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의 난독증과 난청을 이겨내는 한 방식에 대해
이선영(미술평론가)
김종길의 글 [임승천의 신형상조각을 읽는 세 가지 키워드]는 전시 작품에 대한 분석 뿐 아니라, 아직은 젊다고 할 임승천 작가의 한국미술사에서의 위치까지 가늠해본 비평문이다. 그 동안 메타 비평이라는 코너에 걸맞게, 상대 비평문을 비판 일변도로 본 메타 비평들이 많아서 나는 좀 다른 분위기로 써보려고 한다. 상대방을 무차별적으로 비판하는 것에서 야기될 카타르시스보다는, 미완의 과제가 야기할 스트레스를 택하겠다. [퍼블릭 아트]의 이 ‘메타비평’ 란을 다시 메타 비평을 해보자면, 칭찬은 두루뭉술해도 상관없지만 부정적 비판은 사실에 근거해야 하기 때문에 더 신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판을 위한 비판이 종종 발견되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었다. 비판을 해야겠다는 강박관념과 상대를 폄하함으로서 자신이 돋보이려는 어설픈 욕망이 만났을 때, 비평만큼이나 메타비평 역시 주체의 단순한 표현이나 표명을 위한 도구에 머물고 만다. 난독증과 난청은 원활한 소통을 막는 미술계를 지배하는 중요한 장애로, 평문 뿐 아니라 이런 저런 토론회나 세미나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작가든 비평가든 기획자든 상대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고, 작품(텍스트)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는다.
그러는 와중에 서로 겉돌기만 하는 말, 말, 말들은 비평의 부재와 불필요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분명한 것은, 좋은 작품만큼이나 좋은 비평은 나오기가 힘들고 드물다는 것이다. 그래도 담론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마이크가 돌아온 김에 쉽지 않은 대화를 청해본다. 김종길의 평문에 쉽게 비판적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나 또한 그처럼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작가 임승천을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종길의 비평문에는 그동안 내가 관심을 가져온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 꽤 많이 드러나 있다는 점도 꼬리를 내리게 만든다. 가령 임승천의 작품을 ‘신형상 조각’으로 분류하면서 그 계보에 드는 한국의 조각가인 심정수, 김광진, 류인, 구본주를 지적할 뿐 아니라, 임승천과 협업하고 지원했던 천성명과 윤돈휘를 실명 거론함으로서, 한 작가의 전시에 대한 리뷰를 넘어서 작가가 서있는 미술사적 자리를 가늠하게 한다. 그것은 비평이 가질 수 있는 중요한 대목으로, 비평은 당장의 현장을 다루고, 역사적 평가는 먼 후일 미술사가에 맡긴다는 이상한 분업을 깨는 것이다.
당대의 비평가들이 띄운 작가들 중 정말 몇몇만 미술사에 등재되어 거론되겠지만, 최초의 증인이 설득력 있게 비평적 담론을 펼친다면 해당 작가는 말 그대로 중요한 작가가 되는 것이다. 니체나 미셀 푸코의 주장 이래, 누구도 담론과 권력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증성과 객관성을 가장한 외부자적 시선은 미술담론에 극히 일부분만 기여를 할 뿐이다. 그것은 엄밀히 따지면 예술계에서 가능하지 않은 관점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과거에 조각과를 다니기도 했던 김종길이라는 필자가 획득하고 있는 내부자적 시선은 임승천의 작품에 대한 내재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김종길이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심하게 꾸중하는(?) 현장을 종종 봐온 나로서는 이 우호적 평문이 다소간 어리둥절하다. ‘이다’(사실)와 ‘이어야 한다’(당위) 사이에서, 당위를 열정적으로 강조하는 평자는 드물다는 점에서, 김종길의 평론활동은 독특한 면이 있었다. 아직 ‘이다’에만 머물고 있는 나로서는 누군가 힘 있는 목소리로 ‘이어야 한다’는 점을 외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젊은 작가에게 짜다면 짜다고 할 비평가가 한 작가에 대해서 좋은 평가가 집중된 이유는 뭘까? 그것은 일차적으로 작가에 대한 충분히 진행된 연구와 그것을 펼칠 정도의 적절한 지면이 제공되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는 임승천의 조각을 세 가지 키워드--1. 서사구조의 신형상조각 시리즈, 2. 드라마트루기(Drama turgy)의 신형상조각론, 3. 공간연출의 상징과 의미들--로 읽는다. 대부분의 미술 잡지는 본격 비평문에 지면을 크게 할애하지 않는다. 거의 단신기사와 다를 바 없는 200자 원고지 6-7매 분량의 ‘비평문’이 청탁되는 예도 비일비재하다. 작가에 대한 이해가 좋은 평문을 낳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작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하다 보면 이해하지 못할 사항은 없다. 쓰기는 이해의 결과이기 보다는, 이해의 선행조건이 된다. 그래서 쓰는 기회를 많이 가지는 이가 현상에 대한 판단도 정확할 수 있다. 전문 영역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평가에게 넓은 지면이 종종 제공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충만하게 채우기는 쉽지 않다.
