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과 법칙의 가장자리

쿤 반 덴 브룩(KOEN VAN DEN BROEK)전 (8. 27 -- 10. 8, Gallery Baton)

    

이선영(미술평론가)

    

벨기에 태생의 화가 쿤 반 덴 브룩(KOEN VAN DEN BROEK)(1973년-)의  ‘Sign Waves’ 전은 기호화된 세계를 보는 화가의 관점이 있다. 시점도 종점도 불확실한 무명의 영토를 활주하는 기표들이 흔적화된 그의 그림에 간극과 균열이 산재한 것은 기호와 회화가 일치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호가 의미에 가닿는 것을 목표로 한 기표로 이루어졌다 할 때, 도로나 다리, 물, 자동차 같이 이동과 관련된 도상들이 명시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소실점이 화면 위 가장자리에 걸려 있는 작품 [Dirt Track]은 흙이나 눈 같이 진행에  방해되는 요소들로 덮여있다. 먼저 지나간 차들의 불규칙적인 흔적들이 기호의 역할을 대신한다. 도로 같은 장소는 기호가 거의 신호 수준으로 분명하다. 신호는 즉각 파악되고 준수되어야 하는 확실한 메시지이다. 

 




GB_Dirt Track, 2015, oil on canvas, 158x154cm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도로나 다리 등, 자연 한가운데 건설된 것들에서 기호는 확실치 않다. 산과 물, 하늘이 보이는 풍경 사이로 다리가 있는 작품 [Viaduct #2]는 자연에는 없는 직선적 요소로 이루어진 인공적 구조물로, 자연처럼 여기에서 저기를 잇는 익명적 매개로 나타난다. 도시외곽 뿐 아니라, 도시 내부의 도로변을 그린 작품들 역시 도로명이나 방향 등이 표시되어 있을 법 한 구조물의 부분만 나타나지 기호는 휘발되어 있다. 작가는 기호가 있는 풍경에서 기호들을 의도적으로 잘라낸다. 작품 [Havana]에서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마치 공사 중인 것 같이 모호한 상태로 방치된 길바닥일 뿐, 그자체가 신호의 총체이자 신호를 따르는 물체인 자동차는 귀퉁이에 조금 나올 뿐이다. 인도와 차도 사이의 선이 화면을 나누는 작품 [Fence/Dia Beacon]에서 표시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들은 모두 알맹이가 빠진 채다. 

 

사람으로 치자면 얼굴 아래만 덩그러니 서있는 셈이다. 표지판들의 지지대들만이 마찬가지로 어떤 선도 표시되어 있지 않는 텅 빈 도로를 끼고 서있다. 무인지경을 바라보는 자의 시선만이 있는 풍경은 쓸쓸하다. 이러한 느낌은 작가가 모든 풍경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기표들로부터 온다. 그것은 현대문명이라는 기호의 제국에서 기호들이 사라졌을 때 맞딱뜨릴 법한 막막한 풍경들이다. 즉흥적으로 그려진 추상화 같은 [Cut Away] 시리즈에는 사라진 기호들이 모여 있는 듯하다. 수많은 폐차들을 결합하여 현대문명의 독특한 양상을 보여줬던 정크 아티스트 존 체임벌린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Cut Away] 시리즈는 상품에서 쓰레기로 변화하면서 극대화된 엔트로피가 있다. 기호의 몸체들은 뭉개지고 뒤섞인다. 그런데 이 시리즈는 색과 위아래만 다를 뿐, 비슷한 얼룩의 구조다. 

