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기적 풍경
이선영(미술평론가)
이상용이 최근에 그리고 있는 [익숙함 그리고 낯선] 시리즈는 토건국가의 일상이 된 공사장 풍경이다. 도시 전체가 새로 만들어지는 큰 공사나 도심 재개발 같은 큰 공사 뿐 아니라, 이전에 중산층을 이루고 있던 자영업자들이 붕괴하면서, 우리 주변에서는 작은 규모의 공사도 끝없이 벌어진다. 늘 다니던 길목의 어떤 가게가 다시 꾸며지고 있는데, 뜯겨지고 있는 이전 가게가 어떤 가게였는지도 기억하지 못 할 만큼 빠르게 변화한다. 그가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사장화 된 생태계이지만, 예술에는 낯설게 하기라는 장치가 내장되어 있기에 그의 작품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서울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 살았던 이상용은 크고 작은 재개발이 끝없이 벌어졌던 동네에서 공사장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 그래서 한국사회의 단면을 상징하는 공사장 풍경이 단순한 비판의 대상으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사실, 비판조차도 완전한 부정이나 반대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끌리는 면이 있기에 거부감도 있는 것이다.

익숙함 그리고 낯선1. 2012.oil on canvas,80 x 280cm

익숙함 그리고 낯선2. 2012.oil on canvas,130.3x162.2cm

익숙함 그리고 낯선3. 2012.oil on canvas,130.3x162.2cm
자신이 반대하는 것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는 풍자적 방식은 자체 추동력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어릴 때의 놀이터였던 공사장은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유년의 기억은 몸과 무의식에 깊이 스며들어 억압이나 자기 검열을 뚫고 나오며, 예술은 잊혀지고 억압된 것이 회귀하는 주요한 무대가 된다. 그에게 공사장은 장난감이 될 만 한 물건들을 몰래 숨겨 놓고 놀았던 자기만의 공간이었다. 기존의 것은 허물어지고, 새로운 것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을 때, 이 과도적 공간을 점유하는 아이의 놀이는 예술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허락되지 않는 위험한 장소에서 금기를 위반하는 행위들은 아이와 예술가에게 매력적인 것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20대 후반의 작가는 여전히 공사장에서 놀고 있는 셈이다. 이상용에게 익숙함 뒤에 붙은 ‘낯선’은 예술의 소격효과 뿐 아니라, 성인이 되면서 점차 깨닫게 된 사회적 진실에 있었다. 토목공사를 비롯하여, 대규모 구조조정이란 모두를 위해서라는 대의로 시작되지만, 그 끝은 그렇지 않다. 구조는 단지 구조에서 파생되는 것은 아니다.
구조는 힘에 의해 변화하며, 힘은 구조를 통해 관철된다. 구조에 영향을 주는 힘은 지배층의, 또는 그 반대편의 힘일 수도 있지만, 성장이라는 한 목표만을 보고 달려온 우리 사회가 구조 조정의 열매를 얼마큼 공평하게 분배했는가의 문제를 생각하면, 유년시절의 놀이터는 어느 순간 강자와 약자로 나뉜 삶의 잔인한 진실이 드러나는 장소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적인 기억과 사회적 각성 간에 벌어진 차이는 익숙함에서 낯섦으로의 전도를 야기했다. 작가는 이러한 사회적 각성에 자극을 준 책으로,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의 예를 든다. 일사불란한 병영문화를 떠올리는 아파트 공화국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제도 예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우리 일상의 한켠을 차지하는 존재감 없는 기념비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장식물은 건축적 구조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사장을 그리기에 건축적 구조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이상용의 작품에서 구조를 해체의 전 단계, 또는 해체의 또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익숙함 그리고 낯선5. 2012.oil on canvas,90.9x116.7cm

