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처럼 유동하는 구조

2015 현장제작설치 인터플레이 (4.14 —8.2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선영(미술평론가)

    

브라질, 프랑스, 호주, 미국, 일본 등 다국적 출신의 작가가 참여한 ‘인터플레이’ 전은 각기 주어진 전시공간에 현장 제작 설치를 선보였다. 설치는 회화나 조각 전시와 달리, 작품 하나하나를 대면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연출된 공간 한가운데에 관객이 밀어 넣어진다. 주체/객체 간의 거리를 둔 대면에 둔 반성적 체험과 달리, 일종의 무대나 장(場)이 되어서, 몰입하게 한다. 퍼포먼스, 최면, 잠, 꿈과 같은 것이 전형적인 몰입의 체험이다. 몰입의 세계 속에서 육체와 무의식의 감각은 더욱 활성화된다. 관객의 동 선에 따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체험을 중시하는 설치는 어디선가 완성된 작품을 전시장 벽면에 걸거나 좌대위에 놓는 문제가 아니라, 전체 환경을 조율하는데 방점이 찍힌다. 여기에서 ‘사이’는 새로운 것이 발생하는 주요한 곳이다. 설치작품에서 공간은 중성적 배경이 될 수 없다. 그것이 특정 장소가 아니라, 화이트 큐브에서 이루어지는 설치라 할지라도 말이다. 

    

역사적 선례로는, 원시시대의 깊은 동굴이나 중세시대의 성당, 또는 우리의 옛 성황당 같은 장소처럼, 제의를 위해 만들어진 총체적 공간이 현대의 설치예술과 좀 더 가까울 것이다. 기계 복제를 통해 예술의 예배가치가 전시가치로 변하고 아우라가 사라졌다는 미학적으로 중요한 지적이 있다. 그러나 아우라의 포기는 예술로서는 너무나 큰 상실이었기에 그것을 복구하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근대의 분업화로 분열된 감성을 다시 이어 줘야할 예술은 19세기 말의 상징주의(Symbolism) 이래, 이전에 종교가 수행했던 역할까지 감당하고 있다고 할 때, 설치는 관객의 오감을 일깨우려는 또 하나의 필연으로 다가온다. 설치는 또한 영구적인 것이 있을 수 없다는 현대적 자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주어진 한 시공간 안에 관객의 감성을 최대한 포화시킬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전시 마지막 날 철수한다. 작품은 기록으로 남으며, 같은 장소가 아닌 이상 똑같이 구현되기는 힘들다. 설치작품은 규모가 큰 대신에 잠정적이고 과정적이다. 

 

    

특정 시공간에서의 맞춤형 전시

    

 


아바프 / 엘리 수드브라크(.b.1968, 브라질), 크리스토프 아메이드-피아송(b.1973, 프랑스) 아바프 인스톨레이션 , 가변설치, 월페이퍼 10점, 영상, 네온, 영상: 안테스 불가르 아고라 피노, 15분마다 반복, 네온: 스퀘어 리본스, 2015년.

 

설치는 특정한 시공간에 맞춤형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으로 남는다. 현대미술에서 설치의 위상은 커져서 그림조차도 설치방식으로 배열되곤 한다. 배열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조합될 수 있다. 한 작품이라면 규모를 통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 가령 스크린 스케일로 커져 일종의 환경으로 체험되는 이미지가 그렇다. 그것의 고전적인 예는 연못처럼 둥글게 설치한 모네의 그림이다. 전체 공간과 같이 호흡하면서 총체적 체험을 겨냥하는 설치는 한두 가지 요소보다는 전체적 분위기를 연출하려 한다. ‘아우라’하면 고풍스러움만을 떠올리지만, 그것은 당대 최고의 기술적 혁신이 집약된 결과이기도 하다. 가령 두터운 돌 벽 대신에 빛이 쏟아지도록 설계된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같은 구조가 그렇다. 동영상이 투사되는 벽면을 비롯하여 전체 공간을 다채로운 패턴으로 뒤덮은 아바프의 작품이나 컬러 형광등을 회전시켜 공간 안에 다양한 빛을 합성하게 한 로스 매닝의 작품은 현대의 진보된 기술을 활용하여 화려하면서도 명상적인,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2002년 설립되어 이후 여러 작가가 참여한 아바프는 그동안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협업을 진행해왔다. 유명 가수나 디자이너들과의 교류는 화려한 스펙터클에 기반 한 대중문화의 어법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스타디움, 스크린, 공연장, 놀이공원 등 대중문화는 관객이자 소비자의 오감에 호소한다. 광고로 뒤덮인 현대의 환경 자체가 심미적이다. 영상과 네온, 월 페이퍼 등으로 도배를 한 전시장 안팎의 공간은 무아경적 체험을 낳는다. 사방에서 동시에 쇄도하는 갖가지 시각효과에 관객은 그림자로 끼어든다. 15분마다 반복되는 영상의 패턴은 뭔가가 끝없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낄 뿐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 그 복잡한 패턴들은 바닥이나 벽장식처럼 어떠한 단위들의 이합집산에 의한 것이다. 고대 원자론자들의 가설처럼, 허공을 떠도는 입자들의 조합은 우리 환경이 어떻게 구성되고 해체되고 다시 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벽 한 면은 가상현실 이미지로 채워지고 나머지 벽면에는 가상현실 이미지가 3차원 공간에 안착된 모습이다. 그것은 끝없이 출렁이며 순환하는 표면의 세계이다.   