 




 GB_Viaduct #2, 2015, oil on canvas, 200x300cm

 

쓰레기도 멀리서 보면 각각의 우연성을 잃고 추상화되어 동형적 구조를 이룰 수 있듯이, 기호의 쓰레기 역시 마찬가지라는 메시지 같다. 그의 작품에서 기호는 쓰레기의 단계가 돼서야 일관성 있는 형식을 갖춘다. 인공적 규칙의 세계(문명)가 아닌 법칙의 세계, 즉 자연은 어떠한가. [Waves] 시리즈는 해수면의 물결로부터 온 형상으로, 찰랑거리는 물의 잔영들을 일정 색채와 형태로 떠낸 듯한 작품이다. 거기에서 자연의 주기적인 흐름은 순간의 우연적 형태들로 포착되었다. 도시나 도시외곽 풍경과 마찬가지로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흐름이기는 하지만, 거대한 공백을 배경으로 제각각 떠 있는 불규칙적이고 임의적인 형태들은 주기성이 있을 파동이라는 의미와 거리를 둔다. 쿤 반 덴 부룩의 작품에서 문명은 물론 자연 역시 법칙의 가장자리에 자리한다.

 

‘Sign Waves’라는 전시부제는 기호의 부재로 인해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기호 이전이 아니라, 기호 이후를 다룬다는 점에서 기호가 잠재해 있다. 그것은 지워진 것이지 애초부터 없는 것은 아니다. 기호를 명시적으로가 아니라 잠재적으로 배치한 것은 기호의 제국이라 할 수 있는 현대문명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드러낸다. 가야할 길의 방향을 명료히 알려주는 도로와 그 주변 풍경은 말소된 기호에 의해 바다나 사막 한가운데 같은 막막한 장소로 변화한다. 관객은 부재기표의 장소, 그 무명의 영토에서 길을 잃는다. 그러나 부재나 방황이 박탈감이나 소외 같은 현대문명에 대한 전형적인 반응을 유도하지 않는다. 시점도 목적도 불분명한 여정, 또는 의미화의 과정은 그자체로 즐길만한 것이 되며, 재현주의로부터 멀어진 현대 회화의 본질적 국면과 함께한다. 

 




 GB_Waves #1, 2015, oil on canvas, 110x165cm

 




GB_Waves #2, 2015, oil on canvas, 143x110cm

 

이러한 탈기호화의 과정은 미술을 하기 전에 건축을 전공했던 작가의 이력과도 연관되는 듯하다. 이러 저러한 표시들로 가득하며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될 건축의 설계도면은 마치 지도와도 같은 명백한 기호의 장이다. 그러나 회화란 기호 이후의 것이다. 그림의 소재, 주제, 작가의 의도 등은 기호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것이 기호로 환원 가능하다면 굳이 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회화란 기호만으로 충분치 않은 것, 기호 사이, 기호 이후, 더 나아가 기호 자체를 형성하는 보다 근본적인 층위에 관심을 가지는 분야이다. 

 

기호는 언어처럼 사회적으로 약속된 상징적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소쉬르는 이러한 체계가 가지는 ‘항구적이고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힘’을 중력과 비교했다. 사회적 규칙인 기호는 개인에 선재하면서 중력처럼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모든 것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끄는 보편적 힘에 대한 상징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가령 [cut away]나 [waves] 시리즈는 자동차들이나 물 같은 소재로부터 온 것이지만, 그러한 소재들의 존재방식을 규정지을 중력이 감지되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서 자동차들은 불규칙적 얼룩으로 변화하며, 자유롭게 색을 갈아입고 거꾸로 서있기도 한다. 지표면에 밀착되어 흘러야할 물은 허공의 먼지입자들처럼 떠있다. 도로나 도로변 같이 눈앞의 장면을 바짝 당겨 그린 풍경 또한 마찬가지이다. 

 




 GB_Fence_Dia Beacon, 2015, oil on canvas, 180x120cm

 

근현대 화가들이 드로잉처럼 활용하는 사진의 시점은 하나의 방향으로 향하는 중심을 해체시켰다. 그의 작품에서 말소 하에 있는 기호가 거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재현주의이다. 작가가 문제 삼는 기호는 무엇인가를 재현한다는 사고와 밀접하다. 기호는 현실세계의 구조를 재현하는 일종의 기억술이자 해석학인 것이다.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해석의 한계]에서 기호학이 언어행위, 카드놀이, 교통표지체계, 도상해석학적 코드와 같은 의미체계들의 추상적인 구조를 분석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모든 의미표현은 다른 의미표현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이 과정은 무한히 지속될 수 있다. 

