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의 시대, 변화무쌍한 이미지의 배합술

 

이선영(미술평론가)

 

첸 웬링의 조각 작품들은 대학에서 중국화를 전공한 작가의 경력이 드러나 있다. 조각과 함께 전시되는 회화작품들은 조각과 회화의 호환성을 잘 알려준다. 마치 무의식의 흐름을 포착한 듯 줄줄이 연결된 방식은 빠르게 그 영감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그리기의 선재성을 암시한다. 이미지가 3차원 상에 구현될 때 종이 안에만 갇혀있던 환상적인 그물망은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회화에서는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것도 3차원 상에서는 버거울 수 있고, 특히 스케일이 커진다면 대공사의 수준이 된다. 그리기가 바탕이 되어서 인지, 차원이 확대되어도 밀도는 보존된다. 부분들은 사실에 충실하지만 전체는 환상적이다. 구상적인 이미지들은 연결망 사이에 이야기를 만든다. 물론 연결망을 이루는 구성요소가 너무도 다양하여, 작가가 심어놓은 이야기와 관객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사뭇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동서고금의 문화적 산물들은 물론, 동물과 식물, 괴물 등이 공존한다. 

 

 

共同体 NO.1 Community NO.1 尺寸(HxLxW)242x442x138cm ͭBronze 铜着色Painted Bronze 2013--2014

 


共同体 NO.3 Community NO.3 尺寸(HxLxW)131x96x55cm 铜ͭBronze 铜着色Painted Bronze 2014

 

이러한 성격 때문에 그의 작품은 크지 않아도 스펙터클하고 기념비적이다. 그러나 수많은 이미지들이 단순히 무작위적이거나 장식적으로 나열된 것은 아니다. 코믹하며, 때로는 깊은 생각을 요구하는 도상들은 세태에 대한 풍자나 시사성과 연결되어 있다. 동물이 자주 호출되는 것은 풍자에 대한 욕구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인간에 내재한 동물성은 인간이 자연과 거리를 둠으로서 억압, 또는 순화되었지만 그 언제고 분출될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첸 웬링의 작품에서 인간의 동물적 속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가령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돼지는 결코 만족되지 않는 끝없는 욕망에 대한 비유이다. 반인반수의 도상은 인간의 동물적 속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는데, 그것은 반드시 비천한 면모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환상적인 괴물들의 참고서이자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의 맥락에서 보면, 이 혼종의 생명체는 신령함을 암시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것은 인간 이하나 인간 이상이지, 인간 그 자체는 아니다. 작가는 인간을 처음부터 자명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아닌 것들과 비유하면서 다가가야 하는 미지의 존재로 생각한다. 하나의 존재와 또 다른 존재가 이어지는 그물망은 이질적인 것들의 만남, 또는 충돌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작가는 이러한 이질적인 존재들의 만남을 ‘공동체’라고 호명한다. 색을 칠한 브론즈 작품 [Community NO.1](2013—2014)는 다양한 도상들을 반원형으로 배열했다. 월가의 황소, 자유의 여신상, 다비드 두상, 돼지, 풍선, 타이어, 도자기, 거북이 상 등등. 언뜻 왜 그것들이 한데 모여 있는지 수수께끼지만, 거꾸로 배열된 자유의 여신상을 황소가 들이받고, 타이어와 여신상 사이에 낀 다비드 상은 신경질적인 표정에서 감지되듯, 자유와 자본 간의 괴리감이나 고전문화와 현대문명간의 괴리감 등을 느낄 수 있다. 