    




로스 매닝(b.1978, 호주),스펙트라 (더블) , 400x400m 2개 설치 , 컬러형광등, 모터 팬, 배전반, 전선, 나무, 밧줄, 2015년.

 

모터에 매달린 색색의 형광등이 돌아가는 로스 매닝의 공간은 관객으로 하여금 빛과 소리, 움직임이라는 기본적 자극원에 반응하게 한다. 설치라는 형식은 4개의 벽을 넘어서 천정이나 바닥 또한 활성화한다. 작품 [스펙트라]는 R(레드)G(그린)B(블루)라는 기본 빛이 합쳐져 하얀 빛을 내는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기본요소들의 확정과 그 요소들이 어떻게 조합되어 작용하는가를 살피는 것은 근대 이후 가장 강력한 패러다임이 된 과학의 실험적 방식이다. 그러한 기본 요소와 움직임이 있는 키네틱 설치작품은 형광등 옆에 설치된 선풍기를 따라 무작위로 회전하면서 빛을 합성한다. 그것은 일종의 움직이는 조명으로, 그 아래의 빈 공간을 채운다. 지니 서와 오마키 신지의 작품은 아바프와 로스 매닝의 작품과 달리 색이 최소화된다. 기계나 기계 소리도 없다. 구름 같은 형태를 공중에 띄워놓은 것이나 현대적으로 연출된 산수(山水)를 거니는 느낌으로 공간을 여백화 한다는 점은 동양적이다. 동양화에는 관념적으로나마 소요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한국과 일본의 작가는 전시공간을 산과 구름이 있는 길로 연출했다. 

 

   

산과 구름이 있는 길

 

   




 




지니 서(b.1963, 미국), 유선사(遊仙詞), 가변설치: 빨대구름 25 x 5 m, 장판지 200장, 장판지200장, 플라스틱 빨대, 실리콘 줄, 2014 ~ 2015년.

 

