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자리에 비춰진 조명

  

이선영(미술평론가)

  

인천 남구 숭의 평화시장 일대에서 지역공동체 문화만들기 사업의 하나로 열린 ‘장사래, 미소를 머금다’(단체; 인천하와이, 대표; 김재민이) 프로젝트는 침체 일로에 있는 인천 구도심에 문화적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예술가들의 작은 실천이다. 4명의 작가가 모인 ‘지역명+하와이’라는 그룹 명칭은 마치 사막과 오아시스 관계처럼, 썰렁한 곳에 문화적 온기를 불어넣겠다는 단체의 의지가 느껴진다. 지나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 동네의 인상은, 근대적 삶의 흔적이 차곡차곡 쟁여져 있는 오래된 건물들이 빼곡하니 있지만, 문 닫은 상가도 많고 한낮에도 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으며, 젊은이들은 더욱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다. 동네 사람들도 외지인인 나처럼 그냥 지나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인천에 기반 하여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이 지역민의 관심을 끌만한, 아니 최소한 그들 스스로가 즐길 수 있는 문화적 사건은 의미가 있는 만큼이나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장사래 입간판과 들목 사진관 설치

 

 


장사래 쉼터 제작 과정 中

 

정착하기 보다는 지나가는 곳으로서의 면면이 항구도시인 인천의 특성이라고 지적되곤 한다. 그러한 지역적 특수성이 아니어도, 현대적 삶은 인간이 구조의 한 요소로 권력에 의해 추상적인 공간에 재배치되곤 하기에, 구체적인 삶의 자리는 불확실하기만 하다. 그들이 몇 달간 작업한 인천의 구도심은 극단적이지만, 그곳은 한국의 전형적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그 비슷한 곳은 산재해 있고,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장소 역시 양극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천 하와이 팀의 작업은 주변에서의 행위가 아닌, 작가라면 피해 갈 수 없는 강력한 현실을 온몸으로 통과하는 문제다. 요컨대 여기서 맞딱뜨리는 문제는 어디서도 맞딱뜨려질 것이다. 전시장 아닌 특수한 장소에서의 작업은 작품제작 외에 고려 사항이 많고, 작가가 발신하는 메시지 수신자와의 관계에 대해 끝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의 작업은 작가의 일방적 독백과 행위가 아닌, 대화와 상호작용을 요구한다. 

 

지역 공동체 문화에 대한 작업은 영감부터 제작과정, 그리고 완성작에 대한 소통까지 매 단계마다 보이는/보이지 않는 협업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상지기 분명한 만큼 지역주민이라는 대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민 또는 대중들에게 예술가가 유령같은 존재이듯, 그 역도 성립하지 않을까. 그것은 정감 어리게 들려오는 ‘공동체 문화’ 이전에 타자와 타자의 만남인 것이다. 지역 공동체문화에 대한 작업은 현실 속에 잠재해 있던 타자들이 일정한 시공간에서나마 주인공으로 서는 일이다. 문화 주체로서의 주민은 잠재적이다. 이 잠재성을 현실성으로 전화시키는 것이 공공영역에서의 작업의 본체다. 그들의 작업은 무에서 유의 창조라는 관념이 아니라, 굳어있어 그 실체가 확실하지 않은 존재를 활성화하는 과정에 있다. 단절의 역사를 살아온 현대인에게 공동체란 도래해야할 미지의 가치로 다가온다. 이 프로젝트의 작가들에게 그것은 잃어버린 시공간을 다시 찾는 작업이다. 

 


작업설치된 장사래 장터 들목장소

 

예술이나 예술가 등등은 우리 앞에 자명하게 선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교과서나 강의실에서만 그렇게 정의될 뿐이지, 현실 속에서는 결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불확실한 예술, 예술가, 심지어는 현실까지 오직 구체적인 작업과정에 의해서만 확실해진다. 공공영역에서 작업한다면 공동체란 존재 또한 그러하다. 잠재성/현실성 사이의 관계를 이끄는 것은 추상적 관념이 아닌 구체적 실천이다. 작업을 관통하는 작가의 뜨거운 열기가 쓸쓸한 거리에서 어떻게 식지 않고 온전히 보존될 것이며, 심지어는 주변의 성원을 받아 더 달구어질 수 있을 것인가. 작가는 이러한 공공영역에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주민으로서도 손닿는 가까운 영역에서 예술이나 문화라는 것을 접할 기회를 맞이한다. 그러나 현실은 ‘허허벌판’으로 다가온다. 사업지가 허름한 동네라는 말이 아니라, 물질적 성장만을 향해 추동되어온 물신주의적 사회에서 문화예술 작업이 행해지는 거의 모든 곳이 차가운 벌판이라는 말이다. 수많은 예술이론가들이 거듭해서 주장해왔던 바대로 작가란 바깥에 있는 자다. 

