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욕망을 담아낸 도자기
이선영(미술평론가)
미술관에서의 전시이긴 하지만, 유의정의 작품 [2014년의 기록(1위부터~100위 까지)]은 유난히 더 박물관스러운 방식으로 전시되어있다. 어둑한 공간 속에서 조명 빨을 받는 3개의 도자기는 마치 3위 일체 상처럼 침해될 수 없는 성상처럼 그렇게 서있다. 어릴 적 경복궁에 있었던 국립 중앙박물관 옆에 살던 작가는 그곳에서 기묘한 시간여행을 하곤 했고, 결국 커서 도자를 전공하여 자신의 작품 역시 그러한 광휘를 얻게 될 것을 꿈꾼다. 놀이터가 박물관이었던 유년시절의 독특한 체험은 시간성과 역사성에 대한 취향을 낳은 듯하다. 그의 작품에는 먼 과거와 먼 미래가 극적으로 조우하는 시간성의 곡예가 있다. 시간성은 진리를 시험대가 될 수 있는 중요 요소이다. 그러나 유의정의 작품을 이루는 구성요소들은 시간의 시험을 견뎌낸 것, 즉 순수의 결정체와는 거리가 멀다. 다양한 양식이 혼재하며 모순되는 기표들이 서로가 나대며 멋져 보일 것만을 요구하는 몸체에는 도자기에 기대될 법한 고상함도 은은함도 없다.

동시대 문화 형태 연구(정면1)-2014년의 기록_ 도자기, 동, 철, 수금, 백금, 레진, 사진전사_350x100x240cm_ 2014.

2014년의 기록(1위 부터~100위 까지)The record of 2014(1-100) detail_도자기, 수금,전사,브론즈_83x83x167cm_2014.
도자라는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수많은 재료들이 교묘하게 섞여있고, 바탕을 이루는 무늬는 너무도 잡다하다. 무늬들은 작품제목에 나와 있는 대로, 100위까지 올라와 있는 글로벌 브랜드의 로고들이다. 로고들 자체가 무늬를 이루는 어떤 상품도 존재하듯이 세간에 유명하다는 것들은 모아놓았다. 도자기 감상이 그러하듯이, 돌아가면서 읽어보면, 브랜드 파워에 따라 배열된 로고로 구글, 애플, 코카콜라, 페이스북 등이 발견된다. 구글 회사에서 조사한 것 답게 정보관련 업체가 대세다. 유의정의 작품은 공기와 물을 마시듯이 정보를 흡수하는 시대를 반영하는 도자다. 그러나 그의 반영은 변형을 목표로 한다. 숭배되는 것을 다시금 숭배하려하지 않는다. 도자 자체에서 발생하는 빛이 아닌, 덧붙여진 빛, 즉 유난히 반짝거리는 소재를 많이 사용한 그의 작품은 우리를 비춰보게 하는 장치이다. 작가는 현 세태에 대한 지식인적인 불평불만을 토로하기 보다는 한술 더 뜨기 전략을 취한다. 물신이 유혹을 외양을 취한다면, 물신의 타파 역시 그에 버금가는 유혹의 장치가 필요하다.
냉소적 딴지걸기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유의정의 작품에서 2014년 소비자에게 가장 사랑받는 기업의 로고들은 박물관 속의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기능과 내용을 넘어선 광휘를 가진다. 그것들은 사용되거나 교환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숭배되기 위해서 거기에 있지만, 숭배에 어울리는 형식을 갖췄다고 볼 수는 없다. 가령 절제와 조화를 생각하지 않고, 인기 있는 것들을 모아 짜깁기하는 스타일은 싸구려 복제품, 즉 키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좋은 것들을 많이 모은 산물들은 숭배가 아닌 다시 읽기의 대상이 된다. 다양한 기호로 뒤덮인 그의 작품은 거듭되는 해석의 대상이다. 지금은 그것이 동시대 문화에 대한 비평으로 읽히지만, 후세에 어떤 용도를 가질지는 알 수 없다. 지시대상이나 의미로부터 떨어져 나온 기표들은 가볍지만, 작가는 뭔가 빼도 박도 못 할 것 같은, 반석 위에 새겨진 계율 같은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수천도의 열을 거쳐 먼지나 부스러기 같은 존재성을 환골탈태하는 도자기의 형성과정이 적용된 기표들은 묵직한 실체감이 있다.