결국 해당 작가에 대한 글을 쓰는 이가 그 작가, 또는 작품에 대한 깊은 감흥이나 적극적 추천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비평문은 해당 작가에 대한 글인 동시에 평자 자신의 지향점이 겹쳐지게 된다. 이 대목에서 주의할 점은, 작품과 평문의 미학적 수렴점이지, 평자가 어떤 작가, 또는 작품을 마이크로 삼아서 자기의 미학적 장광설을 늘어놓는 식의 또 다른 부정적 사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난 평론이 현대의 분업사회에 맞게 좀 더 전문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미술계 구성원 모두가 구사하는 담론들이 ‘평론’처럼 씌여져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어떤 메시지가 제공해야할 최소한의 6하 원칙이 없는 ‘평문’들이 많다.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그 긴 글들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 전시회에 어떤 작품들이 나왔는지, 전시부제는 무엇인지, 작가는 그것에 대해 뭐라 말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그리고 결정적인 정보가 필자 수준에서는 충분히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평문에는 딴소리만 늘어놔서 그다음 필자에게 전혀 참고가 되지 않는다. 해당 전시를 누구나 다 봤을 거라고 가정하는 듯한 글쓰기는 처음부터 장벽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다. 꼬리를 물고 계속 해서 이어질 대화의 시작이 아니라, 자기 선에서 딱 끊어버리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가 다루고 있는 작품/작가/현상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게 만드는 악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작품을 위한 통로가 아니라, 작품 앞에 놓인 방해물이다. 중요한 것은 제멋대로의 썰 풀기가 아니라, 필자와 그가 다루고 있는 것과의 깊은 교감이다. 이런 맥락과 비교하자면, 김종길의 평문은 필자와 작가의 깊은 교감에 바탕하는 드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평문은 몇몇 조각가들을 통해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는 ‘신형상 조각’에 대한 계보학이기도 하고, 그것이 가지는 미학적, 미술사적 의미를 논구하는 장이기도 하다. 그것은 임승천 전에 대한 개별적인 리뷰임과 동시에,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려 나간다. 필자가 깊이 개입해서 쓰지만, 사견이나 취향에 머물지 않는 대상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필자든 작가든 그런 기회가 많을수록 그는 자신의 외적인 위치가 아니라, 그 내적인 본질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비평가는 그래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자기 마음에 드는, 또는 자기가 쓸 수 있는 대상만을 다뤄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당위적으로도 맞지 않다. 필자는 자기에게 다가오는 모든 현상들에 대한 의견을 자기방식대로 피력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주체로의 함몰도 대상으로의 함몰도 아닌, 주체와 타자와의 적절한 거리감 속에서 행해지는 무한한 유희가 비평이다. 그래서 비평은 때로 작품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어쨌든 한 개별적인 사안을--한 달간에도 수많은 전시가 열리고 그에 대한 담론 또한 많이 생산 된다--다루면서도 필자에게 중요하며, 그렇게 피력된 산물이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고 이해되어 보편적인 담론으로 고양될 수 있는 지점은 모든 비평적 담론들이 노리는 바일 것이다. 김종길의 평문은 개별과 보편이 만난 드문 예로 보이며, 그래서 짧다면 짧고 길 다면 긴 평문을 충만하게 채울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임승천 전에 대한 리뷰는 김종길이 지지하는 ‘신형상 조각’이라는 맥락에 맞춰 읽혀지고 있다.