 

사업은 숭의 평화시장 안에서의 작업과 길 건너 마을에서의 ‘사물박물관’으로 나뉘어진다. 그것은 과거의 시장통과 여인숙에 존재하는 삶의 빈자리를 드러내고, 도래하는 공동체를 위해 밑 작업이다. 인천 남구의 숭의 평화시장과 그 인근은 한국의 재래시장과 주변 지역이 맞고 있는 위기를 보여주는 곳이다. 대기업 중심의 새로운 유통구조 때문에 주변화 되어 있는 전국 곳곳의 시장은 잃어버린 기능을 대신하는 상징적 장소로의 탈바꿈을 꾀하고 있으며, 숭의 평화시장에서의 작가 레지던시나 문화사업 등도 그러한 맥락에 놓여 있다. 1980년대에 인천에서 가장 활기 있는 농수산물 전문 시장이었다는 숭의 평화시장에서 이제 물건을 파는 이와 사는 이들은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 그 독특한 얼개가 보존되어 있다. 한국에서 흔히 행해지는 재개발로부터 이윤의 기대되지 않아서이기도 할 테지만, 그 한 켠에는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에 대한 반성이 공동체의 기억이 있었던 장소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했을 것이다. 

 


'옥상별천지' 프로젝트

 

시장을 구글 이미지로 보면 내부에 180여 평의 중정이 있는 직삼각형 모양이다. 원래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여러 건물이 맞닿아 하나처럼 붙어있는 모습이다. 총체적 계획이 아닌 옆에서 옆으로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뻗어갔던 리좀적 구조다. 그것은 한 번에 정해진 구조가 아니라, 시간성을 축으로 자라왔으며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추고 굳어 버린 상태다. 횡적으로 증식되어온 구조이기에 덧대기 식의 작업은 자연스럽다. 여기에서의 작업은 옆에서 옆으로 가지치기를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 장소를 하얀 도화지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선재하는 것을 최대한 인정한다. 작업실이 아니라, 그곳에서 영감 받은 것을 그곳에서 실행한다. 작업은 거듭 씌여진 양피지같이 이전의 시공간을 담지 한다. 칸막이 처진 각기 다른 건물들이지만 옥상에 올라가 보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시장의 전성기에 시원하게 뚫린 중정을 중심으로 마주하고 있는 가게들이 얼마나 활기차게 돌아갔을지 상상이 간다. 

 

그러나 사람이 떠나면 건물도 쇠락한다. 거주지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거주민의 기운에 의해 매순간 갱신되는 유기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이름에 속해 있는 ‘장사래’는 숭의동의 이전 명칭으로, 인천 하와이는 이곳의 방문자에게 과거 전성기를 상기시키려 했다. 물론 그들의 작업이 시장의 부활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가능한 것은 보존할 가치가 있는 독특한 구조의 문화적 활성화이다. 이미 시장 한켠에는 국내외의 작가 레지던시가 들어서 있다. 그곳은 물건이 아닌 문화가 소통되고 유통되는 곳으로의 탈바꿈을 꾀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모여야 하고, 사람을 모이게 하는 것이 바로 문화인 것이다. 이곳에서의 작업은 주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자리들은 소통을 야기하고 머무름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독특한 삼각형 구조를 축소화한 벤치들을 제작하여 중정에 놓고, 옥상에 파라솔과 해먹을 설치했다. 

 


 


아티스트 아나바다시장 시험 운영 2015년 10월 25일

 

작가들의 작업공간에 있는 실내의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옥상에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일단 올라가면 전체를 조망하는 시점이 시원하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 누군가 돌봤던 텃밭 자리를 아기자기하게 장식했다. 사람이 떠난 그곳을 무대로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사생활도 최대한 존중한다. 도래해야 할 공동체에 인간 아닌 존재들도 포함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정에 놓인 건물 모양의 벤치는 상징과 기능을 함께 가진다. 이 축소모델은 그것이 속한 환경을 반향 한다. 작가들은 시장 입구로 들어가는 장소를 미러볼과 빔 프로젝터 등을 동원하여 화려하게 꾸몄고, 중정에서 벼룩시장을 열었다. 시장에서의 작업들이 끊어진 발길을 다시 이어주고 그곳을 예술적 소통까지도 포함하는 새로운 명소로 탈바꿈하여 타지에서도 찾아오도록 하는 계획이 석달 여 간의 작업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작은 시작을 계기로 향후에 여러 가지 맥락으로 다시 붐비는 복합적 문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 

 