2014년의 기록(1위 부터~100위 까지)The record of 2014(1-100)_detail2 _도자기, 수금,전사,브론즈_83x83x167cm_2014.

액체시대(Liquid Time) (detail) _ceramic,bronze, decal, gold luster_85x85x190cm_2014
기표가 실제가 되는 마술적 과정과 도자기의 제작과정을 일치시켰다는 점이 유의정의 독특한 점이다. 그는 가장 고풍스러운 양식인 도자기에 ‘동시대 문화형태’들을 담는다. 브랜드 로고이니만큼, 안에 담겨 있다기보다는 표면에 떠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표가 대상과 기의로부터 분리되어 자기들끼리 연결망을 이루며 또 다른 실체를 형성하듯이, 껍질이 몸통이 된 현실을 고풍스럽게 표현한다. 박물관에 안치된 보물들 말고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도자기들이 널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자기는 뭔가 귀한 것(특히 깨지기 쉬워서 더욱 귀한 것), 특히 동양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기표로 각인되어 있다. 그것은 아마도 도자기가 시간의 시험을 뛰어넘는 내구성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고대의 험난한 교역로를 통과하여 거래된 이국의 귀한 상품이었다는 것과 관련되는 듯하다. 오랜 세월을 견디는 도자의 특성상 그것은 일종의 시대적, 지역적 지표가 되어 박물관이나 미술사를 이루는 선적 계보를 형성했다. 그러나 필연이란 수많은 우연들이 조합된 결과이며, 변치 않는 진리가 아닌 가설에 머문다.
필연이라고 간주되는 선적 계보에는 단층처럼 불연속성을 편재한다. 이 오래된 사물은 도처에 구멍이 있지만 매끄러운 필연적 인과 고리로 완성된 추상적 체계의 지원을 받는다. 숨겨져 있던 단층에서 뭔가 발견되면 배열은 근본적으로 바뀐다. 작가는 도자기라는 일체화된 양식에 내재한 많은 시공간적 간극을 숨기지 않는다. 애초의 기원과 목적, 사실과 진실은 매번 재구성되는 가변적인 것일 뿐, 꼭 그래야 하는 법칙은 없다. 그가 작품소재로 삼았던 100위 안의 브랜드가 정치, 경제, 문화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순위이듯이 말이다. 자체의 시간성을 살던 물건이 유물의 지위를 차지하면 그 순간 시간의 흐름이 정지되고 영원화 된다. 유의정의 작품은 지금여기의 문화지형을 반영하는 타임캡슐 같은 면모를 가진다. 그의 말대로 ‘미래의 유물’이라 할만하다. 도자는 늘 과거적이라는 선입견을 불식시키려는 작가에게 미래의 유물은 동질적 몸체에 이질성을 최대한 받아들여 돌연변이종을 만드는 것이다.

무제 Untitled_도자기, 수금,전사,브론즈, 철, 레진_70x70x156_2014.

무제 Untitled_detail1_도자기, 수금,전사,브론즈, 철, 레진_70x70x156_2014.
새로움은 무에서 유의 창조가 아니라, 어떤 한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변형들로부터 비롯된다. 바다라는 아늑한 우주에서 육지로 첫발을 뗀 최초의 생물체, 안전한 나무에서 내려와 지상에 발을 디딘 최초의 동물들, 삶의 인프라가 잘 구축된 오랜 전통의 나라에서 새로운 대륙으로 이주를 결심한 프론티어들을 움직인 동기는 막연한 호기심이나 모험정신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거대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전위라는 개념이 생사를 넘나드는 진지한 군사용어에서 예술로 넘어왔을 때, ‘실험’이라는 미명의 무익한 유희적 속성만이 강조된 것은 유감이다. 순수함과 정신성의 결정체로 간주되는 도자기에 시시각각의 생존투쟁을 떠오르게 하는 상표로 도배를 한 유의정의 작품은 관객을 편안한 관조의 장이 아닌, 복잡한 현실을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운이 좋아서 유물로 남는다면 후세인들에게 2014년의 세계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디스토피아를 다룬 많은 SF 영화처럼, 어떤 대재앙이 닥친 이후의 먼 미래 시대에는 다시금 도자의 파편이 시대와 지역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보로 이루어진 인터페이스는 물리적으로는 지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도자기로 말하는 유의정의 문화비평에는 여러 경계들이 등장한다. 문화적, 장르적, 기법적, 재료적 차이를 섞는 판은 도자이다. 그에게 도자는 많을 것을 그럴듯하게 섞는 넉넉한 장이다. 0과 1로 이루어진 무게 자체가 없는 코드들의 조합이 산과 바다를 넘어 공중으로 날라 다니는 시대에, 도자기라는 물질적 저항감이 큰 방식으로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할까. 흙을 주물러 아담을 만들었다는 신화를 믿는다면, 신은 도예가였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듯이, 비물질의 시대일수록 물질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힘은 더욱 강할 수 있다는 역설이 적용될 법하다. 작가란 보이지 않는 것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자인 것이다. 기표가 가벼울수록 섞임은 더욱 용이하다. 혼성은 우리시대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혼성이 정보혁명에 의해 더 가속화된 것은 분명하다. 기복신앙에 전형적인 과장된 글자체로 ‘액체시대’라고 멋들어지게 새겨놓은 글자는 한순간도 고정됨 없이 흘러가는 근대의 특성을 압축한다. 그의 도자기는 그렇게 쉼 없이 흘러가는 액체화된 기표들을 일순간 담아 놓는 그릇이 된다.

