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명과 함께 하는 기술유토피아의 이미지
이선영(미술평론가)
많은 사람들이 실제의 창문을 열기도 전에 ‘윈도’ 화면을 먼저 열고, 이 ‘윈도’가 책상 한켠을 넘어서 각자의 손바닥으로 옮겨온 시대, 디지털 혁명은 시작된 지 몇 십 년도 되지 않아 세상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아직 세상에는 인터넷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인구가 57%나 된다고 하지만, ‘디지털 문맹’이 깨쳐지는 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것이다. 임명애는 디지털 혁명으로 새롭게 열려진 세계를 바탕으로 작업한다. 디지털 세계는 물질도 정신도 아닌 정보로 이루어져 있다. 정보는 지구전체를 가로질러 순식간에 인간의 손 안에 들어올 수 있으며, 전류로 변환되어 저장되고 검색될 수 있다. 미디어 이론가 마크 포스터는 [뉴 미디어의 철학]에서, 전자 통신은 전기 신호에 기반 하여 새로운 언어적 경험을 이끈다고 말한다. 이러한 새로운 언어적 경험에 바탕 하는 임명애는 ‘과학의 첨단화와 더불어 탄생한 digital art’에서 ‘표현의 자유로움’을 찾는다.

임명애, [round and round]
작가가 몰입하고 있는 ‘digital fine art’는 ‘정보양식’(마크 포스터)을 전제한다. 현재에 보편화된 정보양식은 선행하는 두 가지 단계를 거친다. [뉴 미디어의 철학]에 의하면, 상징적 소통구조의 변형 방식에 따라 시대구분이 가능하다. 첫째, 대면적이고 구어적으로 매개된 의사소통의 시대, 둘째 인쇄를 매개로 글로 씌여진 의사소통의 시대, 세째 전자적으로 매개된 의사소통의 시대 등. 그리고 각 단계마다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의사소통 수단은 첫째, 상징적 유사물, 둘째, 기호의 재현, 세째, 정보적 시뮬레이션이다. 첫 번째 구어적 단계에서 자아는 대면적 관계에 둘러싸인 채 발화의 소재지로 지정된다. 두 번째 인쇄단계에서 자아는 가상의 합리적 자율성을 중심축으로 하기에 주체로 자처하나, 실은 주어진 기능을 담당할 뿐이다. 세 번째 전자단계에서 자아는 끊임없는 불안정 속에서 탈중심화 되고 분산되면서 여럿으로 불어난다.
커뮤니케이션이 전자적 매개를 거침에 따라 언어의 수사적, 수행적, 자기 지시적 특성이 전면화된다. 마크 포스터가 제안하는 ‘정보양식’이란 이전시대의 ‘생산양식’과 비교될 수 있다. 생산양식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상물을 만들어내고 교환하는 방식을 말하는 것에 비해, 정보양식은 상징적 기호들을 매개로 하여 의미를 소통하고 주체를 구성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임명애의 ‘디지털 아트’는 자연 및 참조대상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이는 미술사 내에서 진행되었던 추상화의 흐름과 함께 한다. ‘영혼의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과 기대'로부터 시작되는 그녀의 작업은 ‘컴퓨터의 화면에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색과 선들 속으로 들어가서, 무한정한 표현의 날개, 자유로움의 날개를’ 단다. 작가에게 컴퓨터는 ‘빠르게 스치는 나의 생각들과 정서의 흐름을 따라 시 공을 초월하여 마음 가는대로 날아다니게’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이 자유로운 공간과 디지털 혁명에 의해 열린 가상공간이 중첩된다.
작품 [Whole Creation]는 창조의 과정을 표현한다. 그것은 코스모스가 카오스로부터 탄생하는 과정, 또는 양자의 구별이 없는 카오스모스의 세계를 그린다. 여기에서 창조는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변모를 향한다. 작품 [round and round] 색의 입자들이 둥근 또는 모난 형태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리며, 작품 [Sunset of the desert]에서 사막의 지평선 위에 있는 붉은 항성은 강한 힘에 의해 붉은색 입자로 흩어진다. 임명애의 작품에서 태양으로 대변되는 자연은 그 확고한 실체를 잃고 그 아래에 깔린 사막의 모래알처럼 이합집산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기본단위가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은 복사에 복사를 거듭함으로서 이루어진다. 직선과 곡선을 포함한 여러 면이 있는 작품 [Reflection]은 반영에 반영을 거듭하는 거울의 방 같은 세계이다. 반사를 거듭하다 보면 최초의 참조대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끝없는 재조합의 메커니즘만이 남는다.
