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적 규칙의 세계
시징의 세계 전 (5.27—8.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선영(미술평론가)
한중일 세 나라의 프로젝트 그룹 시징맨(西京人)(김홍석+첸 샤오시옹+츠요시 오자와)은 ‘시징의 세계’ 전에서 서쪽에 있다고 가정되는 도시(西京)에 대한 상상을 펼친다. 그들은 동경, 남경, 북경 등 방위를 지칭하는 수도가 현재까지도 실재하는 반면, 시징은 사라지고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왜 서쪽일까. 리차드 해리스는 [파라다이스]에서 파라다이스의 위치로 서쪽이 압도적으로 많이 설정된다고 한다. ‘해질녘의 서쪽 하늘이 너무나도 아름다운데 반한 시인들은 서쪽을 빛과 영광의 세계로 본다’(불핀치)는 것이다. 그러나 지는 해 자체는 흥해야할 도시 명으로 어울리지 않기에 묻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서쪽으로 떠나는 여행’은 중국 고전 소설인 [서유기]와도 관련되며, 서양에서 서쪽을 향한 여행기이기도 한 [오즈의 마법사]를 차용한 작품도 눈에 띈다. 시징은 없기 때문에 있는 유토피아의 토포스를 보여준다.

전시장 입구이자 가상 도시로 들어가는 관문에 걸린 뾰족한 돌출이 있는 국기와 오륜을 뒤죽박죽으로 섞은 시징 올림픽기는 미지의 도시에서 벌어질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을지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다. 정교함과 부조리함이 공존하는 여러 형식의 작품에는 파타피직스(pataphysics)적 감각이 두드러진다. 이 이질적 규칙의 세계에서 완벽함과 모순은 함께 간다. 작품은 개막식부터 시상 무대까지 올림픽에 있어야할 것들을 두루 갖췄다. 세작가가 이 전시를 꾸리기 위해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게임규칙을 패러디 하는 과정은 진지하면서도 장난스럽다. 장난도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하면 진지해진다. 그들의 작품은 국가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풍자로 다가온다. 시징의 출입국 사무소 직원이 입국 조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춤과 노래, 또는 웃음과 미소다. 그럴듯한 세팅은 관객 역시 선수 못지않게 게임을 준수해야 하는 일원으로 변모시킨다. 이러한 공모를 통해 자연스러운 일상의 규칙들은 가상 도시의 우스꽝스러운 관례로 소격된다.
오랜 노력이 짧은 시간 안에 결판나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주어지는 값진 열매는 금방 상하는 야채로 만들어진 메달이다. 노랑과 파랑으로 번갈아 칠해진 시상식 계단은 착시효과 때문에 어지럼증을 자아낸다. 물감을 바닥에 뿌리고 슬라이딩 하는 게임, 눈을 바닥에 뿌리고 바퀴달린 여행 가방을 미끄러트리는 게임, 병뚜껑들로 만든 역도, 마구 엉켜 있는 자전거, 미술관 벽과 바닥에 그려진 골대 안의 수박 덩어리 등은 한 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게임 규칙들이 애들 장난처럼 자의적임을 폭로한다. 선수는 물론 온 국민이 울고 웃는 게임이 운동경기에만 해당될까. 작가들은 개인 뿐 아니라 국가의 총체적인 역량을 경쟁의 무대로 삼는 거대 행사가 일상의 미시적 권력 망에도 편재함을 보여준다. 침구나 의상에 박혀있는 국가의 로고나 노동자가 흘린 땀의 양을 계측하는 누런 수건 등이 그것이다.


역할극의 의상이나 꼭두각시 인형 등이 전시된 방은 인간 사회가 배후의 힘에 조종되는 연극 무대로 다가오게 한다. 소품, 의상, 공연 장면 등은 아카이브같은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으나, 작가들은 이러한 거시-미시 권력이 그때 그곳에만 관철되는 구조와 힘이 아님을 설득한다. 시징맨이 다루는 문제의식은 올림픽 게임에 한정되지 않고, 교육이나 예술 같은 전반적인 것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국내외 유명한 작품들을 간장 제조용 면포 위에 간장으로 그린 츠요시 오자와, 유명한 팝아트 작품을 우그러뜨리고 타인의 노동력을 구매해 제작된 단색화 156개를 비춰서 기이한 왜곡 상을 만들어낸 김홍석은 한 시대와 세대에게 익숙한 예술적 게임을 자신이 고안한 게임으로 변주한다. 더 나아가 첸 샤오시옹은 지배자의 일방적 게임규칙에 저항하는 민중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준다. 시징맨은 마지막 방에서 각자의 작품으로 돌아와 보편적으로 작동하는 지배적 게임규칙이 또 다른 규칙으로 변모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이러한 메시지는 매우 정치적이다.
출전; 월간미술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