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영역에서 몸의 기억을 호출하다.

 

이선영(미술평론가)

  

도시 청년 게릴라 프로젝트 ‘비상(非常, 飛上)시 우리는 춤을 춘다’(대표; 김인숙)는 지역 공동체 문화만들기 사업 중에서도 가장 청년다운 프로젝트일 것이다. 문화적 소외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 문화예술 사업의 특성 상, 사업지들이 대부분 청년들이 빠져 나간 곳이기 때문이다. 지역에 청년들이 거주한다 해도 교육, 노동, 여가 활동 등을 위해서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 돌아와 잠만 자는 식이다. 그것은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방도시의 특성 아닐까. 지자체로서는 자기 지역을 청년이 머무르고 향유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이 컸지만, 그동안 뾰족한 결과물이 나오진 않았다. 대도시 중심가를 보면 청년들만 바글바글한 것 같지만, 지역에서 청년들은 거의 유령 같은 존재다. 작당 팀도 그런 젊은이들 중의 하나였지만, 지금 여기를 다시 자기 세대의 놀이터로 삼고자했다. 그들은 ‘인천은 내 동네가 아니었는데 인천을 내 동네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참여자 모집공고포스터


 


 

동네 친구이기도 한 작당의 멤버들은 97학번으로, 80년대와 2000년대 사이에 독특한 이행기인 1990년대에 학교를 다녔다. 그들은 당시에 학교보다 학교 앞으로 더 유명해지기 시작한 H대 앞의 클럽 등에서 흥겨운 젊은 시절을 보낸 세대다. 당시에 젊은이들의 하위문화는 1980년대의 지배질서의 거대한 대항세력이었던 민중문화와도 다른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개인이면서도 집단일 수 있는 다중이었다. 이미 17세기에 등장했지만, 안토니오 네그리의 책으로 유명해진 ‘다중’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채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유지하는 복수적 존재’(스피노자)를 가리킨다고 말해진다. 네그리가 말하는 다중은 근대의 개인/민중에 대한 대안적 주체, 즉 개인주의로도 집단주의로도 환원되지 않는 존재다. 다중은 지난 시대의 민중, 민족, 대중, 국민 등과 다르게, 21세기의 문화예술이 염두에 둬야할 주체로, 한국에서는 좌우익 권위주의가 모두 도전 받았던 1990년대 청년문화의 주체들을 설명해 준다. 

 

그들이 향유했던 것은 제도화된 주류문화도 일상을 지배했던 대중문화도 아닌 하위문화(subculture)이다. 하위문화는 대학을 비롯한 주요 제도 속에서 유지 재생산 될 뿐인 ‘고급문화’도, 대량생산되어 대중이라는 불특정 다수에게 유통되는 문화도 아니다. 그것은 새로움과 특이함을 요구하는 대중문화의 일단과 ‘고급문화’의 관념적 어법을 물질적 일상에 적용시키려는 일단의 만남이다. 그러한 상호교차를 보여주는 문화예술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토마스 크로는 [대중문화 속의 현대미술]에서, 문화산업에 끊임없이 요구되는 새로움에 대한 강조는 모든 대규모 사업에 필요한 경제 규모와 생산품의 규격화에 대립된다고 본다. 그래서 생겨나는 것이 저항적인 하위문화다. 이러한 하위문화는 관념적이고 장식적인 기념비가 아닌 프로젝트 중심의 대안의 공공예술과 만날 수 있다. 그 둘 사이에는 접촉 지점이 존재한다. 공공영역에서 춤을 추며 소통해보겠다는 작당의 계획은 90년대에 청년시절을 보낸 이들이 상상해 볼만한 프로젝트인 것이다.

 

 

동인천역에서의 게릴라 공연


 

독특한 활기로 가득했던 1990년대의 문화는 길게 가지 않았다. 90년대 말에 닥친 IMF, 이후 비정규직화와 실업으로 대변되는 젊은이들의 소외는 보다 강화되고 확장된 시스템에 대한 길들임을 낳았다. 군부독재 등 권위주의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성장을 일궈서 무역은 현재 세계 6위 까지도 올라간 경제 대국이 되었다는데,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비롯한 세계화에 따른 모순을 젊은이들을 비롯한 취약 층이 걸머지게 되면서 삶의 질은 현저히 떨어져 있다. 작당 팀이 공공영역에서 시도했던 문화적 행위는 이제 각자의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차가운 일상 속 미미한 존재감을 가지게 된 상황을 갱신하고, 그들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강렬한 문화를 호출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그들만을 넘어서 공유되기를 원했다. 그들의 눈높이는 청년에 맞춰져 있다. 지역 주민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큰 과제인 공공 문화예술에서 유령화 된 청년은 ‘지역주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잠재적 주체들을 어떻게 현실화시킬 것인가가 작당 팀의 과제였다. 

