트들 사이의 관계에서 찾고, 이 의미란 다원적인 것일 뿐 아니라 모든 텍스트들이 처해 있는 텍스트성의 끝없는 의미망에서 계속 지연되는 것’(크리스 위든)이라고 본다. 네 작가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여성적 글쓰기(ecriture feminine)’에 가까운 스타일을 가진다. 그들은 쓰듯이 그린다. 그들이 쓰듯이 그리는 것은 여성의 몸과 무의식이다. 그들의 작품과 제목, 작가노트 등을 보면 문학적 감수성이 넘친다. 쓰기와 그리기 사이에 드로잉이 있다. 심지어 조각과 출신인 이불조차도 드로잉은 작업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쓰기를 통해 주객체의 변화는 야기된다. 담론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가르는 권력으로 점철되어 있기에, 담론의 변혁을 통해 여성의 위상도 변화될 수 있다. 


‘남성적 주체성이라는 사회적 구성물은 남성들에게 더 많은 권력을 할당하는 가부장적 이해관계에 도움을 주는 경향’(크리스 위든)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예술은 더 이상 이미 존재하는 의도를 투명하게 반영하거나 전달하지 않는다. 크리스 위든은 [포스트구조주의와 페미니즘 비평]에서 경험이란 언어가 반영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 의미 있는 경험이라면 언어 속에서 구성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언어는 의미 있는 경험이 생성되는 곳이다. 물론 그곳은 개개인의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투쟁의 장이기도 하다. 몸과 무의식이라는 실재(기호계, 현실계)와 연결된 예술은 억압적인 주체를 생산하는 상징계에 균열을 내는 원초적 동력이다. 여기에 소개된 네 명의 여성작가 작품에는 몸과 무의식이 작업의 성실함과 만났을 때의 폭발력이 있다. 여기에서 무슨 ‘이즘’을 찾아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정치 지향적 작가들의 의식적 노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보기에, 보충 하고자 했다. 그러나 해체주의 식의 논법에 따라, 이러한 대리와 보충이 기원과 본질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출전; 2014 AICA International Congress Korea-'한국 현대미술의 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