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자료의 중요성과 아카이브의 힘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낯 선 단어이던 ‘아카이브(archive)’가 이제는 일반인들도 알 정도로 친숙해졌다. 간단히 말해 기록된 자료를 의미하는 이 전문용어가 이처럼 친숙하게 된 이면에는 미술자료연구가 김달진의 노력이 크다. 물론 그 이전에도 예컨대 국립현대미술관 등 공공미술관들이 나름대로의 자료실을 갖추고 있었으나,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순전히 아카이브 자료만의 전시로 발전하게 된 것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 이르러서이다.
이번에 선보인 [한국미술 전시자료의 역사]전은 순전히 전시자료에 관한 전시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말만 들었지 실물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었던 희귀자료 약 250여 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아마도 이런 것일 게다. 가령 개성부립박물관 신축공사설계도3호(1931년, 국가기록원 소장)는 이 역사적인 건물이 지어질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 준다. 더군다나 이 박물관의 위치가 지금은 갈 수 없는 북한 땅 개성에 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하다. 지금도 이 건물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무슨 용도로 쓰이고 있는지 우리는 이 설계도면 하나를 앞에 놓고 갖가지 상상을 할 수 있다.
특히 이 박물관이 미술인들에게 더욱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고(故) 고유섭 선생 때문이다. 이 박물관은 1931년 개성의 유지들이 헌금을 모아 지어진 것으로 고유섭 선생은 1933년에 이곳에 초대관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한국근대미학 및 미술사의 선구자 고유섭 선생의 업적에 대해 논하기에는 지면이 짧아 생략하거니와, 아무튼 이 한 장의 도면이 이처럼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만 밝혀두고자 한다. 이야말로 미술자료가 지닌 힘이 아닌가. 대한민국이 문화 국가임을 자부하고 나아가서 문화강국이 되고자 한다면 ‘아카이브’에 대해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전시에는 또한 조선총독부가 시정 5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의 미술관 신축설계도(1915, 국가기록원 소장)도 출품되었다. 오늘날의 엑스포에 해당하는 이 물산공진회는 일제가 조선을 강제 병합(1910)한 후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저간의 시정을 보여주려는 목적에서 꾸민 것이다. 말하자면 순전히 대국민 홍보용 전시로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전시였다. 이 건물은 행사가 끝난 후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이 한 장의 설계도면은 1936년 일본인 건축가인 나카무라 요시헤이에 의해 설계된 덕수궁미술관 입면도와 함께 1930년대 당시 일제에 의해 서양풍의 건물이 이 땅에 많이 지어졌음을 입증해 주는 시각적 자료물이다. 따라서 이런 자료들을 통해 서양의 근대가 일제를 통해 어떻게 이 땅에 수입되고 어떤 문화적 갈등과 충돌을 일으켰으며, 또 부분적으로는 어떻게 토착해갔는가 하는 첨예한 문제들을 풀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들인 것이다.
이번 전시는 비단 건축물의 설계도면에 그치지 않고 약 100여 년에 걸친 전시의 역사 속에서 한국미술이 어떤 도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가 하는 점을 구체적인 실증자료를 통해 입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가령, [한국 현대미술 1957-1972 추상-상황, 조형과 반조형](명동화랑)의 도록은 당시 일개 상업화랑에 지나지 않는 명동화랑이 미술관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상업 활동에만 치중하는 현재의 국내 상업화랑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자료이다. 명동화랑 사장이자 초대 한국화랑협회장을 역임한 고(故) 김문호 선생을 기리는 기념사업의 필요성을 이 한 장의 자료가 생생히 말해준다.
<월간미술 2015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