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일 ‘사이, 봄(in between, seeing)’ 전 (9.17--11.21, 갤러리 시몬)

  

이선영(미술평론가)

  

문자를 입체화 한 김신일의 설치물은 ‘사이(間)’가 포함되어 있기에 문자를 읽기 힘들다. 대신 관객은 문자를 본다. 또는 만져본다. 읽으려면 읽을 수 있겠지만 방해물이 있다. 가령 이 글이 인쇄된 페이지에서 글자를 읽으려면 글자는 검고 바탕은 하얗던가, 아니면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김신일의 설치물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주변의 공간과 같은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 문자 사이의 빈공간은 문자를 읽기 위한 필수요소이지만, 작가는 그 빈 공간에도 실체감을 부여했다. 간격은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실체화됨으로서 간격이 강조된 것인가. 허연 공간 속 허연 문자들은 가독성이 떨어지지만, 그렇기에 관객은 더욱 집중해서 바탕과 구별되는 형태(gestalt)를 찾게 된다. 3개 층의 전시장에서 계속 등장하는 단어는 ‘마음, 믿음, 이념’으로, 그것들은 중요하면서도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쉽게 정의 할 수 없는 것들을 아전인수 격으로 정의하고, 그러한 정의가 때로는 도그마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면, 작가의 행위는 개념적 환원을 지연하는 셈이다. 


문자와 그 안팎을 이루는 요소들은 차이에 의해 결합되어 있어, 호기심 있는 관객은 주위의 감시를 피해 층층이 쌓여진 조각들을 슬쩍 밀어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들은 문자를 이루는 구성요소들이 밀고 밀리는 정도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은 차이와 지연이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철학자 자끄 데리다의 차연의 개념을 떠올린다. 여기에는 미끄러짐의 유희를 읽고 쓰기의 핵심적 과정으로 보는 사고가 있다. 이러한 미끄러지기 식의 독법은 독단적 사고를 해체하는데 효과적이다. 미끄러지는 문자는 무엇인가를 정확히 지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3차원 상에 기념비적으로 우뚝 서있는 것들은 무엇인가를 지시하는 수단이 아닌, 스스로가 목적인 문자들이다. 그것들은 중성적 공간에서 자기지시적으로 서 있다. 현대미술이 재현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중요해진 자기지시성은 또 다른 도그마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무릇 모든 이념과 이즘의 진정한 가치는 초심에 있다. 모더니즘은 예술이 신화나 종교, 역사나 정치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자율적 소우주를 형성할 수 있다는 신선한 사고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소수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사회적 모순을 반영하는 미학적 이데올로기로 귀결되었다. 하얀 종잇장 같이, 또는 화이트 큐브의 벽면같이 새하얀 구조들은 이제 막 건설된 듯한 자신만의 자족적 세계다. 그러나 김신일의 작품에서 구성은 동시에 해체이다. 포지티브/네가티브 공간을 구성하는 부분들은 정교한 치수로 짜맞춰졌지만, 그것들이 단편들로 이루어진 집합들이라는 점을 숨기진 않는다. 글자가 글자로 성립하기 위한 간격은 최소한으로 줄어들었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간격 대신에 틈이다. 김신일의 문자조각은 옆에서 보면 불규칙한 간격의 틈(선)이 있는 입방체다. 더 작은 단위로 글자를 코드화한다면 이렇게 추상적으로 보일 것이다. 


한글은 구성과 해체 간의 역설적 관계를 실험하기에 이상적인 문자다. 알파벳처럼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과학적인 문자 한글은 애초에 분해와 조합과 친숙하기 때문이다. 2층 벽면에 붙은 작품들은 글자들에 빛을 부여하여 어느 시점에서는 명확하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글자 사이의 공간이 벽면에서 튀어나와 있어 보는 각도에 따라 글자는 다양한 형태의 유희로 해체된다. 말그대로 시각차에 따라 달리 보이는 개념들이다. 작가는 ‘다르게 보일 수 있음’을 명쾌한 해법으로 보여준다. 3층의 설치는 1, 2층에서와 같은 정교한 짜맞춤이 완화된다. 여기에서는 글자와 그 안팎의 요소들이 부피화 된 덩어리들이 다소간 느슨하게 배치된다. 투명한 면으로 점과 점을 잇는 선들과 그 면에서 떨어지는 그림자가 가상적 부피감을 만드는 [writing] 시리즈는 문자 사이(間, 空, 虛)를 실체화하는 그의 방식을 문장까지 확장한다. 문자를 제대로 읽으려면 사이가 중요하다. 즉 보이는 것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김신일은 그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출전; 월간미술 11월호(2015)