시장에서 한 블럭 정도 거리의 동네에 자리한 ‘사물박물관’은 주택가 한가운데에 있어 찾기는 힘들지만, 그 속에 푹 파묻혀있다는 점은 단절되지 않는 삶의 맥락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될 수 있다. 향후에 그곳이 또 다른 문화적 장소로 계속 활용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불확실한 상황에서 시작됐지만, 완성도와 밀도는 컸다. 원래는 사물박물관도 시장에서 진행하려 했지만, 오래된 여인숙이라는 독특한 공간의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장소 변경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그곳에 원래 있었던, 그러나 작가들이 다시 맥락화했던 사물들은 특정 공간이 뿜어내는 아우라의 지원을 받는다. 숭의 평화시장에서의 작업이 과거, 현재, 또는 미래에 그곳을 채울 익명적 다수를 대상으로 한다면, 낙원 여인숙에서의 작업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한명 설정돼 있다. 그는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재했던 이로, 75세(1934-2008)를 일기로 그곳의 마지막 장기 투숙객이었던 한 남자다. 

 

‘옥상별천지’프로젝트에 방문한 인천 시민과 학생

 


낙원여인숙 오픈 이전 모습,2015년 2월(사진 강요한)

 

이미 폐가가 된지 오래인 장소를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는 ‘박물관’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작가들은 엄청난 물밑작업을 해왔으며, 그곳에 방치되어 쓰레기로 사라질 것들을 모두가 음미해볼 만한 보물로 건져 올렸다. 박물관이지만 대단한 보물이 전시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짜’ 박물관에 있는 보물들 역시 처음부터 보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사물이 시공간의 변화에 의해 보물로 맥락화 되었을 뿐이다. 인간보다 오래 남아있는 사물은 인생 뿐 아니라 시간을 증거 한다. 한정된 시간을 살고 가는 인생 말이다. 화석처럼 오랜 시간의 켜를 둘러쓴 사물들은 보물 또는 예술품처럼 연출되었다. 유품이기도 한 실제의 생활용품들에서 선택된 사물들은 특히 미시 역사를 중시하는 역사가들에게는 당시 민초가 살아왔던 삶의 흔적이 담긴 귀중한 자료로도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원래의 뼈대는 복구되었으며, 다시 여인숙의 불이 켜졌다. 호기심 가득한 방문자들에게 제시된 사물들은 여인숙에서 삶을 마친 외로운 노인의 유품을 넘어선다. 

 

작가들은 그것을 특정 시공간에 놓여있었던 삶의 한 단면이 생생하게 드러난 상징물로 변형시켰다. 변형이란 사물을 재료로 색을 입히고 형태를 바꿨다든가 그 사물로부터 영감 받아 창조한 예술작품을 전시했다든가의 문제가 아니다. 작가들은 물건을 선택하고, 재배치했을 뿐이다. 예술이 아니라 사물이 등장하는 것이라, 어떤 것들은 마치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환상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공간에서 나온 실제 사물이라는 사실에 의해 더 큰 울림을 준다는 점에서, ‘박물관’의 위상을 갖춘다. 작가들은 박물관같은 중성적인 느낌과 삶의 자취를 더불어 살리고자 했다. 진열대에 하나하나 안치해 놓은 사물들은 일종의 거리감을 주어서 누군가의 사생활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덜어냈으며, 반드시 그곳에서 나온 사물로만 채우지 않은 융통성 있는 연출방식은 자료의 단순 나열을 벗어나게 했다. 화이트 큐브를 넘어서 현실로 나온 마당에, 한국 미술 판에 넘쳐 흐르는 ‘아카이브 스타일’(학술적 스타일?)의 작업이 반복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낙원여인숙 전시 '낙원에서' 16년간의 기록

 


낙원여인숙 16년간의 기록 中

 

동시에 그곳은 어쭙잖게 연출된 생활사 박물관 같은 장소도 아니다. 작가들은 무엇인가의 복원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남아있는 사물들이 띄엄 띄엄이기에 복원, 즉 재현이란 불가능했다. 사물들만큼이나 강하게 드러난 것은 텅 빈 공간이다. 작가들은 그 한가운데서 무엇인가 생성되기를 원했다. 복도를 사이로 마주보는 방들이 늘어서 있는 (구)낙원여인숙은 근대화기에 도시로 몰려든 서민들을 위한 주거지 역할을 했을 것이다. 남아있는 건축은 그자체로 삶을 단면처럼 드러낸다. 이 텅 빈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은 사물이다. 그것들은 침묵을 통해서 말한다. 몇 십 년 간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린 장소였으며, 장기 투숙자인 할아버지가 마지막 3년 동안 홀로 버틴 이 여인숙은 2008년까지도 사람이 사는 건물로서의 역할을 했다. 입구에 여인숙 표를 받는 창구가 있고 공동 취사장에 각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조는 오늘날 고시원같은 건물에서도 발견된다. 