이 대목과 관련된 그의 평문 일부를 읽어보자. ‘신의 창조물로서의 인체를 탐구하고 재현하는데 무게를 두었던 구상조각과 달리, 시대와 현실, 역사의 능동적 주체로서 억압·고난·저항·절망·분노·화해 등의 인간을 탐색한 형상조각은 1980년대의 신구상이었다. 심정수, 김광진, 류인, 구본주를 비롯한 리얼리즘 조각가들에서 형상조각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신형상 조각은 리얼리즘 형상조각의 미학에 마술적 판타지를 뒤섞어 미학적 상상력과 조형적 형상실험, 현실비판의 미의식을 확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때때로 우화적이고 음울하며, 예지적이고 키치적이다.’ 글만으로는 다소간 명확치 않지만, 임승천의 작품을 예로 놓고 보면 대충 이해가 간다. 추상적 담론과 구체적 작품이 서로를 도운 경우라 하겠다. 특히 그 글이 발표된 10월이 비엔날레의 계절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10월호의 미술잡지들을 채운 화려한 도판들과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담론들 사이에서 ‘신형상 조각’으로 명명될 수 있는 그 흐름이 현재의 주류가 아님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신형상 조각’은 당연한 흐름이 아니라, 그것에 관심을 가진 작가들과 평자들이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잠재적인 ‘이즘’으로 남아있으며, 김종길의 글은 한 작가의 전시 평을 계기로 자신이 해야 할 바를 나름대로 개진한 것이다. 그렇다고 김종길의 평문이 미술사적인 큰 범주나 일반론에만 치중한 것은 아니다. 그는 ‘신형상 조각’이라는 맥락 속에서 임승천이 가지는 변별점을, 장편서사를 더했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이번 전시 뿐 아니라 2007년 서울 모로 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 ‘정지된 또는 부유하는’의 작품부터 언급하면서, ‘그의 신형상 조각은 8년 동안 총 5회에 걸쳐 제작된 단일 서사구조의 형상조각이었던 것’을 지적한다. 미술이 미술다워야할 것을 강조하는 어떤 미학적 흐름은 서사를 억압하곤 했다. 그러나 임승천의 작품에 면면히 흐르는 줄기는 서사, 그것도 몇 년에 걸쳐 이어진 장편서사라는 점이다. 조형예술에서 서사적 요소는 단점이자 장점이다. 그것이 단점인 이유는 그러한 이야기 미술이 과연 ‘컨템포러리 아트’인가? 하는 의구심에 있을 것이고, 장점인 이유는 이제 서사적 능력이란 소수만이 가질 수 있는 재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만 보고 즉시 파악하는데만 익숙해진 현대인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두가 어려워하는 문제이니 없었던 일로 한다. 현대철학이나 심리학에서도 말해지듯이, 현대인의 정체성은 정신분열증이라 할 만하다. 근대의 편집증은 또 다른 증상으로 전이되었을 뿐, 치유되지 않았다. 머리와 마음, 손과 몸이 따로 놀아야 잘 살 수 있으며, 행동과 판단을 굼뜨게 할 수 있는 오래 곱씹는 사유방식은 억압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 우주에 비해 아무리 짧은 시간을 살고 있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사는 필요하다. 임승천은 형상조각을 통해 그 서사를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다. 물론 전시장이나 스튜디오 등에서 임승천을 접한 극히 짧은 나의 경험에 의한다면, 그는 결코 말을 잘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래서 작품으로 말하기가 더욱 절박했던 이라 생각된다. 임승천의 서사는 미시적 차원에서 거시적 차원에 두루 분포되어 있다. 가령 ‘순환’으로 붙여진 4전시실에서의 한 작품은 현대자본주의의 축약판이라 할 수 있는 작은 무대로, 현 시대를 읽는 작가의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작가는 서커스 천막 안 4단 케익 같은 구조를 조트로프(Zoetrope)처럼 돌려가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천막 안의 구조물은 시스템의 지배자, 관리자, 향유자, 파괴자로 배열되면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현대사회의 모순을 이루는 몸통인 불평등한 계층구조가 나타나 있지만, 이전시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처럼 양극화, 결정화되어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벽을 치는 노동자는 시스템의 최 말단 희생자이자 그에 도전하는 세력임을 작가는 분명히 보여준다. 김종길은 그 평문을 통해, 중층적 비유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결론이 모호한 것만은 아닌 한 작가에 대한 지지와 이해를 통해, 그가 앞으로 비중을 두고 가시화하고 싶은 경향을 분명히 한다. 현대사회에서 억압되고 왜곡된 서사는 길고 힘 있게 흐르는 강처럼 복구되어야 한다는 평자의 신념은 자신의 비평적 비전에도 해당될 것이다. 현실적 맥락과 글쓰기의 밀도를 가능하게 해줄, 그리고 그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행복한 만남들이 자주 성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전; 퍼블릭 아트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