임명애의 작품은 본질과 실체보다는 과정이 중시되는 디지털 세계의 특징을 강조한다. 그것은 자연적 실재가 아니라, 파생실재이다. 작품 [3D Fantasia]은 코드로 해석될 수 있는 색색의 가닥들이 만들어내는 3차원 형상. 복사를 거듭해도 고갈되지 않는 파생실재들을 보여준다. 네티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디지털 생태계에서 희소성의 원칙은 상대화 된다. 자연적 대상과 달리 정보는 써도써도 고갈되지 않으며, 오히려 많이 쓸수록 가치가 높아지기도 한다. 임명애는 이 작품에서 촘촘한 그리드 가운데서 형태들이 연속적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얀 8면체의 각면에서 붉은 8면체들이 나오고, 여기에서 또다시 붉은 면이 나온다. 그것은 서로 다른 것이 결합하여 새로운 것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옆구리에서 계속 파생되는 과정이다. 생식으로 친다면 유성생식이 아니라 무성생식이다. 파생실재는 무성생식의 결과이다.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 관계는 해체되고 부분에서 부분이 계속 파생된다. 여기에서 단편은 파편이 아니라, 전체를 포함하는 부분의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안과 밖의 구별도 확실치 않다. 작품 [splash]에서 중력을 초월하여 떠도는 사각형 안팎을 튀기는 얼룩들은 안이 바깥이 되고, 바깥이 안이 되는 세계이다. 터져 나오는 듯한 빛이 여러 겹으로 감싸인 공간을 강조하는 [the light]에서, 가상공간에서도 여전히 반복되는 에너지와 물질의 관계를 말한다. 또한 임명애의 작품은 자연이나 참조대상을 괄호 친 추상미술이나 구체예술처럼, 색과 음의 코드화가 일어난다. 물리학자 뉴턴이 빛을 무지개 색으로 분석했을 때 그는 색을 코드화 한 것이듯, 임명애의 작품 [rainbow garden]은 분석된(코드화된) 색의 정원이다. 세상의 음원들을 모아 ‘소리의 바다’를 만들 듯이, 색 또한 다양한 계열로 분석되고 분류되어 마음껏 뽑아 쓸 수 있는 데이터가 될 것이다. 그것은 완벽한 자연은 아닐지라도 경계가 있고 관리되는 자연, 즉 정원의 면모는 가질 수 있을 것이다. [rainbow garden]은 만약 디지털 팔렛트가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작품 [the symphony by pxcels]에서는 픽셀들의 선율과 하모니가 있다. 추상미술과 음악의 관련성은 일찌기 알려져 있다. 칸딘스키나 파울클레 등, 초창기의 추상 미술가들은 음악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 둘은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의 세계라는 공통점으로 하나가 된다. 디지털 아트의 맹아가 된 구체예술(concret art) 이래, 음악과 미술은 더욱 내재적인 관련성을 맺게 되었다. 임명애의 작품은 중력을 초월하여 둥 떠 있는 듯한 느낌과 화려한 색채가 특징적이다. 그것은 기술 유토피아주의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정보혁명이 진정 풍요로운 미래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인가는 아직도 의문에 붙여져 있지만, 시작단계에서의 꿈은 매우 컸다. 크리스 체셔는 [가상현실의 식민화]에서 1989년 ‘가상현실’의 등장과 뒤이어 전개된 미디어를 통한 그 발상의 대중화, 그리고 컴퓨터 내에서 새로운 현실을 구축하는 것은 기술 유토피아주의의 새로운 형태였다고 말한다. 임명애의 작품은 가상현실이 상상력과 소통의 방식을 변화를 통해 예술적 비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음을 보여준다.
출전; 미술과 비평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