 

1인 가구가 더욱 늘어나고 초고령 사회로 접어드는 한국의 미래를 앞당겨 보여주는 듯한 풍경이다. 또한 그 건물에서의 전시는 몇 년 전 봤던 서대문 형무소에서의 미술 전시를 상기시킨다. 한 평 남짓한 어둑한 공간 속에 연출된 사물과 예술은 지상의 수인으로서의 인생을 떠오르게 한다. 복도의 맨 끝 왼쪽 방이 주인공의 거처였다. 다이어리 겸 금전출납부를 꼼꼼히 기록해온 할아버지는 한 시대와 지역, 그리고 계층의 삶을 오롯이 보여준다. 기록에의 의지는 수집에의 의지만큼이나 무질서하게 다가오는 삶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이를테면 기록이라는 행위는 단절감으로 가득한 삶에 연속성과 의미를 부여해 주었을 것이다. 2005년 다이어리의 한 페이지를 들춰 보자. ‘12/21 담배 2500, 껌 300, 중식대 3500 ※밤의 꿈에 어머님과 집사람이 보였다.’ 금전출납부는 한 개인의 삶에 대한 냉정한 기록이다. 내게 들어오고, 내게서 나간 물질의 흐름이다. ‘삶에 물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흔히 들려오는 말은 상대적인 진리다. 예술은 삶의 근저를 이루는 물질적 현실에 대해 직시해야 한다. 

 


낙원여인숙 전시'낙원에서' 모습(사진 흑표범)

 


낙원여인숙 오픈 이전 모습,2015년 2월(사진 강요한)


 

그것은 예술가도 물질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입구 쪽의 방에서는 할아버지의 외로운 죽음을 기억하는 이웃 주민의 인터뷰가 낡은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데, 그 기억에 의하면 그는 ‘남에게 민폐 끼치기 싫어하는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한 인물이 사회의 뾰족한 복지 혜택도 없이 극도의 내핍생활을 꼼꼼하게 기록해 놓은 다이어리들은 삶의 단면을 드러내는 사물박물관의 핵심 컬렉션이다. 날씨가 궂거나 해서 외출하지 않은 날은 ‘낙원에서...’라는 기록도 발견된다. 작가들은 이 대목을 사물박물관의 제목으로 뽑았다. ‘낙원에서’란 그 자리의 초라함을 생각할 때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어쨌든 저승보다는 이승이 낙원 아닐까. 낙원 여인숙은 자신이 누울 수 있는 지상의 한 뼘 거처로, 모두가 그곳을 떠났을 때도 떠날 수 없었던 장소였다. ‘연고자’가 없던 할아버지는 진짜 유목민처럼 죽어서야 자신의 터전을 떠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직계 후손이 아닌 사회에 남기게 된, 2008년까지 기록된 다이어리를 보면 생애 말년으로 갈수록 병원과 약 관련 지출이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종 영수증, 공문서, 관심 있는 기사에 대한 스크랩, 기관에서 보내온 편지들이 또 다른 자료를 이룬다. 그것들이 그저 남아있을 뿐인 오래된 물건과 다른 점은 일관되고 연속적인 방식으로 기록되었다는데 있다. 통상적으로 유적지들을 보면, 무덤이 집이고, 무덤이자 집인 곳이 박물관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근대에 예술은 새로움의 총아로 대두되었지만, 원래 시각 이미지는 무덤-박물관과 더 친숙했다. 외관은 다른 집들과 큰 차이가 없는 공간에서 유적지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것은 삶의 이면을 삶 한가운데 다시 끌어들이는 것이다. 현대적 삶에서 죽음은 애써 지워지거나 또 다른 사업의 영역이 되었지만, 삶을 지배하는 것은 죽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중심이다. 인천 하와이 팀의 작업은 예술 또한 그러함을 보여준다. 

 


낙원여인숙 주민인터뷰

 

작가들은 할아버지 방에 스탠드를 켜 놓았다. 시멘트로 출입구가 봉쇄되어있는 방을 포함하여 여타의 다른 방들이 박물관처럼 건조하게 사물을 진열해 놓은 것과 달리,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는 요소를 강조한 것이다. 또한 그들은 각방의 빈 벽에 빈 액자를 걸어놓아 터의 무늬를 작품처럼 드러냈다. 그곳에 삶의 터전을 삼았던 한 인간을 기념하는 사물들은 같은 방식으로 주민들의 삶을 조명할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시작은 작가들이 했지만 연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물론 그곳은 할아버지 못지않게 고독하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작품 발표의 장이 되기에도 멋지다. 버려진 공간을 우리의 삶과 죽음을 반추하는 박물관으로 만들기 위해 작가들이 쏟은 노력은 몇 달간의 전시 및 행사만으로 끝나기에는 너무 아깝고 이 동네 주민이기도 했던 한 할아버지의 삶의 흔적을 필두로, 살아있는 공동체 성원들의 사물 박물관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출전; 인천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