2014년의 기록(1위 부터~100위 까지)The record of 2014(1-100) detail2_도자기, 수금,전사,브론즈_83x83x167cm_2014.

2014년의 기록(1위 부터~100위 까지)The record of 2014(1-100)_도자기, 수금,전사,브론즈_83x83x167cm_2014.
글로벌 브랜드 로고들 사이에도 단순한 순위 이상의 복잡한 연결망이 있다. 그것은 이전시대만큼 단단한 구조나 체계를 넘어 더 유연화 되었을 뿐이다. 물신은 이러한 체계화 속에서만 성공적으로 작동된다. 박물관 속의 사물이 보물이 되는 것은 분류 체계 덕분이다. 생물학에서 새로운 종이 발견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유의정의 작품이 취하는 가장 안정적인 삼각구도는 체계화와 그 정점에 있는 무엇들을 가리킨다. 모든 것에 열려있는 듯한 현대 미술역시, 미술계라는 체계의 힘에 의해 구조화되며, 매해 가격 순위가 공개되기도 한다. 그의 예전작품에는 유명 작품이나 상품이 만들어지는 체계와 실행구조를 메타적 비평의 차원에서 다룬 것이 있다. 요즘의 작품은 보다 집약된 형식으로 물신적 구조를 다룬다. 물신이 은유나 환유의 복잡한 비유를 거쳐서, 지금 있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마술적 개념이듯이, 유의정의 도자기에는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우글거린다. 자본주의 현실 그 자체를 이루는 브랜드 로고들 뿐 아니라, 오래전에 죽었다고 선언된 신도 있고, 신과 더불어 죽었다고 간주된 인간도 있다.
유의정의 작품이 신과 인간이 사라진 역사 이후(post-history)의 장면을 예시하기에, 그것들은 더욱 유령처럼 보인다. 도자기 꼭대기나 한가운데 배치된 그것들은, 잡다한 인간의 규칙을 초월하는 형이상학적 차원을 예시하는 것일까. 그러나 모든 것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신이나 자화상이기도 한 인간 역시 혼성화의 방식을 비껴가지는 못한다. 해골과 얼굴이, 서양의 두상과 자신의 얼굴이 교차되어 있는 그의 작품에는 삶과 죽음, 동과서, 과거와 현재, 선과 악 등과 같은 많은 경계들이 발견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경계는 넘기 위해서만 존재할 뿐이다. 이전작품을 보면 도자와 기계장치를 연결하는 등, 매체 간의 실험도 활발하며 이 전시에서도 브론즈, 쇠, 거울 등이 도자와 결합되어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반사면은 시대와 주체를 반영한다. 특히 도자기 몸통에 멋들어지게 새겨진 글자는 동양의 장식적 전통과 연결되면서도, 작품 속에 또 하나의 창을 띄운다. 작품이라는 창속의 또 다른 창은 일반적인 도자보다 더 많이 구워내는 과정이 만들어내는 중층적 층과 연결되면서, 다양한 방식의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출전; 클래이아크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