 

이 과제를 구체화하기 위해 그들은 젊은이들의 가장 빛나는 자원인 몸을 매개로 삼았다. 그들이 주로 추었던 비보이 춤 등, 난이도가 높은 몸짓을 동네 어르신들이나 아이들이 따라 하기에는 힘들다. 몸을 활성화하려다 몸을 다칠 수가 있다. 그들이 거리에서 춘 춤들은 젊은이들의 문화였고,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절정기의 육체적 조건과 열정을 결합시킨 것이다. 거리, 특히 주변화 되고 버려진 장소를 찾아다니며 춤을 추는 행위에 많은 동조자를 모은 것은 아니지만, 공공영역에서 몸의 언어로 소통하려는 방향성은 의미가 있다. 주류문화가 된 대중문화는 육체를 활성화하고 예찬하는 것 같지만, 실은 육체를 억압하고 착취한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인터페이스를 매개로 한 소비문화는 움직이는 몸보다는 고정된 시각을 중시했다. 도처에 편재하는 크고 작은 인터페이스만 들여다보는 문화의 도래는 지식 뿐 아니라 노는 것, 쇼핑하는 것 등, 문화라고 총칭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수렴되는 장을 조성했다. 

 

 

11월 1일 마지막 춤판
 

다들 눈은 침침해 진채 거북이 목을 하고서 스마트 폰을 들여다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정보를 탐색하는 눈과 그것을 실행하는 손가락만 움직이는 사회에서, 온 몸을 직접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도 획기적인 일이다. 현대의학은 앉아만 있는 문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한다. 현대인이 노동하는 모습과 노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문화는 소비자로 하여금 조용히 앉아서 주어진 메뉴를 선택하기만을 원한다. 그 모두가 거대 시스템이 마련한 소비의 장과 연관된다. 작게는 정보의 소비, 크게는 견물생심 및 소비를 통한 자기표현이라는 중독 현상을 겨냥한다. 현대인은 자기가 생산한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것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뷰티와 헬스’라는 모토를 내건 어떤 편의점 광고처럼, 몸은 지배적 상업문화에서도 중요하다. 예쁜 외모와 극단적 다이어트를 권하는 사회 이면에 ‘먹방’같은 탐식의 세계가 있지만, 그 마저도 보는 것을 통해 대리로 수행되곤 한다. 

 

그것은 육체와 권력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개인의 자유와 욕망이 외쳐지면서도, 철저히 자기감시와 자기조절이 수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미시권력이 발휘되는 구체적인 장이 바로 육체인 것이다. 작당 팀의 작업은 그렇게 잠들어 있는 육체를 춤을 통해서 일깨우는 역할이다. 많은 연습을 요하는 고난도의 동작들은 보는 재미도 주지만, 작당 팀은 무대의 화려함에 연연하지 않는다. 몸의 움직임 자체는 획기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또 다른 구경거리에 머물 때 그 의미는 삭감된다. 그래서 이 팀은 게릴라성 공연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30여분 내외의 춤판을 인천 곳곳에서 수시로 벌이면서 현재의 비상식적인(非常) 상황 속의 현대인을 비상(飛上)하게 하려는 것이다. 거리에서의 춤은 생소하지는 않다. 심지어 엄혹했던 80년대에도 대학로 등에 젊은이들의 일시적인 춤판이 허용됐던 기억이 있다. 춤 쪽으로 한 가닥 하는 젊은이들이 커다란 카셋트를 어깨에 걸머지고 끼리끼리 둥글게 모여 기량을 뽐내곤 했다. 

 

 

 공연전의 무대자리가 될 터널 안팎의  청소작업

 


인도에서 본 터널 밖의 모습

 

마치 엄청난 해방구가 열린 듯했지만 사회가 지정해준 놀이터 안에서 만의 놀이란 한계가 있었다. 90년대에 번성했던 클럽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권력이 일상의 곳곳에 편재한다면, 이러한 지배적 추세에 대항하는, 또는 대안을 제시하려는 문화는 그 권력과 마찬가지로 일상 곳곳에 편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일단의 젊은이의 무리가 도시 곳곳에서 행하는 게릴라성 춤 공연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가능성이 충분히 현실화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그것은 의도와 결과의 문제이다. 동인천역 광장 등지 에서 행한 춤판들을 마지막으로 결집하는 무대는 한산했다. 전시처럼 일정 기간을 두고 관객이 하나 둘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한 시공간에서의 사건인 공연에서 흥행은 중요한 잣대가 된다. 주최측은 열심히 준비했지만, 사람들 자체가 많이 오지 않았고 온 사람들조차 애써 마련한 춤판에 기꺼이 몸을 투척하지 않았다. 역시 몸을 통한 참여라는 것이 어렵긴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공연을 넘어서는 함께 하기였기에 더 아쉬웠다. 