지니 서의 작품 [유선사(遊仙詞)]는 15세기 강희안의 산수화와 16세기 여성 시인인 허난설헌의 시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꿈과 환상을 넘나드는 도교적 이상향을 만든 것은 플라스틱 빨대와 장판지라는 예상 밖의 재료이다. 지니 서의 작품에서 흔해빠진 일회용품은 저 멀리 떠 있는 구름으로, 바닥 장식재는 산이 되었다. 작가는 하얀 빨대를 하나의 구조적 단위로 삼아 거대한 그물망으로 엮어서 공중에 늘어 뜨려 구름같이 보이게 했다. 다른 장소에서 설치될 때는 다른 곡면으로 드리워질 것이다. 그것은 구름처럼 유연한 구조이다. 산을 만든 것은 장판지로 사용되는 한지를 말아서 쌓았다. 길 양편에 구축된 기하학적 형상은 산이면서도 빌딩숲처럼 보인다. 산이나 구름은 여백을 가르는 동양화 붓질의 자연스런 움직임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조립되었지만, 그 효과는 비슷하다. 구축의 방식을 통해 동양화나 시의 시각적, 관념적 요소들이 실제공간 속에서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오마키 신지의 작품은 백색 끈들을 아래로 늘어뜨려 관객들로 하여금 그것을 헤치고 나아가게 한다. 높은 산 위에서는 구름도 안개처럼 경험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의 작품은 마치 구름을 헤치고 나아가는 듯한 체험을 야기한다. 몸과 얼굴에 와 닿는 하얀 끈들을 통과하면 하얀 빛으로 충만한 공간이 나온다.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통과의 체험은 불안감도 주지만 그렇게 쌓인 긴장감을 해소하는 장 또한 마련한다. 구름이 일련의 화학식으로 환원될 수 있는 원소들의 결합이듯, 작품 [리미널 에어 –디센드-]는 일본 전통 매듭의 백색 끈을 일정하게 늘어뜨린 방식으로 구조화된다. 그 아래는 구름의 경계면처럼 여러 층위의 곡선을 이룬다. 지니 서의 구름이나 산처럼, 오마키 신지의 작품 역시 구축이라는 방식을 통해 동양적 세계관을 실제 공간에 구현한다. 설치라는 동시대 예술의 보편문법을 활용하는 네 개의 작품이 두 개씩 짝을 이루면서 서로 다른 체험을 낳는다. 기계를 매개로 색과 빛을 적극 활용한 아바프와 로스 매닝이 작품이 현대 도시와 조응하는 환경을 연출한다면, 지니 서와 오마키 신지의 작품은 자연(또는 자연적 과정)에 호소한다. 

   




 




오마키 신지(b.1971, 일본), 리미널 에어 –디센드-(공기층 하강), 가변설치, 나일론 실, 형광등, 유리, 나무,  2006 ~ 15년.

 

전자가 다양한 볼거리에 포화되어 있으면서도 더 재미있는 자극을 원하는 현대인의 욕망에 부응한다면, 후자는 인간과 더욱 멀어진 자연을 우리 앞으로 당겨온다. 그러나 구성/해체라는 어법을 활용하는 점은 같다. 구성 요소의 확정과 조합이라는 방식은 컴퓨터를 사용하든 실을 사용하든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작품은 서양적이든 동양적이든, 자연에서 추상으로, 추상에서 구성(Constructivism)/구체(Concret Art)로의 여정, 그리고 만물이 코드화되어 원자처럼 이합 집산하는 정보화 시대를 통과하는 체험은 공통적이다. 발전인지 전개인지 알 수 없는 그 역사적 단계들 속에서 예술의 지양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예술의 확장을 예술의 소멸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만물의 상품화가 진행되면서 모든 것이 심미적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예술은 예술품이라는 특정한 대상을 넘어 어떤 체험으로 향유되고 있으며, 설치예술은 그러한 요구에 부응한다. 이 전시는 첨단예술이 이전의 방식을 완전히 소거하는 것이 아니라, 압축적으로 반복하면서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예시한다. 

  

4개의 작품에서 감지되는 이전 세기의 구성/구체예술과 다른 특징은, 지상으로부터 붕 뜬 듯한 느낌이다. 그것은 어떤 기후나 대기와도 같이 우리를 감싼다. 인간과 사물을 넘어서, 사물과 사물이 대화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해지는 시대에, 수많은 기호들이 통과할 공중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자원으로 떠올랐다. 그곳은 더 이상 공(空)이나 허(虛)가 아니다. 고대 원자론자들이 중시했듯이 변화와 움직임이 일어나는 중요한 장소이다. 바닥까지 정신없는 패턴을 깔아놓은 아바프, 천정 위에 메달린 로스 매닝, 구름이라는 모델을 생각하게 하는 지니 서와 오마키 신지의 작품은 관객을 공중에 걸쳐 놓는다. 그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구성/해체적 방식이 현대 언어학이 제시하듯, 어떤 토대와 중심도 없는 차이의 체계라는 것에서 온다, 지시대상과 의미가 아니라, 기표에서 기표로 전전할 뿐인 이 연쇄의 체계에서는 시작도 끝도 없는 자기지시성이 이전의 존재와 실체, 그리고 본질을 대신한다. 설치예술에서 캔버스 틀같이 이전의 균형 잡힌 체계는 끝없는 미끄러짐이 일어나는 장으로 해소된다, 

 

출전; 국립현대미술관 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