 

기호의 세계는 무한한 연상의 얽힘 속에서 의미의 끝없는 변화를 통해 표류한다. 하나로 고정될 수 없음은 기호의 특성이자 운명이다. 쿤 반 덴 부룩의 ‘sign waves’라는 키워드는 이러한 무한한 표류의 무대를 압축한다. 그러나 기호의 표류에도 차이가 있다. [해석의 한계]에 의하면, 표류의 대표적인 특징은 시니피에에서 시니피에로 유사성에서 유사성으로 연결고리에서 또 다른 연결고리로 미끄러지는, 제어될 수 없는 온갖 방법에 있다. 이러한 기호현상은 신비적이다. 신화나 종교적 세계관에서 이러한 기호현상은 보편적이고 일의적이며 초월적인 시니피에가 있다. 즉 거기에는 강력한 초월적 존재가 있기에, 모든 것이 모든 것을 가리킬 수 있다는 관점이 수용된다. 

 




GB_Havana, 2015, oil on canvas, 150x120cm

 

절대 존재는 상호 지시적이고 미로나 거미줄 같은 조직망을 통해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될 수 있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호의 무한한 표류 속에서도 의미의 시니피에의 완전함을 확인한다. 단지 궁극적인 시니피에가 접근 불가능한 비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남아있다. 현대적 기호의 세계 역시 무한하다. 그러나 현대는 궁극적인 시니피에를 부정한다. 그래서 기호들은 여전히 표류하지만, 이전 시대의 세계처럼 신비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현대는 그저 기호에서 기호로 나아가는 미로 여행의 즐거움만을 누릴 뿐 어떠한 목적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예술가들에게 기존의 상징적 우주의 붕괴는 재난으로 다가오지 않으며, 현재의 우리를 지배하려는 상징적 우주 또한 잠정적임을 드러내려 한다.

 

의식은 무의식의, 이성은 광기의, 질서는 무질서의 한 측면이다. 기호 역시 기존 질서를 재현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변환의 와중에 있다. 쿤 반 덴 부룩의 그림들은 그러한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이전의 것은 지워졌지만 새로운 것을 아직 도래하지 않은 무정부주의적 시공간이다. 기호는 물론 기호화하는 권력은 와해되고, 여기에서 풀려나온 에너지들이 명확한 구조를 대체한다. 여기에서 기호는 무엇인가를 여기에서 저기로 운반하는 재현의 역할을 멈춘다. 대신에 변환시킨다. 재현이 아닌 변환에서 에너지의 역할은 크다. 미셀 세르는 [헤르메스]에서 에너지는 기호들에 선행하며 기호화를 행한다고 말한다. 에너지는 기호화 된 것을 비롯하여 모든 합리적인 조직망에 선행한다. 

 




GB_Cut Away #4, 2015, oil on canvas, 180x120cm

 




GB_Cut Away #12, 2015, oil on canvas, 210x140cm




미셀 세르의 시적인 표현에 의하면, 모든 체계는 묶인 에너지, 새겨진 힘, 얼음이 된 불이다. 죽은 나무의 밑둥 위에 남아있는 번개의 흔적이다. 모든 체계, 특히 신호체계는 기호화 된(또는 기호화 하는) 기계장치이다. 현대 인간 또한 이러한 체계적 장치들에 복속되어 있다. 쿤 반 덴 부룩은 표류하는 기호들이 이합집산 하는 몇몇 합류점을 만을 제시한다. 그것은 기호의 제국주의, 즉 기호를 통해 체계를 총체적으로 재생산하려는 현대문명과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그것은 혼돈(카오스 이론)이나 파국(카타스트로프의 과학)이라는 형용사를 예술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과학의 방향이다. 쿤 반 덴 부룩은 이러한 현대과학의 흐름과 함께 구조적 안정성에 기반 하는 총체적 상을 해체하고, 변화가 일어나는 불연속적 지점을 포착하려 한다. 

 

출전; 아트인컬처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