 

지난 몇 달간 작당이 인천 여기저기에서 행한 춤판의 최종 무대는 인천 송림동 지역, 지하철 도원역과 동 인천 역 사이의 공간이다. 11월 1일 지하철 입구에는 ‘게릴라 춤판, 버려진 터널이 클럽으로 변신한다. 단 하루ㅡ두 시간! 무료입장’이라는 설레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포스터는 음울한 시멘트 빛의 폐허에서 열리는 한 판 춤판이라는 사건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다. 작당 팀이 선택한 장소인 역과 역 사이의 터널로, 버려지고 주변화 된 공간에서 춤을 춘다는 기획에 딱 맞는 장소였다. 국유지도 사유지도 아니고, 중구도 동구도 아닌 역과 역 사이의 공간은 누구의 관할이라고도 할 수 없는지점에 있다. 작당 팀은 이 경계 지역에 유목민처럼 가설무대를 세웠다. 그곳은 주변화 된 공간이면서도 접근성이 용이한 지역이기도 했다. 양 옆이 지하철역이고 그 앞도 많은 차량이 통행하는 넓은 도로다. 그곳은 현재 공사가 중단 된 상태이고 한쪽 면이 막혀있는 어둑한 콘크리트 동굴로 남아있다. 

 

 

공연모습
 

그러나 이 공간이 단순히 버려진 곳은 아니다. 그곳은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를 저지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 그리고 퍼포먼스 반지하나 스페이스 빔 등 지역의 문화예술단체들이 합심하여 수년째 투쟁을 전개해온 뜨거운 장소이기도 하다. 통로가 굴이 된 것은 마을을 둘로 나누는 도로를 반대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한쪽을 막아 놓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뚫려있으면 빨리 뚫어버려야 한다는 개발의지가 더 확고해질 수 있다는 지역민의 판단 때문이다. 이도저도 아닌 경계 지역은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중요한 문화예술은 모두 이러한 경계지역에서 발생하곤 했다. 시커먼 지하철 구조물이 만리장성처럼 내달리고 있는 공간 옆 인도는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고, 인도 앞으로는 차가 쌩쌩 내달리는 삼거리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 뒤로는 존재를 위협받고 있는 오래된 마을의 있는 경계에서 지역의 청년들이 벌인 춤판은 어둡고 무거운 장소를 발랄한 놀이판으로 변화시켜 본다는 재미가 있었다. 그때 심각한 전선(戰線)은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재미 외에, 지역 공동체 문화로의 의미까지 고양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춤은 젊은이들의 것이라는—특히 그들이 추는 춤의 난이도나 급격한 체력소모를 생각해 볼 때--생각은 춤판에 끼어든 소수의 주민 중에는 마을의 꼬마나 아줌마들(그 꼬마의 엄마들)로 인해 무너졌다. 그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뭔가 구경만하는 것으로 문화를 소비하는 냉소적인 젊은이들 보다는 적극적이다. 젊은이들의 참여가 문제였다면 그 옆 굴다리를 통과해서 매일 등하교하는 인근 학교의 학생들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었다. 지역주민을 끌어들이지 못할 때, 떠들썩한 춤판은 소음이 되어 민폐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래서 작당 팀의 행위는 최초의 시도라는 의미로 남아 있다. 인천에서 ‘춤을 춰봐야 겠다’는 생각이 실제로 실행되었을 때 맞딱뜨릴 수많은 변수들을 온몸으로 체감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사전에 그에 대한 염려와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 문제는 마지막 춤판까지 그들을 괴롭혔던 문제 아니었을까. 

 

 

버스 퍼포먼스
 

그러나 그들은 그들 행위, 즉 춤의 강도를 유지하고 싶어 했다. 사실은 그것이 공공 문화예술의 장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대목이다. 그들의 작업은 자신이 즐기고 연마했던 분야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물을 타고 사탕을 발라 받아먹기 쉬운 무엇으로 만드는 문화 봉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봉사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봉사만으로 공공 문화예술의 지속가능성은 불가능하다. 일단 자신들의 모습 그대로 돌파하기로 한 그들이 준비한 무대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버려진 장소를 무대로 만들기 위한 밑작업인 대청소부터 시작해서 빵빵한 음악과 조명, 그리고 동료 춤꾼들의 멋진 안무가 돋보인 찬조출연까지. 그러나 보다 많은 이들의 참여 부족은 바로 이 프로젝트의 부족한 부분으로 남고 말았다. 게릴라식 공연을 해오다 보니 마지막 무대도 게릴라식으로 남은 것 일까. 작당 팀의 프로젝트는 그 충분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함께하기의 난제를 화두로 남겼다. 

 

출전; 인천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