 


 后天之景NO.2 尺寸(HxLxW)215x120 x 90 cm 铜Bronze (装置 Installation)2014

 

复活 Resurgence 64×71cm 水墨 ink on paper 2013

 

같은 종류가 연결된 작품에서 서사는 좀 더 명확하다. 가령 작은 코끼리들 위에 큰 코끼리가 긴 코로 매연 내뿜고 있는 듯한 작품 [this is not an elephant](2010)는 급격한 산업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작은 것과 큰 것 간의 계층적 갈등이나, 성장과 함께 하는 자연 파괴가 연상된다. 작품 [Community NO.3](2014)는 원시시대의 돌비너스를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발굴된 고대의 유물들이 둥글게 배치되어 있어 좀 더 통일감을 주지만, 그 역시 시공간적 간극은 매우 크다. 이러한 간극들을 넘어서 먼 것을 가까이 붙이고, 가까이 있던 것을 소원한 것으로 만드는 결정적 계기는 정보화나 세계 시장화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회화나 조각 같은 고전적 매체로 구현되어 있지만, 그 내용은 정보의 폭주시대를 살아가는 현대를 반영한다. 잔가지가 많이 뻗은 식물적 형상 역시 이질적인 것들의 연결을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지지대다. 

 

브론즈 작품 [后天之景 NO.2](2014)에서 나뭇가지들은 그 안팎에 다양한 짐승들을 배치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 나무 형상은 어떤 분류체계를 도해하는 계통수는 아니다. 나무 위에는 나무 위에 살지 않는 짐승들도 보이며, 나무와 동물의 스케일은 맞지 않다. 단독으로 서 있는 붉은 인체 시리즈는 중국하면 떠오르는 붉은 색을 입은 소년들로 이루어져 있다. 까까머리에 개구쟁이 같은, 활짝 웃거나 때로는 부끄러워하는 소년은 젊은 중국, 또는 어린 시절의 작가에 대한 바램이나 추억이 아닐까. 수묵화에서는 좀 더 빠른 속도감으로 만물이 연결된다. 바위 위에 뼈가 서있고, 그것이 나무 가지로 변하며, 가지 위에는 꽃과 과일 등이 열리는 작품 [Resurgence](2013)에서 광물과 동물, 식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된다. 그것은 동양화에서 동식물과 광물이 결합하는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 관념 산수가 어떤 확립되어 있는 범주들의 조합이라면, 그의 그림 또한 현대의 관념 산수일 것이다.

 

 

手稿 (9)

 

手稿 (4)

 

작품 [特立独行](2014)에서 헤드폰을 낀 물구나무 선 원숭이의 벌린 다리 사이에는 전화, 칼 꽂힌 수박, 파인애플, 바나나 등등이 줄줄이 연결되어 있다. 이어질 듯 끊어질 듯 서로 다른 사물들 간의 병렬은 그가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요소이다. 작품 [Community No.1](2014)에서는 깨진 표주박 같은 형태를 중심으로, 가운데 나선형 방향으로 만물이 연결된다. 바깥으로 갈수록 더욱 커지는 원에는 역사상 위대한 인물을 비롯하여 인류가 생산한 가치 있는 것들이 배열된다. 그것들은 보이지 않는 중심으로부터 바깥으로 폭발적으로 발산되고 있는 중이다 [COMMUNITY NO.2](2013)에서 상호적인 연결망은 종교적인 도상을 취하기도 한다. 종교라는 단어의 어원에 끊어진 것들을 잇다는 의미가 있듯이, 붓다의 광배를 이루는 것은 다양한 사물들의 연결망인 것이다. 연결망은 성스러운 영역 뿐 아니라, 세속에서도 일어나는데. 붓다 앞에 이것저것이 넝마처럼 연결된 말 형상위에 누운 사람 또한 종교적 차원 못지않은 연결망을 누린다. 

 

[手稿] 시리즈에도 연결은 계속되는데, 거북, 나무, 침대, 불두, 코끼리 등이 반원형으로 연결된 작품처럼 이질적인 것의 결합, 코끼리 두 마리의 긴 코가 서로 꼬여 있는 식으로 연결된 동질적인 것의 결합 등 그 양상은 다양하다. 자연적인 풍경 위에 관들이 줄줄이 연결되는 등 자연과 인공의 결합도 보인다. 한 개체 안에 다양한 존재태가 결합된 괴물, 최초의 출발로부터 폭발적으로 발산 되는 개체들, 해골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삶과 죽음을 공존하게 하는 등, 첸 웬링의 이미지 배합 술은 무한하다. 연결망을 이루는 많은 요소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동물이다. 돼지, 코끼리, 원숭이 등 대략 알아볼 수 있는 친근한 종, 그리고 종을 알 수 없는 애매한 괴물 등은 풍자와 시사성이 강한 그의 작품 성향을 생각할 때, 그것은 인간이라는 동질성을 이루는 이질성을 나타낸다. 인간으로부터 동물성을 배제하려는 이성적인 문명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으며, 특히 예술작품을 통해 동물은 이질적인 모습으로 복귀하곤 한다. 