익숙함 그리고 낯선9. 2013.oil on canvas,130x97cm

익숙함 그리고 낯선11. 2013.oil on canvas,130.3x162.2cm
기하학적으로 각을 잘 맞추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서있을 수조차 없는 건축을 소재로 한 그의 회화는 과정을 강조한다. 그리는 대상 뿐 아니라 방법이 그리는 과정의 특징을 살린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단순히 공사장을 재현한 풍경화에 머물지 않는다. 이상용은 공사가 시작되는 단계나 완성된 단계가 아니라, 중간을 그린다. 그래서 건축되고 있는지 파괴되고 있는지 불확실하며 그 기능과 용도, 그리고 장소마저도 불확실하다. 또한 그 구조를 만들고 있는 인간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노톤으로 칠해진 그의 공사장 그림은 묵시록적으로 다가온다. 생생한 현재나 과장된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 희미하게 퇴색된 과거의 모습처럼 말이다. 실제로 남미나 아프리카 같이 자본의 사각 지대에 있는 국가들에서는 종종 건물이 올라가다 멈춘 현장도 꽤 발견된다. 자본주의 한복판에서도 서로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방치된 공사 현장이 있을 수 있다. 공사란 자연이라는 덩어리에 수직 수평의 인공적 층들을 부여함으로서 경제적 유통망에 투입하는 과정이다.
자연도 단지 자원이기 이전에 구조라는 것이 있지만, 인간에게 밝혀진 자연의 구조는 그 이전과 달리 인공화(=상품화)의 회로에 투입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용의 그림에서 두터운 물감으로 칠해지고 줄줄 흘러내리며, 때로 스퀴즈로 밀어낸 층은 투명하고 날렵한 구조를 다시 불투명하고 두툼한 덩어리로 회귀시키려한다. 그의 작품에서 구조는 헐거워지며 임박한 변형을 예기한다. 캔버스에 빨리 스쳐지나간 붓질만이 빨리 건설되고 빨리 파괴되는 건물의 순환주기와 일치될 뿐이다. 가로 280cm의 대작 [익숙함 그리고 낯선1](2012)은 베이징 경기장의 건축 과정을 파노라마 풍경으로 포착했다. 화면의 2/3 정도를 차지하는 어지러운 공사장과 화면에 약간 보이는 핑크색 부분이 대조를 이룬다. 핑크색 부분은 가로수 자리이다. 숨을 틔워줄만한 자연이 차지하는 비중은 공사장 가림 막 크기만큼도 되지 않는다. [익숙함 그리고 낯선 2](2012)에서는 무채색 톤으로 원형 건물을 짓는 중인 모습이다. 이상용의 작품에는 원형 구조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경기장으로 사용되며 때로 원자력 발전소같은 이 구조는 무한경쟁과 반(反)자연적인 위험물 같은 느낌을 준다.

익숙함 그리고 낯선20(series 1). 2013.oil on canvas,110x240cm

익숙함 그리고 낯선21. 2013.oil on canvas,110x197cm

익숙함 그리고 낯선24. 2013. oil on canvas,53x45.5cm
[익숙함 그리고 낯선3](2012)에서는 높이 올라가는 중의 공사장이 중간이 갑자기 뚝 끊긴 다. 화면의 1/3가량을 차지하는 하늘에 남은 얼룩 부분은 원래 그 자리쯤에 있었을 법한 대형 크레인이 지워진 듯한 흔적이 있다. 그자체가 완성된 고층빌딩과 유사한 대형 크레인은 우뚝 선 인공구조물을 선제적으로 구현한다. 이상용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크레인은 여기에서 의도적으로 삭제되었다. 그 자리는 구름이 차지할 것이다. 2013년의 같은 시리즈 작품에서는 구름 낀 하늘의 비중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하늘이나 구름으로 대변되는, 회귀된 자연은 긍정적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가느다란 뼈대들의 구조를 덮칠 듯한 붉은 하늘이 선명한 [익숙함 그리고 낯선 24[(2013)은 구조, 또는 구조의 파국이 야기할 자연력의 위험한 국면이 예시된다. 구조와 구름은 상반된 존재로 다가온다. 인공물인 하나는 경계가 분명하고, 자연인 다른 하나는 경계가 불분명하다. 이상용의 작품에서 자연과 인공은 색과 밀도의 대조를 통해서도 표현된다.
[익숙함 그리고 낯선 5](2012)에서 원형 건물의 가운데 붉은 색 크레인은 시계 침처럼 보인다. 한 여름 오후, 개미 한 마리 안 보이는 공사장에는 시간이 멈춰져 있다. [익숙함 그리고 낯선 20](2013)에서도 모노톤으로 처리되곤 하는 구조를 강조하는 빛이 편재한다. 거의 완성된 경기장의 가장 핵심부인 타원형 입구부분에서 흘러내리는 물감은 구조를 무력화시킬 시간의 힘을 예시한다. 그의 작품에서 점점 강조되고 있는 회화적 터치는 시간의 힘을 강조한다. 시간의 축 위에 있는 과도적 구조는 변형을 예기한다. [익숙함 그리고 낯선21](2013)에 나타나듯이, 변형의 조짐은 불길하다. 복잡한 공장건물에는 붉은 색 위험경보가 켜진 듯하다. 붉은 색으로 처리된 나무는 줄줄 흘러내리는 물감이 불에 타 녹아내린 듯한 모습이다. 구조의 복잡함은 우연의 힘 또한 강화한다. 복잡한 그물망에서 걷잡을 수 없는 연쇄작용은 작은 사건에 의해 촉발되곤 한다. 최근작품은 파괴를 통한 진보의 시계 침을 뒤로 돌리기도 한다. 이미 완성된 건물을 공사장 장면으로 변조하는 것이다. 건물의 현재를 과거와 미래로 돌리는 것은 구축과 해체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출전; 미술과 비평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