 


共同体No.1 Community No.1尺寸(LxW)58x58cm 2014

 


公共体之二COMMUNITY NO.2平面作品 尺寸66x48cm 2013

 

작품 제목에 ‘공동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첸 웬링의 작품에서 ‘인간과 동물은 잡종공동체’(도미니크 르스텔)가 되어, ‘돌연변이적인 가치체계와 양립할 수 있는 방식’(펠릭스 가타리)으로 공(共)진화하고 있다. 그것은 가장 원초적인 방식과도 연결될 수 있는 현대의 병렬, 공존, 혼합, 변형을 대변하는 도상들이다. 작가는 우주와 만물이 생겨나는 원초적 카오스의 단계를 표현하는데, 여기에서 이것과 저것이 조합 되곤 하며, 진화를 통해 다른 개체가 되었어도 현대 특유의 공간적 압축 덕분에 다시금 이질적인 것들이 조우하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그의 작품에서 자주 발견되는 혼종이나 변종은 쇠퇴나 퇴화의 징후보다는 더 증폭된 에너지를 전달한다. 바슐라르가 동물변신을 곧잘 묘사했던 로트레아몽에 대해 비평했듯이, ‘동물화 된 삶은 주관적인 충동들의 풍부성과 변모성의 표상’으로, ‘존재를 변형시키고 변신을 결정하는 것을 바로 과도한 삶의 의지’이다. 

 

그것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존재를 상징하며, 변신들 통해 막힌 통로를 뚫기도 하는 것이다. 생태계 뿐 아니라, 인간의 상징적 우주 속에서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특정한 요소들이 새롭고 다른 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 첸 웬링의 작품에서 변화는 추상적 초월이 아니라, 구체적 존재태가 추적된다. 회화에서나 조각에서나 여러 존재태들이 둥글게 배열된 모습이 발견되며, 존재들 간의 연결망 역시 뿌리줄기처럼 비(非)계층적 구조가 특징이다. 그의 작품에서 이상적인 존재방식은 계층적 질서의 타파이다. 작품 [手稿 2]에서 신랄하게 풍자하듯이, 첸 웬링에게 계층적 질서란 타자의 죽음을 딛고 서는 불안정한 균형일 뿐이다. 이러한 비전은 월드 와이드 웹(WWW)으로 대변되는 동시대성과 연결된다. 알렉스 라이트는 [분류의 역사]에서, 상위 집단이 포함된 체계인 계층구조와 달리, 네트워크는 밑에서부터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네트워크와 계층구조 간에는 근본적인 긴장 관계가 있다. 

 

 手稿 (2)

 

웹상에서 하이퍼링크는 계층구조를 타파하는 경향이 있다. [분류의 역사]에 의하면, 개인들은 가치적인 노드(node) 역할을 하며, 서로의 관계를 결정하고 쌓아가고 하나의 집단으로 융합한다. 네트워크에는 꼭대기란 것이 없다. 각 노드는 동등하며 스스로 방향을 결정한다. 민주주의는 일종의 네트워크이다. 한 무리의 새들이나 월드 와이드 웹 역시 네트워크이다. 스스로 결정하는 생물학적 계층은 상호작용하면서 더 고차원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 네트워크는 다시 더 복잡한 생물학적 계층구조로 합쳐진다. 생명은 이와 같은 계층구조와 네트워크의 상승작용을 통해 진화한다. 첸 웬링의 작품은 [분류의 역사]에서 언급된 정보처럼, 의미를 만들기 위해 데이터를 나란히 배열한다. 그렇게 해서 의미는 고정된 것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생성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인공지능의 정점에 있는 정보망과 자연계, 그리고 예술의 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려준다. 

 

출전; 표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